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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티치아노 : 그리스도의 매장 벨라스케스 : 시녀들 로히르 반 데르 바이덴 :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들라크루아 :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입성 라파엘로 : 고기잡이의 기적 와토 : 제르생의 간판 엘그레코 :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델프트의 베르메르 : 화실의 화가 컨스터블 : 뛰어오른 말 습작 고야 : 1808년 5월 3일 쇠라 : 물놀이, 아스니에르 터너 : 눈보라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성 안나와 성모자 쿠르베 : 화가의 화실 보티첼리 : 그리스도의 탄생 렘브란트 : 자화상 그림 목록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
Kenneth Cl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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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이 주는 기쁨을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느낄 수 있으려면 그림에 관해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미술은 막대사탕이나 풀향기가 나는 상큼한 퀴멜주 한 잔처럼 한 순간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니다. 위대한 미술작품의 의미 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그 의미의 일부가 영혼에 활력을 주듯 우리의 삶과 관련이 있어야만 한다. ---「머리말」 중에서
물론 눈에 보이는 외양의 세계가 점잖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은 오랫동안 화면을 들여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가로로 4등분, 세로로 7등분 된다. 시녀와 난쟁이들은 밑변이 화면 아래쪽에서 7분의 1이 되는 곳에 있고, 꼭짓점은 7분의 4에 위치하는 삼각형 구도를 이룬다. 이 커다란 삼각형 안에 딸려 있는 삼각형이 셋인데, 그 중 하나는 꼬마공주가 중심을 차지한다. 이런 구도나 그 외 장치들은 중세 회화 공방의 전통에서 상식으로 통했다. 17세기 이탈리아의 회화 공방의 평범한 도제라면 누구라도 벨라스케스와 똑같이 화면을 구성할 수 있었겠지만, 우리가 그 결과물을 보고 호기심을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독특하게도 벨라스케스의 그림에서는 이런 계산이 그림을 완벽하게 사실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데 기여한다. 강조되는 것도, 강요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벨라스케스는 환호성을 지르며 자기가 얼마나 영리하고 통찰력 있으며 지략이 뛰어난지 우리에게 보여 주는 대신, 우리가 스스로 이 모든 것을 발견하게끔 이끈다. 벨라스케스는 초상화 모델에게 아부하지도 않으며, 관람객을 손짓해 불러 세우지도 않는다. 벨라스케스 〈시녀들〉 ---pp.38-39 이 그림은 커다란 보석처럼 빛난다. 스페인의 대성당은 왕관, 성배, 상감 장식 제단처럼 보석들이 즐비하지만 이런 찬란한 성물들은 마치 늘어지고 단조로운 성가처럼 따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엘 그레코의 보석처럼 빛나는 그림만큼은 열정 어린 탄식이다. 이를테면 이 그림은 가장자리를 토파즈, 아콰마린, 연수정으로 장식하고 가운데 큰 루비를 박은 듯한데, 그리스도의 솔기 없는 옷은 단연 커다란 루비처럼 찬란하다. 이제 그 옷이 벗겨지려고 한다. 엘 그레코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p.137 이 그림은 그가 그렸던 여러 실내 장면 중 하나다. 베르메르의 전·후기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방은 두 곳이다. 납으로 세공한 창문이 두 가지 종류이므로, 우리는 그가 그린 방이 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햇빛은 언제나 왼쪽에서 들어오므로, 두 방은 아마 같은 방향으로 창을 낸 건물의 아래위층에 있었을 게다. 베르메르는 공간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따라서 방은 커 보이지만 바닥의 정사각형 무늬를 세어 보면 상당히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로써 그림 전면에 배치된 사물이 코앞에 보이는 이유가 해명된다. 