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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도덕의 가면을 쓴 조선 지배층의 두 얼굴 1장 |프롤로그| 조선에 대한 세 개의 초상 철학자가 다스리는 나라 | 이사크 포시위스 그들의 나라, 당신들의 천국 | 윤휴와 송시열 사람고기의 나라 | 장길산 1부 조선 지배층, 그들은 누구인가? |에피소드| 조선 지배층의 정치 이념 조선 예학의 대가,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다 자연과 삶을 노래한 시인, 노비를 죽이다 2장 양반과 왕 살아 있는 정조, 죽은 송시열을 드높이다 왕권이냐, 신권이냐 왕과 양반관료, 공생하다 왕과 양반관료, 대립하고 격돌하다 조선 지배층은 지식권력자다 3장 양반, 혹은 사림의 시대 고려 문벌가문의 후예들, 조선 개국공신이 되다 신흥사대부는 조선 개국의 주역이 아니다 16세기 사림은 향촌 중소지주층이 아니다 사림, 민생을 외면하고 분열하고 싸우다 백성을 위한 사림의 나라는 없다 4장 지배자의 가면 능지처사陵遲處死와 왕도王道 탐욕과 수탈7 국가를 위한 가문은 없다 공론, 그들만의 성城 위선과 이중성 진짜 사림과 가짜 사림 2부 그들은 어떻게 500년 최장기 지배자가 되었나? |에피소드| 선물과 연줄 연대와 유교화 5장 귀천 차별을 엄격히 하라 | 신분제 조선의 양반, 아주 특별한 존재 노비를 통제하라 정당한 지배 | 지식의 지배도구화 지배-피지배의 완충지대를 확보하라 6장 생산과 부를 통제하고 아량을 베풀어라 | 토지와 경제 토지를 양반에게 집중시켜라 조세 특권을 유지하라 군역을 조세화하고 평민에게 짐 지우라 아량을 베풀고 복종을 유도하라 상공업을 억제하고 백성을 가난하게 하라 7장 관직을 독점하라 | 관료제도 사림관료가 다스리는 나라 관료제도의 그늘 | 비리와 부정부패 관직쟁탈전 | 매관매직, 가문 경쟁, 당쟁 관료사회에 젊은 피를 공급하라 | 과거제도 과거제도의 그늘 | 독점과 특권 8장 차등적 법질서를 정당화하라 | 법제도 신분에 따라 처벌하다 예치와 법치 무엇을 위한 법치인가? | 법과 유교질서 누구를 위한 법치인가? | 법과 지배세력 강한 자의 형벌, 약한 자의 형벌 형벌 그리고 반유교의 나라 9장 큰 나라를 섬겨라 | 사대외교 조선은 독립국인가, 속국인가? 사대의 예도 변모한다 중국과 조선, 군신이자 부자의 관계 심화되는 대명의리 | 임진전쟁과 사대 멸망한 명나라의 황제를 살려내다 | 대보단과 만동묘 조선 지배층은 왜 명나라 황제의 제사를 지냈나? 나는 명나라의 유민遺民이다 10장 훈육하고 통제하라 | 학교와 교육 학교는 국가의 원기元氣다 | 성균관, 사부학당, 향교 서원의 탄생 서원과 사림 지배체제 정치 기구로서의 교육기관 | 서원 주민 지배기구로서의 교육기관 | 서당 11장 유교 가치를 삶에 스며들게 하라 | 유교화 유교화 시대를 열어가다 적장자 중심의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이르다 조선의 유교화, 유교의 조선화 제사, 신분제 사회의 가부장제 수호의례 열녀와 기생 12장 |에필로그| 조선 지배층에 대한 세 개의 이미지 한자·이두·한글 | 조선의 문자 분리정책 계해정변인가 인조반정인가? 미국 대통령의 딸, 앨리스 환대 사건 | 소국의 환몽幻夢 주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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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가면을 쓴 조선 지배층의 두 얼굴 1장 |프롤로그| 조선에 대한 세 개의 초상 철학자가 다스리는 나라 | 이사크 포시위스 그들의 나라, 당신들의 천국 | 윤휴와 송시열 사람고기의 나라 | 장길산 1부 조선 지배층, 그들은 누구인가? |에피소드| 조선 지배층의 정치 이념 조선 예학의 대가,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다 자연과 삶을 노래한 시인, 노비를 죽이다 2장 양반과 왕 살아 있는 정조, 죽은 송시열을 드높이다 왕권이냐, 신권이냐 왕과 양반관료, 공생하다 왕과 양반관료, 대립하고 격돌하다 조선 지배층은 지식권력자다 3장 양반, 혹은 사림의 시대 고려 문벌가문의 후예들, 조선 개국공신이 되다 신흥사대부는 조선 개국의 주역이 아니다 16세기 사림은 향촌 중소지주층이 아니다 사림, 민생을 외면하고 분열하고 싸우다 백성을 위한 사림의 나라는 없다 4장 지배자의 가면 능지처사陵遲處死와 왕도王道 탐욕과 수탈7 국가를 위한 가문은 없다 공론, 그들만의 성城 위선과 이중성 진짜 사림과 가짜 사림 2부 그들은 어떻게 500년 최장기 지배자가 되었나? |에피소드| 선물과 연줄 연대와 유교화 5장 귀천 차별을 엄격히 하라 | 신분제 조선의 양반, 아주 특별한 존재 노비를 통제하라 정당한 지배 | 지식의 지배도구화 지배-피지배의 완충지대를 확보하라 6장 생산과 부를 통제하고 아량을 베풀어라 | 토지와 경제 토지를 양반에게 집중시켜라 조세 특권을 유지하라 군역을 조세화하고 평민에게 짐 지우라 아량을 베풀고 복종을 유도하라 상공업을 억제하고 백성을 가난하게 하라 7장 관직을 독점하라 | 관료제도 사림관료가 다스리는 나라 관료제도의 그늘 | 비리와 부정부패 관직쟁탈전 | 매관매직, 가문 경쟁, 당쟁 관료사회에 젊은 피를 공급하라 | 과거제도 과거제도의 그늘 | 독점과 특권 8장 차등적 법질서를 정당화하라 | 법제도 신분에 따라 처벌하다 예치와 법치 무엇을 위한 법치인가? | 법과 유교질서 누구를 위한 법치인가? | 법과 지배세력 강한 자의 형벌, 약한 자의 형벌 형벌 그리고 반유교의 나라 9장 큰 나라를 섬겨라 | 사대외교 조선은 독립국인가, 속국인가? 사대의 예도 변모한다 중국과 조선, 군신이자 부자의 관계 심화되는 대명의리 | 임진전쟁과 사대 멸망한 명나라의 황제를 살려내다 | 대보단과 만동묘 조선 지배층은 왜 명나라 황제의 제사를 지냈나? 나는 명나라의 유민遺民이다 10장 훈육하고 통제하라 | 학교와 교육 학교는 국가의 원기元氣다 | 성균관, 사부학당, 향교 서원의 탄생 서원과 사림 지배체제 정치 기구로서의 교육기관 | 서원 주민 지배기구로서의 교육기관 | 서당 11장 유교 가치를 삶에 스며들게 하라 | 유교화 유교화 시대를 열어가다 적장자 중심의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이르다 조선의 유교화, 유교의 조선화 제사, 신분제 사회의 가부장제 수호의례 열녀와 기생 12장 |에필로그| 조선 지배층에 대한 세 개의 이미지 한자·이두·한글 | 조선의 문자 분리정책 계해정변인가 인조반정인가? 미국 대통령의 딸, 앨리스 환대 사건 | 소국의 환몽幻夢 주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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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정치로 위장한 계급정치의 나라 조선 지배층의 민낯
권력자들의 끝없는 실정과 수탈, 비리와 부패를 자연법인 양 여기고 살아가는 가난한 인민들……. 양반 지배층의 탐욕과 위선으로 얼룩진 조선사회는 어떻게 500년을 존속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학자적 관료 중심의 지배세력 구성이 가능했는가? 조선 지배층의 통치 이념과 지배의 논리는 무엇이었는가? 그 이데올로기적 구상은 어떤 방식으로 추진되고 작동했는가? 조선 지배층은 피지배자의 사고와 행위를 어떻게 규정해나갔는가? 고른 인재 등용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무엇보다 집안과 인맥과 뇌물을 중시했던 과거제도, 공명정대한 대의를 내세우지만 신분에 따라 철저히 다르게 적용되는 법제도, 못 가진 이들을 더욱 한계까지 쥐어짜는 군역과 조세제도……. ‘군자가 다스린 나라’ 조선에서 사회의 가치와 규범 전체에 스며든 유교 윤리는 철저히 조선의 신분 차별과 지배층의 권력 재생산을 위해 작동했다. 유학 경전 읽기를 업으로 삼고 그 가르침과 윤리에 충성했던 조선의 지배층은, 수백 년에 걸쳐 조선을 어떤 사회로 만들어나갔을까? 지식 권력자이자 권력 기술자였던 조선의 사림, 그 잔혹한 통치의 실상에 다가가보자. “조선에는 착취하는 사람들과 착취당하는 사람들, 이렇게 두 계층만이 존재한다. 