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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자들에게
서문 Part1. 잊혀진 프로젝트의 역사 1 프로젝트의 시작 : 유럽 건축학교 2 미국식 프로젝트 : 작업장인가, 학교인가? 3 학교와 삶이 너무 다르다 : 수공 교육의 등장 4 캘빈 우드워드와 프로젝트 모델 : 작업장 강의는 곧 연구실 수업이다 5 반복되는 프로젝트에 반대한다 6 프로젝트 작업은 실질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준다 7 슬뢰이드 교육 : 초등학교에 적용된 최고의 학습 방식 8 찰스 리처즈의 통합 모델 : 수공예는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9 학생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교사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10 직업교육의 박차 : 작업의 효율적인 분배가 발전을 가져온다 11 루퍼스 스팀슨의 홈 프로젝트 : 개성을 부여한 농업교육의 혁신 12 자연과학의 기초를 닦다 : 기초과학의 도입 13 우드헐과 문제-프로젝트 : 주입식 학습에 저항하다 14 갈등 : 불합리 대 혁신 Part2. 윌리엄 킬패트릭 : “나는 오류를 범했다.” 1 탐색하고 또 탐색하다 2 자발적 의도가 중요하다 : 생각의 싹이 트는 프로젝트 아이디어 3 킬패트릭이 만난 문제해결방식 : ‘프로젝트’ 개념 4 프랭크 맥머리와의 결별 : 문제해결방식의 배제 5 킬패트릭의 프로젝트 강의 : 학생 스스로 질문한다 6 프로젝트의 재설계 : 의도와 실행이라는 새로운 방향 7 배움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어야 한다 8 자연스럽고 강요가 없으며 자유를 통한 학습 9 호러스 맨 학교의 실험 : 교사와 학생은 동일한 권리를 갖는다 10 밀워키의 꿈꾸는 미래 학교 : 킬패트릭의 혁신과 실패 11 대중 속으로 : ‘프로젝트 홍보 클럽’의 설립 12 찰스 맥머리와의 갈등 : “프로젝트의 저작권은 누구에게도 없다.” 13 보이드 보드의 비판 : “프로젝트 수업은 실패했다.” 14 킬패트릭의 자아비판 : “이 용어는 일관성 있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15 외톨이였던 대가 : 설득에 실패하다 Part3. 존 듀이 : “이것은 정말 바보 같은 방식이다.” 1 새로운 교육 : 지식, 경험, 감동을 통해 배운다 2 듀이의 실험학교가 문제를 다룬 방식 3 프로젝트는 능동적 활동이 아니라 구성적 활동이다 4 시카고 실험학교의 프로젝트를 이루는 세 요소 : ‘학생’, ‘실제’, ‘생산품’ 5 듀이의 프로젝트-문제-상황-방식 : 다양한 학과목이 서로 연관성을 갖고 소통해야 한다 6 듀이의 프로젝트하는 방식 : 계획과 사고, 지적인 행동 반응 7 카이저의 헌법 이론 : 방식은 사고하는 내용 그 자체로 존재한다 8 프로젝트 수업에서 자유를 어떻게 볼 것인가? 9 진정한 의도는 자극을 통해 시작된다 10 사회의 혁신과 변화에 기여하는 학교 그리고 프로젝트 11 보수적인 혁신가 : 자유와 우연에 반대한다 Part4. 엘스워스 콜링스 : “티푸스 프로젝트는 꾸며낸 이야기이다.” 1 실용주의적 혁신가 : 부드러운 교육 방식에 찬성하지 않는다 2 티푸스 프로젝트 : 전염병과 관련된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까? 3 베스페이지의 공동체학교의 개설 4 티푸스 프로젝트 5 학문적 경영자 : 공장의 목표는 이미 정해져 있다 6 극적인 전환 : 어린이 중심의 교육학자가 되다 7 정직하지 않은 학자 : 대중을 속이다 8 지나친 욕심과 거짓 그리고 열정적인 카우보이 Part5. 원칙 대 방식 1 베르나르 수앵 드 부트마르 : 평등에 대한 열정 2 카를 프라이와 개인 교육 : 교육으로 나가는 유일한 길은 교육이 성립되는 과정이다 3 다크마어 헨젤 : 프로젝트로 해결한다는 생각은 위험한 환상이다 4 오늘날의 토론 부록│미국의 프로젝트 방식 연대기 색인 |
Michael Kn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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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과 그의 동료들에게 프로젝트는 단순히 ‘민주적인 방식’만이 아니라 ‘민주주의화를 실현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수업과 교육의 경계를 없애고, 학생들에게 실용적인 학문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며, 민주적인 시민을 만드는 것이었다. MIT 총장 프랜시스 워커Francis A. Walker는 1887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설계할 줄 아는 젊은이들 앞에서는 어느 유능한 학자들도 자신의 명예로운 이름과 권위를 내세울 수 없다. (…) 프로젝트는 직업적, 정치적 교육 양쪽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로빈슨과 그의 동료 교수들은 “프로젝트는 교육과 민주화의 훌륭한 도구이다.”