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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자 여러분께
해설 ‘영혼의 중심이라는 말(서경식) 2011년 3월 쓸데없는 걱정 | 첫마디 | 이렇게 화가 날 수가! | 잠정적 혹은 한정적 믿음·불신에 대해 |시시각각의 기록 | 몇 가지 긴급발신 | 오디세이호의 출항 | 농성 며칠째인가?(몇 가지 단편적인 보고) | 원전사고 보도를 보며 느낀 점 | 농성일기 2011년 4월 어느 무책임한 대화 | 이것은 그야말로 정부 주도의 군량미 공세다! | ‘국가’란 무엇인가? | 한 달 만의 산책 | 좀 지쳤나? | 먼저 깨진 다음에 부딪혀라! | 아아, ‘예상외!’ | 어느 종말론 | 도호쿠의 할머니 | 나의 순간온수기는 몇 시버트? | 답 없는 물음 | 아뿔싸, 너무 잤다! | 또 하나의 액상화 현상 | 액상화를 멈추게 하는 것 | 적은 성안에 있다 | 빗속의 우울한 생각 | 비오는 날의 대화 | 삼촌이 발명한 비상용 발전기 | 어리석은 정책의 결정판 | 긴급발진! | 고요한 하루 | 벚나무 아래서의 망상 | 방심에서 각성으로 | 아아, 너무 화난다! | 이다테무라의 동창생 | 마치 목각인형 같다 2011년 5월 맹인안내견 벨이 보내준 성금 | 제3의 사나이의 논리 | 아아, 위험하다! | 비상시의 전투요령 | 장난감 망치로 때리게 한다 | 플러그를 뽑는 용기 | 흔들리고 있어요 | 간사장의 왕림 | 슬슬 다시 시작할까 | 역할보다 넉넉한 인간미 | 오호! 또 자기책임! | 내면으로 전진하라! | 내면으로 전진하라!(속) | 곰곰이 생각하건대 | 느닷없는 마누라 찬가? | 부흥준비구역으로 | 분교 교장의 개학식 인사 | 부흥준비구역 선언 | 위축되는 어리석음 | 재택학습은 어떠세요? | 지진 피해자의 눈높이 | 하나만 아는 바보 전문가 | 오디세이호의 일시 귀항 | 탈학교의 시도 | 방사선보다 우울하다 2011년 6월 사상 검증을 하지 마라! | 디오게네스의 나무통과 한 잔의 커피 | 원전 특수의 과거 | 목숨보다 소중한 것 | 꿈속의 꿈 | 사이야의 도시락 | 상상의 총리 기자회견 | 제4의 나(실존하는 나) | 아아, 이 무신경함! | 다양한 방문객 | 잠시 휴식 | 디아스포라에서 우에노 역까지 | 칼싸움놀이 | 죽은 자, 무수히 상륙하다 | 의외다, 의외! | 좋은 일이 세 가지나 | 기억의 꼬리 | 지금이야말로 백지 철회를! | 오호! 이젠 끝장이다! 2011년 7월 이후 지역재생의 이야기를! | 카르페 디엠(이날을 즐겨라!) | 세 명의 다카시 씨 | 지진과 신의 장소 | 느닷없는 귀환요청 | 올해 마지막 인사 | 평안히 하늘나라로 | 이제와 무슨 소리? |아리랑고개 | 이성과 감정 | 앉은뱅이 용쓰기? | 원전재앙 기념자료관을! | 미나미소마 재생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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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18일 밤 9시 반) NHK 방송을 보니 옥내대피지역으로 운송업자들이 안 들어가려고 하는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은 유명한 선생님(상당히 멋진 젊은 남자로 나중에 조사해보니 세키무라 나오토?村直人 도쿄대 교수였다)이 "단시간 작업과 차 안이나 옥내에 있는 것은 위험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이런 유의 발언은 이미 질릴 만큼 되풀이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후쿠시마福島 시에서 무시무시한 흰 방호복으로 몸을 감싼 몇 명의 담당자 앞에, 불안해하며 방사능 수치를 재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영상을 내보낸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발표된, 건강에 ‘당장’(결과적으로는 더욱 불안을 증폭시키는 이상한 부사) 위험은 없다는 마이크로 뭐라든가 하는 수치로 보면 미나미소마 시는 후쿠시마 시의 5분의 1 수치밖에 되지 않는다.
즉, 미국은 이 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전면적으로 응원하겠다는 오마하(인가? 아, 오바마인가?) 대통령이, 자국민에게는 80킬로미터 권역 밖으로 피난하라는 메시지를 동시에 발신하는 것과 같다. 미국인의 경우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해당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종류의 발언만큼 화나는 것은 없다. 적어도 현 단계에서는 하라마치原町 구나 가지마鹿島 구에 물자를 전달하러 들어와도 전혀 건강에 해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분명하게 발신해주지 않으면 주민이나 외부에서 들어오는 사람의 불안은 더욱 증폭될 뿐이다. --- pp.24~25 혹시 식료품이나 생활필수품이 바닥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현실은 공포심을 부추긴다. 그러나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다줄 것을 믿고 힘껏 입을 벌리고 우는 어린 새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한 마리보다 두 마리, 많으면 많을수록 우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린다. 그런데 잇달아 도망가는 어린 새들. 아니, 좀더 분명히 말하자. 