전자는 허가받은 흡혈귀라 할 수 있는 양반 계층으로 구성된 관리들이고, 후자는 전체 인구의 5분의 4를 차지하고 있는 하층민들로서 하층민의 존재 이유는 흡혈귀들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이사벨라 버드 비숍) “양반이라는 자들은 모두 높이 받들어지고 넉넉한 곳에 처하며, 교만하고 방탕하여 일하지 않고, 오직 벼슬하는 것을 유일한 직업으로 삼았다. 다른 나라에서 관리를 두는 것은 국사를 다스리기 위함인데, 조선에서 관리를 두는 것은 오직 직업 없는 사람들을 봉양하기 위함이다.”(량치차오) “서울에는 어떤 종류의 일도 하지 않는 수천 명의 특별한 존재가 있다. 이들은 길을 거닐고, 긴 곰방대로 담배를 피우며, 옛 지혜의 심오함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선비 역할을 하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다. 이들이 바로 양반 혹은 사대부들이다.”(제이컵 로버트 무스) “관리들은 조세 수취로 백성들을 쥐어짜낸다. 정부는 하나의 거대한 강도가 됐다.”(조지 클레이턴 포크) 책 소개 무역선이 동서로 오가며 세계가 자본의 시대로 접어들던 시대, 네덜란드의 한 인문학자는 먼 동쪽에 철학자가 다스리는 이상국가가 있다고 말했다. 플라톤이 그렸던 유토피아처럼, 덕과 지혜를 갖춘 철인왕이 통치하는 나라가 있다고. 그곳이 조선이었다. 조선은 세계사에 유례가 드문 장기 존속 왕조로, 지혜와 덕을 논하며 학문을 업으로 삼은 선비들이 다스린 나라다. 그러나 그 실상은 어떠했을까. 양반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과 제도, 관료의 부패와 뇌물의 일상화, 참혹한 가난에 빠진 농민들과 군역을 피해 차라리 노비가 되기를 택하는 양인들……. “철학자의 나라” 조선에는 착취하는 이와 착취당하는 이, 두 계층만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착취의 정치가 500년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이 책 『두 얼굴의 조선사』는 조선의 선비를 ‘권력기술자’로서 조명함으로써, 이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조선왕조 500년의 정치 잔혹사, 그 실상에 다가가는 길 유학을 숭상한 조선은 ‘도덕이 꽃핀 나라’라 하고, 어떤 이는 기개 있고 청렴한 ‘선비의 나라’라 일컫는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다른 측면에서 조선을 보고자 한다. 조선은 무엇보다 ‘위계의 나라’였으며, 조선 정치에서 유학은 철저하게 지배계층의 지속적 이익을 담보하는 도구로 쓰였다는 것이다. 조선에서 사회질서를 떠받치는 준엄한 원리로 작용했던 충효忠孝는 아버지와 아들,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필두로 모든 사회관계를 차등적·위계적으로 규정했다. 반상의 구분이 엄격했고, 이에 따른 차별은 직업과 제도,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사회 모든 분야에 일상화되어 있었으며, 양반의 특권은 폐쇄적으로 세습되었다. 이런 면에서 조선 지배층은 근본적인 모순을 안은 존재였다. 함께 나누고 돌본다는 대동사회의 이념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자신들의 기득권과 사리사욕을 위한 계급정치를 펼쳤다. 도덕정치의 명분과 계급정치의 특권을 모두 누리고자 한 이들 지배층은 조선사회를 과도한 예와 명분의 사회로 만들어갔고, 기득권층이 공고해질수록 그들이 휘두르는 유학의 이상은 힘없는 백성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조선의 관료제도는 지배세력에 의한 강제적 약탈 기구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백성에 대한 수탈과 억압은 조선의 특정 시기에 국한된 병폐였다기보다, 조선왕조라는 사회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핵심적 조건이었다. 조선 정치는 ‘수탈과 부패가 공공연히 인정되는’ 상태로 ‘정상화’되어 있었고, 관리의 수탈과 양반의 전횡은 성군의 치세에든 전쟁의 혼란기에든 늘 존재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실록과 그 외 다양한 문헌을 종횡무진 참고하면서 조선 지배층의 근본적 성립·유지 조건, 조선의 각종 제도 운영 실태, 조선 후기로 갈수록 심화된 이념과 규제들 저변에 깔린 본래 의도 등을 차례로 드러내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계급정치 유지’를 위해 ‘도덕정치 이념’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온 것이 조선 지배층의 근본적인 통치 방책이었음이 드러난다. 정치 과잉의 왕조국가 조선의 근간: 신분제 조선사회를 가장 폭넓게 특징지었으며 다른 모든 제도와 문화의 기반이 된 것은, 엄격한 신분제였다. 전체 인구의 10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양반은 관직 진출을 독점했고, 지주제를 성립시켜 대규모 토지를 소유하고 경제를 좌우했다. 부를 독점하고 교육과 이념의 수혜자이자 창출자로 군림하면서 자신들의 지배를 위해 효율적인 사상과 지식을 발전시켜나가는 한편, 군역 및 요역 등 각종 의무에서는 면제되었다. 양반관료의 범죄를 다루는 의금부를 따로 두어 형벌에서 특권을 누렸으며, 양반 중에서도 소수 권세 가문에 권력 집중이 극심하여 인맥정치와 뇌물이 횡행했다. 지주이자 관료인 양반이 지배하는 유교적 농업사회였던 조선에서, 신분에 따른 차별과 억압은 다른 모든 가치에 선행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신라의 골품제나 인도의 카스트처럼 고정불변의 신분사회는 아니었으나, 같은 시대 중국의 사대부 계층과 비교하면 조선 양반의 폐쇄성·세습성이 훨씬 강했다. 사대부의 지위를 자손에게 세습할 수 없었던 중국과 달리 조선은 최소 증손자 대까지 그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고, 조선 후기에는 조상 중에 고위관료가 있으면 후손 대대로 양반 행세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세습적 반상제는 조선사회의 견고한 관행으로서 지배체제 유지에 크게 기여했다. 조선은 법적으로는 다수가 평등하다고 여겨지는 양천제를 채택했으나 관행적으로는 반상제가 엄격하게 통용되었다. 이런 이중 전략은 법적으로는 신분 상승의 가능성을 남겨둠으로써 반상의 차별에 대한 저항을 누그러뜨리는 한편, 양반도 상민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은 지배층의 반체제화를 차단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일하지 않는 자가 부유하다: 조선의 관료와 과거제도 조선의 정치 관료는 온갖 분야에 상당한 영향력을 휘두르며 배타적 특권을 누릴 수 있었는데, 이는 비리와 부정부패를 서로 눈감아주고 또한 조장하는 당시의 풍조에 의해 순환적으로 강화되었다. 도덕과 인품으로 이름난 명재상 황희黃喜 역시 정권을 잡은 수년 동안 매관매직하고 형옥을 팔아 뇌물을 받았다. 임금이 안숭선에게 일렀다. “황희가 교하 수령인 박도에게 토지를 청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박도의 아들을 행수로 들였다. 또한 태석균을 관리로 임명하는 데 힘을 썼다. (…) 그러나 황희는 이미 의정 대신이며 또 태종께서 신임하시던 신하인데, 어찌 이런 일로써 파면하리오.(『세종실록』 53권 중) 뇌물비리는 관료사회의 관행과도 같았고, 백성이나 아랫사람이 관리의 부정을 고발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여 관료의 부정부패는 갈수록 극심해졌다. 평민 가운데 누군가가 조금의 재산이라도 모았다고 알려지면 관리들이 그것을 여러 수단으로 긁어내려 들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대부분의 서민은 축재를 아예 포기하고 “늑대가 대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 정도” 이상으로 돈을 모으지 않았으며, 자처해 노비가 되기도 했다. 