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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제1장 자기방어 제2장 그들의 두려움과 우리의 두려움 제3장 눈가림 제4장 인간방패와 하즈바라 제5장 가자에서 제6장 점점 작아지는 호산나의 외침 에필로그 부록 역자 후기 주 인명 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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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지 애도를 표하려는 의도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희망의 터전을 닦아두려는 의도 또한 갖고 있다. 가자의 비극은 세계의 양심을 잠에서 깨웠다. 사람들로 하여금 슬퍼만 하지 않고 행동을 취하게끔 자극할 수 있는 전망이 지금보다 밝은 적은 결코 없었다. 진실도 우리 편이며, 정의도 우리 편이다. 어떻게 사용하는지만 알면 그것들은 강력한 무기가 된다. ---「서문」 중에서
전쟁 억제력의 회복을 위해 이스라엘이 진행한 절차는 꾸준히 야만을 향해 퇴보하는 완만한 곡선을 보여준다. (중략) 이스라엘은 상식적인 전쟁에 따르는 모든 부담을 피하겠다는 이유에서 전쟁 억제력 회복의 대상으로 가자를 선택했다. 이스라엘이 가자를 공격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바로 방어력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었다. ---「2장 그들의 두려움과 우리의 두려움」 중에서 이스라엘 방위군이 “가자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식자재를 생산하는 세 개의 제분소 중 아직도 가동되던 유일한 곳”을 파괴한 “고의적이고 또 정확했던” 공격을 시작했을 때, 과연 그 누가 이스라엘군이 “확실히 전투나 테러 활동만을 공격 대상으로 삼기 위해 누차에 걸쳐 점검을 신중하게 하고 또 했다”는 (이스라엘 소명서의) 말에 대해 의심을 품을 수 있었겠는가? 이스라엘 방위군이 가자의 달걀 시장의 10퍼센트를 생산하던 거대 양계장을 “체계적이고 또 고의적으로” “무너뜨리고” 6만 5천 마리의 닭이 으깨지거나 생매장 당했을 때, 과연 그 누가 이스라엘군이 “군대와 민간인들을 확실하게 구별했다”(코즈먼)는 말을 의심할 수 있었겠는가? ---「3장 눈가림」 중에서 가자에서 일어난 대대적인 파괴는 분명 일찍이 (이스라엘이) 공표했던 “테러리스트” 및 “테러 시설”의 소탕을 넘어서는 정도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에 대한 집단 처벌이라 하기에도 지나친 수준이었다. 주택, 학교, 대학, 농장, 모스크 등에 대한 조직적인 파괴는 가자를 문자 그대로 인간이 살 수 없는 불모의 땅으로 만들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도대체 이스라엘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3장 눈가림」 중에서 젊은 가이드는 무심코 침공의 마지막 날 자기 약혼자가 피살되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는 눈물 한 방울 담기지 않은 건조한 눈빛으로 내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며 이야기를 마쳤다. 비난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동정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주기적인 침공이 그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이제 마치 자연재해처럼 인식되는 것 같았다. 마치 토네이도가 지나는 길목에 가자가 자리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다만 가자에서는 모든 계절이 토네이도의 계절 같다는 것이 문제다. ---「5장 가자에서」 중에서 이스라엘은 가자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 또한 반드시 져야만 한다. 가자에서 사랑하는 사람들, 집, 직장을 잃은 사람들에게 있어, 그 정도 심판은 기본적인 정의이며, 그들을 부정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 될 것이다. 또한 형사 소송은 명백히 통제 불능인 거대 군사 조직에도 제동을 걸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힘이 닿는 최대한으로, 정의의 실현은 원한과 보복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어야 하며, 오만하고 무자비한 적의 굴욕을 보고 본능적으로 느끼게 되는 쾌감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어야 한다. 최종적인 목표가 양 세력 모두가 자긍심에 가득 차고, 생산적이며, 평화로운 삶을 살도록 할 수 있는 합의라는 점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에필로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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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인종 청소를 지지하는가, 반대하는가?