나는 이번 사고가 최악의 국면을 맞이하게 되면, 혹은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방사선 피해는 도쿄를 포함한 동일본 전체에 미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실에 대한 각오를 하고 거기서 역산을 하면 된다. 그러면 마음이 훨씬 안정된다. 바꿔 말하면 침착해진다. 나라면 위험도가 별반 다르지 않은 아주 좁은 범위를 우왕좌왕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겠다. --- pp.33~34 이번의 대지진, 그보다는 확실히 말해 원전사고에 관한 모든 사실과 현상에서 너무나도 ‘예상외’라는 말이 난무하는 것이 신경에 거슬렸다. 그리고 그 뿌리에는 무엇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했는데, 오늘 마침내 그 답을 발견한 것이다. 즉, 일본 사회가 지나치게 규격대로, 매뉴얼대로, 안전하게, 확실하게 만들어졌다는 점,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거기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 문제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 것이다. --- p.79 하지만 우리 집처럼 어떤 피해도 간신히 면한 사람들이라도, 이미 이전과 같은 일상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가 근원부터 변화한 것이다. 방사능이 토지나 신체에 얼마나 축적되었는가, 앞으로 장기간에 걸쳐 감시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지만 변화는 그것만이 아니다. 즉, 이번 대지진, 특히 원전사고로 인해 우리 생활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있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무능하고 의지할 수 없는 행정부의 손에 맡겨져 있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이 마지막 발견은 진실의 각성이라는 의미에서, 앞으로 우리의 생활 재건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얻은 귀중한 보물이라고까지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지침은 무수히 많다. 그것을 대충 요약하면 ‘나라’는 일의적으로는 ‘사람’이라는 점, 그리고 그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고,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하는 많은 사람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 pp.94~95 주민의 80퍼센트가 돌아왔기 때문에 스태프의 확보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식료품 등의 물자조달도 문제없다. 그런데 왜 [각종 시설이나 상점, 병원 등을] 재개하지 않는가? 간단히 말하면 국가로부터 받는 보조금이 얽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과 맞지 않는 지시가 이토록 구속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오로지 돈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국가가 주는 보조금 등을 둘러싸고 일부 주민들 사이에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고 한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가지마 구에 살고 있는데 지진과 쓰나미로 집이 반파되었기 때문에 대피소 생활을 했다. 그런데 그 30킬로미터 라인에서 조금 밖으로 벗어났다는 이유로 도쿄전력의 배상금을 못 받는다고 한다. 그 밖에도 내가 보기에 불공평하고 딱한 경우가 많다. 국민에게서 거둬들인 세금이 국민의 실정에 맞게 사용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이 국민의 생활을 핍박한다면, 민주정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것은 독재국가의 탄압정치와 무엇이 다른가? --- pp.231~232 어제 서경식 씨와의 대담에서 끝나갈 무렵에 또 무리한 이야기를 던졌다. "서 선생님, 이상한 부탁인데, 일본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재일조선인으로 있어주세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이상한 부탁이다. 서경식 씨는 나보다 열 살 정도 젊지만 앞으로 쭉 살아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일본이나 일본인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더 정확히 말하면, 일본·일본인이라는 것이 결코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방법이 아니라 타자에 대해 열린, 관용적이고 넉넉한 존재이기 위해서는 재일조선인이라는 마주 보는 거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 p.253 재난 피해자면서 앞으로도 원전을 유지하는 것에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이것만은 꼭 말해두고 싶다. (중략) 도쿄전력의 위험은(진짜 위험한 작업은 협력회사의 사원이 한다고 한다) 사고가 날 경우 자신과 동료뿐 아니라 이번 사고처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삶을 세대를 넘어 빼앗는 위험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 놀란 것만은 아니고 분노와 함께 슬픔도 맛보았다. 