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개정판에 부쳐
머리말_고려 무인과의 해후를 위하여 프롤로그_1173년 10월 1일, 경주 1_광풍 그리고 전야 쿠데타, 그 사흘간 첫째 날, 보현원에서의 마지막 연회│둘째 날, 능멸당하는 궁궐│셋째 날, 국왕 폐위되다 무신정변을 해석하는 관점들 네 가지 원인론│문반과 무반의 갈등│군인들의 불만│의종의 향락생활 왜 하필 의종 대에 일어났는가 의종에 대한 역사기록│외척 세력과 왕권강화│친위군 양성│환관과 내시, 그리고 정함│친위군의 분노 어떻게 성공했을까 정변의 태동과 정중부 포섭│참여집단의 세 분류│선동과 봉기│헤게모니를 둘러싸고│얼마나 죽임을 당했을까│무신란을 방조한 외척 세력│소극적이었지만 현달한 무신들│낙향 은둔한 문신들 예술가형 군주, 의종 네 가지 유형의 군주│다재다능한 군주│의종의 콤플렉스│문벌귀족사회에 도전한 국왕│무신란과 관련된 몇 가지 단상 2_권력투쟁에 승리한 독불장군―이의방 승자의 혼미 논공행상│권력투쟁의 서막│나눌 수 없는 권력│정치노선의 차이│숨은 정적 막후협상으로 책봉조서를 받다 금金에 보낸 거짓된 두 표문│금 황제와의 단식 외교│외교관 유응규│막후협상에 의한 책봉조서 김보당, 의종 복위를 꾀하다 김보당이 난을 일으킨 이유│고려 왕조와 경주│김보당 세력의 진압과 제2차 무신란│이의민의 경주 입성 중방과 지방관을 장악하라 고려의 군사조직│중방의 정체│권력의 핵심기구, 중방│1인자 이의방│무신으로 교체되는 지방관 사원 세력의 향방 귀법사 승도들의 정면 도전│화엄종이 무인정권에 반기를 든 이유│이의방과 이준의│형제간에도 예외 없는 권력투쟁 조위총의 난을 넘지 못한 이의방 정권 난의 진원지, 서경│지역감정에 불을 지른 조위총의 격문│반군의 세력 확대│반격, 재반격│정권 교체와 진압의 지연│지역 차별에 의한 민란 3_은인자중의 보수적인 노장―정중부 정중부의 집권 승도를 이용한 집권│해주 출신의 풍채 좋은 무인│득세하는 온건집단│의종 복권에 담긴 정치적 의도 또 하나의 위기, 망이·망소이의 난 난의 배경│진압 실패와 명학소의 승격│손청 세력의 등장과 재진압│2차 봉기│망이·망소이의 항복│민란시대의 개막 하극상, 그치지 않는 반란의 징후들 장교도 아닌 군졸도 아닌, 기두│정권에 대한 도전│임시직 무관들의 준동│하극상에 무력해진 중방 부패하는 정중부 정권 무고·모함│축재·사리사욕│권력자의 가노│권력자의 아들│권력자의 사위 송유인 4_무신정변을 부정한 청년장군―경대승 청년장군의 불안한 집권 경대승의 쿠데타│친위군 출신의 26세 장군│쿠데타의 동기, 청주변란│정중부의 잔당 제거 도방과 떠도는 무사들 도방의 창설│도방, 혹은 도방盜房│항상 가까이 있는 정적 전주 죽동의 난 수령들의 탐학│전주에 부과된 관선 제조 부역│기두 죽동의 봉기와 그 세력 무신란을 부정한 과도 정권 왕을 시해한 자가 아직 살아 있는데│국왕 명종과 경대승│중방의 강화│문신들이 반긴 복고주의│거리를 둔 인사정책│소극적인 리더십의 과도 정권 5_황룡사의 꿈을 품고 산 천민장군―이의민 떠오르는 별, 이의민 경주 출신의 거인│이의민의 전략, 경주 장악│국왕 명종과 이의민│국왕 시해범의 정계 진출 『의종실록』은 무신 사관의 손으로 실록과 사관│의종 시해 사건에 대한 기록│역사 기록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 천민 정권의 빛과 그림자 신분 상승의 빛나는 주인공들│조원정의 반란│인사 비리의 대명사, 분경│착취의 먹이사슬│ 관직 서열, 주먹 서열, 권력 서열 이의민과 경주 지역의 민란 무신란의 격랑지, 경주│경주의 동요│김사미와 효심의 난│적과의 내통│난의 진압과 의문점│이의민의 세상 역사적 확신범, 이의민 역동적인 역사의 상징│역사적 확신범│이의민의 꿈│꿈은 날개를 접고 에필로그_역사 이탈, 최충헌의 역성혁명 참고문헌 찾아보기 |
|
개정판에 부쳐
머리말_고려 무인과의 해후를 위하여 프롤로그_1173년 10월 1일, 경주 1_광풍 그리고 전야 쿠데타, 그 사흘간 첫째 날, 보현원에서의 마지막 연회│둘째 날, 능멸당하는 궁궐│셋째 날, 국왕 폐위되다 무신정변을 해석하는 관점들 네 가지 원인론│문반과 무반의 갈등│군인들의 불만│의종의 향락생활 왜 하필 의종 대에 일어났는가 의종에 대한 역사기록│외척 세력과 왕권강화│친위군 양성│환관과 내시, 그리고 정함│친위군의 분노 어떻게 성공했을까 정변의 태동과 정중부 포섭│참여집단의 세 분류│선동과 봉기│헤게모니를 둘러싸고│얼마나 죽임을 당했을까│무신란을 방조한 외척 세력│소극적이었지만 현달한 무신들│낙향 은둔한 문신들 예술가형 군주, 의종 네 가지 유형의 군주│다재다능한 군주│의종의 콤플렉스│문벌귀족사회에 도전한 국왕│무신란과 관련된 몇 가지 단상 2_권력투쟁에 승리한 독불장군―이의방 승자의 혼미 논공행상│권력투쟁의 서막│나눌 수 없는 권력│정치노선의 차이│숨은 정적 막후협상으로 책봉조서를 받다 금金에 보낸 거짓된 두 표문│금 황제와의 단식 외교│외교관 유응규│막후협상에 의한 책봉조서 김보당, 의종 복위를 꾀하다 김보당이 난을 일으킨 이유│고려 왕조와 경주│김보당 세력의 진압과 제2차 무신란│이의민의 경주 입성 중방과 지방관을 장악하라 고려의 