라고 했던 킬패트릭의 철학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다. --- 「PART1. 잊혀진 프로젝트의 역사」중에서 우드워드도 해리스의 생각이 매우 비민주적이며 비자유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교육은 자유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는 명예로운 직업을 혐오하고 있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것을 그는 하찮게 보고 있다. 수공예 능력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이것에 대해 선택할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정한 자유로운 교육은 모든 실용 분야에 대해 다른 학문과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 「PART1. 잊혀진 프로젝트의 역사」중에서 리처즈는 “프로젝트가 보여주는 가장 교육학적 결과는 ‘간단함(단순함) 속’에서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결과물’을 통해 ‘스스로 표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린이들에게 최상의 동기유발 기회를 주기 위해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해야 하며, 프로젝트의 계획과 실현을 스스로 원할 수 있도록 어린이들을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 「PART1. 잊혀진 프로젝트의 역사」중에서 미국, 독일 역사학자들이 해온 그동안의 연구는 많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 그들의 연구는 당시 분위기를 사실이라고 주장했고, 진행 중인 토론일 뿐이었던 이야기를 마치 진실인 듯 해석했다. 많은 교육학자들은 킬패트릭이 스스로 유명해지기 위해 프로젝트라는 용어를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이용한 기회주의자였다는 것과, 성공하고자하는 욕심이 지나치게 컸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 「PART2. 윌리엄 킬패트릭 : “나는 오류를 범했다」중에서 그는 프로젝트의 의도를 정립하게 된 중요한 동기가 자신의 열세 살짜리 딸 마거릿 루이스Margaret Louise 때문이라고 했다. 티푸스 감염으로 누워 있는 딸이 그에게 영감을 준 것이다. 그의 딸은 ‘찰스 1세Charles I와 나바라의 앙리 4세Henri IV’에 관한 책을 읽었으며, 역사와 관련된 그림 그리기를 즐겼다. 그리고 로마의 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취미를 가졌다. 킬패트릭은 1948년에 34년 전인 1914년 여름, 자신의 딸이 그렸던 그림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딸이 그린 그림 위에 “‘프로젝트의 아이디어가 시작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생각의 싹이 튼다.’”라고 적었다. --- 「PART2. 윌리엄 킬패트릭 : “나는 오류를 범했다」중에서 맥머리의 방식에서는 질문하는 주체가 교사라는 점이었다. 킬패트릭이 보는 관점에서 질문은 학생 스스로의 질문이어야 했다. 킬패트릭이 볼 때 문제해결방식은 학생들이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행동에 대한 여유 공간을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 이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킬패트릭은 ‘문제해결방식’이 ‘프로젝트 방식’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 「PART2. 윌리엄 킬패트릭 : “나는 오류를 범했다」중에서 프로젝트를 적용한 학급에는 고정된 의자 대신에 움직이는 책상과 의자를 사용하고, 자유 작업을 위한 놀이, 그림 기구, 나무 상자, 장난감, 도구, 책, 타자기 등 특별한 학습 재료들을 채웠다. 새, 물고기, 암석, 꽃이나 풀이 심겨진 화분 등이 진열장에 다양하게 놓였으며, 이는 학생들이 직접 돌보고 가꾸어야 했다. 