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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부 내가 건너는 림보 - 코리안 숏헤어 - 마동석으로 살고 싶다만 - 노브라이프 - 요가 잡념 - 민얼굴이면 어쩌라고 - 아홉수는 좋은 수 - 마라를 먹을걸 - 다이어트, 요리, 자존 - 후리랜서의 로동조건 - 격투기, 안녕 2부 그리고 너와 머무는 세상 - 아이들은 많은데 - 열린 관계 - 전생의 벗 같은 여성 흡연자들 - 코미디의 토양 - 피의 굴레 - 여성들의 운동장 - 자판으로 쓰는 비명 - 환상 속의 그대 - 코끼리 속의 사람 - 소외 감각 3부 멀리서 보는 우리 - 너무 쉽게 닫히는 몸 - 배수로 앞의 여자 - 금메달 아래, 월계관 밑에 - 멀티태스킹이라 부르는 산만 - 페로몬이 적은 동네 - 둥근 가난 - 아빠의 수필 - 도와 모 밖의 패들 - 로드킬 - 강물은 말이 없고 후기 페미니즘 라운드테이블 후일담 |
朴文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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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툰은 20대에서 30대로, 미혼에서 기혼으로,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동하는 동안 남겨보는 허름한 표류기이다. 인류애가 사라지는 날이 빈번히 닥치지만 몸을 일으킨 이튿날이면 세상에 대한 잔정이 다시 움트는 걸 느낀다. 매해 더 묽고 넓은 존재가 되어, 내 바깥과 경로를 잘 응시하고 싶어진다.
의자를 빼면서 “가져가도 돼요”라고 묻는 사람이 되기 싫다. 지하철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그대로 밀며 승차하는 사람이 되기 싫다. 혼자 있고 싶은 사람 곁에 붙고, 함께 있고 싶은 사람 곁을 떠나는 사람이 되기 싫다. 고마움과 부당함을 분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체구보다 작은 아이들과 동물들이 영원히 만만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책이 30대를 통과한 독자들에게는 귀엽게, 30대를 앞둔 독자들에게는 낯설게 보이면 좋겠다. 골골이와 함께 이야기 사이를 거닐 산책자들이 이렇게 무식한 시행착오는 피하라는 안내 문구를 읽고 수상한 고랑을 돌아가길 바란다. --- p.5~6 머리형이 완성되어가는 동안 직원의 얼굴로 희미한 장난기, 끝 간데없는 불안, 내적 자아와의 싸움, 원죄의식, 어제의 꿈자리, 골똘한 직업관이 차례로 지나갔다. 떨리는 바리깡이 뒷덜미를 거쳐 귀 옆을 쟁쟁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의연한 척 윗니아랫니를 지그시 물었다. 태어난 이래, 가장 짧게 자른 모발이었다. 그가 가위를 내려놓자 머리통이 추워졌다. 크나큰 박하사탕이 된 것 같았다. 성탄절에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시계줄을 산 가련한 아내 이야기도 떠올랐다. (중략) 직원이 스펀지를 들어 얼굴을 털어낸다. 아, 이게 실제구나. 물러설 곳 없이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구나. 깨끗이 망했지만 괜찮다. 그래. 어울리지 않든 어울리든 잘라봐야 아는 것이다. 이건 내 결정이지 벌칙이 아냐(입틀막). 암, 내 편의가 타인의 평가보다 중요하지. 그런데 가운을 벗는 순간 몸이 굳는다. 직원이 소파에 앉아 있던 B에게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이런 말을 건넨 것이다. - 아유, 괜찮으세요? 남편분이 대단하시다. 머리카락을 자른 당사자는 나인데 그는 내가 제외된 구역에 씁쓸한 말을 던진다. B는 별안간 아내의 반삭을 허락한 관대한 인간으로, 나는 멋대로 오기를 부린 괴짜로 남았다. --- p.13~15 - 남자도 가렸으면 좋겠어. 우리는 차도 난리, 안 차도 난리. 뭘 해도 오지랖이야. - 사람들이 다들 남한테 관심 없는 건 맞아. 근데 내가 신경 쓰인다니까? - 내 말이. 아직 나부터 의연해질 수가 없어. 유두가 부끄럽진 않았다. 다만 성가실 뿐이었다. 가슴 자체보다는 두 개의 지점을 꾸준히 의식하는 나와 남의 시선이 문제겠지. 스스로의 몸을, 몸 밖의 눈으로 본다는 건 오래된 악습이다. 그리고 몸의 특정 부위가 등한시되면 그곳은 부위가 되기 쉽다. 