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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단단한 수증기
1. 파도 아래의 학교 갔다 올게요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가 지고쿠 2. 수색 지역 풍부한 자연 진흙 노인과 젊은이 설명 유령들 어떻게 된 일인가 3. 오카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옛 세상의 마지막 시간 쓰나미의 안쪽에서 삼도천 4. 보이지 않는 괴물 거미줄에 진실이 무슨 소용인가 쓰나미는 물이 아니다 숙명 거칠고 가파른 길 내 기억에 빈틈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5. 모두 저 멀리 가다 영혼의 위로 구하라, 바다에 빠지지 말라 감사의 말 주 |
Richard Lloyd P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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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녀는 자신이 본 것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다. 산들이 있는 곳까지,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이 물이었다. 물만 있었다. 건물과 논들이 모두 사라졌다. 아침 햇살 속에 물은 검었다. 시커먼 거품이 이는 쓰레기들이 마치 땅과 섬들처럼 그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높지 않은 모든 땅은 강이 삼켰고, 이는 다시 바다로 합쳐졌다. 이렇게 새로워진 지형 속에서 후지 호수는 더 이상 호수가 아니라 드넓은 만의 일부였다. 강은 강이 아니었고 바다의 입구였다. 오카와 초등학교는 보이지 않았고 히토미가 내려다본 높은 산등성이로 가려졌다. 도로와 집들, 그리고 히토미의 집과 가족이 있었던 마가키는 땅에서 지워졌다.
--- p.48 “나는 아이를 마사지하고 숨을 되돌리려고 했어요. 하지만 효과가 없었죠. 그 애의 뺨에서 진흙을 닦아내고 입에서도 꺼냈어요. 진흙은 코에도 있었고 귀에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작은 타월 두 장밖에 없었어요. 나는 진흙을 닦고 닦았어요. 그러니 금방 타월이 까매졌어요. 다른 것이 없어서 내 옷으로 진흙을 닦았어요. 아이의 눈이 반쯤 떠져 있었는데 그건 그 애가 잠잘 때 하곤 하던, 깊은 잠에 들었을 때 그랬어요. 그렇지만 눈에도 흙이 있었어요. 그리고 타월과 물도 없었어요. 나는 진흙을 닦느라 혀로 지사토의 눈을 핥았어요. 그렇지만 눈을 깨끗하게 할 수 없었고 진흙은 계속해서 나왔어요.” --- p.63 “그런데 왜 다음 날 학교에 곧바로 오지 않았나요?” 그는 가시바에게 물었다. “왜 17일 이전에는 오지 않았나요? 아직도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실종 상태인지 아시나요? 당신은 그들의 이름을 말할 수 있나요? 죽은 이들의 이름을 말할 수 있나요? 남겨진 가족, 우리 모두는 미칠 정도입니다. 아직도 수십 명의 아이들이 실종 중입니다. 당신은 이해하나요? 우리가 어떻게 느낄지 상상해보세요. 아직도 매일 수색하고 있는 그 부모들 말입니다. 매일 더러운 옷을 입고서요. 수색하러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미칠 겁니다.” --- p.121 히라츠카 나오미가 죽은 딸 고하루와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쓰나미 이후의 여름철이었다. 그녀가 알았던 대부분의 사람과 달리, 처음에 그녀는 망설였다. 샤머니즘과 다양한 영매 신앙이 도호쿠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었고, 많은 유가족이 이를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나오미는 그러한 능력의 존재를 의심했었다. 무엇보다 일부 사람들, 특히 언론이 비극 속에서 으스스한 볼거리를 짜내려고 노력하며 이러한 주제들을 다루는 방식을 싫어했다. 특히 그녀는 유령을 만나기 위해 밤중에 오카와 초등학교 터를 방문하라고 서로를 부추기는 10대들에 관한 일본 잡지 기사에 염증이 났다. 하지만 고하루와 다른 실종 어린이 수색은 아주 상황이 좋지 않아서 진짜 진창 속과 관료적 복잡성의 늪에 빠졌다. 나오미는 직접 수색을 담당하고 있는 경찰 부대와 긴밀히 접촉했고, 그 지휘관들을 알게 됐다. 어느 날 그들은 당시 그녀를 깜짝 놀라게 한 제안을 했는데, 특별히 수색대를 보낼 특정 장소에 대해 조언을 줄 만한 영매나 심령술사를 알고 있다면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 p.142 엔도의 말은 교사들이 긴급하고 신속하게 행동했다는 느낌을 줬다. 전문성 있는 남자와 여자들이 양심적으로 절차를 따랐지만 힘없이, 하지만 비난할 데 없이 파도에 휩쓸려 갔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15분이나 20분, 심지어 30분의 시간 간격 안에서는 말이 될지 모른다. 그렇지만 지진은 오후 2시 46분에 일어났다. 학교의 시곗바늘은 3시 37분에 멈춰 있었고, 그때 건물의 전기가 불어난 물로 꺼졌다. 이것이 오카와 비극의 가장 중요한 의문이었다. 첫 번째 사건과 두 번째 사건 사이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오카와 학교가 존재했던 마지막 51분 동안 그 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가? --- p.157~158 다다노 데츠야는 진흙으로 눈이 안 보이고 쓰나미 소리가 귀에 가득한 가운데 산에 도달했다. 