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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개의 다리 06
사랑과 죽음의 다리 14 사오싱의 아침 21 만 개의 다리의 시작 34 루쉰에게 가는 다리 48 아큐의 다리 63 검은 연못의 다리 74 월나라로 가는 길 85 월나라의 중심 101 슬픔의 다리 109 흔들리지 않는 자들의 다리 116 |
金仁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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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오싱에는 어디에나 비를 피할 다리가 있다. 말했지 않나. 다섯 걸음 안에 다리를 만나는 곳이 사오싱이라고. 오늘 나는 다리 아래에서 비를 피하지만, 오래전 미생은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사랑 때문에, 그리고 약속 때문에, 어쩌면 어리석음 때문에……. 어리석건, 어리석지 않건 사랑은 약속이고, 약속은 ‘건너가는 것’이다. 나로부터 너에게로, 너로부터 나에게로. 그래서 다리는 약속이고, 사랑이다.
---「사랑과 죽음의 다리」중에서 여기는 그냥 사람이 사는 동네다. 그런데 왜 아름다운가. 사람 사는 동네는 어디에나 있는데, 여기는 왜 아름다운가. 아마도 이곳에서 보여주는 것이 경계의 지점이기 때문이어서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난간 세월과 앞에서 달려오는 시간의 경계, 그러나 그 사이에서 조용히 흘러가는 작은 물길 같은 삶. 잃어버린 것과 잃어버릴 것들에 대한, 고즈넉한 향수, 그러면서도 생동하는 삶, 그런 것들 말이다. 여기 팔자교가 아니었다면, 그 팔자교의 아침이 아니었다면, 오래되어 마모된 돌다리를 건너 학교에 가는 체육복 차림의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양칫물을 냇물에 태연이 뱉어내는 노인이 아니었다면, 나는 사오싱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중국이 얼마나 요란한 나라인지를 알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 소박함이, 아침햇살에 빛나는 이 소박한 아름다움이, 내게는 완전하게 여겨졌다. ---「사오싱의 아침」중에서 이곳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 여기 이 작은 사당뿐만 아니라 사오싱 전체가, 읽고 또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감동이었는데, 어느 날 돌이켜보니 가물가물한 스토리처럼, 그렇게 희미하게 지워지겠지. 잊히는 게 아니라 가라앉겠지. 그러면 남는 건 무엇일까. 5월의 햇살, 햇살에 뜨겁게 익어가는 취두부 냄새, 취두부 대신 땀을 뻘뻘 흘리며 길거리에서 먹었던 민물 게 구이, 그런 것들은 남을까. 기억이 아니라 맛으로 뜨거움으로 흘러내리던 땀의 촉감으로 남을까. ---「아큐의 다리」중에서 무심히 발 닿은 길이 그 길이었고, 그 길에 홀려 있다가 문득 도착한 곳이 그곳이었다. 오월동주, 와신상담, 토사구팽의 고사를 쏟아낸, 바로 그 월나라. 그 월나라의 도읍지가 사오싱이다. 그러니 사오싱에 온다는 것은 월나라에 온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경주에 가는 것이 신라에 가는 것이듯. ---「월나라로 가는 길」중에서 비로소 내려다보이는 사오싱의 전경은, 이번에는 월나라가 아니라, 물이다. 아이고, 정말로, 물이다. 물과 다리다. 나는 언제 저 물을 다 건너보고, 언제 저 다리를 다 밟아보나. 물소리가 찰랑찰랑 들리는 듯하다. 아니, 찰랑찰랑이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 철썩철썩, 스윽스윽, 물의 소리…… 그것을 무엇으로 표현하나. 밤의 물의 소리, 낮의 물의 소리, 새벽과 노을 녘의 물의 소리…… 그 모든 물의 소리들을. ---「월나라의 중심」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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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다리의 도시, 일만교의 도시 사오싱
오래된 다리들은 오래된 이야기를 담고, 새로 놓은 다리들은 오래된 이야기를 잇는다 상하이 근방에는 물길로 유명한 곳이 많다. 그중에서도 왜 사오싱일까? 소설가 김인숙에게 사오싱이 특별한 것은 “물길보다도 그 물길을 건너가는 일” 때문이다. 시 면적의 10프로가 운하일 정도로 물이 많은 이 도시에는 “다섯 걸음 안에 다리를 만나고 열 걸음 안에 다리를 건넌다”는 말이 있을 만큼 많은 다리가 있다. 그 때문에 ‘일만교의 도시’라는 별칭도 있다. 도시를 걷는 동안 만나게 되는 다리를 건너는 일은 인생에서 만나는 갖가지 ‘다리’를 건너는 일을 떠올리게 한다. 때문에 이 도시를 걸으며 다리를 건너보는 일은 인생을 건너가는 일의 은유가 된다. 그가 사오싱에 갖는 애정은 책 속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도시의 역사는 사실 사람의 역사”이므로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도시의 사람들을 들여다보는 게 먼저여야 할 일”이라는 작가의 말대로 사오싱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모습들도 애정이 깃든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오래된 과거와 현재진행중인 오늘의 삶이 물길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만나며 또 흘러가는 사오싱에서, 작가는 그곳의 사람들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곁에서 함께 살아본다. 여행이라기보다는 삶을 이어간다. 물길을 곁에 두고 살아가며 물길을 따라 하루를 시작하는 사오싱 시민들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완전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한다. 사오싱의 오래된 다리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품고 있다. 무심코 지났던 다리가 역사 속 한 장면을 간직하고 있는 다리라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작가는 “역사로 범벅이 된 이 도시”에 “자칫 첨벙 빠져버리면 헤어 나오기가 힘들 것”이라는 애정 섞인 경고도 덧붙인다. 이미 그 도시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는 작가가 건네는 경고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동안 작가의 안내에 따라 사오싱의 물길을 건너는 일을 경험하며 사오싱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오싱의 거리를 걷는 것은 어디를 어떻게 걷든 결국엔 역사를 향해 걷는 길”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루쉰’의 도시 ‘와신상담’과 ‘토사구팽’이 유래한 월나라의 도읍지 사오싱은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 문예혁명 운동의 기수, 세계적 대문호” 등등으로 이름 붙여진 소설가 루쉰의 고향이기도 하다. 루쉰의 생가와 루쉰의 유년시절 정원과, 루쉰이 다니던 서당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 사오싱의 중심가를 이루고 있다. 「아큐정전」의 배경이 되는 투구츠가 있고 「쿵이지」의 배경이 되는 센헝주점도 있다. 김인숙 작가는 소설 속 배경이 되었던 곳을 실제로 찾아가면서 루쉰의 소설에 또 다른 방식으로 접속한다. “오래된 것”, “그 자체가 그냥 이야기인 것”에 마음이 끌리는 이들이라면 도시 곳곳에 오래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사오싱이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사오싱의 거리를 걷는 것은 어디를 어떻게 걷든 결국엔 역사를 향해 걷는 길”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사오싱에서는 무심히 발 닿은 곳에서 역사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그런 흔적을 만나게 되면 으레 관광객의 위치에 서서 거리를 두고 도시를 바라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사오싱에서는 도시가 사람들을 관광객으로 밀어내지 않고 오히려 빨아들인다. 삶 속으로, 생활 속으로. 낯선 곳으로 떠나왔음에도 평화를 느끼며 잠깐 쉬어갈 수 있는 것이 여행의 묘미라가 아닐까. 요란하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중국에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함께 발견할 수 있게 하는 이 산문집이 읽는 이에게도 따듯한 떨림을 남기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