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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머리말 5
머리말 9 제1장 하늘에서 돈을 뿌리면 경기가 좋아지는가 25 아베노믹스의 뿌리에는 거시경제학이 있다 27 성장정책은 디플레이션 불황에서 벗어나려는 정책이 아니다 30 그렇다면 재정정책? 아니면 금융정책? 38 베이비시터 조합의 위기 40 헬리콥터 머니 47 존 로우의 연금술 50 제2장 정부지폐와 재정 파이낸스 59 역사 속 정부지폐 61 은행권의 기원 65 제로 금리와 정부지폐론 69 재정 파이낸스는 이미 하고 있다 78 신용창조 83 무(無)에서 돈을 만들어내는 민간은행 86 플러스 금리 경제의 제약 91 제로 금리 경제의 제약 94 무능한 친구 둘을 합쳐도 무능하다 96 나라의 빚은 제로가 된다? 99 중앙은행이 가진 국채는 영구채로 해야 하나? 102 직접적 재정 파이낸스 108 제3장 장기 디플레이션 불황과 헬리콥터 머니 111 장기적인 수요부족의 가능성 114 자연실업률 가설 118 피구 효과 127 화폐의 장기적 중립성 130 화폐의 장기적 비(非)중립성 137 화폐성장과 기술적 실업 142 기술적 실업의 장기화 144 장기적 수요부족의 해결 148 굴곡진 장기 필립스 곡선 150 20년을 잃어버렸던 진짜 이유 154 제4장 일본 경제는 어떤 함정에 빠졌는가 157 폴 크루그먼의 유동성 함정 모델 163 제스 벤하비브 등의 디플레이션 함정 모델 167 신용창조 함정 173 제5장 헬리콥터 머니와 기본소득 185 화폐발행이익 187 화폐발행이익=기본소득 190 국민 중심 화폐 제도 198 100% 지급준비제도 203 인공지능과 두 가지 기본소득 207 부록 역자의 말 217 이론모델 231 주석 237 참고문헌 240 |
井上智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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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목하는 ‘경기’는 경제학자들이 ‘단기’라고 부르는 척도의 시간보다 길다. 단기는 4~5년을 주기로 숨가쁘게 일어나는 순환이다. 내가 주목하는 경기는 20~30년, 때에 따라서는 100년 정도의 시간처럼 문화와 문명의 특징을 결정짓기에 충분히 긴 기간 동안 나타나는 호황이나 불황이다. 이런 정도의 호황과 불황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나타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여러 요인 가운데 중요한 것은 한 가지다. 바로 ‘세상에 돌아다니는 돈의 양’이다.
돈의 양이 충분히 많으면 호황이 오고, 적으면 불황이 온다. 이런 내 의견에 많은 경제학자들이 반쯤은 부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가능성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반론을 펼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장기적으로도 돈의 양이 경기를 좌우하고, 문화와 문명의 질도 결정할 것이라 생각한다. 잃어버린 20년 동안, 돌아다니는 돈의 양은 매우 부족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돈이 늘어나는 비율이 너무 낮았다. 숫자로 보자면 거품경제가 무너지기 전에는 7~13%였는데, 붕괴 이후 지금까지도 2% 안팎이었다. 비록 안정적이기는 했지만 아주 낮은 상태다. 안정이라는 단어의 사전적인 뉘앙스는 긍정적이지만, 사실 거칠게 말하자면 ‘계속 땅바닥을 기어가는 모양새’다. 돈의 부족이 일본 경제를 오랫동안 곡소리가 날 정도로 괴롭힌 디플레이션 불황의 원인이다. --- p.13~15 묘한 매력을 가진 헬리콥터 머니의 개념은, 밀턴 프리드먼의 논문에서 시작한다. 1969년 밀턴 프리드먼은 ‘하늘에서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면 어떨까?’라는 사고 실험을 한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02년에 (나중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되는) 벤 버냉키가 “통화창조를 재원으로 하는 감세는 밀턴 프리드먼의 유명한 ‘헬리콥터 머니’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라고 강연에서 말했다. 즉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과 감세 정책을 함께 시행하는 것은, 헬리콥터 머니와 같은 효과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 결합에 대해서는 재정 파이낸스를 다루는 다음 장에서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어쨌건 이 발언 이후, 버냉키에게는 ‘헬리콥터 벤’이라는 야유 섞인 별명이 생겼다. 당시 금융정책을 열심히 공부하며 이런 저런 생각으로 밤을 새고는 했던 나로써는, 비아냥거리는 풍조에 커다란 위화감과 약간의 분노를 느꼈다. 버냉키는 매우 정직하게도 당연한 말을 했을 뿐이었다. 오히려 이를 비웃는 자들이 공부가 부족하거나, 생각이 모자라거나, 공부도 생각도 빈약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에도 헬리콥터 머니는 거의 제대로 다루어진 적이 없다. 