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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론
제1장 ‘일국양제’하의 홍콩
제2장 영국의 유산: 식민지 구조와 자유
제3장 ‘중국화’와 홍콩의 자유: 반환 이후의 홍콩
제4장 식민지 홍콩에서 자유의 조건: 문화와 사회
제5장 우산혁명: 일어선 관객들
맺음말: 홍콩의 자유, 아시아의 자유

저자 소개 3

구라다 도루

관심작가 알림신청
 

倉田徹

도쿄대학(東京大學) 교양학부를 졸업(1998)하고 도쿄대학 대학원 박사후기 과정을 수료했다. 박사(2008), 홍콩 주재 일본 총영사관 전문조사원을 재직(2003~2006)하고 가네자와대학(金澤大學) 조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릿쿄대학(立敎大學) 법학부 정치학과 교수 (현대 중국·홍콩 정치 전공)이다. 저서로는 『중국 반환 후의 홍콩: ‘작은 냉전’과 일국양제의 전개』(2009, 산토리 학예상 수상), 『홍콩을 알기 위한 60장』(공저, 2016), 『동아시아의 정치사회와 국제관계』(공저, 2016), 『홍콩의 과거, 현재, 미래: 동아시아의 프런티어』(편저, 2019) 등이 있다.

장위민(청육만)

관심작가 알림신청
 

Cheung Yuk Man,張彧?

홍콩중문대학(香港中文大學) 사회학연구과 사회학 박사를 졸업했다. 홍콩중문대학 사회학과 강사를 역임하였다. 현재 일본 리쓰메이칸대학(立命館大學) 국제관계학부 조교수로 재직중이다. 역사, 문화사회학, 민족주의론, 일본연구를 전공한다. 저서로는 『변경의 사상: 일본과 홍콩에서 생각한다』(공저, 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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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 인도 국방연구원(IDSA) 객원연구원 역임했으며, 미국 하버드대학 HPAIR 연례학술회의 참석(외교 분과)했으며, 이스라엘 크네세트(국회), 미국 국무부, 미국 해군사관학교 초청 방문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미국 하와이대학 동서문제연구원(EWC) 학술 방문했으며, 중국 ‘시진핑 모델(習近平模式)’ 전문가위원회 위원(2014.11~)으로 활동한다. 저서로는 『East by Mid-East(공저, 2013)』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슈퍼리치 패밀리: 로스차일드 250년 부의 비밀』(2011),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40년사』(2012), 『러시아의
홍콩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 인도 국방연구원(IDSA) 객원연구원 역임했으며, 미국 하버드대학 HPAIR 연례학술회의 참석(외교 분과)했으며, 이스라엘 크네세트(국회), 미국 국무부, 미국 해군사관학교 초청 방문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미국 하와이대학 동서문제연구원(EWC) 학술 방문했으며, 중국 ‘시진핑 모델(習近平模式)’ 전문가위원회 위원(2014.11~)으로 활동한다. 저서로는 『East by Mid-East(공저, 2013)』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슈퍼리치 패밀리: 로스차일드 250년 부의 비밀』(2011),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40년사』(2012), 『러시아의 논리』(2013), 『이란과 미국』(2014), 『북한과 중국』(공역, 2014), 『중난하이: 중국 정치와 권력의 심장부』(2016), 『이슬람의 비극』(2017), 『푸틴과 G8의 종언』(2019), 『미국과 중국』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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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340g | 148*210*12mm
ISBN13
9788946068087

책 속으로

반환 이후의 홍콩이라는, 보지 못하고 놓친 연속 드라마 중에서 이전 줄거리를 알지 못하고 ‘우산혁명’이라는 클라이맥스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다. …… 이처럼 복잡하고 기괴하며 변화무쌍한 홍콩에 만고불역(萬古不易)의 원리는 존재할까? …… 한 가지 답은 ‘자유’였다. …… 홍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자유’의 본질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 p.23-24, 「서론」중에서