차별적인 법률을 지지하는가, 반대하는가? 주택 파괴를 지지하는가, 반대하는가? 유대인 전용 도로와 유대인 정착지를 지지하는가, 반대하는가? 고문을 지지하는가, 반대하는가? 학살을 지지하는가, 반대하는가? 그리고 만약 반대한다, 반대한다, 반대한다라는 답변이 돌아온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당신의 이념을 지켜라. 승리의 장소에는 누구에게나 자리가 있지 않은가? - 에필로그 중에서 “제군에게 학살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 가자 침공의 날 전야에 이스라엘군 사령관이 병사들에게 한 브리핑에서 가자 지구에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2008년 12월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침공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의 악몽이었다. 22일의 침공 기간 동안 1,400명의 가자 시민들이 살해당했다. 이후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경제 봉쇄로 인해 가자의 비극은 대재앙의 파멸로 이어지게 되었다. 《핀켈슈타인의 우리는 너무 멀리 갔다》는 2008년 12월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의 진상과 그 속에 숨은 이스라엘의 의도를 낱낱이 파헤친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노먼 핀켈슈타인은 이스라엘의 시온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는 유대인 역사학자로, 현재 미국에서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 《아메리칸 래디컬(American Radical - The Trials of Norman Finkelstein)》(2009)이라는 다큐멘터리로도 잘 알려진 그는 한국에도 《홀로코스트 산업》(한겨레),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갈등의 이미지와 현실》(돌베개) 등의 책을 통해 소개되었다. 핀켈슈타인의 부모는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그의 친가와 외가 모두 홀로코스트의 광풍 속에서 절멸하였다. 그런 그가 이스라엘에 대해 왜 이런 격렬한 비판을 계속할까? 스스로를 증오하는 유대인? 핍박받는 사람들에게 또다시 핍박받다 강제 이주, 신분 차별, 집단수용소, 민간인 학살. 이 단어들을 읽으면 많은 이들은 나치가 유대인에게 가했던 만행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이 단어들은 오늘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하는 행동을 가리키기도 한다. 핀켈슈타인은 이런 모습에 분노하였다. 많은 유대인들은 그들의 부모가 당한 학살의 기억 때문에 자기 나라를 강하게 만들어야 하고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들을 무력으로 제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수의 유대인들은 그런 학살을 기억하기에 자신들이 그런 학살자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부모처럼 나라를 잃고 억압받는 이들의 편에 서려고 한다. 핀켈슈타인은 학살의 기억 속에서 이스라엘을 영원한 피해자로 두둔하려 하지 않고, 인류 역사에서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비판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런 그에게 미국을 포함한 친이스라엘계 언론은 “스스로를 증오하는 유대인”이라 낙인찍으며 인신공격을 퍼붓고 대학 강단에서 쫓겨나게 압력을 가했으며, 이스라엘은 유대인인 그를 입국 금지시켰다. 하지만 그는 양심의 법정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2008년 12월 이스라엘은 다시 가자를 침공하였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이 건국 이후 벌였던 수많은 악행 가운데 가장 잔인한 침략 행위였다. 핀켈슈타인은 다시 펜을 들었다. 이스라엘의 만행을 비판하면서 더불어 희망의 터전을 닦기 위해.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한 혹독한 비판을 가하면서 유대인인 자신도 이스라엘과 함께 비판받는 자리에 나섰다. “그들은 너무 멀리 갔다”가 아닌 “우리는 너무 멀리 갔다”라는 제목으로. 이스라엘은 왜 가자를 침공했을까? 