그렇게 도쿄전력의 은혜를 잊지 못하는가, 그렇게까지 도쿄전력에 의해 세뇌되었는가, 더 신랄하게 말하자면 그렇게까지 자신들의 생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분노다. 이렇게 괴롭고 슬픈 이야기를 왜 아무도 안 하는 것인가? 아니면 못하는 것인가? --- p.261 ‘미나미소마 시의 지진관련사가 왜 많은지 조사해야 한다’고? 웃기지 마라. 이제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방사능은 탄저균이나 사린가스처럼 즉사하는 맹독도 아니고 페스트처럼 전염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명백하다. 노인이나 환자를 무리하게 이송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이 블로그에서 처음부터 외쳤는데 아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 누가 잘못한 것이냐고? 글쎄, 어리석은 행정가들은 물론 잘못했지만 침착하게 생각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 텐데, 그저 우왕좌왕했던 여러분도 잘못했다.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 p.292 관동대지진(1923년 9월 1일) 때,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든지 방화했다는 유언비어에 의해, 또 그것을 그대로 믿고 보도한 신문이나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탄압한 관헌에 의해, 폭도로 변한 일본인이 6,000명이 넘는 조선인을 학살한 사실을 대체 얼마나 기억하고 그것을 젊은 세대에 전해왔는가. --- p.2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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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후쿠시마 통신 ‘모노디아로고스’
이 책은 스페인 사상사 교수였던 사사키 다카시가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정부의 행정 편의주의적인 피난 지시를 거부하고 치매에 걸린 아내와 함께 자택 농성을 벌이며 하루하루 써내려간 치열한 고투의 기록이다. 저자가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연재해오던 블로그 ‘모노디아로고스’(스페인 사상가 우나무노가 만든 말로 ‘독백’을 뜻한다)에 실린 글 중 원전사고와 관련된 내용만을 추려 단행본으로 묶었다. 이 책은 단순한 재난수기가 아니라 국가적 대재앙에 맞선 한 개인의 깊은 고뇌와 사색이 오랜 연륜에서 묻어나는 유머와 곁들여져 국가의 역할, 국가와 개인, 인간의 자유와 존엄에 대한 문제를 비롯해 대재앙을 대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인간답고 안전한 삶은 어떤 것인지 같은 묵직한 물음들을 그들만의 일이 아닌 우리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하는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3·11 사고 이후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온 수많은 원전 관련서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저자 자신이 재난지역에서 직접 겪은 일들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 책에는 2011년 3월부터 7월까지의 상황이 집중적으로 담겨 있어 사고 직후 현장에서 들려온 육성을 통해 원전을 둘러싼 문제들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한국어판에는 2011년 7월 14일 이후 2012년 12월까지의 상황이 추가로 더해져 재난 이후 지역을 재생시키기 위한 여러 노력들도 엿볼 수 있다). 또한 대표적인 디아스포라 작가 서경식의 해설과 사진가 정주하의 재난현장 모습들이 곁들여져 일본 상황에 대해 잘 모르는 다수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나는 방사능에서 도망가지 않는다!" 미증유의 지진과 쓰나미라는 심대한 자연재해의 여파로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이 폭발하자 일본 정부는 폭발 지점을 중심으로 20킬로미터 권역, 30킬로미터 권역을 설정하고 옥내대피지역, 자발적 피난지역 등을 지정했다. 저자가 속한 미나미소마 시 하라마치 구는 원전에서 25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처음에는 옥내대피지역이었지만 지역주민 3만 명 중 80퍼센트가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자발적 피난생활을 택했다. 아직 방사선으로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이동하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내돌려지다 사망하는 환자나 노인들이 사고 후 일주일 만에 40~50명이나 생겼다. 