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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문화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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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prologue | 시작하며

1 맥주의 기원
교과서 밖 이야기 / 왜 남부 메소포타미아일까 / 발아와 맥주

2 에일의 모든 것
에일과 에일 하우스의 기원 / 에일 하우스의 마녀 / 홉과 에일
페일 에일과 비터 에일

3 포터와 스타우트
포터 / 한 세대를 풍미했던 포터의 의의 / 흑맥주의 왕자, 스타우트
예카테리나 2세와 임페리얼 스타우트

4 에일의 몰락과 캄라의 출범
에일의 몰락 / 펍에서 에일을 마시자 - CAMRA의 출범

5 수도원과 맥주
오르발 수도원의 전통 맥주양조장 견학기
모리 오가이와 안덱스 수도원 / 카롤루스 대제와 수도원 양조 맥주
수도사와 맥주

6 바이엔슈테판과 장크트갈렌 수도원
뮌헨 외교의 바이엔슈테판 수도원
스위스 보덴 호 남쪽의 장크트갈렌 수도원

7 액체 빵과 마틴 루터
마틴 루터와 보크 비어 / 황제, 루터에 패하다 / 액체 빵의 유래

8 맥주 순수령
‘가짜’ 추방을 위하여 / 특이한 품질 검사
뮌헨 맥주의 지위를 격상시킨 순수령

9 뮌헨과 맥주
맥주의 후진 지역이었던 바이에른
호프브로이하우스를 알린 두 전도사 / 아인 프로지트!
북독일과 남독일 맥주의 차이점 / 세계인의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
옥토버페스트와 메르첸 비어

10 필젠 비어
필젠 비어의 탄생 / 담색의 투명한 맥주 / 필스너 우르켈 방문기
하면발효 효모는 오염효모인가! / 오늘날 라거 맥주의 양조법

11 독일의 상면발효 맥주
뒤셀도르프의 알트 비어 / 쾰른의 쾰슈 비어
밀 맥주(바이스 비어, 바이첸 비어) / 베를린의 베를리너 바이세

12 벨기에와 맥주
‘지역 맥주의 나라’를 덮친 거대화의 파도 / 벨기에 에일의 대표 선수
벨기에 맥주 여행기

13 자연 발효 맥주, 람빅
가장 오래된 맥주를 닮은 람빅 / 람빅 양조장 견학기
괴즈와 프루트 람빅

14 21세기의 세계 맥주 시장
맥주 산업을 강타한 국제화 / 맥주는 이미 돈 되는 장사가 아니다
거대 매수극 / 경제대국과 맥주대국은 함께 나아간다
강렬한 패권 다툼

덧붙여 한국의 맥주와 생활
한국 최초의 맥주 / 일본 식민지 시기의 맥주 시장
해방, 전쟁, 전후 복구 시대 / 1980년대 이후

부록 맥주 미니 사전
참고문헌

저자 소개 1

무라카미 미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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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suru Murakami ,むらかみ みつる,村上 滿

1959년 도쿄 대학교 농학부 농예화학과를 졸업한 후, 스시야(현 산토리)에 입사했다. 1961년에 유럽으로 떠난 출장은 그의 오랜 맥주 기행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대로 1년 동안 뮌헨과 코펜하겐에서 맥주 제조 과정을 배웠고, 귀국 후에는 맥주 제조에 전념했다. 1985년 같은 회사의 간부로 취임하여, 맥주 생산 및 연구를 담당했다. 중일 합작 기업 ‘장쑤성 산토리 식품공사’의 임원으로 일하며,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생맥주 제조’ 기술을 지도했다. 산토리의 상무위원, 고문·기술 감독을 거쳐 2003년에 퇴임, 1998년부터 2년간 나라 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1959년 도쿄 대학교 농학부 농예화학과를 졸업한 후, 스시야(현 산토리)에 입사했다. 1961년에 유럽으로 떠난 출장은 그의 오랜 맥주 기행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대로 1년 동안 뮌헨과 코펜하겐에서 맥주 제조 과정을 배웠고, 귀국 후에는 맥주 제조에 전념했다. 1985년 같은 회사의 간부로 취임하여, 맥주 생산 및 연구를 담당했다. 중일 합작 기업 ‘장쑤성 산토리 식품공사’의 임원으로 일하며,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생맥주 제조’ 기술을 지도했다. 산토리의 상무위원, 고문·기술 감독을 거쳐 2003년에 퇴임, 1998년부터 2년간 나라 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또, 간사이 대학교 대학원, 긴키 대학교, 나가사키 현립 대학교 및 방송 대학교의 강사를 지냈다.
현재는 지역 맥주에 대한 지도와 함께 신문·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유럽 맥주 여행 기획과 방송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맥주전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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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이현정
대학에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졸업 후 도쿄에서 근무하며 현지 언어와 문화를 익혔다. 서울로 돌아와 번역 아카데미를 수료했으며, 현재 다양한 분야의 좋은 책들을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좋은 책을 함께 만드는 번역가’라는 모토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는 《체온 업 다이어트》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2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360쪽 | 622g | 153*224*30mm
ISBN13
9788925544700