그저 불량스러운 정책으로 여겨지고 계속 놀림감이 되었다. 발언을 했던 버냉키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에 취임한 후, 조심스러운 자세를 취하면서 헬리콥터 머니에 대한 말을 아꼈다 --- p.48~49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에 묻혀 있던 은을 거의 다 캐내버린 17세기가 되자, 다시 화폐가 부족해지는 상황이 온다. 공교롭게도 기후가 다시 한랭해지면서 농업에서 불황이 시작되고, 경제는 지속적으로 정체되었다. 이는 사회가 불안해지는 계기가 되었고, 곳곳에서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유럽이 맞은 ‘17세기의 위기’다. 화폐의 부족에서 비롯한 위기는 화폐를 채우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18세기 들어 브라질에서 금광을 새로 찾는 등, 기존 화폐의 부족을 메울 수 있는 일들이 생겼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지폐와 예금화폐와 같은 신용화폐가 화폐 부족 문제를 푸는 해결사로 나서면서부터 유럽은 위기에서 벗어난다. 비슷한 예는 또 있다. 17세기 중국은 청나라가 다스리고 있었다. 청나라의 네 번째 황제였던 강희제(康熙帝)는 40년 정도 해금정책(海禁政策), 즉 쇄국정책을 실시했다. 원래 유럽 사람들은 중국의 도자기나 차 같은 상품을 사가면서 은을 냈다. 은이 계속 들어오니 중국에서 은을 화폐로 쓰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쇄국정책을 펴 중국 물건을 유럽 사람들이 사기 어렵게 되자, 중국으로 들어오던 은의 양도 줄어들었다. 이것이‘곡천(穀賤)’이라 부르는 디플레이션 불황이었다. 17세기 말, 강희제의 해금정책이 풀리고 은이 다시 중국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면서 화폐 부족 문제도 풀리기 시작했다. 이제 은, 즉 화폐가 계속 늘어날 수 있게 되었고 장기간에 걸친 인플레이션도 일어났다. 생산이 늘어나고 인구 또한 폭발적으로 늘었다. 중국 인구가 수억 명 수준으로 늘어나게 된 때가 바로 이 시기부터다. 여러 역사적인 사례들은 화폐의 뚜렷한 증가가 장기적 호황과 경제성장의 한 요인이 되며, 인구가 늘어나는 데까지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와 동료 학자들은 낮은 화폐성장이 산출 격차를 불러와 장기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낮추는 메커니즘도 찾았다. 더불어 최근에는 화폐가 장기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증적이고 전문적인 경제학 논문들이 발표되고 있다. --- p.135~137 민간은행이 기업에 자금을 빌려주면 기업이 상품을 만들어 팔고, 판 돈의 일부는 임금이나 주식 배당의 형태로 가계에 넘어간다. 예금이 있는 가계라면 예금에 대한 이자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가계도 화폐발행이익 가운데 아주 적은 떡고물 정도는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화폐발행이익이 분배되는 방식은 불투명하고, 불확실하며, 부당하다. 예를 들어 정부에 1,000조 원의 빚이 있다고 하자. 이 가운데 60% 정도가 민간은행에서 빌린 돈이라면, 이는 대부분 신용창조로 만들어진 돈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정부가 스스로 정부지폐를 발행해서 사용했다면 빚이 이만큼씩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무(無)에서 돈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보면 정부지폐의 발행이나 민간은행의 신용창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정부가 스스로 돈을 만들어낼 권한을 포기하는 바람에 민간은행에서 빚을 낼 수밖에 없었고, 빚을 냈으니 엄청난 이자를 민간은행에 지불해 왔다. 이렇게 멍청한 이야기가 또 있을까? 민간은행에 내야 하는 이자는 세금을 걷어 해결해왔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민간은행 수익을 올려주기 위해 국민에게 세금을 걷어온 셈이다. --- p.194~195 그러니 통화량을 늘려 끊임없이 수요를 살려낼 필요가 있다. 문제는 지금 화폐제도에서는 중앙은행이 금융완화정책을 펼쳐도, 이자율은 곧 제로 하한에 도달해 신용창조 함정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화폐정책의 중심축을 헬리콥터 머니에 둘 필요가 있다. 한편 순수 기계화 경제에서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생활을 뒷받침하는 사회보장제도로서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안정된 재원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때문에 세금을 그 바탕으로 하는 것이 옳다. 이렇게 세금을 재원으로 생활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을 ‘고정기본소득’이라 부르자. 