게다가 저자의 장모가 다니던 노인시설을 관할하는 병원에서는 간병인도 없이 이리저리 내돌려진 환자가 몇십 명이나 죽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 저자는 "그 누구도 아무 말도 안 하지만 이거 명백한 과실치사에 해당하는 범죄 아닌가?"라며 정부와 시의 안이한 조치에 분노하면서 98세의 노모와 치매에 걸린 아내, 아들 내외, 두 살배기 손녀와 함께 피폭이 두려워 도망가기보다 남는 쪽을 선택한다. ‘한 사람의 잔류자로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리고 싶다’는 생각과 평소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었지만 이런 비상시국에서는 정부의 발표를 억지로라도 믿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해안선에서 700미터 정도 떨어진 자택은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면했고, 전기와 수도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당장 큰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진짜 재해는 집 안에 남기로 결정한 뒤부터 일어나기 시작한다. 시내의 병원이나 노인시설은 환자나 고령자를 원전에서 30킬로미터 권역 밖의 시설로 이송했다. 환자인 친구도 마을에서 10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체육관으로 대피해서 힘든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집도 멀쩡하고 전기도 수도도 다 나오는 상황에서 건강한 사람들까지 마을을 떠나 저자의 자택 근처는 순식간에 ‘육지의 고도’로 변해버렸다. 지원물자를 실은 트럭은 피폭된다는 ‘소문’이 두려워 마을로 들어오지 않는다. ‘식료품이나 생활필수품이 바닥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마을의 필요한 병원이나 편의시설들은 문을 닫았고 우편업무 또한 엉망으로 꼬여 머릿속 ‘순간온수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일이 잦아진다. 행정당국의 어리석은 결정에 따른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들도 예외가 아니다. ‘30킬로미터 라인의 저주’에 걸려 방사선 수치가 비슷한데도 멀쩡하게 걸어서 갈 수 있는 학교 건물을 놔두고 멀리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가 하면, 후쿠시마 시나 고리야마 시의 초등학교에서는 창문을 꼭꼭 닫아 푹푹 찌는 교실에서 창 쪽이 방사선량이 높기 때문에 평등하게 하려고 매일 줄을 바꿔 앉는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창문을 열어도 방사선량은 똑같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는데,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 부모들에 대한 배려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정부가 다시 계획적 피난구역과 긴급시 피난준비구역을 설정해 기존의 피난구역을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했다. 졸지에 긴급시 피난준비구역에 속하게 된 저자는 환자나 어린이, 임산부 등이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방침에 크게 분노하기에 이른다. 예컨대 공무원의 대응은 이런 식이다. "시청 직원에게 후쿠시마 시나 고리야마 시는 여기보다 항상 세 배 정도 방사선치가 높은데, 왜 미나미소마 시만 긴급시 피난준비구역으로 지정해서 여러 가지 불편을 겪게 하느냐고 다그치자, 그쪽을 피난구역으로 지정하면 여기보다 몇십 배의 시민을 이동시켜야 하고, 그렇게 되면 얼마나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되는지 모르느냐며 오히려 상대방이 더 화를 냈다고 한다." 재해현장에서 더욱 빛나는 귀중한 사색들 게다가 이 모든 일보다 더 중요하고도 시급한 일은 치매 걸린 아내의 순조로운 배변이다. 하여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저자는 말한다. "산다는 것은 자신의 소설을 쓰는 일이며,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치매에 걸려 의사소통도 거의 불가능하고 매일 아기를 돌보듯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산책을 시키는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지만 저자는 그런 아내가 있어 오히려 ‘영혼의 중심’을 낮게 유지할 수 있으며 이상한 용기와 안정감을 얻는다. 서구 기독교 사상에서 말하는 종말론은 영어, 프랑스어 등에서는 에스카톨로지eschatology, 분뇨담은 한 글자를 뺀 스카톨로지schatology라고 쓰는 반면, 스페인어로는 종말론도 분뇨담과 마찬가지로 ‘eschatology’라고 쓴다는 저자의 말대로 "똥과 된장이 같고", 성聖과 속俗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는 또한 이번 참사를 계기로 ‘국가/나라’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이런 성찰을 하기에 이른다. 우리에게 ‘나라’는 현 정부도 지금의 행정당국도 아니다. 우리에게 참된 ‘나라’는 선조들의 영혼이 숨 쉬는 이 아름다운 대지(일부러 국토라고 하지 않는다)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일본 ‘국가’는 이 아름다운 해안선을 ‘원전 긴자銀座’[긴자: 도쿄의 상징적인 번화가]로 만들었다. 