그림 작업을 시작하기 전 베르메르는 가구를 배치하고 커튼을 고리에 건다. 의자와 탁자에 천을 걸치고, 가장 큰 벽면에 지도(모두 네 가지 지도가 확인되었다)나 가지고 있는 그림 중 한 점을 건다. 프랑스 고전주의의 거장 니콜라스 푸생(1594-1665)이 모형을 만들고 그 위에 여러 인물들을 세워두었던 것처럼, 베르메르는 화면을 머릿속에서 미리 완성한 후 이젤 앞에 앉아서 자기가 구상한 대로 그렸다. 베르메르 〈화가의 화실〉 ---p.159 킹슬리 목사가 터너에게 자기 어머니가 이 그림을 좋아한다고 말하자, 터너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런 장면의 실상이 어떤지 보여 주려고 그렸을 뿐이오. 나는 눈보라를 관찰하려고 선원들에게 나를 돛대에다 묶어달라고 부탁했지요. 네 시간 동안 묶여 있으면서 도망칠 생각은 해보지 않았소. 어떻게든 그것을 기록해야 한다고 느꼈지요. 아무도 이렇게 일하지 않을 거요.” 터너 〈눈보라〉 ---p.228 렘브란트의 자화상 연작 중에서도, 켄우드하우스의 자화상은 특히 코를 중심으로 삼아 화면 전체로 퍼져나가는 느낌을 준다. 붉은 물감이 튄 것처럼 보이는 코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듯 당당해서, 보고 있자니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다. 그러나 인생의 경험이 마술처럼 예술로 변하는 과정에 우리는 경탄할 수밖에 없다. 저 딸기코가 나를 꾸짖는다. 그러고는 문득 깨닫는다. 내 도덕률은 얼마나 부박한가. 게다가 옹졸하기 그지없는 소갈머리에, 미술사가라는 업은 또 얼마나 하찮은지. 렘브란트라는 위대하면서도 겸손한 천재는 이 미술사가에게 이렇게 경고하는 듯하다. “그 입 다물라.” 렘브란트 〈자화상〉 ---p.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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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20세기 미술사 분야의 최고 안목으로 꼽히는 케네스 클라크는 회화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이 책에서 자상하게 설명해 준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고 30세의 나이에 내셔널갤러리 관장에 발탁된 클라크는 BBC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문명Civilization」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학자답게, 명작에 담긴 의미와 기법, 화가의 감춰진 드라마틱한 생애, 명작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의 비밀을 우아하고도 깊이 있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풀어놓는다. 그것은 미술사는 물론 철학과 역사, 종교, 예술에 대한 저자의 풍부한 학식과 심미안이 동원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책에는 서양 미술사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개성 넘치는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인 거장들 즉, 티치아노, 벨라스케스, 로히르 반 데르 바이덴, 들라크루아, 라파엘로, 와토, 엘그레코, 베르메르, 컨스터블, 고야, 쇠라, 터너, 레오나르도 다 빈치, 쿠르베, 보티첼리, 렘브란트 등 16명의 톱스타를 한 자리에 불러 놓고 이들의 작품를 꼼꼼하게 진단한다. 클라크는 마치 미술관에서 작품을 앞에 놓고 현장 강의를 하듯 그림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짚어 가며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이끈다. 처음엔 그림이 주는 감동과 충격을 소개하고 그림의 색조, 부분, 형태와 색채, 소묘, 세부 묘사 등을 면밀히 검토해 들어가는 게 저자의 설명 방식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그림에 대한 전체적인 재해석으로 자연스럽게 마무리를 짓는데 그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새삼 저자의 내공에 탄복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화가의 에피소드와 뒷얘기가 재미있고 풍성하게 펼쳐진다. 그 얘기를 듣다 보면 화가를 모른 채 그림을 온전히 감상하는 게 가능할까 되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저자가 화가의 삶에 또 하나의 초점을 맞춘 것은, 모름지기 그림에는 화가를 포함해 우리네 인생살이가 담겨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풍부한 도판을 들여다보면서 저자가 명작을 대하는 경건한 태도, 보물찾기를 하듯 옛 문헌을 파고 들어가는 장인적 방식, 화가의 정신세계를 읽어가는 과정을 듣다 보면 〈그림을 본다는 것〉의 의미가 저절로 손에 잡힌다. 