노비 전체 규모는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5세기에서 17세기 무렵엔 인구의 30∼40퍼센트에까지 달했다. 법과 관행 자체가 이토록 관료의 특권을 위해 돌아갔으니, 자연히 사림사회는 늘 과거 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정기과거와 비정기과거가 계속 열렸는데, 관료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만을 꿈꾸며 젊은이부터 나이든 이까지가 오직 이 한 가지 목표에 열중했다. 과거 급제라는 일말의 희망은 극도의 사회 부패에 대한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작용을 했고, 사람들이 현실을 비판하는 대신 순응하고 ‘노력’하도록 만들었다. 법적으로 응시 자격을 양반에 제한하지 않아, 공명정대한 인재 등용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과거제는 그러나 사실 응시 자격부터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 과거 응시 전에 응시자의 신분과 배경을 확인했으며, 부·조부·외조부·증조부의 성명·본관·거주지·관직을 기록해 제출해야 했다. 그 외에도 기존 관원 3명에게 신원 보증을 받는 등의 규제를 두었고 결과적으로 과거제를 통해 양반 중심의 신분질서가 흔들리는 일은 없었다. 의례의 기능과 극단적 사대외교 조선시대의 이미지로서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사대외교와 제례 중시 등의 문화 역시 지배층의 권위를 다지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에서 정착되고 강화되었다. 조선 지배층은 의례문화를 통해 ‘신분 간에 분별이 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제례는 문화적 상징의 차별화를 통해 그들의 지위를 사회적으로 내면화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의례였다. 조선사회에서 사림 계층의 한 가문이 제사를 그만둔다는 것은 그 집안 구성원들의 사회적·정치적 죽음을 뜻했다. 제사는 신분 강화와 지위 경쟁을 표상하는 잘 포장된 문화 행위로, 죽음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유교적 사회 가치의 굴레를 구성원들에게 각인시켰다. 이미 망한 명나라의 세 황제를 제사 지내는 대보단 제례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명나라가 망한 지 1주갑, 즉 60년이 되는 해 완공된 대보단 제례는 영조 때에 크게 확장되었는데, 이처럼 다른 나라 황제를 모시는 제사를 국가 차원의 제례로 규범화한 사례를 인류 역사에서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이미 망한 타민족 왕조에 대한 이 기이한 숭배 문화는 살성 전쟁 후 실추된 조선의 왕권과 이들의 대의명분을 강화하는 수단이었다. 조선 왕실은 양반지배층이 중시하는 가치를 실행하고 승인함으로써 지배층으로부터 계속적 지지를 확보하는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었는데, 군주는 대보단 제례를 통해 신하가 임금에게 지켜야 할 의리를 각인시켰다. 또한 사회 전체의 측면에서 대보단 제례는 국가 통치 이념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지배층 내부의 자구책이었다. 명나라 멸망 후 청나라에게 굴복하면서 조선사회 신분질서를 떠받치는 이념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조선 지배층은 이미 망한 명나라의 잔영에 예를 다함으로써 그들의 지배논리와 위계적 질서에 심폐소생을 시도했던 것이다. 유교 사회질서의 완성과 왕조의 몰락 유학을 국시로 삼고 문치주의를 내건 조선왕조는 일찍부터 관학 진흥에 힘을 쏟았다. 나라 최고의 관립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유생들은 예비 관료로서 국가정책에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고, 조정에서도 이들을 후일 국정 운영에 참여할 인재로 여겨 국가 경비를 지원했다. 지방에도 서원과 향교가 설립되었고, 이곳들은 유학 이념을 가르쳐 통치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배출하는 통로가 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로는 사학私學이 발달해 조선 초기에 관학이 했던 역할을 대체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확고한 위상을 가진 것은 서원이다. 관학에 대한 국가 지원이 줄고 향교에 평민 자제들이 늘어나면서, 양반들은 향교를 꺼리게 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발달한 서원은 양반 자제 대상의 특권을 유지하면서 향촌 교화기구의 역할을 함께 담당해, 지역사회에서 양반 가문의 영향력을 확장하고 위계를 세우는 역할을 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영향력 있는 가문들이 서원을 기반으로 가문의 세를 확장하고 경쟁하면서, 여러 면책 특권과 재정적 지원을 독점하게 되었고 이는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다. 거대 문벌가의 세력 강화와 권위 경쟁을 낳은 서원의 발흥과 짝하여, 가문 내의 위계적 권위 또한 엄격하게 틀지어졌다. 상속에서의 남녀 차별과 장자 우대는 17세기 이후에 생긴 관습이다. 이는 제사와 상속에서 딸이 제외되고 적장자만을 중시하여 가문 전체를 서열화하기 위한 것으로, 18세기 전반에 정착되었고 지금 사회에까지 그 흔적을 남긴다. 신분질서가 점차로 세분화되고 부계 중심의 가계 계승 의식이 발달하면서 나타난 다른 기형적 현상은 여성의 도구화다. 조선 후기의 ‘양반되기 열풍’과 더불어 열녀를 배출해 가문을 드높이고자 하는 의식은 점점 거세어졌고, 사회는 남편을 따라 자결한 여성의 가문에 면천과 부역 면제 등의 특권을 줌으로써 이를 조장했다. 일찍이 통치 이념으로 내세웠던 유교 가치와 덕목이 전통 풍속과의 습합을 거쳐 가족제도와 친족제도에까지 깊이 침투해 들어갔고, 18세기에 조선사회는 마침내 그 유교 사회질서의 완성을 보게 된다. 언제 어디에서든 나라와 임금과 충을 내세웠던 조선 지배층은 실상 그를 통해 자신들의 특권을 휘두르고, 위계와 억압의 통치를 한계까지 지속했을 따름이었다. 조선 후기의 문장가 차좌일車佐一은 부조리한 권위주의가 다양한 층위의 유리천장을 형성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며 “영원토록 이 나라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조선 지배층은 민중의 비참한 삶과 울부짖음을 끝내 돌아보지 않았고, 왕조는 20세기 열강의 세력다툼 속에서 끝을 맞이한다. 1910년 일본 정부가 병합늑약을 발표하면서 조선조 500년 지배의 끝이 예고되었을 때, 조선 지배층은 ‘대한제국 황제 즉위 4주년 기념식’을 열고 연회를 즐겼다. 국가와 민생에 대한 의식 없이 각종 특권을 누리고 탐욕을 채우면서 500년을 내달린 조선 지배층의 마지막 모습을 중국의 사상가 량치차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해놓았다. 대연회에 신하들이 몰려들어 평상시처럼 즐겼으며, 일본 통감 역시 외국 사신의 예에 따라 그 사이에서 축하하고 기뻐했다. 세계 각국의 무릇 혈기 있는 자들은 한국 군신들의 달관한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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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의 나라 조선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순응, 아부, 일탈의 조선 백성 생존기 …… 그들은 순종했고 적응했고 수용했고 복종했다. 아부했고 시기했고 선망했고 상승하고자 했다. 기피했고 반항했고 저항했고 나서서 싸웠다. 