군사조직│중방의 정체│권력의 핵심기구, 중방│1인자 이의방│무신으로 교체되는 지방관 사원 세력의 향방 귀법사 승도들의 정면 도전│화엄종이 무인정권에 반기를 든 이유│이의방과 이준의│형제간에도 예외 없는 권력투쟁 조위총의 난을 넘지 못한 이의방 정권 난의 진원지, 서경│지역감정에 불을 지른 조위총의 격문│반군의 세력 확대│반격, 재반격│정권 교체와 진압의 지연│지역 차별에 의한 민란 3_은인자중의 보수적인 노장―정중부 정중부의 집권 승도를 이용한 집권│해주 출신의 풍채 좋은 무인│득세하는 온건집단│의종 복권에 담긴 정치적 의도 또 하나의 위기, 망이·망소이의 난 난의 배경│진압 실패와 명학소의 승격│손청 세력의 등장과 재진압│2차 봉기│망이·망소이의 항복│민란시대의 개막 하극상, 그치지 않는 반란의 징후들 장교도 아닌 군졸도 아닌, 기두│정권에 대한 도전│임시직 무관들의 준동│하극상에 무력해진 중방 부패하는 정중부 정권 무고·모함│축재·사리사욕│권력자의 가노│권력자의 아들│권력자의 사위 송유인 4_무신정변을 부정한 청년장군―경대승 청년장군의 불안한 집권 경대승의 쿠데타│친위군 출신의 26세 장군│쿠데타의 동기, 청주변란│정중부의 잔당 제거 도방과 떠도는 무사들 도방의 창설│도방, 혹은 도방盜房│항상 가까이 있는 정적 전주 죽동의 난 수령들의 탐학│전주에 부과된 관선 제조 부역│기두 죽동의 봉기와 그 세력 무신란을 부정한 과도 정권 왕을 시해한 자가 아직 살아 있는데│국왕 명종과 경대승│중방의 강화│문신들이 반긴 복고주의│거리를 둔 인사정책│소극적인 리더십의 과도 정권 5_황룡사의 꿈을 품고 산 천민장군―이의민 떠오르는 별, 이의민 경주 출신의 거인│이의민의 전략, 경주 장악│국왕 명종과 이의민│국왕 시해범의 정계 진출 『의종실록』은 무신 사관의 손으로 실록과 사관│의종 시해 사건에 대한 기록│역사 기록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 천민 정권의 빛과 그림자 신분 상승의 빛나는 주인공들│조원정의 반란│인사 비리의 대명사, 분경│착취의 먹이사슬│ 관직 서열, 주먹 서열, 권력 서열 이의민과 경주 지역의 민란 무신란의 격랑지, 경주│경주의 동요│김사미와 효심의 난│적과의 내통│난의 진압과 의문점│이의민의 세상 역사적 확신범, 이의민 역동적인 역사의 상징│역사적 확신범│이의민의 꿈│꿈은 날개를 접고 에필로그_역사 이탈, 최충헌의 역성혁명 참고문헌 찾아보기 |
|
개정판에 부쳐
머리말_고려 무인과의 해후를 위하여 프롤로그_1173년 10월 1일, 경주 1_광풍 그리고 전야 쿠데타, 그 사흘간 첫째 날, 보현원에서의 마지막 연회│둘째 날, 능멸당하는 궁궐│셋째 날, 국왕 폐위되다 무신정변을 해석하는 관점들 네 가지 원인론│문반과 무반의 갈등│군인들의 불만│의종의 향락생활 왜 하필 의종 대에 일어났는가 의종에 대한 역사기록│외척 세력과 왕권강화│친위군 양성│환관과 내시, 그리고 정함│친위군의 분노 어떻게 성공했을까 정변의 태동과 정중부 포섭│참여집단의 세 분류│선동과 봉기│헤게모니를 둘러싸고│얼마나 죽임을 당했을까│무신란을 방조한 외척 세력│소극적이었지만 현달한 무신들│낙향 은둔한 문신들 예술가형 군주, 의종 네 가지 유형의 군주│다재다능한 군주│의종의 콤플렉스│문벌귀족사회에 도전한 국왕│무신란과 관련된 몇 가지 단상 2_권력투쟁에 승리한 독불장군―이의방 승자의 혼미 논공행상│권력투쟁의 서막│나눌 수 없는 권력│정치노선의 차이│숨은 정적 막후협상으로 책봉조서를 받다 금金에 보낸 거짓된 두 표문│금 황제와의 단식 외교│외교관 유응규│막후협상에 의한 책봉조서 김보당, 의종 복위를 꾀하다 김보당이 난을 일으킨 이유│고려 왕조와 경주│김보당 세력의 진압과 제2차 무신란│이의민의 경주 입성 중방과 지방관을 장악하라 고려의 군사조직│중방의 정체│권력의 핵심기구, 중방│1인자 이의방│무신으로 교체되는 지방관 사원 세력의 향방 귀법사 승도들의 정면 도전│화엄종이 무인정권에 반기를 든 이유│이의방과 이준의│형제간에도 예외 없는 권력투쟁 조위총의 난을 넘지 못한 이의방 정권 난의 진원지, 서경│지역감정에 불을 지른 조위총의 격문│반군의 세력 확대│반격, 재반격│정권 교체와 진압의 지연│지역 차별에 의한 민란 3_은인자중의 보수적인 노장―정중부 정중부의 집권 승도를 이용한 집권│해주 출신의 풍채 좋은 무인│득세하는 온건집단│의종 복권에 담긴 정치적 의도 또 하나의 위기, 망이·망소이의 난 난의 배경│진압 실패와 명학소의 승격│손청 세력의 등장과 재진압│2차 봉기│망이·망소이의 항복│민란시대의 개막 하극상, 그치지 않는 반란의 징후들 장교도 아닌 군졸도 아닌, 기두│정권에 대한 도전│임시직 무관들의 준동│하극상에 무력해진 중방 부패하는 정중부 정권 무고·모함│축재·사리사욕│권력자의 가노│권력자의 아들│권력자의 사위 송유인 4_무신정변을 부정한 청년장군―경대승 청년장군의 불안한 집권 경대승의 쿠데타│친위군 출신의 26세 장군│쿠데타의 동기, 청주변란│정중부의 잔당 제거 도방과 떠도는 무사들 도방의 창설│도방, 혹은 도방盜房│항상 가까이 있는 정적 전주 죽동의 난 수령들의 탐학│전주에 부과된 관선 제조 부역│기두 죽동의 봉기와 그 세력 무신란을 부정한 과도 정권 왕을 시해한 자가 아직 