그림을 어떻게 볼 것인가 미술사의 거목 케네스 클라크가 풀어놓는 회화감상법 명화에서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 20세기를 대표하는 영국의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1903~1983)는 이 책에서 서양화를 어떻게 감상해야하는지 소개한다. 옥스퍼드대 교수, TV다큐멘터리 진행자, 영국 로열컬렉션의 초상화 감독관 등을 역임하는 동안 탁월한 심미주의자이자로 평가받은 그는 한 편의 그림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을 세심하게 끄집어낸다. 서양 미술의 전통과 미학 이론은 물론 철학 종교 역사 문학 음악 등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동원하는 그의 설명을 듣다 보면 ‘정통’ 서양화 감상법이란 게 어떤 것인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회화를 바라보는 클라크의 감상법은 머리말에서 잘 드러나 있다. 그는 “그림을 보는 방식은 당연히 여러 가지며, 그중 어느 한 가지만 옳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저자가 이 책에서 풀어 놓을 미술 감상법이 얼마나 다양하고 풍요로운지를 예고한다. 마치 작품이 있는 현장에서 독자에게 설명하듯, 클라크는 열여섯 점의 위대한 그림들 앞에서 자신이 느끼고 생각했던 과정을 낱낱이 들려준다. 이 책에 초대된 명작은 티치아노의 〈그리스도의 매장〉,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베르메르의 〈화실의 화가〉, 쇠라의 〈물놀이, 아스니에르〉, 쿠르베의 〈화가의 화실〉, 렘브란트의 〈자화상〉처럼 잘 알려진 작품도 있지만 와토의 〈제르생의 간판〉, 컨스터블의 〈뛰어오른 말 습작〉과 같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도 많다. 현장감 있는 생생한 설명 저자가 미술품을 감상하는 방식에는 나름대로 일관된 법칙이 있다. 대체로 그림에서 받은 충격과 감동을 서두에서 먼저 밝힌 다음 작품의 디테일을 면밀하게 검토해 들어간다(주요 대목 발췌 참조). 그 과정에서 하나하나 발견하게 되는 소감을 풍요롭게 풀어 놓으면서 전체적인 재해석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우선 나는 그림을 하나의 전체로 바라본다. 그림을 보기 시작한 뒤 한참 후에야 나는 비로소 내가 의식하는 대상이 지닌 일반적 인상을 알아차리게 된다. 일반적 인상이란 색조와 부분, 형태와 색채의 관계에 좌우된다. 일반적 인상이 주는 충격은 즉각적이다. 최초의 충격 다음에는 그림의 부분 부분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색채는 조화로운지, 소묘는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는지, 세부를 살펴보고 즐기라는 말이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화가가 의도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작품에 담겨 있는 지배 동기 또는 근본 개념 같은 것들도 찾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그림의 전체적인 효과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물론 저자는 이런 과정이 저절로 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활발한 참여를 요하는데, 초기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 훈련이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그림이 주는 기쁨을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느낄 수 있으려면 그림에 관해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화가의 생애가 곧 그림 클라크는 그림 감상의 핵심 포인트로 화가에 대한 이해를 특히 강조한다. “나는 화가들의 생애를 기억하고, 내 앞에 있는 그림이 화가의 발전 과정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찾아보며, 이 화가의 조수가 그렸거나 회화 복원가의 손길이 닿은 부분이 어디인지 추측한다.” 실제로 저자가 풀어 놓는 화가의 풍성한 에피소드와 뒷얘기를 듣다 보면, 그림의 주체인 화가를 모른 채 그림을 온전하게 감상하는 게 가능한 일이기나 한 것일까 자문하게 된다. 