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추천사
추천의 글 _ 레이 오틀런드 감사의 글 시작하며 1장 _ 복음에 눈뜨는 것이란 무엇인가? 2장 _ 철저한 깨어짐 3장 _ 새로워진 사랑의 감정 4장 _ 복음에 눈 뜬 예배 5장 _ 과도 영성으로부터의 해방 6장 _ 영적 바이오리듬 7장 _ 복음에 의한 성화 8장 _ 우울증 9장 _ 복음이 주는 자신감 10장 _ 복음에 눈을 뜬 교회 11장 _ 바라보고 바라보라 마치며 추천 도서 주 |
Jared C. Wilson
제라드 C. 윌슨의 다른 상품
|
‘복음에 눈뜨다’와 비슷한 표현이 많이 있다. 그 개념은 내가 만들어 낸 게 아니다. 그러나 그 뜻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복음에 눈뜬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더 끔찍하게 사랑하며 그분의 능력을 더 진하게 맛보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 정의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불러온다. 무엇보다 더 끔찍하게 사랑하고 무엇보다 더 진하게 맛보라는 말인가? 대답은 ‘사랑하지 않을 때보다 더 사랑하고, 맛보지 않을 때보다 더 맛보라’는 것이다. 아울러 나는 예수님을 영접해서 구원을 받는 것과 복음에 눈뜨는 것을 구분해서 이야기했으므로, ‘이전보다 더 깊이 사랑하고 맛보라’는 뜻도 될 수 있다.---p.35
그리스도인 중에는 (이 글을 읽는 독자를 포함해서) 번개처럼 한순간에 번쩍하고 복음에 눈을 뜨는 게 아니라 서서히 눈을 뜨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과 상관없이 복음을 더 깊이 깨닫는 순간이야말로 성령에 의한 성화의 역사이자 복음의 참맛을 느끼는 순간이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6). 정말로 은혜 위에 은혜이고 계시 위에 계시이며 축복 위에 축복이다. 영적인 도약이 순간적으로 일어날 때, 그 겹겹의 은혜는 어두운 극장에서 대낮의 환한 거리로 걸어나가는 것과 흡사하다. 영적인 도약이 서서히 일어나는 경우는 아침에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과 비슷하다. 모두 다 빛의 축제다.---p.46 예수님의 복음이 대단하다는 것은 바로 그런 점이다. 복음은 모든 인간의 만능열쇠다. 의학은 그런 효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척추 디스크 환자에게 백혈병 약을 처방하지 않고 위장병 환자에게 무좀약을 주지 않듯이 병에는 그에 상응하는 치료제를 처방해야 한다. 증상이 다르면 치료도 다르다. 반면에 복음은 그렇지 않다. 모든 증상을 전부 치료한다. 복음의 말씀에는 부활의 능력이 있다.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부자든 빈민이든, 천재든 바보든, 건강한 사람이든 병자든, 악인이든 선인이든 상관없이 복음은 믿는 사람을 모두 구원할 능력이 있다. 복음이 모든 것의 해결책이다.---p.112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사람은 거룩한 장소와 덜 거룩한 장소를 구별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설거지거리를 팽개치고 전도 현장으로 달려가는 게 아니라 주님의 주권 아래 설거지를 끝마치는 일이다. 복음에 눈뜬 사람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예배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무슨 일이든 감사와 기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성육신의 끝없는 메아리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매 순간이 성찬의 순간이 되게 한다. 영적인 것을 일상 속에 주입하고, 일상을 영적인 것처럼 취급한다. 싱클레어 퍼거슨은 우리가 “평상시에 하는 일을 영적으로 하고 영적인 일을 평상시처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p.142 “복음에 눈뜨다”는 말도 기발해 보이는 것일 뿐, 특별한 표현이 아니다. 아니, 복음의 능력을 알고 그 능력만을 의지하기로 한 사람들이 마땅히 다른 좋은 표현을 떠올리지 못해서 그 말을 사용한 것일지도 모른다. 복음의 능력과 신비를 아는 사람들이 입 다물고 가만히 있기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그것이 활력의 원천이고 주된 관심사니 당연한 노릇이다. 복음 외에는 마음을 사로잡는 게 눈 씻고 찾아도 없는 걸 어쩌겠는가. ---p.331 |