살아 있는데│국왕 명종과 경대승│중방의 강화│문신들이 반긴 복고주의│거리를 둔 인사정책│소극적인 리더십의 과도 정권 5_황룡사의 꿈을 품고 산 천민장군―이의민 떠오르는 별, 이의민 경주 출신의 거인│이의민의 전략, 경주 장악│국왕 명종과 이의민│국왕 시해범의 정계 진출 『의종실록』은 무신 사관의 손으로 실록과 사관│의종 시해 사건에 대한 기록│역사 기록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 천민 정권의 빛과 그림자 신분 상승의 빛나는 주인공들│조원정의 반란│인사 비리의 대명사, 분경│착취의 먹이사슬│ 관직 서열, 주먹 서열, 권력 서열 이의민과 경주 지역의 민란 무신란의 격랑지, 경주│경주의 동요│김사미와 효심의 난│적과의 내통│난의 진압과 의문점│이의민의 세상 역사적 확신범, 이의민 역동적인 역사의 상징│역사적 확신범│이의민의 꿈│꿈은 날개를 접고 에필로그_역사 이탈, 최충헌의 역성혁명 참고문헌 찾아보기 |
|
개정판에 부쳐
머리말_고려 무인과의 해후를 위하여 프롤로그_1173년 10월 1일, 경주 1_광풍 그리고 전야 쿠데타, 그 사흘간 첫째 날, 보현원에서의 마지막 연회│둘째 날, 능멸당하는 궁궐│셋째 날, 국왕 폐위되다 무신정변을 해석하는 관점들 네 가지 원인론│문반과 무반의 갈등│군인들의 불만│의종의 향락생활 왜 하필 의종 대에 일어났는가 의종에 대한 역사기록│외척 세력과 왕권강화│친위군 양성│환관과 내시, 그리고 정함│친위군의 분노 어떻게 성공했을까 정변의 태동과 정중부 포섭│참여집단의 세 분류│선동과 봉기│헤게모니를 둘러싸고│얼마나 죽임을 당했을까│무신란을 방조한 외척 세력│소극적이었지만 현달한 무신들│낙향 은둔한 문신들 예술가형 군주, 의종 네 가지 유형의 군주│다재다능한 군주│의종의 콤플렉스│문벌귀족사회에 도전한 국왕│무신란과 관련된 몇 가지 단상 2_권력투쟁에 승리한 독불장군―이의방 승자의 혼미 논공행상│권력투쟁의 서막│나눌 수 없는 권력│정치노선의 차이│숨은 정적 막후협상으로 책봉조서를 받다 금金에 보낸 거짓된 두 표문│금 황제와의 단식 외교│외교관 유응규│막후협상에 의한 책봉조서 김보당, 의종 복위를 꾀하다 김보당이 난을 일으킨 이유│고려 왕조와 경주│김보당 세력의 진압과 제2차 무신란│이의민의 경주 입성 중방과 지방관을 장악하라 고려의 군사조직│중방의 정체│권력의 핵심기구, 중방│1인자 이의방│무신으로 교체되는 지방관 사원 세력의 향방 귀법사 승도들의 정면 도전│화엄종이 무인정권에 반기를 든 이유│이의방과 이준의│형제간에도 예외 없는 권력투쟁 조위총의 난을 넘지 못한 이의방 정권 난의 진원지, 서경│지역감정에 불을 지른 조위총의 격문│반군의 세력 확대│반격, 재반격│정권 교체와 진압의 지연│지역 차별에 의한 민란 3_은인자중의 보수적인 노장―정중부 정중부의 집권 승도를 이용한 집권│해주 출신의 풍채 좋은 무인│득세하는 온건집단│의종 복권에 담긴 정치적 의도 또 하나의 위기, 망이·망소이의 난 난의 배경│진압 실패와 명학소의 승격│손청 세력의 등장과 재진압│2차 봉기│망이·망소이의 항복│민란시대의 개막 하극상, 그치지 않는 반란의 징후들 장교도 아닌 군졸도 아닌, 기두│정권에 대한 도전│임시직 무관들의 준동│하극상에 무력해진 중방 부패하는 정중부 정권 무고·모함│축재·사리사욕│권력자의 가노│권력자의 아들│권력자의 사위 송유인 4_무신정변을 부정한 청년장군―경대승 청년장군의 불안한 집권 경대승의 쿠데타│친위군 출신의 26세 장군│쿠데타의 동기, 청주변란│정중부의 잔당 제거 도방과 떠도는 무사들 도방의 창설│도방, 혹은 도방盜房│항상 가까이 있는 정적 전주 죽동의 난 수령들의 탐학│전주에 부과된 관선 제조 부역│기두 죽동의 봉기와 그 세력 무신란을 부정한 과도 정권 왕을 시해한 자가 아직 살아 있는데│국왕 명종과 경대승│중방의 강화│문신들이 반긴 복고주의│거리를 둔 인사정책│소극적인 리더십의 과도 정권 5_황룡사의 꿈을 품고 산 천민장군―이의민 떠오르는 별, 이의민 경주 출신의 거인│이의민의 전략, 경주 장악│국왕 명종과 이의민│국왕 시해범의 정계 진출 『의종실록』은 무신 사관의 손으로 실록과 사관│의종 시해 사건에 대한 기록│역사 기록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 천민 정권의 빛과 그림자 신분 상승의 빛나는 주인공들│조원정의 반란│인사 비리의 대명사, 분경│착취의 먹이사슬│ 관직 서열, 주먹 서열, 권력 서열 이의민과 경주 지역의 민란 무신란의 격랑지, 경주│경주의 동요│김사미와 효심의 난│적과의 내통│난의 진압과 의문점│이의민의 세상 역사적 확신범, 이의민 역동적인 역사의 상징│역사적 확신범│이의민의 꿈│꿈은 날개를 접고 에필로그_역사 이탈, 최충헌의 역성혁명 참고문헌 찾아보기 |
이승한의 다른 상품
|
초기 무신정권 역사 성실하게 살펴