한편 순수 기계화 경제에서는 수요를 늘리고 경기를 안정시키려는 거시경제정책으로 헬리콥터 머니를 바탕으로 한 기본소득도 도입해야 한다. 이 기본소득의 지급액은 물가상승률과 GDP 갭 등 거시경제의 상황을 반영해 변동시킬 필요가 있다. 이처럼 화폐발행이익을 재원삼아 경기를 안정시키기 위한 기본소득을 ‘변동기본소득’이라 부르자. 변동기본소득을 실시하려면, ‘화폐제도의 변혁(Currency Innovation, CI)’이 이루어져야 한다. AI의 발달이 사람들을 빈곤하게 만들 것인지 아닌지는 정책에 달렸다. 고정기본소득과 변동기본소득으로 이루어지는 ‘2층 구조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AI가 해악을 끼치지 않으면서 발달하고, 보급되려면 기본소득과 화폐제도의 변혁, 즉 BI와 CI가 반드시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 p.212~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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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옆에 와 있는 디플레이션 불황, 무엇으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젊은이들을 불황에서 구해내고, AI시대를 준비하는 기본소득을 위한 경제학적 해법 베이비시터 조합은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나 아이를 기르는 150쌍의 파트너들로 이루어진 베이비시터 조합이 있다. 아이를 믿고 맡길 만한 베이비시터를 어렵게 찾아야 했던 파트너들은 조합을 만들었다. 조합에 가입하면 20장의 쿠폰을 받는데, 쿠폰 한 장을 다른 조합원에게 주고 30분 동안 아이를 맡길 수 있다. 즉 다른 조합원의 아이를 30분 동안 맡아서 돌보면 쿠폰을 1장 얻을 수 있다. 베이비시터 일을 해서 얻은 쿠폰 1장을 다른 조합원에게 주면 다시 자신의 아이를 30분 동안 맡길 수 있다. 쿠폰(돈)과 베이비시터 일(노동)로 구성된 작은 경제계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작은 경제계가 위기에 빠졌다. 조합원은 다른 집 아이를 맡아서 돌봐야만 쿠폰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 무턱대고 아이를 맡기면서 쿠폰을 써버리면, 정작 필요할 때 쿠폰이 없어 아이를 맡기지 못할 것이었다. 조합원들은 걱정하며 쿠폰을 아끼기(저축) 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조합원이 쿠폰을 아끼면서 위기가 생겼다. 원래 조합은 아이를 서로서로 맡기려고 만들었는데, 조합원들이 쿠폰을 아끼는 바람에 아이를 맡기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조합을 왜 만들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까지 하게 만드는 위기였다. 조합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6개월에 한 번은 아이를 다른 조합원에게 맡겨야 한다는 규칙을 만들었다. 6개월 한 번은 쿠폰을 써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사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조합은 다시 머리를 싸맸고, 묘수를 찾아냈다. 모든 조합원에게 쿠폰을 더 나누어준 것이다. 쿠폰이 넉넉해진 조합원들은 아이를 맡기기 시작했고, 쿠폰과 베이비시터 노동이 교환되기 시작했다. 쿠폰이 조합 안에서 돌아다니기 시작하니, 쿠폰이 없어 아이를 맡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조합원들의 걱정은 줄어들었다. 그저 쿠폰을 더 복사해서 나누어주었을 뿐이지만 문제는 한 번에 풀렸다. 헬리콥터 머니는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경제학자인 조안 스위니(Joan Sweeney)와 리처드 스위니(Richard Sweeney)가 1977년 함께 발표한 「화폐이론과 베이비시터 조합의 위기」라는 논문에 실린 이 일화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이 일본의 디플레이션 불황을 설명하면서 소개해 유명해졌다. 취업률이 올라가는 등 지표가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본의 디플레이션 불황은 2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했으며, 경제와 관련된 기초 체력이 좋고, 뛰어난 경제학자와 경제관료가 많을 것 같은 일본이, 어떻게 20년이나 디플레이션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는 의문이었다. 책의 저자 이노우에 도모히로는 간단하게 답을 찾는다. ‘아직 시중에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을 연구하던 강남훈, 송주명, 안현효 세 사람은 2016년 일본에서 출간된 『헬리콥터 머니(ヘリコプタ?マネ?)』라는 책을 만난다. 