|
‘체험’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당신이 아직 만나 보지 못한 ‘리얼리티’ 복음 이야기 복음과 눈뜸 저자는 이 책에서 복음과 눈뜸에 관해 이야기한다. 복음에 눈뜬다는 것은 복음의 능력을 각성하여 믿음으로 얻은 구원을 깊고 충만하게 느끼고 인식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고루 갖추지 못한 삶, 즉 복음 없는 눈뜸은 육체의 본성을 따르게 하고 눈뜸 없는 복음은 종교적 습관에 매이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철저하게 분리하며 살았다. 교회 밖에서는 복음 없는 눈뜸으로, 교회 안에서는 눈뜸 없는 복음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살고 있는 우리다. 그리하여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무기력과 쇠락, 우울증에 빠져 살고 있다. 그러한 우리가 해결해야 할 다급한 문제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복음에 눈뜨는 것’이다. 복음을 오롯이 느끼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라. 당신의 차가 내리막길을 내려오다 시동이 꺼지는 바람에 기찻길 건널목 한복판에 멈춰 섰다. 다시 시동을 걸어서 그곳을 빠져나오려는데, 저 멀리 모퉁이를 돌아 달려오는 기차가 보인다. 기관사가 황급히 기차를 세우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너무 당황한 당신은 꼼짝도 할 수 없다. 그런데 당신을 뒤따라오던 운전자가 당신의 차를 건널목에서 밀어내고, 그가 대신 기차와 충돌하고 말았다. 얼굴도 모르는 그가 당신 대신에 희생물이 된 것이다.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던 당신은 당신 몰래 당신의 차 트렁크 안에 숨어 있던 막내아들을 발견하게 된다. 황급히 트렁크를 열어 막내아들의 안전을 확인한 당신은 얼마나 큰 참극이 벌어질 뻔했는지를 깨닫고는 정신이 아찔해진다. 그리고 당신 대신 죽은 이에게, 세상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이것이 바로 복음에 눈뜬 이가 느끼는 감격이다. 복음을 제대로 알고 싶은 성도들의 필독서 1-2장에서 저자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먼저 정의하고, 복음에 눈뜨는 것이 거듭남이나 구원의 확신과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3-9장에서는 복음에 눈뜰 때 경험하게 되는 개인적 변화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샘솟는 기쁨, 깊어지는 예배, 참된 의로움과 자유와 안식, 우울증 극복, 자신감 회복 등을 이야기한다. 10장에서는 신앙 공동체가 복음에 눈뜨는 것을 경험해야 함을 주장하고, 11장에서는 복음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며 묵상하도록 안내한다. 아울러 복음에 눈뜨는 과정을 경험한 이들의 간증문이 각 장마다 수록되어 있어, 더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복음 오늘날의 교회는 복음을 하나의 ‘문화’로 전락시켰고, 그 결과 하나님과의 관계나 제자도, 영혼 구원에 아무런 감흥과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과 무기력의 나락으로 빠져 버렸다. 그래서 이 책은 복음의 깊이와 능력을 깨닫고 사로잡히려면, 누구나 ‘눈물 콧물 쏟으며 깨져 봐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것이 제대로 된 예수 믿기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옛사람인 자아가 죽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눈뜸’의 자리로 나아오라. 십자가 복음의 진면목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자 대상 ㆍ복음의 참 의미와 능력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싶은 그리스도인 ㆍ더 깊은 신앙적인 성숙을 갈망하는 그리스도인 ㆍ회개했음에도 또다시 짓는 죄 때문에 갈등하는 그리스도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