…… 홍콩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홍콩의 정식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이다. ‘홍콩국(香港國)’이 아니고 중국 광둥성이나 푸젠성(福建省) 등과 같은 ‘홍콩성(香港省)’도 아니며, 베이징시(北京市)나 상하이시(上海市)와 같은 ‘홍콩시(香港市)’도 아니다. 중국의 특별행정구란, 홍콩 외에는 마카오만 ‘특별’한 지구이며, 그래서 비교 대상을 정하기도 어렵다. --- p.30, 「제1장 ‘일국양제’하의 홍콩」중에서

홍콩 정부는 ‘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의 원칙 아래에서 대륙의 관리는 임관(任官)하지 않는다. 또한 홍콩에는 공산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1949년 5월에 제정된 ‘사단조례(社團條例)’는 홍콩 역외의 정치적 조직과 관계를 지닌 단체를 사실상 금지했다. 이 규정은 공산당과 국민당을 동시에 비합법화하는 것이며, 냉전 시기의 홍콩이 중립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는데, 현재도 공산당은 홍콩에는 등록되어 있지 않다. --- p.39, 「제1장 ‘일국양제’하의 홍콩」중에서

‘일국양제’란 ‘현상유지’와 ‘50년간 불변’을 그 기둥으로 삼고 있는 정책이며, 반환 이전의 홍콩을 기한이 설정되기는 했지만 온존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홍콩의 정치와 사회의 구조는 식민지 시대에 영국이 구축한 골격 위에 성립되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 그렇지만 영국에 의한 통치는 그 구조를 보는 한에서 ‘자유’라고는 말하기 어려운 전형적인 식민지 통치 시스템이었으며, 종주국이 강권을 휘두르는 독제체제였다. --- p.56, 「제2장 영국의 유산: 식민지 구조와 자유」중에서

선거의 도입, 프로 정치가와 정당의 등장은 사회로부터 유리된 정권이 권력을 독점해왔던 홍콩 정치 시스템의 근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미완으로 끝났다고 해도 홍콩 사회에 그 자유를 지키고 정치에 저항하기 위한 기반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민주화는 또한 영국 통치의 중요한 유산 중 하나였다. --- p.88, 「제2장 영국의 유산: 식민지 구조와 자유」중에서

홍콩의 ‘자유’는 대륙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는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연이은 붕괴를 지켜보며 서방 국가들에 의한 사회주의 중국의 전복을 두려워했다. 중국은 민주화 운동을 ‘화평연변(和平演變, 평화 속의 정권 전복의 음모)’이라고 부르며 경계했다. ‘톈안먼 사건’ 때의 상황으로부터 베이징은 홍콩이 영국에 의한 ‘전복 기지’로서 이용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중국 정부는 베이징이 홍콩에 간섭하지 않는 대신에 홍콩도 대륙의 정치에 간섭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 장쩌민 국가주석은 톈안먼 사건 이후인 1989년 7월 11일 홍콩 기본법 자문위원회·기초위원회 대표 등에 대해서 “우물 속의 물은 강의 물을 범하지 말라”라는 비유를 들며 대륙과 홍콩이 상호 간에 간섭을 피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 p.96-97, 「제3장 ‘중국화’와 홍콩의 자유: 반환 이후의 홍콩」중에서

기본법에는 또 한 가지, 대단히 중요하지만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은 점이 있었다. 그것은 행정장관 후보자를 지명하는 ‘지명위원회’이다. 기본법에는 “광범위한 대표성이 있는” 지명위원회가 “민주적인 절차”로 후보자를 지명한다고 되어 있는데, 위원회의 구성이나 후보자 지명 방법에 대해서는 일절 적혀 있지 않다. 전국인대 상무위원회는 2007년의 결정에서 지명위원회의 구성은 현행 행정장관 선거위원회의 구성을 참조할 수 있다고 천명하고 있다. 선거위원회에는 각계의 대표자가 균형 있게 참가하고 있으며 “광범위한 대표성”이 있다고 베이징은 주장하는데, 실제로는 베이징과 정치적으로 가까운 재계 인사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명위원회가 불투명한 형태로 후보자를 압축하고, 보통 선거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있었다. --- p.108-109, 「제3장 ‘중국화’와 홍콩의 자유: 반환 이후의 홍콩」중에서