기본소득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정책으로 평가받지만, 실제 적용해보자는 주장은 ‘기본소득으로 나누어줄 돈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늘 무릎을 꿇는다. 그런데 중앙은행도 아닌 행정부에서 지폐를 찍어 국민들에게 나누어주면 기본소득 재원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일본 경제학자가 있다. 그는 행정부가 지폐를 찍어 국민들에게 나누어주면 20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일본이 장기 디플레이션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고, AI가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 확실한 시대에 필요한 기본소득 정책의 재원도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 연구팀은 공부를 시작했고, 이 패기 넘치는 주장을 한국에 소개하기로 한다. 2016년 일본에서 출간된 『헬리콥터 머니』가 2019년에 『거품경제라도 괜찮아-헬리콥터 머니와 기본소득』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번역된 사연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잃어버린 20년 기간 동안 태어나 성인이 된 젊은이들에 대한 미안함에서 이 책이 시작되었음을 밝힌다. 끝나지 않는 불황은 젊은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내면화하게 만들고, 도전정신을 빼앗고, 활력 없는 사회에서 살게끔 해왔다. 모든 젊은이들은 어떤 형태든 앞선 세대가 진 빚을 갚을 운명이지만, 끝날 것 같지 않은 불황이라는 빚은 심하다. 저자는 이 빚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기 위해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 방법은 ‘헬리콥터 머니’다. 하늘에서 돈을 뿌리면 경기가 좋아진다 베이비시터 조합이 겪었던 문제는 쿠폰(돈)의 양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쿠폰의 양이 부족하다보니 베이비시터 일(노동)이 판매되지 않았고, 노동이 판매되지 않으니 돈은 점점 더 귀한 것이 되었다. 돈과 일자리가 모두 귀해지는 디플레이션 불황이다. 그런데 쿠폰의 양을 적당히 늘려주는 것만으로, 베이비시터 조합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의 양을 늘려주는 간단한 방법이 있음에도, 일본에서 오랫동안 디플레이션 불황을 해결하려고 했던 경제학자와 경제관료들의 대응책은 복잡했다. 중앙은행의 이자율을 조절하거나 국채를 사고팔고, 정부가 돈을 풀겠다며 꼭 필요하지 않은 곳에도 새 도로를 닦고 다리를 놓는가 하면,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찾겠다며 신산업 활성화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금리가 제로까지 낮아지고 국채를 아무리 사고팔아도, 텅빈 고속도로가 매일 늘어나고, 자고 나면 혁신적인 기술이 선을 보여도 일본 경제는 디플레이션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저자의 주장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의 양이 실제로 늘어날 수 있게,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디플레이션 불황에서 벗어날 것이다!’ 저자는 『거품경제라도 괜찮아-헬리콥터 머니와 기본소득』에서 장기 디플레이션 불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돈을 뿌리듯이 시중에 돈을 충분히 뿌릴 것을 제안한다. 그동안의 불황 탈출 정책이었던 통화정책, 재정정책, 산업정책은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했다. 마이너스였던 물가상승률을 0%로 올리기 위해 2000년대 초반 양적 완화정책이 실시되기도 했으나, 일본 정부는 최근 재정적자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세금을 더 걷으려 하면서 정책의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경제와 역사, 통계와 수학으로 찾은 답 저자는 꼭 필요하지 않은 재정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다. 꼭 필요하지 않은데 돈을 풀겠다고 다리를 놓고, 도로를 닦는 것은 건설업계에 일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나 경제 전체에는 영향을 줄 수 없다고 본다. 또한 기존의 통화정책과 금융정책으로는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의 양을 늘릴 수 없고, 디플레이션 불황에서 탈출할 수도 없다고 본다. 실질적인 수요가 늘지 않는다면 공급이 늘어나지 않으므로 기업은 대출도 투자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돈을 시장에 나가서 쓸 수 있게 손에 직접 쥐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직접 돈을 찍어내어 국민 개개인에게 나누어주는 방법을 제안하다. 4% 정도의 적당한 물가상승률을 기준점으로 설정하고, 이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며 돈을 찍어서 나누어주면 된다는 주장이다. 