프로젝트의 조건을 킬패트릭은 이렇게 정리했다. “나는 규정된 학습 계획은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학습 계획의 제한이 없는 환경이라고 해서 교사들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행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은 자유롭게 생각하고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책을 읽거나 산수 계산, 글을 쓰는 것을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 시험을 치러서는 안 되며, 미리 제시된 학습 계획을 기준으로 어린이들의 성과를 점수로 평가해도 안 된다. 새로운 활동을 이끌어내는 활동을 절대 제지해서는 안 된다.” 킬패트릭의 이 같은 조건은 상당한 저항과 반대에 부딪혔지만 킬패트릭의 생각은 분명했다. 형식상으로 킬패트릭은 학생과 교사에게 동일한 권리를 부여했다. 바로 자유와 자율적 결정권이다. --- 「PART2. 윌리엄 킬패트릭 : “나는 오류를 범했다」중에서 독일에서 프로젝트와 듀이에 대한 지배적인 해석은 미국과 많이 달랐다. 실제로 역사적인 해석이 맞지 않는다는 세 가지 이론이 존재한다. 듀이는 프로젝트를 전심(全心) 의 의도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해석하지 않았다. 그저 일반적인 방식으로 보았을 뿐이다. 독일 학자들은 듀이가 킬패트릭의 프로젝트를 응용했다고 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독일 학자들이 미국의 자료를 해석하는 데 실수를 범한 것이다. 그동안 학자들이 짐작한 것보다 듀이의 프로젝트는 매우 전형적인 프로젝트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 「PART3. 존 듀이 : “이것은 정말 바보 같은 방식이다.”」중에서 바로 이 부분에서 듀이와 킬패트릭의 근본적인 교육적 사고의 차이가 드러난다. 킬패트릭은 내재적 동기를 본래의 교육학적 요소로 보았고, 프로젝트 방식을 ‘입장 (사고)’에서 보는 반면, 듀이는 ‘방식적 사고’와 ‘지적 행동’을 핵심으로 보았다. 코렐은 안타깝게도 이 차이를 찾지 못했다. 그는 일반적인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 같다. --- 「PART3. 존 듀이 : “이것은 정말 바보 같은 방식이다.”」중에서 하지만 프로젝트 교육학자들은 듀이와 킬패트릭이 프로젝트 방식과 관련하여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듀이는 프로젝트를 특수한 것으로 보았고, 킬패트릭은 보편적인 방식으로 보았다. 듀이는 프로젝트를 적용이 가능한 방식으로 보았고, 킬패트릭은 민주주의 수업을 유일한 방식으로 보았다. 독일 학자들은 듀이가 킬패트릭처럼 구성주의를 직접적으로 프로젝트 콘셉트에 연관시켰다고 믿고 있다. 이는 매우 큰 오류이다. --- 「PART3. 존 듀이 : “이것은 정말 바보 같은 방식이다.”」중에서 듀이는 학교가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바는 없다. 대신 어린이들이 일반 환경에서 접할 수 있는 현상과 과정을 검토한 후 이를 학교 교육에 적용했다. 실제로 그는 학교가 ‘어린이들의 공동체’ 그리고 ‘완성 과정의 사회’로서 민주주의적 삶을 실현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항시 ‘사회적 삶을 준비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회적 삶에 동참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듀이는 “참가와 참여가 용인되는 민주주의적 기본은 학교에서 끝나면 안 된다. 학생들이 삶 속에서 민주주의적 능력을 발휘하려면 그에 해당하는 사고와 사회적 행동 양식을 미리 배워야 한다. 그리고 강요가 아닌, 신뢰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듀이의 사고방식은 독일 프로젝트 교육학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 「PART3. 존 듀이 : “이것은 정말 바보 같은 방식이다.”」중에서 하지만 안타깝게도 콜링스가 《프로젝트 커리큘럼의 실험》에서 설명한 것은 사실 실제가 아니었다. 그의 논문에 적힌 내용들은 절대 존재하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논문에서 학생들이 프로젝트에 대해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가능했다고 하지만 당시 그 학교의 학생들은 그러한 권한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학습 내용과 과정을 결정하는 데 그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었다. 콜링스가 주장한 것과 달리, 티푸스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매우 치밀하게 조작된 수업이었다. --- 「PART4. 엘스워스 콜링스 : “티푸스 프로젝트는 꾸며낸 이야기이다.”」