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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한 번도 살지 않은 내일이 불안한가
○ 주역의 계시(周易的啓示) 01 오래 축적된 문명의 지혜 02 무술과 철학 정신 03 모든 것이 변한다는 불변의 진리 04 음과 양으로 이뤄진 세계 05 세상의 이치를 간단히 풀다 06 위기를 의식하고 혼란을 대비한다 07 변화에 대한 이성적 탐구 08 모순을 통한 변화, 변화를 통한 발전 09 주역과 중용의 원칙 2강 배척할 것인가, 포용할 것인가 ○ 중용의 원칙(中庸的原則) 01 중용에 대한 오해 02 무엇이 중인가 03 무엇이 용인가 04 중용에 관한 세 가지 결론 05 원칙과 융통성 06 임기응변의 방법 07 다양함 속의 통일 08 현실적인 처세의 철학 3강 죽기로 싸우면 이길 수 있는가 ○ 병가의 사고(兵家的思考) 01 춘추전국시대의 전쟁 02 소릉 전투와 장평 전투의 차이 03 손자의 전쟁과 평화 04 전쟁 경제학 05 승리하는 자와 패배하는 자 06 장수에게 치명적인 다섯 가지 약점 07 전쟁은 속임수이다 4강 약자라고 포기할 것인가 ○ 노자의 방법(老子的方法) 01 손자와 노자의 전쟁론 02 병도와 인도 03 천하무적의 승리법 04 사람은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05 뒤집힌 생각의 힘 06 경계 없음의 위대함 07 진짜 무위인가, 거짓 무위인가 5강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 위진의 풍도(魏晋的風度) 01 위진시대의 사회 풍조 02 자아에 대한 솔직함 03 학식과 지혜 04 고고함이 풍기는 외모 05 풍채와 아량 06 거짓군자와 풍류재자 07 진정한 정감을 갈망하다 6강 삶의 지혜는 성인들만의 것인가 ○ 선종의 경계(禪宗的境界) 01 선종의 전설 02 육조 혜능의 이야기 03 인간을 위한 불법 04 간단하고 쉬운 불법 05 생각을 파하다 06 자신을 깨고 얻는 자유 07 부정의 부정 지은이의 말 옮긴이의 말 |
yi zhongtian,易中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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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변하는 것이기도 하고 불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변한다는 사실 자체가 불변이기도 하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현상이나 사물은 변한다. 그러나 사물이나 현상의 배후에 있는 규율, 법칙은 불변한다. 다시 말해 변화하는 것은 현상이고, 불변하는 것은 규율이라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현상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 역시 규율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원히 변화하며, 유일하게 불변하는 것이 바로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변화한다는 것은 불변이다. 변화의 규율 역시 불변이다. ‘변화의 규율이 불변’이라면 마땅히 인식하고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주역』이 하는 일은 이러한 규율을 찾아내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은 영원불변의 진리이다. --- p.27
태괘는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다. 비괘는 반대로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다.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그럼 비괘의 형태가 좋은 것 아닌가? 그러나 맞는 것이 아니며, 좋은 것도 아니라고 한다. 왜 그런가? 무슨 문제도 없고 어떤 모순도 없는데 왜 좋지 않다는 것인가? 관계가 발생되지 않기 때문이다(天地不交). 그리하여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좋은가?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것이 가장 좋다. 왜 그런가? 위치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위치가 맞지 않은데 왜 좋은가? 변화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좋은 것은 그것이 ‘맞지 않기(不對)’ 때문이다. 맞는 것이 오히려 좋지 않음, 이것이 바로 비괘이다. “모순이 있어야 충돌이 있고, 충돌이 있어야 변화가 있으며, 변화가 있어야 발전이 있고, 발전이 있어야 전망이 있다.” --- p.59 공자의 흥정에는 원칙도 있고 최저 또는 최소 기준이 있다. 일종의 마지노선이 있는 셈이다. ‘견자(?者)’라는 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견’이란 무엇인가? 하지 않는 바가 있음이다(有所不爲). 왜 하지 않는가? 도덕적이지 않고 정확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자신의 목숨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열사가 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준이 너무 높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은 할 수 없다. 