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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십계명은 자유의 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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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들어가며
한없이 간결한 율법: 십계명의 간추린 역사

첫째 계명: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둘째 계명:
너는 어떤 형상으로도 신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

셋째 계명:
안식일/주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여라

넷째 계명: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다섯째 계명:
살인해서는 안 된다

여섯째 계명:
간음해서는 안 된다

일곱째 계명: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여덟째 계명: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아홉째와 열째 계명:
이웃의 아내를 탐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재산은 무엇이든지 욕심내서는 안 된다

십계명: 자유를 위한 계명

저자 소개

저자 : 노트커 볼프
Notker Wolf는 1940년 독일 남부 바트 그뢰넨바흐에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961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입회하여, 1962년부터 1970년까지 로마 성 안셀모 대학교와 뮌헨 대학교에서 철학·신학·동물학·무기화학 등을 공부하고, 1974년 스토아학파의 순환론적 세계관에 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8년에 사제로 서품된 후, 1977년에 오틸리아 연합회 총아빠스, 2000년에 베네딕도회 수석아빠스로 선출되어 전 세계 800여 베네딕도 수도회를 대표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Goenn dir Zeit. Es ist dein Leben》 《Schmetterlinge im Bauch  ̄ Warum der Glaube Fluegel verleiht》 등이 있다.
저자 : 마티아스 드로빈스키
Matthias Drobinski는 1964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기센 대학교와 마인츠 대학교에서 역사학·가톨릭 신학·독문학을 공부하고, 1993년 《푸블릭포룸》(Publik-Forum)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 1997년부터는 〈쥐트도이체차이퉁〉(Suedeutsche Zeitung)에서 종교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Glaubensrepublik Deutschland  ̄ Reisen durch ein religioeses Land》 《Bayer, Roemer, Papst: Benedikt XVI.  ̄ Sein Leben, seine Theologie und der Besuch in seiner bayerischen Heimat》 등이 있다.
역자 : 윤선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한국 신학연구소 편집부에서 일했으며 현재 독일에 살면서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분도출판사에서 《사랑을 방해하지들 말아다오》 《병자성사》 《성체성사》 《견진성사》 《렘브란트  ̄ 영원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 태양을 보다》 《테제 공동체와 로제 수사》 《황혼의 미학》 《내 마음의 거울 마리아》 등을 우리말로 옮겨 펴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0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280g | 128*188*20mm
ISBN13
9788941912101

책 속으로

그럼에도 신앙은 의심할 줄 알아야 한다. 더 나아가 의심은 성숙한 신앙의 일부다. 내가 하소연하는데 하느님은 어찌 그리 침묵하실까? 나는 왜 그분을 알아보지 못할까? 인도 콜카타의 빈민가에서 헌신한 노벨평화상 수상자 마더 테레사의 일기를 보면 신앙이 더없이 깊은 마더 테레사도 평생 동안 하느님을 찾고자 싸웠고, 하느님과 싸웠다. 이렇듯 살아 숨 쉬는 하느님은 우리가 움켜쥘 수 있는 분이 아니다. --- p.68

교황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면 모두 진리로 여겨야 한다는 것도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가톨릭 안에서는 이러한 시각을 견지하는 집단이 끊이지 않고 있고, 유감스럽지만 가톨릭 밖에서도 가톨릭교회가 이러한 시각을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이것은 교황의 무류성에 대한 엄청난 오해다. 누군가 베네딕도 16세에게 교황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진리라고 말한다면 교황은 깜짝 놀라 손사래를 칠 것이다. --- p.86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부르는 행위는, 결국 인간의 것을 신격화하고 인간을 하느님의 자리에 앉히는 데라면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 다만 어떤 대상에 대한 숭배의 이면에 권력욕이 숨어 있는 경우에는 신성모독이 일어난다.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느님의 이름은 어떻게 불러야 마땅한지를 자의적으로 규정해서, 스스로를 다른 사람의 위에 세우고 사람들이 따라야 할 유행과 모범을 꾸며 내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전체주의적으로 우상을 강요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에 속속들이 개입하려는 욕구다. --- p.87~88

진실은 불편하다.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세상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이 곧 진실’이라고 말했다. 진실하려면 세상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을 찾아다녀야 하고, 자신에게 있는 지식과 견해와 편견에 꾸준히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자신과 같은 편에 선 사람이나 다른 편에 선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 각오가 있어야 한다. 또한 보수나 진보, 좌파나 우파로 구별할 수 없는 고지식한 사람이나 괴팍한 사람으로 취급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여덟째 계명은 그 자체로 이미 반反이데올로기적이다.