고려의 무인집권시대는 우리 역사에서 무척이나 독특한 시대였다. 국왕이 엄연히 존재했음에도 11명의 무인들이 100년(1170~1270) 동안 집권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휘둘렀으니 말이다. 국사 교과서는 그저 몇 줄 언급하고 지나갈 뿐이지만, 사실 무신정권의 출발점이 된 ‘무신정변’은 고려사의 전환점이 될 만큼 정치적?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대사건이었다. 『고려 무인 이야기 1―4인의 실력자들』은 이처럼 고려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무신정권의 성립 배경과 이의방-정중부-경대승-이의민으로 이어지는 초기 무신정권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살핀다. 저자는 집권 무인들의 암투?승리?패배의 역사뿐 아니라, 무신정권이 어떻게 1세기 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었으며 권력의 정상에 오른 무인들은 왜 왕이 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도 성실하게 답한다. 『고려 무인 이야기 1―4인의 실력자들』,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왜 하필 의종 대에 무신정변이 일어났을까 전체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고려 무인 이야기 1―4인의 실력자들』은 먼저 1장을 통해 무신정변의 원인과 전개과정, 정변의 참여 세력 등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지금까지는 무신정변의 원인으로 고려시대 문, 무반의 차별과 의종의 향락생활을 꼽았다. 하지만 이는 이전부터 존재해온, 그리 ‘새롭지 않은 문제’였다. 왜 하필 의종 대에 정변이 일어났을까?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의종 대의 특수한 정치상황에서 찾는다. 저자에 따르면 의종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무능하거나 방탕한 왕이 아니었다. 의종은 외척을 소외시키고 측근 세력과 친위군 세력을 양성하는 등 나름대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 왕이었다. 의종의 향락생활은 이에 불만을 품은 문벌귀족들을 회유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었다는 것. 그러나 국왕이 베푸는 연회의 주인공은 늘 문신들이었을 뿐, 무신들은 경비 등 뒤치다꺼리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무신들의 왕과 문신들에 대한 불만이 커졌고, 그러한 불만이 무신정변의 또 다른 원인을 제공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이의방에서 이의민까지, 초기 무인집권기의 주요 인물과 역사 구체적으로 그려 1장에 이어 2장부터 5장까지는 무신정변 이후 권력을 독점했던 각 무인들의 집권 과정과 권력 투쟁, 축출 등 일련의 과정에 대해 자세히 살핀다. 저자는 권력투쟁에 승리하며 무인정권 초기 주도권을 잡았던 이의방, 무신란의 온건세력으로 이의방을 제거한 보수적인 노장 정중부, 26세의 나이에 정중부를 몰아내고 정국을 무신란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리려 했던 경대승, 천민출신으로 조정의 최고 실력자로 부상한 이의민 등 초기 무인집권기의 인물들과 당시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
|
왜 최씨 왕조인가
역사 이탈, 최충헌의 역성혁명 최충헌이 새로운 왕으로 즉위하여 역성혁명을 일으켰다면, 분명 역사는 이를 미화하여 기록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전혀 달랐다. 국왕을 폐위시킬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도저히 왕이 될 수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 왕이 되지 않은 것일까? 이의방?정중부?경대승?이의민으로 이어진 무인정권은 확고한 통치권을 갖지 못했다. 빈번한 권력투쟁과 잦은 정권 교체는 그러한 허약성을 드러냈고, 1인 지배의 장기집권도 할 수 없었다. 최씨 정권은 여러 면에서 이들 무인들과 달랐다. 강력한 통치권을 확립했을 뿐 아니라 최충헌의 직계 자손들에게 통치권을 세습했다. 국왕은 최충헌에 의해 선택되어 임명될 정도였고, 얼마든지 교체될 수 있었다. 왕위 계승은 그것대로 이루어지면서 최씨 가의 사람들에게 옥상옥의 통치권이 따로 세습되었다. ‘최씨 왕조’라는 과장된 제목을 붙인 것은 이러한 특징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이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 용어가 최씨 정권을 표현하는 적합한 학술 용어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 최씨 정권이 발산하는 독특함을 담아내기에는 나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최씨 왕조에 대해 궁금한 점 세 가지 최씨 무인정권을 하나의 왕조로 설정한 저자는 최씨 왕조에 대해 궁금한 점을 밝히고 있다. 