일감을 따내려고 스승을 험담한 티치아노, 궁정의 암투 속에서 자기 자리를 현명하게 지켜낸 벨라스케스, 중산층의 경제적 안정 속에서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린 베르메르, 우울증을 딛고 작품에 몰입한 컨스터블, 청각 장애의 침묵 속에서 사건의 핵심을 뽑아낸 고야, 정치가 앞에서 뻔뻔할 정도로 예술가의 당당함을 선언한 쿠르베, 파산과 고독 속에서 자화상을 그려낸 렘브란트 등의 사연을 몰랐더라면 명작의 감동이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영원히 파악하지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는 판단에 이른다. 어떻게 보면, 저자가 그림에 다가가는 방식은, 복잡하지만 하나하나 의미가 담겨 있는 종교적 의례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예상치 못한 방어망을 교묘히 그러나 운 좋게 빠져나가는 군사 작전 같기도 하다. 치밀한 자료 조사, 오랜 세월 온축한 지식, 현장에서 터득한 훈련의 결과물, 거기다 우연한 발견과 기발한 유추가 작품을 따져 보는 과정에서 수시로 불거져 나오기 때문이다. 위대한 명작은 삶을 담아야 그럼에도 저자가 회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따로 있다. “위대한 미술 작품의 의미, 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그 의미의 일부가 영혼에 활력을 주듯 우리의 삶과 관련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선언’은 미술이란 예술이 그저 예술가와 애호가들의 지적 놀음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준엄한 경고 같기도 하고, 위대한 예술로 영원히 살아남기 위해서 예술가와 예술품이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이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통찰 같기도 하다. 이처럼 클라크가 고전을 대하는 경건한 태도, 문헌을 찾아들어가는 장인적 방식, 정보 검색보다는 정신세계를 파고드는 정신분석적 탐문 과정은, 이제는 자취를 감춰가는 19세기의 고전적 연구 방식을 엿보게 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저자 자신은 “위대한 그림들은 깊이가 있다. 내가 꿰뚫어 보려고 하면 할수록 그림의 핵심이 훨씬 더 깊이 숨어버리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고 고개를 조아린다. “그저 나는 언어라는 낡아 빠진 도구로 그림 표면에 살짝 흠집이나 낼까 말까 한다. 인식의 한계는 차치하고라도 눈으로 보는 경험을 언어로 옮긴다는 난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정확하게 제대로 본다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며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털어 놓는 것이다. 고전적 서술에 걸맞은 레이아웃 이 책은 요즘 책과 다른 편집 방식을 취했다. 좌우 페이지에 도판을 가로로 걸치는 대신 일부 도판을 세로로 배치해 온전한 작품 감상을 유도했고, 원화의 일부를 확대한 흑백 부분도를 싣는 고전적인 레이아웃 방식을 채택했다. 이미지의 위력은 갈수록 커져가지만 회화의 가치와 중요성은 오히려 소홀해지는 이 시대에 모쪼록 이 책을 통해 ‘그림을 본다는 것’ ‘그림을 그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미로처럼 복잡하고 장강처럼 기나긴 서양 미술의 궤적이 어떤 미술사적, 철학적, 문화적 전통 위에서 새겨졌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추천의 말 ‘색채와 명암이 빚어내는 화면의 드라마’와 ‘그림의 주제가 전하는 이야기’와 ‘위대한 거장의 삶’이 궁극의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명작은 탄생한다. 명작은 왜 위대한지, 어떻게 우리의 영혼에 활력을 주는지, 무엇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지 안내해 주는 케네스 클라크의 이 책은 ‘그림을 본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옮긴이의 말 『그림을 본다는 것』은 위대한 미술 작품을 즐기고 이해하는 방법에 관해서 쓴 매우 훌륭한 책이다. 케네스 클라크는 미술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썼다. 대개 위대한 미술 작품에 대해 혼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미술에 대해 무언가 이야기하고자 하거나 의미를 알고 싶은 이들에게, 아니면 미술 작품에 대한 반응을 이야기하는 것이 힘든 이들에게, 이 책은 미술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아마존 독자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