식민지 시대의 홍콩에는 다양한 정치적 제약이 있었지만, 많은 홍콩인은 ‘자신들이 자유롭지 않다’고 인식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국’에 ‘귀환’하면서 식민지의 저주로부터 해방되어 주인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홍콩인들은 중국 반환 이후 ‘자유롭지 않다’라고 느끼게 되고, 결국 ‘우산운동’(제5장 참조)이 촉발되기에 이르기까지 사태는 악화되었다. --- p.134, 「제4장 식민지 홍콩에서 자유의 조건: 문화와 사회」중에서

홍콩인들에게 ‘반환’은 ‘싫든 좋든 중국에 회수된다’라고 하는 감각에 가깝다. 왕훙즈는 묻는다. 이미 반환은 정치와 법률로 결정된 ‘기정 사항’이기 때문에 왜 굳이 ‘역사를 쓸’ 필요가 있는가? 쓸데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한 홍콩인에 대해서 영국 식민지 지배의 사실을 어떻게 ‘중화민족과 주권’의 이야기와 틀로 자리매김할 것인가가 베이징에게는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중국 일변도의 이야기로는 역시 홍콩의 역사와 심성을 묘사할 수 없다. 홍콩은 중국적이지도 않고 영국적이지도 않은데, 중국다움도 영국다움도 있다. --- p.143, 「제4장 식민지 홍콩에서 자유의 조건: 문화와 사회」중에서

이에 반해서 몽콕의 ‘투쟁 민주주의’는 ‘토의 민주주의’나 ‘중국화’와는 별도의, 완전히 다른 형태의 민주주의가 아닐까? 여기에서 말하는 ‘투쟁 민주주의’는 엘리트 정치에 대항하는 포퓰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파시즘과 공산주의에 열광하는 대중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포퓰리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기피해왔던 형태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예절이 바른 훌륭한 시민들에 의한 논의만으로는 실현이 어렵다. 때로는 군중이라고 할 수 있는 관객의 주목을 모으고 공동체의 일체감과 가치관에 호소할 필요도 있다. 몽콕에서 군중은 누구나 연설하며 전단을 붙이고 구경을 하고 비상시에는 외부로터의 공격에 대해서 함께 저항하는 장소를 만들었다. 관객도 스스로 참가하여 고양과 자극을 이끌어낼 수 있는, 투쟁 민주주의인 것이다. --- p.209-210, 「제5장 우산혁명: 일어선 관객들」중에서

지금 홍콩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은 ‘자기 결정의 자유’라고 여겨진다. 생존하는 자유, 돈 버는 자유, 문화의 자유는 그 어느 것이나 강한 권력의 비호 아래 제공되었던 자유다. 그것을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특히 반환으로 사회와 경제, 사상 면에서 중국이 간섭하는 영향력을 확대하자 홍콩의 젊은이들은 ‘부모’인 것처럼 연기하는 중국에 강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우산운동의 지도자와 학생들이 연설과 의견 발표 등에 사용했던 무대 배경에는 ‘명운자주(命運自主)’라는 네 글자가 붓글씨로 크게 써 있었다. ‘명운자주’는 문자 그대로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직접 결정하는 자유를 나타낸다. --- p.225-226, 「맺음말: 홍콩의 자유, 아시아의 자유」중에서

홍콩에서는 앞으로도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력과 대기업의 재력을 이용하여 ‘돈 버는 자유’와, 권력에 농락당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기 결정의 자유’는 모순되는 것이기 때문에, 대립과 논쟁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자유’를 둘러싸고 세계에서 가장 농밀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는 곳이 홍콩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곳으로부터 세계의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자유’의 형태가 언젠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홍콩은 항상 변화한다. 그리고 홍콩의 자유도 계속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 p.227, 「맺음말: 홍콩의 자유, 아시아의 자유」중에서

