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유길준
1856년 10월 24일, 서울에서 참봉 유진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9살 때부터 조부 유치홍에게 한학을 배우고 서당에서 수학하다가 14살 때 서울로 상경해 외조부 이경직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16살 되던 1871년 봄, 당시 홍문관 대제학이던 박규수가 향시에서 장원으로 뽑힌 그의 시를 보고 감탄하여 박규수와 친분이 있던 외할아버지 이경직의 주선으로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유길준은 박규수의 권고에 따라 외국어와 국제법 등 근대적 학문에 관심을 기울인다. 1875년부터 개화파 중 한 명이던 김옥균과 깊이 사귀었으며, 다음 해에 박규수가 타계하자 오경석의 사랑방에 드나들면서 강위와 우정을 나눈다.
1881년, 유길준은 민영익의 천거로 신사유람단의 일원이 되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당시 일본의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 밑에서 개화사상을 두루 섭렵한다. 민영익의 추천으로 미국에서 유학 시절을 보냈으며, 생물학자 에드워드 모스 교수의 지도 아래 서양 학문과 풍속을 익히다가 2년 뒤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귀국한다. 귀국 후 개화당으로 몰려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그는 1887년에서 1889년 사이에 [서유견문]을 집필한다.
1894년 갑오개혁 때 외무참의 등을 역임하며 개혁을 주도했고, 1895년 김홍집 내각의 내무협판을 역임하며 태양력 사용, 종두법 실시, 소학교 설치 등 각종 개혁을 추진한다. 1896년 내부대신에 올랐으나 아관파천으로 내각이 해산되자 일본으로 망명, 1907년 고종황제 퇴위 후 사면되어 귀국하기까지 12년간 일본에서 머무른다. 그는 1907년 귀국하여 임종할 때까지 재야에서 저술 활동을 하면서 교육과 산업의 진흥을 위한 계몽운동을 이끌었다. 1914년 9월, 59살을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