그렇게 신체의 일부가 줄곧 소외되는 건 서글픈 일이다. 기능보다 모양을 염려하라는 압박도 마찬가지로 몸을 분절시킨다. 그러다 보면 퇴근길 환승역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을 대하는 것만큼이나 무정하고 피폐한 태도로 자기 가슴을 보게 된다. - ‘그거 가려.’ 슈퍼에서 검은 비닐에 따로 넣어주던 생리대를 받아들 듯, 암묵적인 사회 규범어를 마찰 없이 알아듣게 된다. 낯설어 기이하다는 판단이 위험한 까닭은 그게 배제와 격리의 감각과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여성의 가슴 근육 해부도에 왜 혐오주의 표시가 붙어야 하나. 동성의 몸은 지면에서 왜 늦게 접하게 됐을까. 인간의 몸을 남성 신체로 학습하는 데 익숙해지면 여성에게도 여성 신체가 충격적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 p.24~25 그날 먹은 갱년기 장애개선제의 약효는 놀랍게 탁월했다. 약을 먹자마자 호랑이 기운이 샘솟아 근 50시간을 깨어 있을 수 있었다. 3미터쯤 되는 사다리를 날다람쥐처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이런 질문을 했다. 지금부터 이 약이 내 몸에 꼭 맞으면 실질적인 갱년기엔 어디에 기대지. 새벽녘, 열 살 어린 셋째 동생이 고민 상담을 해달라며 식탁에 앉았다. 19세 살이가 힘들다고 했다. - 아홉수를 주의하라는 건 사실 아홉이 너무 좋은 숫자이기 때문이래. 좋은 수 3이 연거푸 세 번이나 겹쳐 있으니 위태로울 정도로 상승기운이라는 소리지. - 뭔 소리야. 아홉수라 얼마나 고생인데. 언니는 열아홉을 대체 어떻게 넘겼어. - 나? 사주 보니까 59세부터 말년 복이 좋대서 그때를 기다리고 있지. - 불쌍해. 오, 근데 그때까지는 살아 있는 거네. 20대를 넘긴 후로 새털 같은 날이 흘렀다. 이제 몸에 병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느끼는 건 내 뇌가 고통에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리 걱정하고 겁을 먹어봤자 통증은 새롭고 강하다. 그러니 처방을 받고 심호흡을 한 뒤 오래 누워 있는 수밖에. 가능한 건강한 식단을 내게 제공하는 수밖에. 어제까지 쌓인 힘을 믿고 쉬어. 세상에 안 껴도 돼. 잠결 우주에서 나의 유한함을 조용히 격려하는 방법밖에. --- p.46~47 아이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늘 여기서 멈추게 된다. 세상에 태어날 아이도 중요하지만, 태어나 떠도는 아이들이 무수하다는 사실 말이다. 마음을 다잡고 B에게 입양 이야기를 꺼냈을 때, 양가 어른들이 납득하지 않으리란 의견이 나왔다. 우리의 허약한 경제력도 함께 거론되었다. - 그러니까 아이를 직접 낳아 기르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 너무 많은데. 답변은 다시 원점으로 회귀한다. B가 말한다. -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아이와 지내는 사람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를 구석구석 다 겪는 것 같아. 혹독하고 고통스럽고, 말도 안 되게 괴로울 때가 있지만 그만큼 변화가 엄청나지. 근데 아이 없이 지내는 사람들은 가을만 보내는 느낌이랄까. 포근하고 쾌적한데 어딘가 일정하게 한산한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 가을만 있는 거 엄청 좋지 않아? 부조리 체험, 다이내믹, 격변 그런 거 진력나. 게다가 우리나라 여름과 겨울이 거의 6개월씩인데 무슨 사계야. 평화롭고 싶어. 지리산 무박 등정 싫어. 둘레길이 좋아. 선선한 미풍이 도는 계절이 얼마나 짧고 귀한지 그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B가 뒷말을 보탠다. - 가을 날씨 좋지. 근데 가을 뒤는 겨울뿐이잖아. 경로가 너무 짧잖아. --- p.87~89 - 엄마, 여자가 담배 피워도 돼요? 입만 가리고 물으면 되나요, 다 들렸거든요. 옅은 두통에 눈을 지그시 감았을 때, - 그럼! 되지, 왜 안 돼 질문을 받은 보호자가 이런 답을 외쳤다. 나는 고개를 돌려 정수리 뒤편으로 후광이 가득한 그를 쳐다보았다. 담배를 문 나를 발견하고 자식 눈을 가리시는 분도 있었는데(아이고, 딱 세 번), 전방 100미터나 떨어져 있어도 그땐 몹시 무안했는데. 