출판사 리뷰

경제적인 자유이든, 정치적인 자유이든 홍콩인은 자신의 ‘자유’를 강하게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바로 이곳으로부터 전 세계의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자유’의 형태가 언젠가 발생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책의 원서는 2015년에 출간되었다. 그래서 2019년의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목도한 우리는 말할 수 있다. 홍콩은 실로 ‘자유도시(自由都市)’이며, 자유에 대한 위협을 느꼈을 때 사람들은 최대한 저항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장위민은 마지막 장을 마무리하면서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외부에서 홍콩을 관찰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2014년 홍콩 우산운동이 ‘홍콩에서 자유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오히려 그로부터 5년 후 홍콩 민주화 운동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홍콩은 국가인가, 지역인가, 도시인가? 영국적인가, 중국적인가, 아시아적인가? 글로벌한가, 지역적인가? 친중인가, 반중인가? 친일인가, 반일인가? 경제도시인가, 정치도시인가? 이런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예스도 아니고, 노도 아니다’라고 것이다.

홍콩은 중국의 일부인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간단한 대답은 홍콩은 중국의 일부라는 것이다. 홍콩은 중국 남부 연해 지역에 있으며 광둥성의 일부로 간주되어왔다. 1840~1842년의 아편전쟁 이래 홍콩은 처음으로 ‘영국의 일부’가 되었는데 1997년의 반환이 중국 혹은 홍콩에서도 ‘회귀’라고 칭해지는 바와 같이, 현재 홍콩은 명실공히 중국의 일부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홍콩은 명백히 중국과는 다른 많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중국의 정치와 사회에 관한 다양한 형용사가 무릇 홍콩에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중국은 공산당의 일당 지배 체제인데, 홍콩 정부 안에는 (공식적으로는) 중국공산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홍콩에서는 해외 정보에 대한 인터넷 접속에 제한이 없으며,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도 문제없이 보도되며, 야당이 정부에 대한 공격을 반복한다.

선거에 의한 민주주의가 불완전한 홍콩에서 시위와 집회가 그것을 보완하는 ‘정치 참가’의 수단으로서 정착되고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홍콩에서는 2003년에 ‘50만 명 시위’라고 하는 반정부 시위도 발생했고, 훗날 퉁치화(董建華) 행정장관의 사임에 이르게 되는 정치 변동의 시금석을 가져왔다. ‘과격한’ 정치 집회도 진귀하지 않다. 톈안먼 사건 25주년인 2014년 6월 4일 홍콩 주룽반도의 선단부에 있는 침사추이의 해안 부근 광장에서는 ‘홍콩인의 6·4 집회’가 개최되었다. 검은 복장을 한 참가자들은 일제히 ‘공산당 타도! 공산당 타도!’라는 선전 구호를 내세웠고, 단상의 주최자들은 버너를 손에 들고 붉은색 바탕에 노란색의 낫과 망치가 그려져 있는 중국공산당 당기를 불태웠다.

2014년 8월 31일 중국 전국인대 상무위원회는 2017년에 예정된 홍콩 최초의 정부 수반인 행정장관의 보통 선거에서 베이징을 지지하는 성향의 인물로 확정된 ‘지명위원회’가 선거에 앞서 후보자를 심사하도록 하여 베이징과 대립하는 민주파가 출마하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케 하는 제도의 도입을 결정했다. 반환 이전부터 중국이 장래의 실시를 약속하고 적어도 시민이 사반세기 이상에 걸쳐 기대해왔던 행정장관의 보통 선거가 ‘가짜 보통 선거’가 된다는 결정에 대해 민주파와 학생은 불만과 분노를 갖게 되었다. 민주파는 도로 점거의 결행을 예고하고 학생 단체는 수업 보이콧으로 항의 의사를 보였다. 9월 28일 정부 본청사 주변에서 열린 민주파와 학생의 집회에는 참가자가 쇄도하고 경찰의 유도 실패도 있어서 결국 도로에 시민이 넘쳐났다. 경찰은 군중을 향해서 87발의 최루탄을 발사했는데 오히려 시민이 이것을 보도를 통해 알게 되고 분노하여 대거 현장에 몰려드는, 불에 기름을 퍼붓는 결과가 되었다. 학생과 시민은 정부 본청사 주변의 진중지구뿐만 아니라 홍콩섬 최대의 번화가인 퉁뤄만, 주룽반도의 번화가인 몽콕에서도 도로를 점거했다. 12월 15일까지 민주파는 79일 동안 저항했다. 최루탄에 맞서 우산으로 버티는 시민의 모습에서 이 운동은 ‘우산운동’으로 불리기도 했다.