궁금증이 일어나지 않는 역사는 연구할 의미도, 재미도 없는 까닭이다. 또한 이러한 궁금증은 최씨 무인정권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첫째, 최씨 가의 사람들은 왜 스스로 왕이 되지 못했을까? 마음대로 왕을 갈아치우고 자식에게 통치권을 물려줄 정도의 힘이라면 스스로 왕이 되고도 남았을 텐데 말이다. 왕이 될 수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 왕이 되지 않은 것일까? 둘째, 최씨 정권은 어떻게 60여 년 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었을까? 역사의 특정한 국면에서 예외적으로 등장한 정권이, 몽골의 침략이라는 전 민족적 위기를 겪는 가운데에도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셋째, 최씨 가의 사람들은 어떻게 통치권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었을까? 정상적인 왕조의 국왕도 자신의 뜻대로 왕위를 물려주기가 쉽지 않은데, 최씨 정권은 그 일을 순조롭게 해냈다. 마치 최씨 왕조처럼……. 『고려 무인 이야기 2―최씨 왕조 상上』,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창업 비둘기 사건이라는 어찌 보면 사소한 사건으로부터 최충헌 형제의 쿠데타는 시작되었다. 이의민 정권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가운데, 비밀리에 세력을 규합하여 미타산에서 이의민을 주살한 최충헌은 개경에 돌아와 국왕 명종을 수중에 넣는 데 성공한다. 치밀한 계획 아래 반쿠데타 세력마저 제압하고 정권을 장악한 당시 최충헌의 나이는 48세였다. 최충헌은 뛰어난 인내심을 소유한 과감한 승부사였다. 정권을 장악한 후에도 관직 승진 등에서 조급하게 욕심으로 부리지 않음으로써 문신관료들의 반발을 막고 적절하게 회유하는 한편, 강력한 결단력으로 도박에 가까운 쿠데타에 과감하게 승부를 걸었으며 정변 성공 후에는 과욕을 부리는 동생 최충수마저 제거함으로써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무엇보다 이전 무인정권과 최충헌 정권과의 가장 큰 차별성은 문신귀족들의 암묵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했다는 데 있다. 최충헌은 문신들과 조직적으로 연계하지는 않았으나 지난 30여 년간 무인정권에 의해 소외되었던 문신정권의 불만을 읽고 있었다. 이는 그가 올린 「봉사 10조」를 통해 알 수 있다. 「봉사 10조」는 문신귀족들의 불만사항을 수용하여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조처로서 최충헌이 문신관료들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같이했음을 암시하며, 그의 정권이 이전의 무신정권과 달리 보수적 성향을 강하게 띄리라는 것을 예고한다. 정난 최충헌이 권력을 장악한 후 가장 큰 저항세력은 전통 문신귀족도 무신도 아니었다. 엉뚱하게도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이나 지방사회에서 먼저 저항이 일어났다. 이는 물론 최충헌 정권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고 그 이전과 이후의 무인정권 모두에 적용된다. 무인집권기는 그래서 변화를 원하는 격동의 시기였다. 이 시기 대표적인 난으로는 노비들의 신분해방운동으로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라는 선언으로 유명한 만적의 난, 김사미?효심의 난의 잔여세력이 경주를 중심으로 일으킨 신라부흥운동 등이 있었다. 최충헌은 이러한 격동의 시기 한가운데서 그런 변화의 요구를 누르고 정난에도 성공한다. 등극 지방의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최충헌은 정권을 장악한 후에도 쿠데타 동지들을 포함한 내부의 정적들을 차례로 숙청하면서 결국 홀로 권력을 독점했다. 국왕으로부터 후작책봉과 함께 관부를 설치하는 봉후입부를 받은 최충헌은, 무관의 제왕으로서 권력을 독점했다. 심지어 그 스스로 국왕을 임명하기도 하고 파면하기도 했다. 국왕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국왕은 힘없는 목각인형에 불과했지만 그 존재를 통째로 무시해버리기에는 아직 고려 왕실의 존속을 지지하는 기득권세력, 곧 문신귀족 세력의 힘이 만만치 않았다. 