단지 소수의 몇 사람이 가능할 따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하다. 말을 예로 들어보자. 만약 당신이 나는 영원히 진실만 말하겠다고 하거나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이라고 말하고, 또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고 한다면 과연 가능할까? 혹시 가능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이 그럴 수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등의 최소, 또는 최저의 기준을 마련하면 된다. 만약 그것도 할 수 없다면 아예 어떤 일에 대해 말을 하지 않겠다고 최후의 선을 그어버리면 된다. 이 정도는 아마도 많은 이들이 행할 수 있을 것이다. --- p.119 중용은 처신의 예술이다. 이에 대해서는 조조의 두 번째 정처인 변부인(卞夫人)의 예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삼국지?후비전(后妃傳)』의 배송지(裴松之) 주(注)에 따르면 변부인이 정실이 된 후 조조는 전쟁을 치르고 난 후 전리품 중에서 장신구를 얻으면 제일 먼저 그녀에게 보여주며 좋은 것을 고르라고 했다. 그러나 변부인은 그중에서 중간 정도의 것을 고르곤 했다. 몇 번이나 그런 일이 반복되자 조조가 기이하게 여기고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변부인이 말하길, 가장 좋은 것을 고르면 사람들이 탐욕스럽다고 할 것이고, 가장 형편없는 것을 고르면 위선적이라고 비난할 것이기 때문에 중간 정도의 것을 골랐다고 했다. 그녀는 분명 제대로 처신할 줄 아는 이였다. 보아하니 변부인은 중용의 의미를 알고 있었던 듯하다. 과연 중용은 어려운 것인가 아닌가? --- pp.135-136 손자가 전쟁 계획을 수립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利)’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그는 오직 이익만을 도모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점을 분명하게 언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전의 전쟁은 언제나 무슨 정의라든지 도덕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자가 말한 전쟁의 목적은 효용의 극대화였다. 참으로 대단한 견해가 아닐 수 없다. 생각해보시라. 전쟁은 얼마나 많은 본전이 필요한가? 그런데도 아무런 이익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전쟁을 하는가? 설사 정의를 위한 전쟁이라고 할지라도 막상 본격적으로 전쟁 상태에 돌입하게 되면 최소의 대가를 통해 최대의 승리를 추구하지 않겠는가? 아군의 희생은 최소화하고 가능하다면 적군을 완전히 궤멸시키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그러니 ‘전쟁의 경제학’이야말로 모든 전쟁에 임하는 용사나 통치자들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pp.173-174 패배 여부는 자신에게 달렸고, 승리 여부는 적에게 달렸다는 뜻이다. 패배 여부가 자신에게 달린 것은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승리 여부가 적에게 달린 것은 적군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승리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만약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자신이 실패하고, 적군이 잘못을 저지르면 적군이 실패한다. 결론적으로 누구든 잘못을 저지르는 쪽이 실패한다. 잘못은 모두 자신이 저지른다. 그렇기 때문에 패배는 다른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초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손자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다. 그 사고방식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승리와 실패 가운데 실패가 승리보다 더 중요하며, 적군과 아군 중에서 적군이 아군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 p.181 노자가 가장 존중한 것은 무엇인가? 갓난아이, 여인, 물, 곡(?), 곡(谷), 박(樸). 이러한 것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나이 어림, 유약, 음성(陰性), 허공, 원시(原始). 여기서 우리는 노자의 가치관을 볼 수 있다. 아래쪽으로 향하고 부드러운 것을 귀하게 여기며, 양(陽)보다 음(陰)을 추구하며 무(無)를 숭상하고 원시 상태를 좋아한다. --- p.238 모든 이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면 무엇을 얻어야 하는가? 원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런 이들이 있는가? 있다. 