--- p.202~203

출판사 리뷰

“사랑의 하느님, 당신이라면 십계명을 따르겠습니까!”
억압과 구속의 계명으로 곡해된 십계명의 21세기적 재해석


당신은 아는가, 십계명은 무엇인가?
웅장한 배경과 극적인 장면으로 가득한 〈십계〉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실망할지 모르겠지만, 십계명은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계시’되지 않았다. 십계명은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되었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결과 탄생한 것이다. 성서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따르는 형태의 십계명은 기원후 1세기에야 등장했다. 하지만 십계명은 그보다 오래전부터 영향력을 발휘해 왔고, 십계명의 초기 형태는 기원전 8세기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십계명은 단순한 도덕률이 아니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 민족이 맺은 계약의 상징이었다. 십계명을 어긴다는 것은 곧 하느님과의 계약을 끊는다는 뜻이었다. 나자렛 예수는 십계명이 이미 통용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것을 더욱 철저하고 엄격하게 적용했다. 이웃에 대한 증오는 곧 살인이고, 탐욕과 시기는 간음이며, 맹세는 거짓 증언이었다. 돈에 목매는 사람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예수는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사랑의 이중 계명’으로 십계명을 압축했다.

부인할 수는 없다. 지금껏 십계명은 갈등의 씨앗이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몸소 내리셨다는 ‘열 가지 계명’이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고, 기질적 욕구를 통제하며, 개인을 집단에 순응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행하거나, 불원하는 바를 행하지 않을 자유를 박탈한 것이다. 십계명은 ‘…… 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끝난다. 격려가 아니라 부정하는 형식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삶을 제한하고 구속하는 계명으로만 해석되었다. “거부하지 마라!”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식의 훈계로 곡해되었다.
그러니 이런 완고한 계명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이 제기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계몽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십계명이 올바르고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십계명을 종교적 맥락에서 분리했고, 도덕을 교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십계명을 자신을 버리라는 도덕, 즉 몰락의 도덕으로 여겼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파장을 일으킨 것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비판이었다. 프로이트는 예수가 전한 ‘사랑의 이중 계명’을 실천 불가능한 것이라 판단했다. “이러한 사랑의 과잉은 사랑의 가치를 깎아내릴 뿐 인간의 곤경을 없애 주지 못한다”며 비판했다.
과연 자유의 계명인가?
하지만 본래 십계명은 언제든 타락할 수 있는 미약한 인간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민족이 끊임없이 방종에 빠지자 십계명이 생겨난 것이다. 십계명이 인간에게 제한을 두는 문제는 실제로 무엇일까? 강자에 맞선 약자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나 개인과 공동체의 존속이 걸린 문제, 인간 존재의 기반이 걸린 문제 등이다. 예컨대 ‘간음해서는 안 된다’는 여섯째 계명은 여성을 남성으로부터 보호했다. 로마인에게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었다. 팔아 버릴 수도 있었고,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이혼할 수도 있었다. 이혼이나 사별한 여성은 다른 남성과 재혼해야 하는 사회적 압박을 받았다. 또 다른 종속을 자처해야 했다. 그렇지만 여섯째 계명은 간통을 금하고 이혼을 금했다. 여성의 생계를 보장하고 가정을 안정시켰다. 그리스도인은 과부와 미혼녀를 존중했다. 십계명은 헌법의 초기 형태로 강자와 집단의 강요로부터 개인과 소수자와 약자의 자유를 보호했다. 십계명은 이스라엘 민족의 기본법이었다.
그런데 십계명은 기본법이 제공하는 보호의 기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십계명은 법조문 이상의 것이다. 나자렛 예수는 십계명을 두 문장으로 요약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루카 10,27)고 했다. 십계명이 인간을 제한하는 것은 사랑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지배를 공고히 하려는 것도 아니고 인간을 위협하고 억압하려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 선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사랑의 계명은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한다. 인간은 사랑 때문에, 사랑에 따른 책임 때문에 다른 계명을 어길 수도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이스라엘인을 도와주려고 관습을 깨뜨렸다. 심지어 예수도 안식일 계명을 거스르며, 자신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허기를 면하는 것을 허락했다.

십계명은 너무 오래 악용되었다. 도덕의 몽둥이가 되었다. 십계명은 경직된 규범이 될 때 그 의미를 잃는다. 그리고 타인을 제약하거나 구속하거 억압하는 도구가 될 때, 자신을 옭아매는 일련의 규칙이 될 때 인간의 삶을 적대시하게 만든다. 십계명은 삶의 기쁨을 막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라고 있는 것이다. 본래 십계명은 당신 백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해 내신, 해방자 하느님의 계명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십계명은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위대한 긍정입니다. 가족과 생명에 대한 긍정, 책임 있는 사랑과 사람 간의 유대에 대한 긍정, 사회적 책임과 정의에 대한 긍정입니다. 또한 십계명은 진실에 대한 긍정이며 타인과 타인의 소유를 존중하는 것에 대한 긍정입니다.” _ 교황 베네딕도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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