어머니의 톨레랑스적 발언에 놀란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그날 이후 좋은 일로도 자주 놀라고 깨어나면서 쑥쑥 성장하고 있을 거라 믿고 싶다. 그리고 그 형제들 외에 다른 여아들에게도 이런 말을 건네고 싶다. 모든 여자가 엄마가 되는 건 아니라고. 엄마가 된 사람도, 할머니도 얼마든지 담배를 태울 수 있다고. 이모, 고모, 사촌언니, 선생님, 엄마 친구 중에 흡연 후 손을 씻고 이를 닦고 탈취제를 뿌리고 동네를 몇 바퀴 돌고 들어와 너를 안아 올리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고. --- p.108 20대 학생들에게 본인의 엄마가 되기 전의 엄마를 만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말을 묻는 통계 결과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밝고 환해 보이던 그들 대부분이 결혼을 하지 말라고, 자길 낳지 말라고 썼기 때문이다. - 미래에 나는 없어도 되니까 엄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제발 결혼하지 마. 나 역시 같은 말을 전하고 싶다. 두 마디만 더 보태자면, - 피임하면서 내킬 때만 연애해. 엄마 좋다는 사람 말고 좋아하는 사람도 만나고. N년 후의 페미니즘은 엄마의 희생이나 자신의 경험이 동력이 되는 게 아니라, 단지 사회의 공통 윤리와 소양에서 성장하면 좋겠다고 염원하면서. --- p.187-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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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리얼 몸툰은 없었다!
20대에서 30대로 미혼에서 기혼으로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동하며 쓴 고양이 ‘골골’의 나노생태일지 이 책의 세부 구성 총 3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크게 ‘나의 몸-우리-세상’이라는 확장 구조를 갖는다. 개인의 몸에서 타인, 사회로 이어지는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몸을 이야기할 때, ‘개인’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몸이라는 키워드에는 너무나 많은 사회적 이슈들, 맥락들, 구조가 작은 타일처럼 박혀 있다. 작가의 자전적 캐릭터인 ‘골골이’는 그런 면에서 작가 개인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모든 30대 여성이기도 하다. 1부에서는 30대 여성의 몸에 관한 여러 희로애락을 이야기한다. 숏컷을 즐겨하는 작가의 웃픈 경험담부터 추석 시가에 노브래지어로 간 이야기, 여성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특정 공포, 아홉수에 대한 이야기, 격투기를 배우게 된 이유 등이 나온다. 2부에서는 미혼에서 기혼이 된 이야기와 무자녀 부부로 살고 있지만 아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여성의 유머와 흡연, 생리 등에 대한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새로운 묘사와 표현으로 점철된 일화가 펼쳐진다. 3부에서는 수도권에서 “페로몬이 적은” 지방으로 이사 간 후에 벌어진 갖가지 일부터 30대 복판에서 발견한 여성의 아픔과 연대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30대, 한국 여성의 몸으로 산다는 것 숏컷, 노브래지어, 흡연, 생리 등 지극히 개인적인 것부터 가난, 노동, 데이트폭력 등 조금은 무거운 이야기까지 어떠한 가식도 꾸밈도 없이 담아낸 리얼 에세이 3n년을 살면서 “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육체와 친해져야 삶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움튼다”는 걸 깨달은 작가는, 자신의 취향과 욕구를 존중하는 나름의 방법으로 몸을 다감하게 살핀다. 