쓰레기 잔해와, 그의 위에서 몸무게를 움직이고 있는 다른 무엇, 꿈틀거리고 살아 있는 어떤 것 때문에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것은 다카하시 고헤이였다. 데츠야의 친구이자 5학년 급우였다. 고헤이의 생명은 가정용 냉장고 덕에 구해졌다. 그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냉장고가 문이 열린 채 떠 있었고, 그는 몸부림쳐서 그 위에 보트처럼 올라탔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의 친구 등 위로 던져졌다. “도와줘! 네 밑에 내가 있어”라고 데츠야는 소리쳤다. 고헤이는 그를 끌어 풀어줬다. 가파른 기슭 위에 서서 두 소년은 아래쪽 광경을 바라보았다. 데츠야에게 처음 든 생각은 자신과 친구가 이미 죽었다는 것이었다. --- p.195 외국 언론인으로서 도호쿠에서 취재하며 근무하는 일의 어려움 중에는 다음 며칠 혹은 심지어 몇 시간 동안 먹을 음식만 있는, 집 잃은 피난민들이 주는 음식 선물?사탕, 주먹밥, 초콜릿 비스킷, 어묵?을 계속 거절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최근에 집을 잃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진심을 담아, 부족한 환대에 대해 사과했다. 심각한 부당이득이 없었다. 가스부터 화장실 휴지까지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아무도 물자 부족을 가격 인상의 기회로 삼지 않았다. 나는 싸움이나 다툼, 의견 불일치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자기 연민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정신적인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말 그대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맞대고 살며 잠을 자는 영국 동북부?일본 동북부가 아니라?의 학교 체육관을 상상해봤다. 이쯤이면 그들은 서로를 살해하고 있을 것이다. --- p.234 그 당시 어디에나 존재했던 또 다른 일본어 슬로건이 있었다. ‘간바로’는 어려움과 역경을 극복하자는 권고였다. 가장 단순한 영어 번역은 ‘버티다’ ‘끈기있게 하다’ ‘최선을 다하다’일 것이다. 간바로는 시험공부를 하는 자녀나 토너먼트에서 경쟁하는 운동선수에게 하는 말이다. 간바로 도호쿠!라고 쓰인 배너가 종종 역이나 공공건물에서 보였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재난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들, 절대 다수의 일본인에 의한 연대심의 발로였다. 하지만 위로는 차치하고 공감의 표현으로서 그것은 좀 이상한 표현이었다. 막 집을 잃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마라톤 선수처럼 참고 견디라는 말이 진정한 위로가 될까? --- p.242쪽 소송에 참여한 가족은 주부, 소목장이, 건설업자, 공장 노동자들이었다. 아무도 법의학 조사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었다. “많은 이들이 시골 바깥의 이 평범한 사람들이 반대심문을 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요시오카가 말했다. “그들은 놀라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일련의 조사를 잘 따라가며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만들 수 있는 매우 영리한 사람들입니다.” (중략) “그리고 가족들은 때때로 거칠어졌지요. 사람들은 흥분해서 ‘멍청이’ ‘내 자식을 살려내!’라고 소리쳤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말들은 법적인 면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대면해 슬픔의 말들을 듣고 죽은 아이들의 부모가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는 것을 보는 사람들, 나는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공무원들이 어쩔 수 없이 응답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p.265 다섯 명의 피고 측 변호사가 오른쪽에 앉았고 왼쪽에 검은색 옷차림의 부모들이 앉았다. 나는 일반석에서 그들을 둘러보았다. 나는 지난 몇 년간 그들과 치열하고 때때로 참기 힘든 세부 내용들로 가득 찬 대화를 하면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내왔던가? 슬픔은 악취처럼 코에 붙어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처음 떠오르는 것이었고 밤에 잠자리에 들 때 가장 마지막까지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이들 삶의 각 단계, 즉 유년기, 유아기, 심지어는 임신했던 시절까지 이야기했다. 그들은 학교를 회상했고 아이가 중심이 되었던 가족 공동체를 회상했다. 그들은 재난과 이후의 전개, 뒤따른 현실 자각의 정신적 타격, 상실과 생존의 숨 막히는 순간에 대해 묘사했다. 소설의 줄거리 구성처럼 이러한 회상은 미스터리에 대한 믿음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실종되고 제거되고 고의로 숨겨진 것들?다른 말로 하자면 슬픔의 고통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치부해버리는 음모? 안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 p.3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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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미터 높이의 파도가 휩쓸고 간 마을