중에서 미주리 대학교에서 열린 심리학과의 예방의학 세미나를 방문한 이후, 교사들에게 이 주제를 10월 수업에 적용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준비할 것을 권장했다. 이에는 전염병의 원인과 확장 그리고 예방과 치료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이때 말한 체계적이라 함은 학생들이 지루해하는 방법을 사용하거나 추상적인 것을 학습하라고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전염병을 하나의 구체적인 케이스로서 지속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수업을 진행하고자 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바로 그 유명한 ‘티푸스 프로젝트’이다. --- 「PART4. 엘스워스 콜링스 : “티푸스 프로젝트는 꾸며낸 이야기이다.”」중에서 진보적인 교육 방식에 힘쓴 그의 노력이 크다고 해서 이것이 그의 정직하지 않은 박사논문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 교수가 되기 위해서 그는 박사학위를 받아야 했다. 그의 박사학위 지도교수가 킬패트릭이었다는 것은 그에겐 큰 행운이었다. 킬패트릭은 교수로서 그의 멘토이기도 했다. 그를 지켜주고 지원해주었으며 용기도 주었다. 킬패트릭은 콜링스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박사학위 주제를 선택하기를 바랐고, 다행히 콜링스는 그의 뜻을 따라 그 주제를 선택했다. 이 모든 행동은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옳지 않다. 킬패트릭도 질책을 받아야 한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저지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지원해준 것은 교수로서 책임감이 없는 행동이다. --- 「PART4. 엘스워스 콜링스 : “티푸스 프로젝트는 꾸며낸 이야기이다.”」중에서 안타깝게도 그들은 철저한 검토나 연구도 하지 않은 채 보싱의 프로젝트 정의를 무조건 기술관료주의적이라며 비판했고, 듀이의 교육철학과 콜링스의 학교 실험을 훌륭하고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두 사람이 실제 삶과 연결된 실질적인 수업에 대한 학자로서의 생각, 사회적 학습, 민주주의적 전환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고자 했고, 이에 대한 이론적인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독일 학자들은 프로젝트를 전형적인 수업과 대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았지만, 전통적인 학과목 수업을 대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 「PART5. 원칙 대 방식」중에서 그에게 교육은, 어린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 학교 시절에 배운 경험과 인식을 실제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또한 그는 콜링스의 ‘티푸스 프로젝트’에서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경험과 인식을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현재 그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었던 점을 매우 훌륭하게 생각했다. --- 「PART5. 원칙 대 방식」중에서 전통적인 학교 교육에서처럼 교사는 학생들의 대변인이었다. 하지만 부트마르의 프로젝트 방식에서는 미국의 프로젝트 모델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교사가 학생들의 코치이며 동맹자가 되었다. 교사는 학생들이 어려운 프로젝트를 실현할 때 그리고 인간적이며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할 때 도움을 주는 존재여야 했다. --- 「PART5. 원칙 대 방식」중에서 교사는 프로젝트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부드럽고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그의 제안을 수용하고 좋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헨젤은 콜링스와 킬패트릭이 주장했던 ‘극단적인’ 어린이 중심 시스템을 거부했다. 교사는 프로젝트에서 그들의 본래 역할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학생들과 동등한 파트너가 아니라고 헨젤은 주장했다. 