최충헌은 국왕을 폐하기보다는 국왕을 앞세워 문신귀족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쪽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고, 그런 점에서 국왕을 정치적 라이벌이자 정권유지를 위한 방파제로 활용했다. 스스로 왕위에 오름으로써 자신에 대한 저항이나 정권의 몰락을 초래하기보다는, 국왕이나 왕실의 권위를 이용하여 정권을 지속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이 이전의 무인 집권자들과 다른 점이며, 최씨 정권이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계승 최충헌에서 아들 최이로의 권력 세습 과정은 대체로 순조로웠다. 왕정복고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최이의 권력 세습에 대한 저항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최씨 가에 의한 권력 세습 자체라기보다는 최이라는 인물에 대한 저항이었다. 하지만 정상적인 왕조에서도 왕위 계승권자에 대한 저항이 빈번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버지의 권력을 세습한 최이는 그 아버지를 능가하는 권력을 누려 가히 ‘제왕적 통치자’라고 부를 만했다. 그러나 최이 정권의 안정을 위협하는 불안한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급속한 민심의 이반과 거란, 몽골 등 이민족의 위협, 그리고 군인들의 이탈로 인한 상비군의 와해였다. 몽골의 대대적인 침략이 있기 전부터 최이 정권을 불안하게 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계속 일어났던 것이다. 최씨 왕조의 통치공학 최씨 무인정권이 4대 62년 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통치권을 확립했기에 가능했다.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었던 것은 무엇보다 물리적 군사력, 곧 사적 무력기반인 도방이었다. 전반적인 상비군 체제가 무너지는 가운데 강력한 사병집단을 거느린 최씨 일가에 도전할 만한 세력은 없었던 것이다. 그 외 최씨 정권은 인사권과 정보?사찰 기능을 비롯하여 전반적인 통치권을 행사한 교정도감과 정방의 장악, 그리고 서방 등의 기구와 과거제도를 통한 문인 통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원세력을 장악함으로써 안정적인 통치체제를 구축했다. |
|
천도, 대몽항쟁인가 정권안보인가
몽골 침략에 맞서 복속 거부 천도란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어렵다 했는데 마치 공 굴리듯 하루아침에 옮겨왔네 우리나라는 이미 오랑캐 땅으로 변했으리 천만의 오랑캐 기병 새처럼 난다 해도, 지척의 푸른 물결 건너지는 못하리 강과 산 안팎에 집들이 가득 들어찼으니 옛 서울 좋은 형세 이에 어찌 더할손가 강화도로 천도한 후 최씨 왕조는 몽골의 침략에 맞서 끝까지 복속을 거부했다. 그러나 처참하게 유린당하고 있던 본토와는 달리 강화도에서는 평화를 노래하고 있었다. 정녕 이들의 항쟁은 고려의 자주성을 지켜내기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정권 안보만을 도모한 계책에 불과했을까? 천도, 대몽항쟁인가 정권안보인가 강화도로 천도한 최씨 왕조는 복속을 거부하며 대몽항쟁에 나섰다. 그러한 대몽항쟁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고려의 자주성을 지켜냈다는 점에서 호평받기도 하지만, 정권만을 지키기 위한 항쟁에 불과했다고 폄하되기도 한다. 그런데 궁금하다. 장기간의 전쟁 동안 몽골의 군대가 강화해협을 건너 강도를 직접 침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유목민족의 특성상 수전에 약해서일까? 그렇다면 바다 건너 일본 원정은 어떻게 단행했을까? 강화도를 직접 침공하지 못한 것은 최씨 정권이 대비를 철저히 잘한 때문일까? 이 책에서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다. 『고려 무인 이야기 3―최씨 왕조 하下』,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천도 천도는 새로운 왕조의 창업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왕조의 창업이 아닌 상태에서의 천도는 매우 드문 일이기도 하지만 대단히 중대한 정치적 사건이다. 최이 정권은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그러한 천도를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천도가 최초로 논의된 지 불과 5개월 만의 전격적인 조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몽골의 1차 침략 이후 화친이 성립되어 잠시나마 평화를 되찾은 가운데 최이는 천도를 결심하게 된다. 