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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상 시인과의 인연
2. 시인의 출생과 덕원 이주 3. 성장기의 진통과 일본 유학 4. 귀국 후의 생활과 결혼 5. 해방과 탈주 6. 월남 후의 우여곡절 7. 종군과 피난 8. 강직한 언론인의 면모 9. 6·25 전쟁과 구상의 인간주의 10. 인간주의적 전망의 시적 형상화 11. 왜관 정착과 시집 출간 12. 이중섭과의 관계 13. 부패한 정권에 대한 항거 14. 사상적 전환의 계기들 15. 일본에서의 결핵 치료와 새로운 문학의 의욕 16. 현실과의 불화, 탈주의 행운 17. 암울한 현실로의 귀환 18. 시의 새로운 개안 19. 인간주의 시의 황홀한 개화 20. 그리스도 폴의 강 21. 불이(不二)의 세계관 22. 또 한 번의 혼란과 시의 은총 23. 표상과 실재의 결합 24. 구상의 인품에 대한 후일담 25. 거인과의 이별 작가 연보 저자 후기 |
李崇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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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이 폐결핵이 또 재발하여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이중섭이 방문했다. 이중섭이 세상을 떠나기 일 년쯤 전의 일이라고 했다. 그는 큰 복숭아 속에 한 어린애가 청개구리와 놀고 있는 그림을 가지고 와서 내밀며, 순하디순한 표정으로, “상이, 그 왜 무슨 병이든지 먹으면 낫는다는 천도복숭아 있잖아! 그걸 상이 먹고 얼른 나으라고, 이 말씀이지.” 하고 말하며 히죽 웃었다고 한다. 구상은 훗날 이 사실을 소재로 하여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작품을 지었다. 이 시에서 이중섭의 말이 예수의 음성으로 환치되는데, 여기에는 그가 일본 동경에서 처음 보았던 루오의 예수 얼굴 이미지가 투영되었을 것이다.
--- p.159 이 시절 자유분방한 기질의 승려 시인 일초(一超) 고은이 구상과 가까이 지냈다. 그는 구상이 준비한 군용 지프를 타고 서울 거리를 돌아다녔다고 회상했다. 고은은 당시의 구상에 대해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 같다고 서술했다. --- p.174-175 그로부터 10년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친지가 자택을 방문하니, 신문에 통일에 대한 글을 쓴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게 되었다고 염려하며 내복부터 챙겨 놓고 있었다. 얼마 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서 연락이 와서 만났더니 “백면서생이 국내외 정세를 잘 모르고 그런 글을 썼으니 잘 설명해 드리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상세한 설명과 훌륭한 식사를 대접하더라는 것이다. 구상은 이 말을 하며 이것이 “박 첨지의 마지막 우정”인 듯하다며 웃음을 지었다고 했다. 그 마지막 우정에 보답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려고 면담 신청을 해 놓았는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얼마 후 10·26이 터져 박 대통령은 구상을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구상과 박정희의 마지막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고 구상은 박정희 영전에 조시를 써서 위로했다. --- p.296-2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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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자이며 시인이신 구상 선생은 한국 현대의 정신사와 문화사가 더욱 진지하게 추구되고 실천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사람은 우선 그 자체부터가 낯설음의 거대한 심연입니다만 그러나 몇몇 분의 선도자가 앞장서 갔음을 우리는 압니다. 이숭원 교수의 이 평전은 선도자의 한 분이신 구상 선생의 탐색과 고뇌 등의 여러 참모습을 가능한 한도까지 찾아서 보여 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여 구상 선생의 존재감을 더욱 무겁고 귀중하게 드러내 보여 줄 것입니다. - 김남조 (시인·예술원 회원·숙명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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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전, 이 땅이 해방의 열망으로 꿈틀대던 때 한 시인의 지상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외세지배와 민족분단과 동족상잔, 그 고난의 역사 속에서 정련된 시인의 문학은 끝내 큰 물줄기를 이루어 사람들의 가슴을 적셨습니다. 영원의 세계를 갈망하던 시인은 비극적 현실을 초월한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초토(焦土)에서 다시 생명이 피어나기 바라던 시인의 소망은 그리스도교 영성을 관통하여 가혹한 운명의 굴레 속에 주저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진실로 기쁜 소식이 되었습니다. 탄생 백 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이 평전은 시인의 문학 업적을 기리는 사업에 마침표를 찍는 일입니다. - 박현동 (아빠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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