그들은 조선의 피지배자 민民이었다! …… 농부부터 노비까지, 열 부류 백성 각각이 쓴 서사시의 종합 지난 20여 년 TV 역사 다큐멘터리 영역에서 활약해온 조윤민 작가가 야심차게 시도하고 있는 ‘지배와 저항으로 보는 조선사’ 4부작 중 두 번째 책으로 『모멸의 조선사』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조선 양반층의 지배 전략과 통치에 대응한 백성의 다양한 반응 및 그 결과를 살핀다는 측면에서 2016년에 출간된 시리즈의 첫 작품 『두 얼굴의 조선사』(글항아리)의 속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조선시대 관련 책에서 조선 지배 세력의 통치법이나 백성의 생활상을 분리시켜 각각을 다룬 책은 많지만 이 양자의 관계 양상을 적극적으로 파악하고자 시도한 책은 드물다. 이 책은 바로 이 부분을 정면으로 겨눈다. 특히 양반 관료층의 지배 전략과 통치에 대응해나간 조선 백성의 반응을 계층과 직업 별로 자세히 살피고 있다. 지배 전략을 매개로 관료 세력과 백성이 형성하는 관계 양상을 파악하고, 조선이라는 사회가 이러한 상호적인 힘의 작용에 의해 유지됐음을 드러낸다. 이를 위해서 『모멸의 조선사』에서는 조선 백성을 직업과 역할에 따라 농부·어부·장인·광부·상인·도시노동자·광대·기생·백정·노비 등 열 부류로 나누었다. 조선을 상층부의 힘을 제도와 이념 측면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에 대응해나간 각 부류 백성의 반응을 순종과 적응, 선망과 상승, 기피와 저항이라는 세 가지 틀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통치와 정책 실행에 따른 백성의 다양한 세상살이와 생존법을 살필 수 있다. 가령 농부와 어부를 다룬 책의 앞부분에서는 농본 정책과 민본 정책의 실상을 노동력과 재정 확보라는 측면에서 접근했다. 사회 유지와 발전에서 이들이 한 역할과 그에 따른 고통이 무엇이었는지를 드러냈다. 장인과 광부 장에서는 수공업과 광업 정책의 특징을 알아보고, 백성이 수공업과 광업을 생계로 삼고 이를 자신들 삶의 한 양식으로 형성해나간 추이를 살폈다. 상인 장에서는 상업 종사자들이 국가의 상업 정책에 대응해 어떻게 상업 발전을 이끌었는지에 주목했다. 도시노동자의 경우는 농민에서 도시빈민층으로, 다시 이들이 고용노동자로 전환되는 과정에 강조점을 두었다. 광대와 기생, 백정, 노비는 천민과 신량역천 계층의 대표 격으로 다루었다. 조선사회에서 이들이 가진 역할을 지배 세력과의 관계에서 다각도로 검토했고 이들이 처한 생활상의 어려움과 하층 신분으로서의 고통을 담아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국가라는 한 사회의 현실과 미래는 특정 계층의 일방적인 행위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통치 계층의 정책과 제도, 이에 대응한 피지배층의 일과 생산이라는 양자의 힘이 맺는 관계 양상에 따라 한 사회의 정체성이 형성되고 앞날 또한 결정된다는 사실을 조선 역사의 사례를 통해 전한다. 빛과 함께 어둠을 함께 조명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종정도 놀이판에 축약된 조선의 신분질서 조선시대 양반 집안의 아이들이 하는 놀이 중 종정도從政圖라는 게 있다. 어릴 때부터 과거시험에 대한 향학열을 고취시키고 관직에 대한 꿈을 키워주기 위해 양반가의 자제에게 장려했던 놀이다. 종정도 놀이는 ‘벼슬 겨루기’ 오락이다. 종이판에 종9품에서 정1품에 걸친 여러 관직명을 써놓고 나무막대를 굴려서 나온 수대로 말을 이동시킨다. 막대를 처음 굴려서는 문과文科·무과武科·은일隱逸·남행南行(음서)·군졸의 다섯 가지 출신을 정한다. 자기 출신 칸에서 벼슬을 시작해 누가 먼저 최고 관직에 오르는가를 겨룬다. 놀이 도중 특정 관직에 오르면 그 관직이 가진 실제 권한과 유사한 힘을 행사할 수 있다. 왕을 가까이 모시는 홍문관 관리가 되면 자기보다 앞서 높은 관직에 오른 말을 파면시킬 수 있다. 유배나 사약을 받는 경우가 나오기도 한다. 정치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현실감 있게 반영돼 있다. 양반 가문의 아이들은 이 종정도 놀이를 통해 일찍부터 관직의 종류와 역할을 익혔다. 관직에 따라 권능에 차이가 있으며 권력에도 서열이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체득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신분제를 당연한 이치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종정도가 조선사회를 틀 짓는 관료 체계를 아이들의 놀이판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라고 본다. 태어날 때부터 먹고살 걱정이 없는 양반가의 아이들은 관료 기구를 운용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 방식을 익히는 게 우선이었다. 그 선택받은 공간 다른 한쪽에는 어린 나이임에도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쳐야 하는 조선의 또 다른 아이들이 있었다. 고종 13년, 거지 행색을 한 두 여자가 경주 북안면의 한 양반집 대문을 두드립니다. 열두세 살 된 소녀와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의 여인인데 남루한 옷에 몸은 야위었고 며칠을 굶은 듯 얼굴엔 윤기 하나 없는 상태였습니다. 중년의 여인은 집주인에게 자신을 여자아이의 수양어머니라 소개한 뒤, 이 여자아이를 종으로 삼아달라고 청했습니다. 집주인은 거절했지만 여인은 굶어 죽어가는 사람 살리는 셈치고 거둬달라며 거듭 애원했습니다. 결국 집주인은 다섯 냥을 주고 여자아이를 종으로 삼습니다. 여자아이의 이름은 선례라 했습니다. 선례는 수양어머니를 만나기 전엔 혼자된 생모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다 생모가 개가하면서 홀로 남겨지게 되었고, 이후 수양어머니를 만나 유리걸식과 다름없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이제 선례는 살아남기 위해 양인 신분에서 노비가 된 것이다. 그렇게 선례는 종살이를 하며 연명했지만 수양어머니는 다섯 냥의 돈으로는 삶을 이어가기 힘들었나봅니다. 선례가 종살이를 시작한 지 얼마 뒤 수양어머니는 결국 낯선 거리에서 굶어 죽습니다. 선례의 종살이는 평탄한 듯했으나 스무 살을 넘기기 전에 또 한 번의 질곡에 빠집니다. 종살이를 한 지 6년 뒤, 선례의 생모와 작은아버지가 나타나 선례를 데려가겠다며 집주인과 다툼을 벌입니다. 생모는 선례에 대한 권한이 자신에게 있다고 우겼고, 주인은 강요가 아니라 돈을 지불하고 정당한 거래를 했으니 선례를 내줄 수 없다며 버텼습니다. 그러는 사이 선례가 종적을 감추어버립니다. 노비는 주인의 재산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주인은 마냥 앉아서 기다릴 수 없어 그간의 사정을 알아보았습니다. 예상대로 선례의 가출은 생모와 의붓아버지가 짜고 벌인 일이었습니다. 선례를 다른 부잣집에 팔아넘기기 위해 벌인 사기극이었던 거죠. 곧바로 선례와 생모, 의붓아버지에게 체포령이 떨어집니다. 그렇게 선례는 평민에서 노비로, 결국은 도망노비이자 범죄자 신세가 된 겁니다. 조선은 신분제 사회다. 태어나는 순간 한 아이가 걸어갈 수 있는 미래의 길이 한정되고 결정되었다. 양육과 교육, 결혼과 가정은 물론 직업과 경제력, 사회적 지위와 정치적 영향력까지 신분에 의해 규제된다. 국가 기구를 운용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계층과 의식주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물질을 생산하는 계층이 법률과 제도에 의해 나뉘어 있었다. 흔히 양반이라 일컫는 지배층은 통치에 대한 순응과 복종을 요구하며 피지배층의 일탈과 저항을 단죄했다. 왕도와 민본의 정치 이념, 인仁과 예禮의 가치를 내세우며 동의에 의한 통치를 행하기도 했다.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하위 계층과 결속하기도 했다. 백성은 대부분 권력에 순종하고 지배질서에 순응했다. 일부는 굴종하고 맹목적 충성을 바쳤다. 또 통치 계층을 선망해 신분 상승을 꾀했으며, 때로는 양반 관료에 기대어 협상을 통해 이익을 찾아나가기도 했다. 적응하고 환호하고 침묵하고 체념하는 백성, 다른 한편으론 반항하고 대항하는 백성이 있었다. 