캐스트레드 작전의 은폐된 목적과 진실 시나이 반도의 손잡이 부분에 해당하는 가자 지구는 북쪽과 동쪽으로는 이스라엘에, 남쪽으로는 이집트에, 서쪽으로는 지중해에 접해 있는 지역이다. 오늘날 가자 거주민의 80퍼센트는 전쟁 난민과 그 자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구 절반 이상이 18세 미만이다. 현재 길이 25마일, 너비 5마일의 비좁은 땅에서 복작대며 살고 있는 150만의 거주민들은 가자를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조밀한 지역으로 만들었다. 2008년 12월 27일, 이스라엘은 ‘캐스트레드 작전(Operation Cast Lead)’에 돌입하여 가자 지구를 침공하였다. 첫 주에는 공습이 이루어졌으며, 연이어 2009년 1월 3일에는 공습과 함께 지상공격이 더해졌다. 최신예 전투기를 앞세운 이스라엘 공군은 가자 상공에 3천여 차례 출격하여 1천 톤의 폭탄을 투하했으며, 이스라엘 육군은 최첨단 무기를 전선에 배치했다. 1월 18일에 휴전이 시작되었지만, 가자에 대한 경제적 압박은 지속되었다. 그동안 국제 여론은 무방비 상태의 시민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캐스트레드 작전’, 즉 가자 침공을 시작한 이스라엘의 가장 큰 목적은 “이스라엘의 전쟁 억제력을 재건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적들이 과거에 자신들을 두려워했던 정도 혹은 마땅히 두려워해야 하는 정도보다 덜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스라엘은 상식적인 전쟁에 따르는 모든 부담을 피하겠다는 이유에서 전쟁 억제력 회복의 대상으로 방어력이 가장 취약한 가자를 선택한 것이다. 국내의 사기 진작(2008년 12월 가자 침공 직후인 2009년 2월 10일, 이스라엘에는 총선이 있었고, 설문조사 결과 유권자의 80~90퍼센트가 가자 침공을 지지하였다)은 가자 침공의 또 다른 이득이었다. 2009년 2월에 나온 UN 문서에 따르면 “그 침공의 중요한 성과 한 가지는 이스라엘의 군사력으로 적들에게 강력한 타격을 가할 수 있을까 하는 이스라엘 국민들의 의구심을 거둔 것이었다. ‘압도적인 군사력’의 사용으로 이스라엘은 그 땅의 주인임을 입증했다. 파괴 현장을 찍은 사진들은 이스라엘의 적들보다는 이스라엘 국민들의 눈, 즉 복수와 국가적 자존심에 목마른 눈들을 의식한 것이었다.” “우리의 조악한 사제 로켓은 세계에 항의하는 우리의 울부짖음이다!” - 하마스 지도자 칼리드 미샬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이 그동안 이스라엘이 벌인 행위 가운데 단연 악랄한 행위인 것은, 이스라엘이 “분별”과 “비례”라는 근대 교전법규의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을 완전히 무시했기 때문이다. “분별”은 전시에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해야 함을, 즉 민간인을 공격하지 말아야 함을 의미하며, “비례”는 강한 세력이 약한 세력을 공격할 때 과도한 무력을 사용해서는 안 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두 가지 원칙을 모두 무시하고 민간인을 군인과 구별하지 않은 채 필요 이상의 압도적인 화력을 동원하여 민간인 대량 학살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하즈바라(여론몰이를 위한 이스라엘의 선전술)를 통해 이를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은폐하려 하였다. 《핀켈슈타인의 우리는 너무 멀리 갔다》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은폐된 학살”의 진실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우리가 현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이 처한 현실은 한 세기 전 우리가 겪었던 일제강점기의 현실에 비견될 정도로 나쁜 상황이다. 그리고 오늘날 이스라엘이 하는 행동도 제국주의 일본의 행동을 뛰어넘을 정도로 최악이다. 또한 민간인 학살과 여론몰이를 통한 조직적 은폐는 우리가 지난 몇십 년 동안 민주화 과정에서 겪었던 여러 사건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우리가 수십 년 전에 몸소 겪었던 바로 그 상황이, 아니 그보다 더욱 심한 상황이 현재 가자 지구에서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조금 더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특별한 이유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