누구인가? 강과 바다이다. 알다시피 강과 바다는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한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이 원치 않는 것들, 예를 들어 진흙이나 오수(汚水) 등 천하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해서 마다하는 일이 없다. 그 결과 강과 바다는 ‘백곡의 왕(百谷王)’이 됐다(제66장). 사실 강이나 바다가 백곡의 왕이 된 것은 스스로 낮추고 텅 비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어떤 더러운 것도 모두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 역시 강과 바다와 마찬가지이다. --- pp.245-246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것은 지혜를 숭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진시대에 널리 유행한 풍조였다. 이런 분위기는 한말에서 위진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됐다. CCTV에서 [삼국을 품평하다(品三國)]라는 강연을 할 때 제갈량이나 주유, 손책 등이 미남이라고 말했다가 사람들에게 비난을 들은 적이 있다. 영웅에 대한 논할 때면 당연히 그들의 내심세계라든지 위대한 업적, 또는 민족 대의에 대해 이야기해야지 “용모로 사람을 평가해(以貌取人)” 얼굴이 잘생겼다는 식으로 말하니 도대체 무슨 속셈이냐는 것이었다. 그분들이 무슨 뜻으로 이야기하는지는 알겠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어떤 시대이든 그 시대의 풍조나 기풍이 있기 마련인데 이 점을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역사를 이야기할 때 무엇보다 역사적 사실을 중시한다. 물론 이런 가치관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이는 별개의 문제이다. 만약 어떤 시대의 풍조가 용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라면 이를 굳이 피할 이유가 없다. --- pp.297-298 위진시대에 이르자 유가 사상이 오히려 주변으로 밀려나고 공맹의 도 역시 더 이상 환대를 받지 못했다. 대신 환영을 받은 것은 노자와 장자, 『주역』, 그리고 불교와 현학이다. 리쩌허우(李澤厚)는 『미의 역정(美的歷程)』에서 위진 풍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재적 지혜, 특출한 정신, 탈속(脫俗)의 언행, 아름다운 풍모.” 이제 더 이상 인격에 대해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은 인정에 대해, 내심의 느낌, 심령의 위안에 대해, 그리고 정감의 교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자유에 대한 동경, 진정한 정감에 대한 갈망, 세속에 대한 멸시, 내심에 대한 복종 등등은 모두 ‘사람의 정감’과 관련된 표현들이다. --- p.336 불교의 근본은 무엇인가? ‘각오(覺悟)’이다. 생각해보자. 무엇이 불(佛)인가? 불은 불타(佛陀)를 말한다. 즉 깨달은 자이다. 물론 ‘각오’는 불교에서 온 말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성불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는 ‘자각(自覺)’으로 자신이 깨닫는 것이다. 둘째는 ‘각타(覺他)’로 다른 이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셋째는 ‘각행원만(覺行圓滿, 깨달음과 행함이 원만하게 하나가 됨)’이다. 이 세 가지 조건에 부합되어야만 부처가 될 수 있다.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범부, 속자(俗子)일 따름이다. 보살(菩薩)은 앞에 두 가지는 부합하나 마지막 한 가지가 부족하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 부처나 보살과 다른 점은 바로 깨달음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부처는 깨달은 자이고,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다. 각오는 성불의 관건이다. --- p.383 “선사께서도 공부를 하십니까?” “암 하다 말다.” “어떻게 하십니까?” “배고플 때 밥 먹고 졸릴 때 잠자는 것이지요.” “속세의 범부도 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그들과 스님의 공부는 무엇이 다른가요?” 대주혜해가 대답했다. “그들은 밥을 먹을 때 밥 먹는 생각은 하지 않고 온갖 것을 찾느라 정신이 없고, 잠 잘 때 잠은 자지 않고 이것저것 비교하느라 잡생각을 일으키지요(吃飯時不肯吃飯, 百種須索, 睡時不肯睡, 千般計較).” 한마디로 말하자면, 생각이 꽉 막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니 밥을 먹어도 밥을 먹는 것이 아니고, 잠을 자도 잠을 자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생각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으면 배고파 밥을 먹으려면 밥을 먹고 졸려 잠을 자려고 하면 잠을 잔다. 