이들은 회피하고 부정하고 이탈했다. 소수이긴 하지만 이들 백성은 조선사회의 지배질서에 균열을 내는 주된 저항자였다. 이렇게 보면 피지배층은 단일한 무리가 아니라 제법 다양한 부류로 나뉘는데, 이 모두 버거운 의무를 짊어진 조선 백성이 살아가는 방법이 아닌 게 없다. 선택받은 지배층 입장에서 백성은 어쩌면 지극히 보잘것없는 종자種子였는지도 모른다. 만만하고 미미한 존재였으며, 그래서 이들의 삶은 사소하고 하찮아 보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백성이 없으면 왕도, 양반 관료도, 사대부도 존재할 수 없었다. 백성은 먹고 입고 자는 데 필요한 물질을 생산했고 권위를 내세울 의례용품을 만들었다. 체면과 위신을 세워주는 아랫사람이었다. 물자를 이송하고 판매하는 인력이었으며 국경을 지키는 병사이기도 했다. 마구잡이 통치와 끝없는 억압만으론 이런 역할을 하는 백성을 효율적으로 다스릴 수 없었다. 보살피고 시혜를 베푼다는 덕치의 정치 이념과 가르치고 이끈다는 교화의 이데올로기를 작동시켜야 했다. 조선사회라는 큰 틀에서 보면 함께 살아가야 했다. 또한 통치의 이면이나 속을 살펴보면 정치권력이 일방적으로 행사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명령과 지배의 몸짓 자체가 그 대상에 대한 고려를 거친 뒤의 행위인 것이다. 그래서 권력은 개인이나 한 집단이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힘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집단과 집단 사이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유동하는 영향력이다. 권력은 소유하는 게 아니라 행사하는 것이며, 그 대상의 반응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는 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이 책에서 양반 관료의 통치 방식과 백성의 대응을 함께 살피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 통치하는 계층과 백성, 이 양자의 관계 양상을 파악하는 작업은 조선사회의 실상에 다가가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조선을 이끌어나간 힘: 순응과 저항의 역동성 조선사회를 유지하고 이끌어나간 동력은 지배층의 통치와 이에 대응한 피지배층 양자가 만들어내는 순응과 저항의 역동성에서 나왔다. 지배 세력은 양반 중심의 사회질서를 영구히 유지하려 했고, 백성은 지배의 전략과 통치에 동조하거나 거스르며 이 사회질서에 조금씩 균열을 냈다. 그러면 지배층은 통치 전략과 방식을 조금씩 변화시켜야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정치와 경제, 문화에서 일정한 성과가 축적되었고, 조선사회는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이 책은 서술 방식이 조금 독특하다. 각 장의 첫 절은 사료에 근거해 그 내용을 이야기나 소설 양식으로 기술했다. 일부 대화 내용이나 배경 묘사는 이야기체 구성과 맥락에 적합하게 첨가하기도 했지만 전체 내용은 조선시대에 실제로 있었던 엄연한 사실이다. 또 하나, 저자는 신분제와 정치권력의 폭압, 지배층의 수탈이 조선사회에서 유독 심했다는 주장을 펴기 위해 이 책을 집필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신분제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조선시대와 동시대 세계에서 일반적인 사회제도였다. 폭압이나 수탈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동시대 서구사회가 조선과 중국을 위시한 동아시아 문화권보다 더했다는 평가를 한다. 비교나 과장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찬양해 은근슬쩍 지배층을 미화하려는 뜻이 없듯이 당대 현실을 왜곡하고 모순을 부풀려 지난 역사를 날조하려는 의도 또한 담고 있지 않다. 영광과 위대함만으로 채색될 수 있는 역사가 없듯이 굴욕과 초라함만으로 점철된 역사도 없다. 지금 여기에서 되돌아보면 어느 역사든 거기엔 명암明暗과 공과功過, 시비是非가 있기 마련이다. 이제 우리의 지난 시간인 조선사회에 암暗과 과過, 비非에 무게를 둔 시선을 던져보려 한다. 조선시대의 명明과 공功, 시是에 대해서는 이미 뛰어난 연구자들의 허다한 조명이 있었던 터이니 말이다. 다시 그들을 그려본다. 그들은 순종했고 적응했고 수용했고 복종했다. 아부했고 시기했고 선망했고 상승하고자 했다. 기피했고 반항했고 저항했고 나서 싸웠다. 그들은 조선의 피지배자 민民이다. 압박과 수탈, 모멸과 천시 속에서도 삶의 근원적 욕망을 발산하며 생과 대를 이어간 조선의 백성, 그 모든 이를 위한 그리움을 이 책에 남긴다. 그리고 그들의 말과 몸짓, 얼굴에서 오늘 이 시대의 우리를 찾아보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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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외부자들이 낮은 곳에서 펼치는
분투의 이야기, 그 저항의 기록 · 탈영웅적 저항자들의 양반 세상 뒤엎기 푸줏간 주인, 목수, 품팔이, 화전민, 머슴, 병작농민, 초군, 문지기, 성균관 하인, 노비, 관노, 거기에 무뢰배와 도둑 무리까지. 역사 무대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갖지 못한 채 조선 사회의 뒤안길을 서성거린 이들이 뛰쳐나와 반항하고 싸우며 양반 세상을 흔들고 지배체제에 균열을 낸다. · 불온한 자들이 행하는 전복과 반란의 한판 굿 승려와 무당, 몰락 양반과 유랑지식인, 불만과 저항의 비판지식인. 지관이자 술사이며 때로는 훈장이자 의원인 이들은 신분제와 지주제에 기반을 둔 사회체제 모순의 희생양이었다. 지배세력권으로의 진출이 차단된 정치 투쟁의 탈락자였다. 조선 사회의 아웃사이더이자 불온분자인 이들이 마침내 지배세력에 반기를 들었다. 미륵과 진인眞人을 앞세우며 새 세상을 꿈꾼 조선 이단아들의 투쟁의 굿 한판! · 역류의 반란과 꿈 - 누가 진정한 의병인가? 땀 흘려 생산하고 창 들고 나라 지킨 자들은 비하와 조롱의 언어 아래 주류 담론의 바깥으로 밀린 채 차별받고 무시당한 무명의 백성이었다. 이들이 이제 자신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반항과 항쟁의 역사를 써나간다. 의義와 도道를 행하라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의와 도를 행하겠다면서 역사의 중심 무대로 전진한다. 어가에 돌 던지고, 궁궐에 불 지르고 서울 창의문 밖에 사는 조만준은 떡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평민이었는데, 왕실 사당에 행차하는 어가에 느닷없이 돌을 던진다. 관아에서 잡일을 하는 하인 박중근은 지엄한 궁궐 마당에서 칼을 빼들어 자살을 기도하고 평민 장득선은 아들과 함께 능에 불을 지른다. 절치부심하며 아버지의 복수를 준비해온 이명과 이가음이李加音伊 형제는 13년째 되던 해 마침내 옛 상전을 죽인다. 충주 주민들은 수령을 대신한 인형에 화살을 쏘며 욕설을 퍼붓고, 경희궁을 수리하던 목수들은 포도청에 난입해 관리를 구타한다. 농부와 떠돌이 노동자로 살아온 백성이 의적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부잣집 재물을 취한다. 그 시대에도 불온한 자들이 있었다. 지배세력과 사상이나 신념을 달리한 인물들이다. 임진전쟁을 계기로 집안이 몰락한 길운절과 서얼 출신 소덕유는 제주 주민을 선동해 반란을 기도한다. 승려 여환은 무당, 지관과 함께 북한산에서 대홍수의 날이 오기를 빌며 변란을 도모한다. 『정감록』 예언을 퍼뜨리며 10년 동안 반란을 준비해온 문인방은 유배지에서 역모를 꾀한다. 권력 투쟁에서 밀려 정계 진출이 좌절된 이들과 함께 말이다. 관아 노비인 김재묵은 10만 병사가 난을 일으킬 것이라는 괘서를 성문에 붙이며 민심을 어지럽힌다. 유랑지식인 김치규는 홍경래 무리와 합세해 조선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유언비어로 하층민을 선동한다. 