요가한 지 10년, 20년 된 “참전사들” 앞에서 근육이 찢어질 것 같은 형벌에도 얌전히 (기합, 아니) 요가 수업을 받고, 생리 직전에 특정 음식이 더 당길 때는 몸의 소리에 반응해 마라탕, 떡볶이 등 매운 음식을 챙겨 먹는다. “언니, 술 먹고 다 토하면 완전 다이어트 돼요”라고 말하는 동생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내가 이웃에게 앵두와 퀴노아 샐러드를 받듯 그들 앞에도 이따금씩 기품과 노고가 어린 음식물이 놓이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란다. 이렇게 귀엽고 잔망잔망한 이야기와 함께 웃프면서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가 담기는데, 그 이유는 이 책이 “척박한 생존 환경”에서 적응해간 생생한 일지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미용실에서 숏컷을 하면서 “남편분이 대단하다”는 황당한 칭찬(?)을 듣고, 호기롭게 노브래지어로 추석 시가에 가지만 똑바로 서지 못한 자신을 보며 “누구를 위한 싸움이며 누가 이긴 건지도 불분명한 경기”를 치르는 묘한 기분을 느낀다. 민낯으로 나간 자리에서 어디 아프냐는 말을 듣고 ‘아닌데, 나 오늘 기분 견딜만 한데…’라고 생각하고, 겨울밤 택시를 타고 가는 중에 “재밌냐?”라고 싸늘하게 묻는 기사가, 실은 자신에게 말한 게 아니라 핸즈프리 통화를 하고 있었음을 알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렇게 『3n의 세계』가 그려내는 꾸미거나 세공하지 않은 여성의 일상은 전례없던 ‘날것’이어서,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의미심장하다. 작가는 덧붙인다. 이 책이 “이렇게 무식한 시행착오는 피하라는 안내 문구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빠짐없이 자신의 서사를 공유하는 일은 서로의 안전과 무사를 위한 여성 연대의 행위가 아닐까. “더 많은 이들, 더 많은 여성들이 자기가 부딪혀본 세상을 무절제하게 들려주는 것” 서로의 무사와 안녕을 바라는 작고 중요한 움직임 『3n의 세계』는 30대 여성 몸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사회가 여성에게 짊어지게 한 역할과 불편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 30대 여성이 ‘자신의 몸과 (둘러싼) 사회’를 알아간다는 건, 20대에서 30대가 될 때, 미혼에서 기혼이 될 때,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옮겨 살 때, 사회의 요구가 여성에게 어떻게 달라지는지, 어떤 부담을 지우는지를 새롭게 겪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저자는 3부의 ‘멀티태스킹이라 부르는 산만’에서 “엄마가 샤워를 왜 그렇게 오래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어느 날 하수구 물때와 체모를 치우다가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엄마의 긴 목욕엔 욕실 청소 시간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중·노년 여성들이 공중화장실에서 왜 문을 열고 일을 보는지도. 저자는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연 채 용변을 본다는 건 습관에서만 가능할 텐데 그 습관이란 집안의 모든 상황을 눈여겨봐야 했던 조건에서, 기동력을 높일 상황에서 쌓이지 않았을까”라고 말하며, “그러므로 나를 놀래킨, 열린 문 안의 여성은 대부분 어머니 아니었을까. 아이가 본인을 찾을까 봐, 이상한 걸 삼킬까 봐, 어디에 걸려 넘어질까 봐 늘 자신 밖을 봐야 하니까. 쓸모가 부끄러움을 매번 밀쳐냈으니까”라고 덧붙인다. 『3n의 세계』는 사회가 여성에게 부과한 역할에 (때로 무리이고 과도하더라도) 여성이 어떻게 자신의 몸을 적응시켜나갔는지 담는다. 이것이 개인의 몸에 대한 이야기가 사회에 대한 시각으로 확장되는 이유다. 주인공 ‘골골’이 “3n년을 지내며 돌발 상황과 변수에 은근히 강해”지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30대의 여러 갈래길과 수상한 고랑들까지 모두 정복한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바람처럼 “더 많은 이들, 더 많은 여성들이 자기가 부딪혀본 세상을 무절제하게 들려주는” 희망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