우산운동은 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을까? 홍콩은 정치적으로는 중국의 일부이다. 민주화하지 않는 상태로 ‘강대국’이 된 중국은 톈안먼 사건을 교훈 삼아 그 재발을 피하고자 활동가를 구속하거나 시위와 집회의 정보를 파악하여 미연에 개최를 저지하든지 교묘하게 민주화에 대한 압력을 피해왔다. 그런데 중국에서 과거 수십 년 동안 거의 경험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때 홍콩은 명백히 ‘중국과 맞서는’ 존재가 되었다.

이 책은 ‘자유’를 테마로 홍콩을 이해하고자 가능한 한 새롭고 이해하기 쉬운 ‘주석서(注釋書)’를 지향한다. ‘홍콩 정치’ 연구자인 구라다 도루가 일본인의 관점에서 본 홍콩 정치의 불가사의한 점과 흥미로운 점을 파헤치고, ‘일본 사회’를 연구하는 홍콩인 장위민은 사회학과 일본 사회의 지식을 동원해서 일본인이 알 수 있는 말로 일본인이 알지 못하는 홍콩을 말한다.

제1장부터 제3장은 구라다 도루가 홍콩의 정치를 분석한다.
원래 홍콩이란 무엇인가? 올림픽에 대표를 보내고, 독자적인 통화를 발행하는 홍콩은 하나의 국가와 같은 지위를 지니고 있는 측면이 있다. 한편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인 홍콩은 틀림없는 중국의 일부이기도 하다. 왜 홍콩은 ‘중국과 맞서는’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제1장에서는 이에 대해 설명한다.
그러한 홍콩은 역사상 중국 대륙을 어떤 이유에서든 탈출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일종의 ‘피난소’였다. 홍콩에서 영국의 식민지 통치는 정치 체제상 대단히 폐쇄적인 독재체제로 홍콩이 무릇 자유가 꽃을 피웠던 장소라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역사의 우연은 홍콩에 독특한 자유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영국의 식민지 통치가 무엇을 남겼는지에 대해서는 제2장에서 다룬다.
‘자유도시’ 홍콩은 1997년 7월 1일 중국에 반환되었다. 반환 이후의 홍콩은 중국이 주권을 획득한 것과, 경제력을 확대함에 따라 부단히 ‘중국화’에 노정되었다. 홍콩 시민에게 반환 이후는 ‘중국화’가 가져온 경제적 이익과, 자유에 대한 위협 사이에서 중국과 맞서는 방법을 목숨 걸고 모색하는 나날이 되었다. 제3장은 반환 이후 홍콩의 정치 및 사회의 변화를 ‘중국화’를 축으로 하여 검토한다.
제4장과 제5장은 장위민이 홍콩의 사회와 문화를 논한다.
제4장은 자유의 공간인 홍콩에서 꽃을 피운 문화를 추적함으로써 홍콩 사회 및 홍콩인의 정체성을 가늠한다. 중국이기도 하고, 영국이기도 한 홍콩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묘사한 다양한 문화는 홍콩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서양인, 대륙의 중국인, 홍콩인의 홍콩 문화 및 사회론의 정수, 고급문화에서 대중문화까지 소설과 드라마 등의 세계관을 다루면서 묘사한다.
제5장은 자유의 ‘사용 방법’이 테마이다. 2014년의 우산운동은 도로를 2개월 반이나 점거했다. 이와 같은 일이 왜 ‘가능’했으며 ‘허락’되었을까? 지니고 있는 자유를 마음껏 ‘사용하지’ 못한다면 이런 운동은 일어날 수 없다. 주룽반도 몽콕의 점거 구역 가까이에 거주하는 장위민는 직접 이 운동을 체험했다. 최루탄 공격과 도망치려고 우왕좌왕하는 군중을 멀리서 바라보는 해외 미디어의 시각이 아니라, 점거 구역의 개인이 각자 어떻게 이 운동을 만들었는가를 일인칭 시점으로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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