이것이 부처와 중생이 다른 점이다. 이렇듯 ‘미(迷)’란 생각이 막혀 깨어나지 못함이며, ‘오(悟)’란 생각에서 벗어나 깨우침이다. 부처와 중생은 진정 ‘한순간의 생각 차이(一念之差)’만 있을 뿐인가? 그렇다면 누구든, 무엇을 하든, 언제이든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 p.3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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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과 변화의 시대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고전 강연의 대가 이중톈(易中天) 교수의 신작, 이상적이고 사회적인 지식이 아닌,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지혜로서의 고전을 전하다 “사람이 답이다.” 모 기업의 광고 문구만이 아니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한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역사와 사회라는 큰 틀에서 조연처럼 머물렀던 ‘개인’과 ‘사람’은 어느덧 주연으로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소수가 주도하는 성장이 아닌 모두가 함께 하는 성장을 말하는 분위기이다. 함께한다는 것, 즉 개개인의 삶의 모습도 모두 포용해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이 사는 세상’을 사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지식은 사회에 속하고, 지혜는 개인에게 속한다. 지식은 주고받을 수 있지만 지혜는 오직 깨달을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도 삼국지 강의 등으로 유명한 중국의 석학 이중톈 교수도 그의 신작 『이중톈, 사람을 말하다』(심규호 옮김, 중앙북스 펴냄)을 통해 사람과 삶을 말하고 있다. 13억의 마음을 사로잡은 중국 최고의 고전 강의를 책으로 출간 선진제자백가시대에 백가쟁명이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는 두 가지이다. 제국을 다스리는 문제와 인생 문제이다. 이중톈은 그동안 제국을 다스리는 통치법과 이상적인 리더십, 그리고 사회의 큰 흐름에 대해서 얘기했다. 이번에 그는 백가쟁명이 그 다음으로 고민했던 인생, 개인의 삶에 대한 지혜를 주제로 대중과 만났다. 중국 이동통신사 차이나모바일(中國移動)의 요청으로 중국의 여섯 개 도시를 돌며 강연한 여섯 가지 주제를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이중톈, 사람을 말하다』이다. 여섯 가지 주제는 ‘주역의 계시’, ‘중용의 원칙’, ‘병가의 사고’, ‘노자의 방법’, ‘위진의 풍도’, ‘선종의 경계’이다. 그는 이 여섯 가지 주제의 강연을 통해 삶의 지혜는 지식과는 구별되고, 개인적이고 현실적이며 실용적임을 말한다. 그래서 그는 고전에서 고상하고 이상적인 영웅들의 모습을 뽑아내기보다는 고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간 본연의 모습과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간단하고 현실적인 세상 이치를 현대적인 안목으로 대중에게 전달한다. 세상의 이치를 알고, 사람을 이해하고, 인생의 방향을 보다 이 책의 구성 순서는 시대 순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삶의 지혜를 얻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주역과 중용으로 세상의 이치를 알아 다가올 어려움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세를 갖고, 병가와 노자를 통해 사람의 본성과 개인의 잠재된 힘을 이해하고, 위진시대의 지식인과 선종 조사의 일화를 보며 인생에서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 국내 독자에게도 이미 익숙한 고전인 『주역』과 『중용』, 『손자병법』은 인간의 지혜라는 관점으로 재해석했다. 또한 작가는 여러 고전을 서로 비교하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짚어주고 있어 여러 고전과 역사적 배경으로 자칫 혼란스러울 수 있을 거라는 우려를 덜어준다. [노자]와 위진시대, 선종 일화는 이번 신간에서 처음으로 이중톈의 시각으로 선보이고 있다. 강연을 듣는 듯한 작가의 생생하고 날카로운 질문과 그 해석을 따라가다 보면 ‘세상에 놓인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중톈의 고전강의는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역사와 세계의 큰 흐름에서 보면 미미한 개인이지만, 혼돈과 변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며, 세상의 중심이란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깨달음이 담겨 있다. 자신의 모습은 잃고 스펙 올리기에 젊음을 바치는 청춘들과 번드르르한 이상적인 말들에 흔들리는 대중과 그 속의 개인, 또 다수의 개인을 이끄는 리더에게 이번 이중톈의 강의가 도움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