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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산드로와 레오나르도의 세 마리 개구리 깃발 식당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요리노트 부록_ 나만의 엽기발랄 요리 레시피 |
Leonardo da Vin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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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 주방장 레오나르도가 펼치는 경이로운 요리의 세계
이 책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일단 읽어보면 알겠지만, 레오나르도의 요리나 인물에 대한 평가는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인물을 평가하는 데 대단히 인색하고, 심지어 아주 조롱조로 말하기도 한다. 음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추어올리는 말인지 깎아내리는 말인지 모호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 점 염두에 두기 바란다. 둘째, 요리하는 데 사용되는 재료의 양이다. 여기에 소개되는 대부분의 요리는 거대한 만찬에 올릴 것으로 서너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일반 가정 요리와는 아주 다르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도가 묘사한 요리법을 그대로 따라하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셋째, 이 역시 양에 관련되는 문제인데, 한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정확한 양을 알 수 없다. 몇 그램, 몇 리터, 큰 숟갈, 작은 숟갈 하는 구분이 도통 안 간다는 것이다. 눈짐작으로 적당히 알아맞힐 수밖에 없다. 넷째, 조리기구에 대한 것이다. 그 당시에는 조리기구가 오늘날처럼 세분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 냄비, 솥, 프라이팬 등으로만 얘기할 뿐 특정 요리를 위한 특정 조리기구를 세분하지 않았다. 음식의 양이나 재료에 따라 짐작해가며 읽기 바란다. 다섯째, 재료의 성격 문제다. 500여 년 전에 해먹던 음식들인지라 재료가 요즘과는 많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개중에는 실로 ‘엽기적인’ 재료라고 생각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옛날 어려웠던 시절임을 감안하여 읽기 바란다. 2019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서거 500주년 되는 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평생 동안 요리에 대단한 관심을 나타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의 유년 시절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 레오나르도는 1452년 피렌체에서 가까운 빈치(Vinci)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세르 피에로 다빈치(Ser Piero da Vinci)는 피렌체에서 공증인으로 활약했고, 어머니 카테리나(Caterina)는 빈치의 귀부인이었다. 레오나르도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열여섯 꽃다운 피렌체 아가씨와 결혼했고, 어머니는 아카타브리가 디 피에로 델 바카(Accatabriga di Piero del Vacca)라는 빈치 출신 과자 제조업자와 식을 올렸다. 그 후 친어머니 없이 자라던 레오나르도는 2년 후 할아버지의 집으로 옮겨와 외로운 성장기를 보내게 된다. 레오나르도가 태어난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그를 양육한 할아버지가 1457년 세금 납부 신고서에 다섯 살로 기재했기 때문에, 1452년생으로 결론지은 것이다. 그 서류 마지막 장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452; 내 아들 세르 피에로의 아들이자 나의 손자가 1452년 4월 15일 토요일 10시경 태어났다. 그 이름은 레오나르도이다.” 아버지는 결혼한 부인들이 일찍 사망하는 바람에 네 번이나 결혼했는데, 모두 열한 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한다. 어쨌든 레오나르도는 아버지 집과 어머니 집을 전전하며 성장했다. ‘촌스럽고, 꾀죄죄하고, 먹보인’ 아카타브리가(세르 피에로가 묘사한 바에 따른 것이다.)는 레오나르도에게 단것을 실컷 먹이며 섬세한 미각을 키워주었다. 레오나르도는 의붓아버지로부터 단것에 대한 취미와 요리에 대한 열정을 전수받아 평생을 갈고 닦았는데, 너무 열중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다른 뛰어난 재능을 썩힐 뻔했다. 레오나르도는 프랑스 왕과 함께 3년을 식도락으로 보내고 1519년에 죽었다. 일설에 따르면 프랑스 왕의 품안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가 요리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 하나. 레오나르도는 그의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밀라노 외곽 포도밭을 반으로 갈라 살라이와 바티스타에게 유산으로 남겼다. 바티스타는 레오나르도의 개인 요리사였고 살라이는 레오나르도의 식사 당번을 겸한 제자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