책 속으로

맥주가 처음 발상한 메소포타미아를 축복받은 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메소포타미아는 바그다드를 기점으로 남북으로 펼쳐진 두 지역이다. 그중에 남부 메소포타미아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에 둘러싸인 삼각주의 선단부에 있다.
터키 동부에서 시작되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은 터키의 고원과 자그로스 산맥의 눈이 녹으면서 강물이 불어난다. 티그리스 강은 4월에, 유프라테스 강은 5월에 강물 수위가 최고치에 달한다. 강물의 수위는 각각 해발 35미터와 50미터까지 올라간다. 이 지역의 갈수기는 10월로 두 강의 수위는 각각 해발 28미터와 45미터를 기록한다. 최고치와 최저치의 차이가 각각 7미터와 5미터에 달한다. 따라서 물이 불어났을 때의 두 강이 합류하는 남부 메소포타미아는 매년 홍수의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남부 메소포타미아는 연간 강수량이 약 150밀리미터밖에 안 되는 심각한 건조 지역이다. 나무라고 할 만한 것이 소택지에 무성한 대나무가 전부였다. 문자 그대로 불모의 땅이다. 게다가 두 강이 몰고 오는 방대한 양의 진흙과 모래가 쌓여 그야말로 진흙 사막이 되었다. 남부 메소포타미아는 ‘신이 포기한 희망 없는 땅’이라 불렸던 곳이다.
한편 북부 메소포타미아의, 예컨대 티그리스 강 중류 유역에 위치한 해발 230미터인 모술Mosul(바그다드에서 북북서로 400~500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평원은 연간 강수량이 385밀리미터로 빗물을 이용한 건조 농법이 가능했다. 이 평원은 고대 아시리아Assyria의 중심부이자 아시리아의 번영을 가능케 한 비옥한 곡창지대였다. 모술에서 서쪽으로 70~80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아르빌Arbil 주변은 지금도 이라크 최대의 밀 산지이다. 고대 아시리아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사르곤Sargon 왕조의 수도인 니네베Nineveh, 니므루드Nimrud, 코르사바드Khorsabad가 전부 모술 평원에 건설된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그렇다면 왜 수메르 인은 하필이면 ‘신이 포기한 희망 없는 땅’에 뿌리를 내렸을까. 그리고 남부 메소포타미아는 어떻게 문명의 발상지가 되었고, 이번 이야기의 핵심인 맥주의 발상지가 된 걸까?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은 독선적 행위, 부패, 타락을 불러온다. ‘신앙의 시대’라 불리던 중세 기독교의 정점에 있던 로마 교황도 예외는 아니었다. 또 가톨릭의 지위가 높은 대주교도, 말단 교회를 운영하는 성직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교회가 저지른 부패 중에 최악은 ‘속유장’의 판매였다. 로마 교회에서는 죄를 면해주는 것을 ‘속유 ?’라고 부르는데, 그 증명서가 바로 속유장이다. 사제이자 신학자였던 마틴 루터는 속유장, 즉 면죄부를 돈으로 판매하는 것에 분노를 느꼈다.
루터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재건 명목으로 독일에서 면죄부가 부정 판매된 실태를 알게 되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교회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다. 사실 면죄부 판매의 진짜 목적은, 마인츠의 대주교가 아우크스부르크의 부호 푸거 가家에게 빌린 돈을 갚기 위한 것이었다.
루터가 1517년에 쓴 〈95개조 논제〉는 때마침 실용화된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덕분에 순식간에 독일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효과는 대단했다. 전국 각지에서 면죄부 판매를 반대하는 봉화가 올랐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는 루터에게 주장 철회를 요구하기 위해 그를 제국회의에 소환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보름스 제국회의의 마틴 루터 심문 사건이다. 1521년 4월 17일의 일이다.
제국회의 당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필두로 각지에서 모인 제후가 나란히 앉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토록 강인한 성품의 루터도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자 그의 비서였던 청렴한 신교도 부인이 1리터짜리 도기 맥주잔을 들고 왔다. 잔을 받아든 루터는 잔에 든 맥주를 단숨에 비운 뒤, 두 뺨에 홍조를 띈 채 천천히 의장을 향해 걸어 나갔다.