몽골 측에서 최이를 최고통치자로서 인식하고 교섭의 파트너로 여기는 데 큰 부담을 느낀 때문이었다. 몽골과 새로운 종속관계가 성립될 경우 정치적 위상에 큰 타격을 받을 것을 염려한 최이로서는 몽골과 새로운 국제관계를 회피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면 전쟁밖에 다른 수가 없었다. 천도는 그 길을 가기 위한 것이었다. 천도 이후 몽골과의 굴욕적인 외교가 계속되는 것만 보아도 그가 항쟁이라는 대의명분만을 위해서 천도를 단행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강화천도는 몽골의 침략에 맞서 싸운다는 명분 아래 가능한 일이었지만, 어쩌면 최씨 정권이 장기집권하는 데도 가장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강화 천도 후 최이 정권이 더욱 공고해졌기 때문이다. 수성 강도로 천도한 후에도 몽골의 침략은 계속되었지만 웬일인지 몽골 군대는 강도를 직접 정벌하지는 않았다. 그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강도의 생활은 전란에 휩싸인 내륙과는 판이하게 달라서 전란 속에서도 평화를 구가했다. 옛 수도 개경에서의 생활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으며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그야말로 최씨 왕조의 왕도로서 손색이 없었다. 이 시기에도 몽골의 침략은 계속 이어졌다. 3차 침략에서는 황룡사의 9층 목탑이 소실되었고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최이는 전면전을 피하면서 해도입보와 산성입보라는 수세적인 대책만을 세울 뿐, 몽골과의 항쟁에 특별한 대응책을 내놓지는 않는다. 백성들은 이러한 극단적 보신주의에 실망했고, 전란의 와중에 백제부흥운동 등의 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최이는 오히려 팔만대장경 간행에 엄청난 재력을 쏟아붓고, 문신들을 회유하기 위해 강화에서 사치스런 연회를 여는 등 정권 안보에만 급급했다. 위기 가장 강력한 통치권을 확립했던 최이가 죽고 최항이 권력을 세습하면서부터 최씨 왕조는 위기를 겪기 시작한다. 최항이 출가했다가 환속하여 권력을 세습한 것부터가 불안한 출발이었고, 어머니가 천출이었다는 것도 큰 제약이었다. 하지만 그의 권력 세습도 일단은 성공했다. 최항이 반대 세력을 무자비하게 제거한 것은 그런 불안함의 반영이었다. 게다가 계속된 몽골의 침략은 더욱 격렬해지고 요구도 더 집요해졌으며, 백성들의 상황은 더욱 피폐해져 갔다. 최항 정권의 위기는 그런 내내외적인 악조건이 겹친 데 있었다. 고립 최항 정권은 8년 정도 지속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정권은 고립을 면치 못했다. 이는 그의 정권이나 통치력이 미약해서가 아니라 몽골의 침략이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몽골의 6차 침략은 강도의 재정을 압박하는 고립작전으로, 강도에 대한 경제봉쇄로 나타났다. 그전의 5차 침략까지는 의외로 침략의 빈도가 높지 않아 중간에 침략이 없던 해가 더 많았고, 몽골군이 내륙에 주둔한 기간도 하절기부터 동절기 사이로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춘절기에는 농작물을 파종하고 경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수확물의 조세수취도 전쟁 전처럼은 아닐지라도 심대한 타격을 입지는 않았었다. 강도의 최씨 정권이 그렇게 긴 전란 동안 강화도라는 좁은 섬 안에서 버텨낼 수 있었던 재정 기반은 여기에 있었다. 최항의 뒤를 이은 최의는 이미 무너져가는 최씨 왕조를 1년 정도 연장시켰을 뿐이다. 그런데 6차 침략부터는 내륙의 황폐화가 이전과 비할 수 없을 만큼 광범위했고 조세수취의 통로인 조운로도 타격을 받았으니, 최씨 왕조가 붕괴한 가장 큰 배경은 여기에 있었다. 최항의 뒤를 이은 최의는 이미 무너져 가는 최씨 왕조를 1년 정도 더 연장시켰을 뿐이다. |
|
무인정권, 그 몰락의 드라마