지옥 같은 재난 뒤에 은폐된 진실 이 책은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 일으킨 쓰나미로 한 초등학교 학생과 교직원 80여 명이 몰살된 ‘사건’을 취재한 르포르타주이다. 약 36미터 높이의 쓰나미는 땅과 바다의 위치를 바꿔버리고 한 마을을 지도에서 사라지게 만들었지만, 대피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한 학교의 인원 전체가 사망했다는 사실이 미스터리로 남았다. 영국 외신기자인 저자 리처드 로이드 패리는 이 비극이 과연 불가항력의 자연재해였는지에 의혹을 품고 6년간 해당 지역을 집요하게 취재한다. 그곳에서 그는 여느 때처럼 아침에 고이 학교에 보낸 아이들을 졸지에 흙더미에서 발견하게 된 부모들로부터 ‘모든 이야기 중 가장 듣기 힘든 이야기’를 듣는다. 또 죽은 아이들의 혼령을 보거나 느꼈다는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급기야 그 혼들을 달래어 쫓아내는 사제를 인터뷰하게 된다. 그러나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그 마을에 대한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의혹은 따로 있었다. 쓰나미 발생 직전의 순간, 학교 운동장에서 기다렸던 아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났던 것일까? 왜 선생님들은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엄청난 진실은 왜 그토록 완강하게 은폐되었을까? 증언과 허언 사이의 치밀한 내러티브, 참사의 한복판에서 비극에 압도되지 않는 시선 영국 「더타임스」 일본 주재 기자인 저자는 사고 당일 도쿄에 있었고, ‘전과 다른’ 강력한 지진을 경험했다. 오랜 일본 생활로 지진에 대해서라면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었지만 사고는 생각과 다르게 진행됐다. 그 지진은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 중 가장 큰 규모였으며, 지진 역사상 네 번째로 강력한 것이었다. 그 여파로 지구의 자전축이 25센티미터 이동했고, 일본은 미국에 1.2미터 정도 더 가까워졌다. 이후 발생한 쓰나미로 인해 1만8500명이 익사하거나 불에 타거나 깔려 죽었으며 50만 명이 집을 떠나 대피해야 했다. 후쿠시마에서 방사능이 전국으로 누출되어 체르노빌 이후 세계 최악의 원자력 재앙이 시작됐다. 그러나 저자의 시선은 일본 동북부의 작은 마을 ‘가마야’의 한 초등학교에 집중된다. 원전의 멜트다운과 피폭 피해에 관한 부분은 완전히 배제하고, 왜 특정한 초등학교에서 전교생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는지 파고들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사고 당일 쓰나미는 9개의 학교를 완전히 덮쳤고 총 75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는데, 그중 74명이 오카와 초등학교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자녀를 잃은 수많은 부모들, 극적으로 생존한 아이들 몇 명, 기적적으로 몸은 피했으나 몇 십년간 살던 집이 눈앞에서 거짓말처럼 떠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본 주민들, 문제의 초등학교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교사 한 명, 공교롭게도 사고 당시 자리를 비웠던 교장의 증언(또는 허언)을 면밀히 추적해가는 내러티브는 “차후 재난 보도의 고전으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가디언」의 평가를 실감하게 한다. 활자로 읽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비극의 한복판에서 저자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엄숙한 태도로 담아내면서도 고통의 장면들에 압도되지 않는다. 일본인 특유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 샤머니즘, 재판정 등에 대한 이방인으로서의 냉정한 시각도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그러나 인간의 고통은 연결된다 수전 손택은 “연민은 쉽사리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우리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까지 증명해주는 알리바이가 되어버린다”고 지적했다. “고통을 쳐다볼 수 있는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보는 것”이 인간의 과제라는 것이다. 