저항의 파편들이 모여 거대한 역류를 이루다 벗어나고 거스르던, 파편과도 같은 이런 저항의 흔적은 결국 지배층에 전면적으로 맞서는 역류의 항쟁으로 거듭난다. 19세기 들어 백성은 평안도와 삼남에서, 마침내 조선 전역에서 대규모 무력 투쟁에 들어간다. 몰락한 양반 가문과 한미한 집안 출신의 지식인이 앞장서고, 안목을 갖춘 개혁 성향의 평민이 의로움을 외친다. 지주의 토지를 빌려 농사짓는 병작농민과 땔나무를 해다 파는 초군이 동참한다. 머슴과 임금노동자가 항쟁 대열에 합류한다. 가구 만드는 장인과 소금 파는 행상도 뛰어든다. 뜨내기와 광대가 창과 총을 들고, 노비도 관리와 토호를 징치하는 관아 마당으로 진군한다. 백성의 이러한 저항 행위는 대부분 대역부도나 역모 등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극히 불충한 소행으로 단정됐다. 도덕과 사회윤리 측면에서도 도道에 어긋나는 짓거리로 매도당했고 말이다. 목숨과 집안의 미래까지 걸어야 하는 매우 위험한 선택이었다. 지배세력은 강력한 제재에 나섰다. 무력과 폭력을 동원했으며, 제도와 관습의 틀을 공고히 하고, 때로는 사상을 주입하거나 교화정책을 펴며 그 소행과 짓거리를 억누르려 했다. 이는 위력과 사회자산을 모두 동원해 지배체제를 지키려 한 사실상의 총력전이었다. 그럼에도 조선시대 내내 그 소행과 짓거리는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대체 왜 그랬던 걸까?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명과 혈육까지 내던질 수 있게 했을까? 모멸감을 느끼는 삶에 대한 성찰과 반추 벗어나고 투쟁한 백성 또한 인력이자 생산자로 조선 사회를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하지만 쉽게 무시당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지배층의 눈에는 무지몽매한 자였으며 무뢰배이자 흉포한 잡배였다. 때로는 도적과 화적, 폭도로 불렸고 기껏해야 가르치고 이끌어주어야 할 모자라는 백성이었다. 지배층의 권력 투쟁 와중에 명분을 쌓기 위한 민본의 대상으로 종종 등장하지만 그건 말의 성찬일 뿐, 이들을 위한 정책은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이들은 지배를 가능하게 해주는 자원인 관직과 토지를 갖지 못했으며 신분과 사회 지위도 미미한 편이었다. 지배 계층의 이념이나 사회경제적 영향력 아래 종속돼 차별과 억압을 받는 백성이 대부분이었다. 지배층으로의 진입이 인정되지 않거나 아예 지배세력권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차단된 자들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통로를 갖지 못한 채 오랫동안 사회 주변부를 떠돈 이들이다. 그렇지만 이들 또한 무시당하면 모멸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무뢰배와 도적이라 매도하는 모욕에 가슴 아파했다. 울분과 의분을 가진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의義와 도道를 주창하고 자신들만이 이를 수행할 수 있다고 한 지배층의 허위가 드러나자 마침내 이 분노한 사람들이 들고일어났다. 그토록 당당하게 외친 그 의를 행하라며, 그토록 근엄하게 설파한 그 도를 실현하라며, 그렇지 않으면 이제 자신들이 그 의와 도를 이루겠다며 나선 것이다. 이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이 조선 사회에 의로움을 세우고 시대의 도를 높이는 의병이었다. 이 책은 조선 사회의 주류 흐름과 지배세력에 맞서 이탈하고 전복하고 봉기한 자들에 대한 사연을 담았다. 양반 중심의 신분질서를 흔들고, 통치체제에 균열을 내며, 지배이념을 거스르며 맞서 싸운 자들에 대한 기록이다. 앞서 펴낸 『모멸의 조선사』에서 지배세력의 통치에 대응해 회피하고 반항하는 양상을 보인 백성을 단편적으로 다루었는데, 이 책에서는 이탈과 불온, 역류의 이야기를 깊고 넓게 다루고 저항과 항쟁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펼침으로써 이전 책과는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분명한 차별을 꾀했다. 역사의 난장판에 외부자들의 발언 무대를 마련하다 저자는 이들이 외치는 절규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거칠지만 정직한 그 몸짓을 겸허하게 짚어본다. 욕심일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이들의 생각과 꿈까지 헤아려볼 것이라고 [책머리에]에서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부르짖음을 두둔하고 행위를 미화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선과 악의 잣대만을 들이대거나 호불호의 구도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이것만이 조선 역사의 큰 줄기라 여기지도 않으며 이들만이 변혁의 주체라고 고집하지도 않는다. 다만, 명징과 미혹이 교차하고 진전과 좌절이 함께하는 역사의 난장판에서 제대로 발언할 기회를 갖지 못한 이들에게 외칠 자리 하나를 마련하려 합니다. 압제의 대상에서 저항의 주체로 거듭난 이들의 몸짓을 헤아리면서 조선 지배층이 구축한 억압과 착취의 사회구조 한 자락이나마, 천리와 윤리의 얼굴 뒤에 숨은 그 속내를 들여다보았으면 한다. 어찌 보면 이 책에서 들을 수 있는 목소리와 만날 수 있는 몸짓은 힘없는 자들의 한풀이나 넋두리로 여겨질 수 있다. 이들의 저항이 결국은 좌절되지 않았나 하는 자조의 평가를 내릴 수도 있고 말이다. 설령 그렇더라도, 역사의 유산에서 실패를 되새길 때 다가올 역사의 도전에 당당히 나설 수 있다고 한 말을 또렷이 기억하고 싶다. 시대의 부조리와 지배의 야만에 맞섰던 조선 백성이 행한 그 역류의 바람이 오늘 이 시대를 질타하는 칼이 되었으면 한다. 1부 “일어서는 자 벗어나는 이”의 핵심 개념은 “반항(혹은 항거)”이며, 드러난 행위 측면에서 보면 “피지배층의 이탈과 일탈”이다. 떡장수, 목수, 떠돌이 노동자, 품팔이, 관노, 사노, 성균관 노비, 농부, 화전민 등 하층민이 주인공이다. 1부에서는 권력 행사의 부당함과 상전의 억압, 관료의 수탈에 대응해 기물파괴와 방화, 복수살인, 상전살해, 폭력 대응, 소요, 난동, 도적질 등으로 맞서나간 행위와 사건을 다룬다. 대체로 개인 단위로 행해진 저항으로, 여기에는 가족과 집안 구성원 규모의 저항도 포함된다. 민란 규모에는 이르지 못한 관아 난동과 도시폭동, 군도 등 소규모 무리의 소요와 일탈 행위까지 다룬다. 2부 “불온한 자 거스르는 이”의 핵심 개념은 “불온”이다. 현실에서는 “정권 탈취를 위해 변란을 기도한 불온한 자들의 모반”으로 드러난다. 몰락 양반, 유랑지식인, 평민지식인, 저항지식인 등으로 불리는 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2부에서는 집권세력의 부당한 통치 행위와 민생정책 실패, 관료의 억압과 수탈 등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을 기치로 일으킨 정치변란 사건을 다룬다. 임진전쟁과 병자전쟁 뒤에 일어난 백성들의 변란, 미륵신앙과 생불신앙에 기반을 둔 민간신앙 성격의 변란, 정감록을 중심으로 한 민간사상에 바탕을 둔 역모사건, 괘서 유포와 같은 유언비어 사건(커뮤니케이션 반란) 등을 살핀다. 이들 정치변란은 전투를 치르거나 지배층과 실제로 맞서는 봉기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모의와 기도 단계에서 발각돼 실패했다는 특징을 갖는다. 3부 “역류 - 풀과 바람과 칼”의 핵심 개념은 “대규모 항쟁”이다. 이들 항쟁은 실제로 봉기에 성공한 민란과 변란 성격이 강한 반란 사건이며, 지배체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항쟁을 이끈 몰락양반과 평민지식인 등 저항지식인과 봉기군의 주축을 이룬 기층 민중이 주인공이다. 3부에서는 19세기에 일어난 대규모 민중 항쟁과 기층 민중을 동원해 봉기한 변란 성격의 반란을 다룬다. 먼저, 1811년 평안도에서 일어난 홍경래를 위시한 백성들의 봉기(홍경래의 난), 1862년 삼남에서 일어난 백성들의 항쟁(임술민란)을 살핀다. 이어, 1869년에 광양 읍성을 점령한 광양변란과 1871년에 영해 읍치를 장악했던 이필제의 변란을 알아본다. 하층민의 무력에 의한 정권교체라는 성과를 이뤄낸 1882년 서울 하층민의 반란 사건(임오군란)도 살핀다. 마지막으로 1894년 동학농민전쟁에 접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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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란 벽돌과 모르타르로 만들어진 정치다.” -울리히 벡