옥토버페스트는 1810년에 바이에른의 시골에서 열린 축제였다. 바이에른의 국왕 막시밀리안 1세의 황태자 루트비히(후에 바이에른 왕국의 제2대 국왕이 되는 루트비히 1세)와 작센에서 온 공주 테레지아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개최한 경마 대회가 시초였다. ‘테레지아 초원 Theresienwiese’이란 왕비 테레지아의 이름을 딴 목초지를 가리킨다. 지금도 축제는 뮌헨 중앙역에서 서남서로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테레지아 초원에서 열린다.
처음 이곳은 맥주와 무관했지만, 지금의 뮌헨은 맥주의 도시이다. 4년 후, 놋쇠 뚜껑이 달린 도기제 맥주잔에 맥주를 담아 판매하는 노점상이 들어섰고, 다시 몇 년이 지나자 테레지아 왕비의 기념 경마 대회가 완전히 맥주 축제로 변신했다고 《The History of German Beer》의 저자 돈부시는 밝힌다.
테레지아의 남편 루트비히 1세는 한 시대를 호령한 국왕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동경해서 뮌헨을 아테네나 피렌체 같은 예술의 도시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는 왕위를 계승하자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정력을 쏟는다. 박물관과 미술관, 극장이 건설되었다. 현재 뮌헨의 아름다운 거리는 모두 루트비히 1세 때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에서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본떠 만든 개선문이 특히 유명하다.

20세기 말에 이르면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맥주의 후진국으로 여겨졌던 중국이 미국을 누르고 생산량에서 세계 1위에 오른 것이다.
〈표1〉은 1999년과 2008년의 전 세계 상위 10위권 그룹의 순위다. 1999년도 순위를 보면, 안호이저 부시(이하 AB)가 1위다. AB는 60년대부터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최고 기업이었고, 21세기 초엽까지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그런데 1999년에 1위였던 AB와 4위의 암베브, 6위의 밀러와 8위의 스코티시 앤드 뉴캐슬(이하 S&N)은 2008년도 순위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암베브가 2위였던 인터브루와 병합하여 인베브가 되고, 밀러는 5위의 사브에 매수되었으며, S&N은 하이네켄과 칼스버그에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AB는 인베브에 매수되어, 새롭게 안호이저 부시 인베브 AB InBev로 태어났다. AB의 매수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일어난 맥주 업계 최대의 매수극이었으며, 세계의 모든 맥주 관계자들을 경악시킨 대사건이었다.
또 하나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화룬쉐화, 칭다오, 옌징의 중국 기업이 상위 10위권 안에 들었다는 점이다. 나는 예전부터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라고 해왔는데, 내 예상에 딱 맞아 떨어지는 일이 일어났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어쩌면 AB의 매수 사건도 20세기 말에 일어난 국제화라는 격류에 휘말려 침몰한, 한 척의 작은 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격변들이 일어날 것이다.
이제 20세기 말부터 세계 맥주 산업을 직격한 세계화는 대체 무엇인지 설명할 시간이 왔다. 다양한 방면에서 맥주 산업의 실정을 파헤쳐보자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한잔 하자’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술 맥주

힘겨운 하루 일과를 끝내고 재충전과 교감의 시간을 갖고자 할 때, 어떤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아마도 ‘한잔 하자’는 말일 것이다. 그 ‘한잔’이라는 말 앞에는 아마도 ‘맥주’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생활 속에 녹아들어 아주 당연하다는 듯 소비하고 있는 맥주를 우리는 언제부터 마시기 시작한 것일까? 한국의 역사에서는 현재의 맥주를 찾아볼 수 없다. 과연 한국에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언제이며 어떤 계기와 역사를 통해 이렇게 생활 속에 녹아들게 된 것일까? 1876년 강화도조약을 맺으면서 서울 등지에 일본 맥주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시작한 한국의 맥주 역사는 이제 채 150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한국전쟁이 벌어진 혼돈의 시기에도, 5.16군사쿠데타로 모든 국민이 혼란에 빠졌을 때에도 맥주는 꾸준히 사랑받았다. 한국전쟁 직후 가장 세금을 많이 낸 회사 중 3, 4위가 동양맥주와 조선맥주였을 정도였다.