헨젤에게 교사의 역할은 프라이가 주장했던 것처럼 단순히 고문이나 지원자라기보다 듀이가 주장했던 지도자의 역할이어야 했으며, 교사는 일반 수업에서처럼 사회 통합적인 교육적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내용적으로 볼 때 프로젝트는 ‘수업의 형식’이며 ‘교습학적 형태’라고 할 수 있고, 방식적으로 볼 때에는 실험으로서 ‘메타 교습법적 양식’의 형태라고 볼 수 있었다. --- 「PART5. 원칙 대 방식」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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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의 역사를 추적하고 오류를 밝히다
저자는 16세기 로마의 건축학교로 거슬러 올라가 유럽 직업교육학교와 수공예학교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의 역사를 복원한다. 저자는 이를 ‘잊혀진 프로젝트의 역사’라고 부른다. 프로젝트는 16세기 파리와 로마의 예술 및 건축 아카데미에서 도입된 뒤, 200년 후에는 미국으로 전파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존 듀이와 윌리엄 킬패트릭이 진보 교육의 이념으로 삼은 뒤 다시 유럽에 전파되었다. 프로젝트 수업 방식이 미국에서 발전한 것은 민주주의 덕분이지만, 저자는 미국식 이념이 독일로 전해질 때 오류가 많았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독일 학자들이 오독한 미국식 프로젝트 이론을 바로잡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독일 진보 교육을 이끈 학자들의 학문적 성취와 오류가 미국 진보 교육학자들의 이론과 맞물려 비교 및 소개되고 있어 프로젝트 수업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교육학 통사라 할 만하다. 교실의 진보를 꿈꾼 혁신가들 존 듀이, 윌리엄 킬패트릭, 엘스워스 콜링스, 찰스 리처즈 등의 미국 학자들부터 베르나르 수앵 드 부트마르와 카를 프라이, 다크마어 헨젤 등 독일의 대표적인 진보 교육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수십 명 학자들의 면면을 알 수 있는 일화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책에는 논문 완성을 위해 동료에게 등을 돌리거나 박사학위를 위해 논문 주제를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딸의 병명을 이용해 프로젝트 성과를 거짓으로 부풀리는 등 여러 모순된 얼굴의 학자가 등장한다. 학문적 욕망과 인간적 양심이 상충하는 접점에서 고군분투하던 이들 학자의 모습이 풍부한 목격담과 함께 다양한 사례로 소개되어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실용과 교과서 중심 수업으로 대립했던 윌리엄 해리스와 캘빈 우드워드, 학문적 입장을 바꾼 것을 동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고 필명을 바꾸어 논문을 발표한 윌리엄 킬패트릭, ‘프로젝트 방식의 아버지’라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문제해결방식을 주장했던 존 듀이 등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던 흥미로운 사실도 새롭게 알 수 있다. 오늘날 교육학 연구의 현주소에 대한 비평 이 책의 미덕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을 전달하지 않고 오늘날 교육학 연구의 현주소에 대한 비평을 담았다는 데 있다. 캘빈 우드워드는 미국 고등교육의 실패를 ‘삶과 직결된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고, 존 우드헐은 프로젝트야말로 ‘문제에 대처하는 해결 방법’이라고 했다. 이 두 학자의 주장을 보면, 교육 문제는 21세기인 오늘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진행형임을 알 수 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스스로 학습에 동기 부여할 수 있는 역동성은 여전히 많은 교육학자들이 꿈꾸는 교실의 모습이다. 오랫동안 학교에서 교사와 교장으로 재직했던 저자는 이런 교실을 위해 노력하며, 프로젝트가 학교와 수업에서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지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모색한다. 프로젝트야말로 여전히, 가장 고차원적인 수업 방식이자 민주주의적 학교 혁신이며 사회 혁신이라고 저자는 믿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