즉, ‘국가’에는 언제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참모본부의 작전지도에도, 이번의 20킬로미터 권역, 30킬로미터 권역에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라’는 이번에 지진·쓰나미라는 심대한 자연재해를 입었다. 이것은 인재의 부분도 있지만 결국은 자연재해다. 그러나 원전사고는 명백하게, 어떤 변명도 공허하게 들리는 분명한 인재, 국가 에너지정책이 빚어낸 틀림없는 인재인 것이다. (68~69쪽) 그 밖에도 70년 이상을 살아온 노인답게 삶의 지혜가 묻어나는 행복론을 설파하기도 한다. 더 본질적인 것을 말하자면, 이렇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체의 슬픔, 즉 인간 존재의 ‘원原비극’을 잊어서는 진정한 행복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슬픔이나 고통을 견뎌내고, 그 의미를 알았을 때 맛보는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이다. (296쪽) "나락의 밑바닥에서 보면 진실이 보인다!" 저자는 3·11 사고 이전부터 원전에 대해 절대 반대를 주장해온 인물이다. 그의 고향인 도호쿠 지방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중앙의 수탈 대상이었고 원전사고 이후 피해 지역민으로서 엄청난 고통과 분노, 슬픔을 겪고 나서는 과거 일본의 침탈로 끔찍한 고통을 당한 동아시아인들, 특히 조선과 중국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 또한 일본 내 디아스포라 같은 존재라고 느낀다. 그래서일까. 자택에 인터뷰차 처음 들른 서경식을 보자마자 마치 이복형제를 만나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고백한다. 이번에 서경식 씨와 만났을 때 느낀 그 친밀감은, 내가 현재 놓여 있는 상황이 어딘가 재일조선인의 상황과 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즉, 이번 대지진, 특히 원전사고로 초래된 정신적 위상이 재일조선인의 그것과 너무나 닮은 것에서 오는 친근감은 아닐까. 서경식 씨는 디아스포라(이산자)라는 말을 본인의 사상적 키워드 중 하나로 삼고 있다. 바꿔 말하면 뿌리째 뽑힌 사람들(데라시네d?racin?)이다. 물론 나 자신은 디아스포라가 되는 것, 데라시네가 되는 것에 저항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작은 상황에서의 저항이고, 다른 각도에서, 즉 높은 곳에서의 시각으로 보면 나 역시 한 명의 디아스포라에 지나지 않는다. 다소 거친 표현을 써서 ‘나락의 밑바닥’이라고 한 것도 그것과 관계가 있다. 아니 더 거시적인 관점으로 보면, 도호쿠 그 자체가 근대 일본 발전사에서 늘 디아스포라의 위치에 있었다고 해도 좋다. 부국강병 시대에는 인신매매까지 개입한 노동력 제공지로서, 그리고 GNP 세계 2위 시대에는 그것을 유지하는 전력에너지 공급의 거점으로서, 끊임없는 수탈 대상이었다. (251~252쪽) 일본보다 원전의존율이 높은 한국에 보내는 재난 체험자의 호소 저자는 전시戰時와 다를 바 없는 재난현장에서 독자들에게 힘주어 당부한다. 원자력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이래, 인류는 늘 파멸의 위험에 노출되었다. 상자를 서둘러 닫고, 이후에는 절대로 열 수 없도록 봉인하는 것은 이제는 불가능한가. 전문적인 지식 없이 하는 말이지만 원자력의 조작, 그 유지·관리에 절대적인 안전성 따위는 도저히 무리인 이상, 시급히 봉인하는 방향으로 예지를 결집시켜야 하는 것은 아닌가. (107쪽) 또한 이 땅에서 계속 살아가야 할 젊은이들에게는 (가짜) 분교 교장의 개학식 인사말을 대신해 이렇게 호소한다. 세상의 잘못된 일, 부정한 일에 대해 정당하게 분노하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착하게 살아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인간이 되라는 말은 들어왔겠지만 필요할 때 화를 내라는 소리는 처음 듣겠지요. 그러나 저는 이 정당하게 분노하는 것이 이 나라를 좀더 나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부정이나 잘못된 것에 대해 그때그때 확실하게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태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때는 분노의 소리를 높여주세요. 구체적인 반대운동에 투신하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특히 고등학생인 여러분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좋은 곳에 취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이해력 ·판단력을 키우기 위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190쪽) "내 삶이 계속되는 한, 내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계속 분노할 것이고, 그 정당한 분노를 에너지 삼아 끝까지 꿈을, 희망을, 이상을 이야기할 것이다"라는 저자의 다짐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독자들로 하여금 실로 많은 것들을 스스로 성찰해보게 하는 소중한 계기를 제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