맥주 문화를 선도해온 유럽에서 맥주는 더더욱 생활밀착형 음료였다.
중세 수도원에서 맥주는 수도사의 일상 식품이자 주요한 영양공급원이었다. 커피나 홍차가 없었던 중세 시대 초기에는 맥주가 빵에 곁들여 먹는 수프 역할을 했다. 맥주를 담그는 것은 신부수업의 필수 과목이었다. 맥아를 끓일 때 쓰는 큰 솥은 가장 중요한 혼수품 중 하나였다.
맥주의 발상과 유행, 쇠퇴의 과정을 지켜보면 그 시대의 정치, 경제 등 사회적 배경과 귀족, 성직자, 일반 민중에 이르는 다양한 계층의 식문화, 풍속, 습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맥주를 만들고, 맥주를 연구하는데 평생을 바친 맥주통이 직접 경험하고 써내려간 맥주의 모든 것

이 책의 저자 무라카미 미쓰루 씨는 이미 맥주에 관한 두 권의 책을 펴냈고 세계 각지의 유명한 양조 지방을 순례하는 ‘비어라이제(맥주기행)’를 거쳤다. 20대 약관의 나이에 일본을 대표하는 맥주회사인 산토리(당시 사명은 스시야)에 입사하여 맥주 제조 업무를 맡으면서 맥주와 인연을 맺었으며, 점차 맥주 제조, 연구, 생산, 다국적 합작회사 관리에 이르기까지 맥주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경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경력을 쌓았다. 2003년 회사를 퇴임하여 다양한 대학에서 맥주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다채로운 경력을 토대로 써나간 글이기 때문에 단순히 ‘비어라이제’를 경험한 사람들보다 ‘맥주의 모든 것’에 대해 근본적인 부분부터 접근해간다.
5천 년 전 왜 남부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으로 발상했는지, 그리고 생활에 밀착된 음료였던 에일은 왜 몰락하게 되었는지, 한 세대를 풍미했던 포터, 흑맥주 스타우트 등 우리 귀에도 익숙한 맥주가 왜 지금의 명성을 얻었다가 쇠퇴하는 과정을 밟았는지를 원인, 과정에 걸쳐 침착하게 추리하고 있다. 또한 바로 현재 21세기의 산업화된 맥주의 현상을 진단하며 앞으로의 맥주 시장에 대해서도 추측을 곁들이고 있다. 이 도서에는 저자의 동의를 얻어 한국의 맥주 역사를 철저하게 현재 남아있는 신문 기사 등 자료에 의거하여 덧붙였다.

맥주에 관한 역사와 상식을 지도와 함께 정리한 미니 사전까지
알고 마시는 맥주는 더욱 시원하다


와인의 세계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다름 아닌 와인 관련 용어일 것이다. 맥주 세계의 문턱은 와인의 세계에 비해서는 훨씬 낮지만 그렇다고 모든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맥주에 대한 관심이 많으며 한국에 맥주를 전래한 일본에서는 한때 발포주 열풍이 불기도 했다. 국내 맥주 시장에서는 이런 구분조차 생소하지만 진짜 맥주를 즐기고 하우스맥주를 만들기도 하는 마니아층, 혹은 맥주에 대한 관심이 높은 사람들은 맥주의 종류를 구분하며 다양한 맛을 즐기고 있다. 이 책에서는 독자들이 가장 쉽고 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양조법/발효법/유형 등의 기준으로 맥주의 종류를 정리하고 이와 관련된 용어를 해설한 ‘맥주 미니 사전’을 권말에 첨부하여 이해를 도왔으며, 맥주와 관련된 주요 도시 등을 지도까지 곁들이며 알아보기 쉽게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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