왜 하필 의종 대에 무신정변이 일어났을까 60여 년의 최씨 정권은 내부 분열로 인해 무너졌다. 왕정복고를 주장하며 최씨 정권을 붕괴시키는 데 앞장섰던 김준은 자신이 정권을 장악하고 유지하기 위해 개경으로 환도한다는 출륙환도를 거부했다. 최씨 정권은 무너졌지만 무인정권은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김준의 뒤를 이은 임연?임유무 정권 또한 출륙환도에 저항하며 강도에 머물렀다. 하지만 원은 계속해서 항복의 징표로 출륙환도를 요구했고, 국왕은 원의 힘을 이용해 왕정복고를 실현하려 했다. 이들 세 세력은 서로를 이용하고 견제했는데 이러한 갈등 속에 왕정복고의 비극이 잉태되어 있었다. 출륙환도를 통해 무인정권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원에 복속되는 또 다른 굴레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삼별초가 봉기한 진짜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별초 항쟁의 원인과 의미를 단순히 원에 대한 저항과 이민족의 침략에 끝까지 맞서 싸운 행위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평가가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책에서는 삼별초가 봉기한 이유를 다른 각도에서 살펴본다. 삼별초는 무인정권을 뒷받침하는 군대였지만 무인정권을 붕괴시키는 일에도 마다하지 않고 참여했다. 삼별초의 이런 행동을 통해 그들이 무인정권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정권이 바뀌어도 해결되지 않는 경제적인 처우 문제였다. 삼별초 군사들은 사직을 호위하라는 국왕의 명령을 받들어 무인정권을 무너뜨리면 그만큼의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국왕은 강도에 있는 삼별초를 외면한 채 개경으로 환도하고 만다. 국가의 군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군대는 해산되고 장차 원의 일본원정에까지 동원될 처지에 놓인 삼별초. 삼별초 군사들이 봉기한 진정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고려 무인 이야기 4―무인정권의 몰락과 삼별초 항쟁『,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무산된 왕정복고 60여 년의 최씨 정권이 무너졌다. 최씨 정권의 몰락은 항몽체제의 붕괴를 가져왔고 더 이상 대몽항쟁을 계속할 수 없었다. 몽골이 침략하는 길목에서는 집단적인 투항과 반민들이 속출하여 이적 활동이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그런데도 출륙환도는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았고, 여전히 강도는 항몽의 거점으로 힘을 발휘했다. 이것은 또 다른 무인정권이 태동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되었다. 이런 가운데 최씨 정권은 무너졌지만 왕정복고는 무산될 위기에 놓인다. 최씨 정권을 붕괴시키고, 그것을 계승한 무인정권 김준 김준이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은 매우 더뎠다. 원 세조 쿠빌라이가 즉위하면서 전쟁이 끝나고 고려에 대한 유화정책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준은 다시 경색되는 원과의 관계를 빌미삼아 최이를 천도공신으로 복권시킨다. 최이의 복권은 천도의 당위성을 다시 인정하고 원과의 대결구도를 유지하기 위한 김준의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것이었다. 원종의 친조로 왕위가 빈 사이에 김준은 자연스럽게 권력의 정상에 오른다. 하지만 일본을 복속시키는 문제로 원과 고려 사이에 사신왕래가 빈번해지고, 원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김준은 궁지에 몰리게 된다. 진퇴양난의 강도에 갇힌 마지막 무인정권 임연?임유무 임연은 최씨 정권을 붕괴시키는 데 함께했지만 김준의 견제를 받아 권력의 핵심에서 소외되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임연과 왕정복고 의도를 지닌 국왕이 연합하여 김준을 제거했다. 임연 정권은 출발부터 왕정복고를 목표로 한 국왕과 양립할 수 없는 적대적인 관계에 놓였고, 이는 임연에 의한 국왕의 폐위로 이어졌다. 폐위는 원의 압력으로 곧 무산되었지만, 국왕을 더욱 원에 의탁하게 만들고, 마침내 원의 군사적 압력까지 가져와 임연 정권은 완전히 궁지에 몰린다.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별들을 위하여, 삼별초 항쟁 삼별초의 군사들이 강화도에서 봉기했다.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개경환도에 반발한 것이었지만, 진짜 이유는 고려 왕조의 배신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직을 호위하라는 국왕의 명령을 받들어 임유무를 주살하고 무인정권을 무너뜨렸지만 국왕에게 외면당하고 국가의 군대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군대는 해산되고 장차 원의 일본원정에까지 동원될 처지였다. 이것이 강화도에서 삼별초 군사들이 봉기한 진정한 이유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