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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예수님께 분노를 품다.
본문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첫 번째 만남/재미있는 그림/일을 하고 있던 이유/심사가 뒤틀린 이유/왜 처음에 안 따라 갔을까?/ 믿음이란 무모함인가? 이 사건에 대한 두 가지 시각 /민중 봉기의 시발점/민중을 피해 도망가시는 예수님/ 신앙의 천재성이 드러남46/신앙의 당위를 딛고 걸어야 함/행하지 않는 믿음은 가짜다 베드로,예수님께 대들다. 훌륭한 고백 그러나 특별하지는 않은/나를 누구라 하느냐?/고백이 교회를 세운다/ 대형 사고를 치는 베드로69/사단에 매이게 되는 이유/신앙이란 자기를 부인하.는.것으로 시작함./베드로의 세번 부인이 예언된 이유/기독교 신앙은 운명론인가?/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사라/사단의 청구에 내어주심/ 권력 다툼을 벌이는 제자들/사명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도구 예수님께서 두려워하신 것과 베드로가 두령원 한 것 예수님께서 두려워하신 것/재판 받으시는 예수님/사형 언도를 받기 위해 노력하심/죽음의 두려움.속에 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드로/베드로를 알아본 여종은 소원의 응답/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 하였으니/고기 잡으러 가자 여전히 목표는 베드로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베드로의 행적/고넬료 전도는 이방인 전도의 역사가 아님. 환상의 의미./베드로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 목표./사도행전 전반부를 이해하는 관점. 기대하지 않은 구원. 헤롯 아그리파 1세의 핍박./베드로조차 구출을 기대하지 않다./무엇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을까.?/베드로의 퇴장을 허락지 않으심./헤롯왕의 죽음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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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기록자는 유일하게 단 두 곳에서만 ‘숯불’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던 대제사장의 뜰에 피워 놓았던 모닥불을 가리킬 때 ‘숯불’이라고 했고 바로 이곳 요한복음 21장에 ‘숯불’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두 정황을 연결해서 연상하게 하신 예수님의 의도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특별한 숯불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세 번에 걸쳐 베드로에게 질문을 하시고, 답을 듣고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이것 또한 베드로의 세 번에 걸친 부인에 대한 회복의 완전성을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증인들 앞에서 세 번을 반복해서 선언함으로써 법적 효력을 발생하도록 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그날 세 번 부인한 것은 법정적인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이것에 대한 취소와 사역의 회복에 대한 법정적 선언을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즉 ‘네가 나를 모른다고 하고 욕하고 저주를 했는데, 이제 다시 기회를 주고 묻겠다. 네가 나를 정말로 사랑하느냐?’ 이에 대해서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자신의 사랑의 진실됨을 예수님을 의지하여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양을 먹이고 치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이것을 증인들 앞에 법정적 선언으로 선포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제 그 누구도 베드로의 죄에 대해서, 그의 사역에 대해서 시비를 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베드로만 받은 사죄와 회복이겠습니까? 베드로가 대표로 받게 된 것이기에 제자들 모두의 사죄와 사역에의 회복인 것입니다. 왜 베드로가 대표로 받았을까요? 베드로가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이기 때문이지 베드로가 더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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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가 주인공?
시몬이 베드로가 될 수 있었던 건 베드로의 믿음 때문일까? 아니면 예수님의 베드로를 향한 열정과 사랑 때문 일까?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의 믿음을 이야기하고 본받고자 하지만 베드로를 만든 건 예수님의 베드로를 향한 열정과 사랑 때문이지 않을까? 베드로의 눈으로 이 책을 접하지 않기를 권한다. 베드로를 만드신 예수님의 눈으로 이 책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그래야만 베드로가 당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나의 심장이 너를 놓을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수히 많은 죄를 범하며 살아갑니다. 정말 내가 그리스도인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때도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또한 어느 때에는 정말 돌이킬 수 없고,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으며, 스스로를 혐오할 수밖에 없는 심각한 죄를 짓고 절망할 때도 있습니다. 이제 주께서 나를 버리시고, 내게 맡기셨던 사명과 기쁨까지도 다 거두어 가실 것이라는 좌절 속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합니다. 베드로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결코 나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셔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우리에게 맡기셨으나 내 죄로 말미암아 잃었던 자녀로서의 특권과 기쁨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사실을 요한복음 21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나의 못남과 나의 죄 때문에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며, 더욱 충성된 자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그 뼈아픈 경험과 여기서의 회복이 요한복음 21장 19절에서 예언되어 있는 베드로의 영광스러운 순교를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