건축물에는 이념이나 사회윤리 등 추상적 가치를 물질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속성이 있다. 정치가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에 주목해 지배이념, 통치 강령, 지배체제 윤리를 건축물에 표상하고 이를 확산하려 했다. 건축물은 권력자가 원하는 정치 담론을 형성하고 상징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거대한 규모와 엄숙한 공간, 엄정한 외관과 체계적인 구성을 가진 건축물은 피치자에게 권력자의 신성함과 위력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하다. 『문화유산의 두 얼굴』은 오늘날 우리가 문화유산이라 부르는 조선시대의 왕릉과 궁궐, 읍치와 성곽, 성균관과 향교, 서원 등의 건축물에 관해 권력기술자들이 자신들의 권력 유지와 통치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관점으로 이야기한다. 조선의 기념비적 건축물을 보면 그 외양과 구조를 살펴 당대의 미의식과 건축학적 문화양식을 가늠할 수 있으며, 건립을 추진한 배경과 사연을 짚어보고 거기에 스며든 시대 정서와 선대의 정신을 헤아릴 수 있다. 공사에 동원된 백성의 고단한 사연도 보듬어 안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 책에서는 권력 유지와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된 건축물이란 틀로, 지금은 문화유산이라 부르는 조선시대의 왕릉과 궁궐, 읍치와 성곽, 성균관과 향교, 서원과 사찰에 다가가고자 한다. 이들 건축물 또한 권력의 권위를 확보하고 지배질서를 정당화하며 통치의 효율을 높이는 장치이자 도구로 쓰였다. 소통과 교류의 구심점으로 지배층을 결집하고 계급 재생산을 꾀하던 체제 유지의 보루였다. 정책 입안을 두고 난상토론이 벌어지던 정치의 제일선이자 더 강한 위세를 휘두르기 위해 정치세력 간 다툼이 끊이지 않던 권력투쟁의 한복판이기도 했다. 선현을 받드는 사당을 지어 제례를 올리며 신분 우위와 특권 행사의 근거를 마련하던 지배전략의 진지였다. 그곳은 감화시키고 가르쳐 순응하는 충실한 백성을 길러내던 교화의 마당이었으며, 통치와 지배에 대한 동조나 인정을 끌어내던 헤게모니hegemony 전략의 본거지였다. 유럽과 일본 등 다른 나라의 사례와 함께 이러한 역사 사실을 반추하면서, 건축물을 짓고 유지한 인부이자 그 재원을 생산하는 인력이었던 백성에게도 잠시 시선을 둔 것이 이 책의 의도다. 지금까지의 흐름은 문화유산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거나 그것의 건축미나 문화적 가치, 기능의 우수성을 논하는 담론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에서 헤게모니 전략의 본거지로서 조선시대 건축물의 정치적 기능과 사회적 배경을 살펴본 이 책의 존재 가치는 크다. 유교문화의 정수 vs. 후대 왕의 권력 의지 산 자를 위한 죽은 자의 왕릉 한반도에는 고대 이래 지속적으로 왕릉이 조성됐다. 조선시대에 조영된 왕과 왕비의 능만 11기에 이른다. 그중 북한 지역에 있는 2기의 능과 임금 자리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묘를 제외한 40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주변 자연경관을 유지한 채 장례 전통과 유교문화의 정수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그 등재 사유였다. 풍수지리 사상이 어우러진 건축미와 엄숙한 제례가 유지되는 왕릉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왕릉이 죽은 권력자의 안식을 위한 의례 공간이라기보다 되레 산 자들의 의지와 열정, 음모와 조작, 땀과 눈물이 배인 치열한 삶의 장소라 본다. 권력 이동, 당파 싸움 등 정계의 파고에 따라 최고 권력자의 무덤은 파헤쳐지기도 했고, 후세의 의지에 의해 이전(천릉)이 이뤄지기도 했다. 집권한 왕에게 선대의 왕릉은 왕권 정당화와 권력 승계의 영속화를 위한 상징적 기제로서 역할을 했다. 반면 신하들은 추존 등의 문제나 왕릉의 위치 등의 사안을 두고 왕권을 견제하는 카드로 사용했다. 실제로 중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폐위된 왕후의 복위와 천릉을 기회로 삼아 자신에게 유리하게 정계를 재편하고 정치적 기반을 확대했다. 한편 송시열을 위시한 신하 세력은 효종 영릉을 두고 왕과 면대하면서 갑론을박을 펼쳤고, 왕릉을 둘러싼 문제는 정쟁의 주요 사안이 되어 정치세력 간에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능이 들어선 여주의 위치도 눈여겨봐야 한다. 영릉은 “도성 10리 밖에서 100리 안에 조성해야 한다”는 경국대전의 기준을 어기고 100리가 넘는 먼 곳에 위치해 있다. 국법을 어기고, 게다가 거리가 멀어 능행과 관리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여주로 굳이 능을 옮기려 했던 이유가 온전히 풍수지리 때문이었을까? 권세가가 자신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새 왕릉을 조성할 자리를 여주로 밀어붙인 것은 아닐까?” (64쪽)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왕권의 상징 vs. 민초들의 피땀 어린 건축물 권력의, 권력에 의한, 권력을 위한 궁궐 조선 초기, 세종은 개국 이념을 담아 왕조의 법궁으로 삼기 위해 경복궁을 중건한다. 명당자리에 경복궁을 지어 왕실 안정 및 왕가 존속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정치 공간으로 삼고자 했다. 시간이 지나 임진왜란 시 불탄 경복궁을 중건할 때도 비슷한 논리가 등장한다. 서양의 ‘왕권신수설’과 유사하게 도성 한복판에 산을 등지고 풍수지리에 따라 지어진 궁궐은 왕가의 존엄과 왕의 권위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일반 백성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왕과 왕족의 생활공간이자 관료들의 정치공간인 궁궐은 그야말로 권력의 중심이었다. 왕은 신권 견제를 위해 궁궐 중건을 추진하기도 했고, 궁궐 의례를 통해 왕권의 정통성과 지배 이데올로기를 각인시키려 했다. 그 과정에서 왕과 신하의 대립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 고래 싸움에 터져나가는 새우등은 백성이었다. 궁궐은 그 규모와 상징성으로 인해 건립 및 보수하는 데 거대한 자본과 노동력이 요구되었다. 이를 충당하기 위해 조세 및 직접적인 백성들의 부역은 불가피했다. 농번기를 제외하고 밤낮없이 차출되었고, 그 과정에서 백성들이 말 그대로 죽어나가는 것은 일상다반사였다. 궁궐에서 행하는 국가의례나 궁궐에서의 삶이 가능하도록 갖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1000여 명의 궁녀나 수백 명의 환관 등 이들 역시 백성이었다. 장엄하게 지어지고 엄정하게 꾸려진 궁궐은 지배자의 권위를 드높이고 왕조의 번영을 꿈꾸게 하는 상징이었지만, 그 그늘에는 항상 민초의 땀과 한숨, 눈물과 피가 어렸다. “궁궐과 도성 설계자는 경복궁 영역에 진입할 때 ‘궁궐-산-하늘’의 일체화된 경관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복궁으로 통하는 도로망을 치밀하게 조성하고 교차 지점까지 전략적으로 설계했다. 