전쟁, 재난, 기아 등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참상을 ‘보도’하는 사람들의 철학과 태도가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구하라, 바다에 빠지지 말라』가 보여주는 비극의 서사는 손택이 주장한 지점을 정확히 돌아보게 한다. 저자 리처드 로이드 패리는 전작 『어둠을 먹는 사람들』에서도 잔혹한 살인 사건 하나를 집요하게 파고들되 그것이 ‘전시’되지 않도록 인간 보편의 선악에 대한 탐구로 확장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자연재해에 맞서는 인간의 몸부림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조명하되, 그 고통이 타자화되지 않도록 독자가 삶과 죽음에 대한 다양한 세계관을 차례로 통과하게 한다. 이제 그만 잊으라는 말 “사람들은 ‘이제 오래 지났잖아요’라고 말하죠.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없어요.” 이 책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열한 살 된 막내딸을 잃은 사요미의 말은 한국 사회에 새겨진 상처를 정면으로 건드린다. 유가족이 기억하는 자녀들의 생전 모습, 직접 시신을 발굴하기 위해 중장비 운전면허증을 따는 엄마, 정부와 학교 측의 책임 회피,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며 폐허를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의 모습, 6년간의 법정 다툼, 그리고 피해자들에게 ‘이제 그만 잊으라’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의 무지…. 아물지 않은 상처의 딱지를 떼어내는 듯한 아픔은 이 책의 독자에게 필연적일 테지만, 다시 손택의 말을 빌려, “내 삶을 파괴하지 않을 정도로만 남을 걱정하는” 연민보다는 “내 삶을 던져 타인의 고통과 함께하는” 공감에 한발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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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2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이 건조한 문장은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어떤 재해의 서술에 불과할 수 있지만, 세계에서 재난 방비가 가장 철저했던 국가에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일순간 사라져버린 비극이 담겨 있다.
『구하라, 바다에 빠지지 말라』는 우리가 듣고 알아야 할 이야기를 하나하나 짚어간다. 일본 지진 관측 사상 최고이자 인류 역사상 네 번째로 강력했던 지진이 일으킨 쓰나미가 문명을 덮친 지옥 같은 순간을 보여준 뒤, 작가는 오카와 초등학교라는 곳에서 일어난 참상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탈출하려 했지만,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순응한 학생과 교사 74명이 결국 그 자리에서 수장되었다. 그야말로 ‘모든 쓰나미 중 최악의 것, 모든 이야기 중 가장 듣기 힘든 이야기’이다. 이후 발뺌하는 책임자, 잘못 작동한 매뉴얼, 자식의 시신을 찾기 위해 중장비 면허를 따는 부모, 국가를 상대로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온통 비릿한 기시감이 드는 것들이다. 여기에 일본 문화 특유의 질서정연함과 원혼과 영매 등 초자연적 현상까지 합세해 거대한 이야기를 구성한다.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비극 이후 20만 명이 고향을 잃어버렸고 국토의 일부는 폐허가 되었으며 전 국민이 영원히 방사능의 공포 아래 살게 되었다. 일본 정치계마저도 대변혁을 겪고 현재에 이른다. 책을 덮고 나는 당시의 영상을 찾아, 건물과 차량이 순식간에 휩쓸려 나가는 믿지 못할 광경을 하루 종일 보고 있었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만약은 없다』 『지독한 하루』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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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차후 재난 보도의 고전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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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자연재해가 두드러지는 시대에 눈여겨볼 만한, 놀라운 기록.” - 「시카고 트리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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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한 발짝 물러나되, 가슴 저리게 전달한다.”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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