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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농장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나 검푸르던 색이 진초록으로 바뀌면서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멀리서 푸른 풀처럼 보이던 것은 억세고 커다란 가시나무였다. 땅 바닥에서 하늘로 쭉쭉 뻗은 긴 잎들은 마치 기다란 칼날을 여러 개 꽂아 놓은 것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었다. --- p.17
“전대금제도라니? 그럼 우릴 빌미로?” “이제야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소?” 통역관이 말을 마치자마자 로페즈 감독이 급히 통역관을 말에 태우고 사라졌다. 옥당대감이 넋이 나간 듯 그 자리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그 일본 놈이 사기를 친 게야. 황족인 내가 일꾼으로 간다면 가지 않을 테니까 엉터리 소개장을 써 줬는데 그걸 철석같이 믿었다니. 으으으윽…….” 옥당대감이 신음 소리를 냈다. 감초댁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대감마님, 그랑께 시방 통역관 말은 왜놈들이 우릴 팔아묵었다 그 말이라요? 쥑일 놈들. 대감마님도 우리맹키로 똑같은 일꾼으로 팔아묵었다, 그 말 아니라요? 시상에 우째 이런 일이 있다요? 참말로 기가 탁 맥혀 뻔지네.” --- p.62~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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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건너 멕시코로 이민을 간 1,033명의 조선 사람들 중 대부분이 어저귀를 베는 농장으로 팔려 간다. 덕배와 덕배 아버지, 소녀네 가족, 감초 아저씨 부부 등의 십여 명의 사람들도 어저귀를 베는 야스체 농장으로 간다.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멕시코를 찾은 사람들이었는데, 일본 사람에게 속아 팔려 온 것임을 알고는 크게 실망한다. 야스체 농장의 조선 사람들은 어저귀 잎을 베면서 심한 노동에 시달리고, 마야 원주민과 같은 노예 취급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에 못 견딘 조선 사람들은 조선의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하지만 그 사이 조선은 일본의 손에 넘어가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가 농장의 감독에게 몹쓸 짓을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소녀에게 마음을 두고 있던 덕배는 그 사실에 몹시 괴로워하고, 소녀의 동생 윤재는 농장을 탈출한다. 야스체 농장에서 계약 기간 4년을 다 채운 조선 사람들은 조선으로 돌아갈 뱃삯을 벌기 위해 메리다 시내로 간다. 그런데 제당공장에서 일을 하던 감초댁이 사고를 당해 그만 목숨을 잃고 만다. 조선 사람들은 감초댁과 조국을 잃은 아픔에 슬퍼하지만, 모두 이겨 내고 덕배와 윤재, 그리고 봉삼이가 주축이 되어 멕시코 땅에 학교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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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의해 멕시코로 팔려 간 조선인들의 기막힌 이야기
우리 나라의 해외 이민은 1860년경부터 시작되어 1900년대 초에 많이 이루어졌다. 주로 빈곤을 견디다 못해 러시아로 가거나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1905년 일제의 계략과 억압에 의해 멕시코로 떠난 이민자들이 있었다. 바로 영국인 중개업자 마이어스(Myers)와 일본인 다시노 가니찌에게 완전한 사기이민을 당한 사람들이었다. 많은 돈을 벌어 잘 살아 보겠다는 꿈을 안고 선택했던 멕시코행이 바로 일본이 놓은 덫이었던 것이다. 멕시코로 이민을 간 조선인들은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며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해야 했다. 작가 문영숙은 순수 이민자들이 아니라 노예로 팔려 가서 기민(饑民)이 된 기막힌 ‘디아스포라’를 접한 후, 나약했던 조선을 모국으로 둔 탓에 불행한 삶을 살아간 그들의 아픔을 청소년을 위한 역사소설로 그리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3년간의 각고 끝에, 그들의 애달팠던 삶을 고스란히 담아 『에네껜 아이들』을 마침내 완성했다. 몇몇 방송매체에서 멕시코 이민 100주년을 다루면서 알려지긴 했지만 그 시대의 아픔은 점점 잊혀가고 있다. 더욱이 이제 멕시코에는 우리 나라 이민 1세대가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 64주년 광복절을 맞아 『에네껜 아이들』을 읽으며 우리 근대사의 한부분인 그들의 이야기에 주목해 보는 것도 뜻 깊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미래를 열어갈 우리 청소년들은 우리 민족이 겪은 수난사를 읽는 과정을 통하여 뚜렷한 역사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메마른 땅에서 부르는 조선인들의 희망가 교실 밖에서는 태극기가 태평양 쪽으로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복뎅이가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며 손뼉을 쳤다. -본문(272~273쪽) 일부 『에네껜 아이들』은 역사적 사실성과 극적인 긴장감을 고루 겸비한 역사소설로, 문영숙 작가가 3년 동안 공들여 집필한 흔적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조선인들의 처절했던 멕시코에서의 생활을 작가가 직접 체험한 듯 사실적으로 전달해 주고 있다. 멕시코의 낯선 농장에 도착한 조선 사람들은 제대로 된 밥 한 끼도 못 먹고 온종일 어저귀 밭에서 일만 한다. 상투가 잘리거나 농장주 별장을 청소하는 등 계약 기간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갖 수모를 겪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를 잃고, 돌아갈 조국마저 잃어버리고는 망연자실해 한다. 하지만 조선 사람들은 위기 때마다 서로를 위로하며, 고달프고 애달팠던 지난날들을 이겨 내고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바로 덕배, 윤재, 봉삼이, 세 소년이 주축이 되어 멕시코 땅에 조선인 학교를 세워 태극기를 펄럭이게 한 것이다. 분명 조선인의 멕시코 이민은 일본이 저지른 또 하나의 천인공노할 만행이다. 하지만 우리는 『에네껜 아이들』을 통하여 메마른 땅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희망의 장(場)을 마련한 조선인들의 꺾이지 않는 기상과 끈질긴 민족혼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