필요한 경우 세금을 덜 걷는 것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국민들 손에 돈이 늘어나는 효과를 주기 위함인데, 부족한 정부재원은 역시 돈을 찍어서 해결한다. 저자의 제안은 판을 뒤집는 혁명적인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으로 검증되고, 경제학적으로도 오래전부터 검토되고 있는 보수적이기까지 한 방법이었다. 저자는 화폐와 은행의 기원, 중앙은행의 뿌리와 한계 등 유럽과 동아시아의 경제사를 훑으며, 시중에 도는 돈의 양에 따라 불황과 호황을 번갈아 나타났던 사건들을 확인한다. 또한 헬리콥터 머니라는 용어를 처음 쓰면서 이 개념을 만든 사람이 신자유주의의 기초를 닦았다고 여겨지는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라는 점과, 한국에서 진보적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는 폴 크루그먼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는 점 등 경제학사에 이름을 남긴 경제학자들이 의외로 헬리콥터 머니 정책에 찬성했다는 사실도 확인해준다. 이미 옆에 와 있는 디플레이션과 AI시대를 대비할 기본소득 이노우에 도모히로가 제안하는 일본의 장기불황 탈출 전략은 우리에게 무거운 의미로 다가온다. 한국은 일본이 걸어간 길을 비슷하게 따라간다. 한국 경제와 사회의 성장 과정에서, 한국에 우연히 주어졌던 조건과 스스로 내렸던 선택 모두 일본 모델을 향한 것이 많았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경제와 사회 모두, 변화되어가는 모습이 약 20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있는 일본과 연결된다. 일본이 한국의 미래 모습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장기 디플레이션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일 것이다. 2013년 이후 한국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1%대에 묶여 있다.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물가상승률이 2~4% 정도라고 볼 때, 낮은 물가상승률은 디플레이션 위험에 대한 신호일 수 있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경제의 활력이 낮아지고 있는 등 경기가 침체되는 전형적인 일본형 장기 디플레이션 불황은 어쩌면 이미 한국에서 시작했는지 모른다. 전 세계적으로 호황이 진행되는 가운데에서도 일본은 장기 디플레이션 불황을 겪었던 상황은, 역시 전 세계적으로 호황인 가운데 한국만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상황과 묘하게 겹친다. 시야를 넓혀 한국을 벗어나면, 전 세계적인 경제구조의 변동이 보인다. 1차 산업혁명이 인류가 문명을 형성한 이래 유지되어온 경제적인 삶을 크게 처음으로 크게 바꾸어 놓았다면, AI 등의 출현으로 인한 변화는 그에 버금가는 것이 될 것이라 내다보는 시선이 많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업들은 AI를 선택할 것이고, 이에 따라 줄어드는 고용은 현재의 사회복지 시스템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중앙은행의 공적기관과 민간기관 사이의 애매한 위치와 그를 바탕으로 한 역시 기계적 중립성을 비판한다. 한 번 빠지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장기 디플레이션 불황을 막고 무분별한 재정지출을 막기 위해, 관리 물가상승률을 바탕으로 정부가 직접 지폐를 국민들에게 수당 형태로 공급할 것을 제안한다. 사실상 이는 기본소득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모습일 터,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AI 기술진보가 불러올 산업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대량 실업 사태에 대한 대책으로서의 기본소득 실현까지 주장한다. 머리말에는 저자에게 거시경제학 수업을 듣는 대학생의 솔직한 심정이 나온다. ‘거품경제라도 좋으니, 경기가 좋아지면 좋겠어요!’라는 말의 무게를 어느 정도로 받아들일지는 선택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황 속에서 태어나 죽을지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느껴야 할 무게, 옆 나라 일본의 신기한 경제현상이 아니라 이미 와 있을지 모르는 한국 이야기일 가능성,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공장과 책상에서 쫓겨날 것이 거의 확실한 시대에 거의 유일해 보이는 경제안전망이자 사회안전망으로서의 기본소득 정책을 실시할 방법을 진지하게 검토하라고 저자는 제안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