숭례문에서 경복궁으로 바로 통하는 대로를 내지 않고, 동북쪽으로 우회 도로를 만들어 가로로 놓인 종로와 연결되게 했다. 이 우회 도로를 따라 종로에 이른 뒤에 서쪽으로 꺾어 잠시 걸으면 육조거리 앞 사거리(지금의 세종대로 사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북쪽으로 난 길로 들어서는 순간 경복궁이 그제야 외양을 드러낸다. 궁궐과 산과 하늘이 일직선상에 하나로 묶여 다가오며 웅장함을 연출하고, 시선은 금세 경외감으로 가득 찬다.” (127~128쪽) 행정구역을 나누고 치안을 유지 vs. 사는 곳이 곧 신분이다 분리하고, 차별하며, 통치하라 성곽과 읍치 고종 어진을 그린 외국인으로 알려진 아널드 새비지랜도어는 서울을 여행하면서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저녁 통행금지가 시작될 무렵 한양 성내로 서로 들어가려는 인파에 휩쓸려 성문을 겨우 통과한 것이다. “너무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애걸하지만 소리만 메아리처럼 울릴 뿐, 대문은 이튿날 해 뜰 때까지 열리지 않는다. (…) 서울은 이튿날 아침까지 외부세계와 격리돼 있었다.” 성벽은 그저 성의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가 아니었다. 성내는 왕을 비롯한 권력층, 양반, 중인 등 이른바 신분제의 특권을 누리는 권력자들의 세상이었다. 성 밖에는 대체로 임금노동자, 빈농 등 하층민이 사는 곳이었다. 성곽은 이들을 분리함과 동시에 차별과 배제의 벽이기도 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치의 입지와 건축물 배치 역시 통치 권위를 과시하는 데 충실했다. 한양(서울) 도성은 ‘궁궐-산-하늘’의 일체화된 경관 경험으로 통치자의 권위와 존엄을 드러냈으며 이를 백성들에게 내면화시키고자 했다. 이 고도의 정치기술은 뒷산을 배경으로 풍수원리에 따라 조성된 읍성에도 반영되었다. 중심부에 자리한 관아나 동헌의 위치 및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가 시야를 확보한 길 등의 모습은 한양뿐만 아니라 낙안읍성 등 조선시대 읍성의 전형으로 자리잡았다. 군사 행정시설이자 지배권력의 권위를 상징하는 성곽과 읍치는 그 자체로 통치수단의 하나로 활용되기도 했다. 실제로 인조와 정조 등은 성곽 건설과 보수 사업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당파 싸움 와중에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다. “읍성이 향리 집단과 하급 관속이 생활하는 거처로 정착되면서 읍치지역은 권력에 기대어 사는 향리와 하층민이 거주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양반층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그러면서 읍성 지역은 국왕의 존엄과 권위가 발하는 곳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양반에게 경시당하고 멸시받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공간으로 변모했다.” (222쪽) 배우고 익히는 선비의 학교 vs. 앎이 곧 권력, 권력자를 양성하라 국가기관인 성균관과 향촌지역의 향교, 서원 조선 사회의 권력 구조는 군신공치君臣共治에서 그 특징이 드러난다. 왕과 양반 관료는 어느 한쪽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 균형을 통해 협치를 해나갔다. 이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 중의 하나가 성균관 제도다. 문묘를 지키고 학업에 힘쓰는 것이 성균관 유생에게 표면적으로 주어진 역할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국가(왕)로부터 받는 특권과 조정 대신들과의 정치적 공조 등이 놓여 있었다. 성균관은 주류 지배층을 재생산하는 하나의 정책 제도였고, 유교이념을 내세우는 교육기관이자 의례 공간이면서도 당파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정치 싸움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정치적 공간이었다. “파리 대학뿐 아니라 성균관에도 특권이 그냥 주어지지는 않았다. 국왕은 성균관 유생이 정성을 다해 문묘를 지키고 학업에 힘쓰며, 국왕을 받들고 통치에 힘을 보태는 충신이 되기를 기대했다. 특별과거와 사은품 하사는 장차 군주를 옹호할 충직한 신하가 되라는 사전 조치로, 결국은 왕권 강화를 위한 정치적 수완인 셈이다. (…) 조선 전기만 해도 성균관 유생의 동맹휴학은 대체로 국왕과의 극단의 대치로 치닫거나 정치세력 간의 격한 다툼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 하지만 붕당 간의 권력다툼이 본격화되는 17세기 이후엔 동맹휴학의 성격이 크게 달라진다. 여전히 의리와 도리 등 거창한 명분을 앞세웠지만 관계 진출이라는 자신들을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 특정 당파의 속내를 대변하거나 유생들 자신의 이익에 급급할 때가 잦았다.” (297~298쪽) 사림 세력은 유학이념과 규범에 따르는 조선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이들은 서원과 향교를 기반으로 유교화 작업에 착수했다. 율곡 이이가 관직에서 물러나 향촌 교화에 진력하고, 각 지역에 기반을 둔 사림들이 저마다 서원을 건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원과 향교에서는 교화를 행하고 의례를 치르기도 했지만 동시에 향촌 지배층의 이익을 담보하는 착취기구이자 일종의 권력기관으로 기능하기도 했다. 특히 조선 지배층은 불교계 인력과 경제적 기반을 활용해 권력의 토대로 삼았다. 대표적인 예가 절터에 자리한 서원이다. 사찰에 자리잡은 서원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사찰(불교)에서 서원(유학)으로 문화 권력이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또한 유교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음을 보여주면서 향촌 주민들에게 이를 주입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권력과 지배의 창으로 본 문화유산 그 빛과 그림자를 직시하다 이 책은 권력 재현의 매개체로서 건축물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특히 조선시대 권력기술자들이 어떻게 당시 백성들의 감정과 사고를 통제하고 행위를 이끌어냈는지에 주목한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시대 건축의 미와 문화적 가치, 이념의 본연과 정신적 유산까지 모두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기존의 것과 관점을 달리한 문화유산 관찰기는 세월을 담아 살아난 유적이 전하는, 어쩌면 어두워 보일지도 모를 그 아픈 유산까지 보듬으려는 움직임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누군가의 말처럼 빛과 그림자, 이 둘을 함께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 삶을 정면에서 직시하는 지혜라 믿기 때문”이며 “그건 여전히 명멸하는 이 시대의 빛과 그늘을 껴안으려는 숙연한 다짐”이다. 그리하여 공적功績을 힘들게 지어 올리고 조선의 장엄한 등정을 떠받쳤던 이들, 영광의 발자취 아래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던 이들, 그 백성의 그늘을 이 시대의 유적 마당으로 기꺼이 초대하려는 것이다. “사찰시설과 재산은 교육기구의 기반을 넓히는 데도 활용됐다. 향교와 학당을 중창할 때 사찰의 재목과 기와를 가져다 썼으며, 지방에서는 아예 사찰 건물을 향교로 삼은 곳도 있었다. 사찰이 보유했던 전답과 노비를 성균관과 향교, 학당으로 옮겨 교육을 활성화하고 유교 의례를 수행하기 위한 경제 기반으로 삼았다.” (32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