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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문
제1장 도잠의 시대 1. 중원 사회의 대동란과 북방 인사의 남천 2. 동진 건국 후의 외우내환 3. 각종 모순이 교차하는 가운데 진·송 왕조가 교체되다 제2장 도잠의 가세와 생애 1. 선세의 연원 2. 가운의 성쇠 3. 평생의 경력 제3장 시대사조와 학술 환경 1. 유가 경학의 학술적 연변 2. 현학의 분화 및 역사적인 작용 3. 도·불사상의 변천 및 그 사회 영향 제4장 도잠의 자연관과 인생철학 1. 소박한 유물주의 자연관과 무신론 2. 유교와 도교를 아울러 종합한 자연 본성론 3. 도법자연에서 귀근숙명의 자연 명정론으로 돌아가다 4. 천명을 즐기고 명을 아는 인생 가치관 제5장 도잠 시문의 사상 함축 1. 실로 궁하게 뜻을 지키는 강직한 품격 2. 국운에 관심을 가진 비분의 토로 3. 전원으로 돌아가 은거한 모순된 심경 4. 평민 생활의 진솔한 감정 5. 도원 풍격의 사회 이상 제6장 도잠 시문의 예술 풍격 1. 평담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순박한 시풍 2. 풍부하고 다채로운 예술 경계 3. 후인의 평가 및 영향 맺는말: 도잠의 사상 평가에 대한 총결 도잠 연표 참고문헌 저자 후기 찾아보기 |
李錦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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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잠(陶潛, 365~427)
중국 남조(南朝)의 동진(東晉) 말기부터 송(宋) 초기에 걸쳐 활동한 중국의 대표적 시인이다. 자(字)는 원량(元亮)이고 이름은 연명(淵明)이었는데 동진이 망하고 송나라가 들어서자 잠(潛)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문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놓고 스스로 오류(五柳) 선생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강서성(江西省) 구강현(九江縣) 시상(柴桑)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는 동진 초기의 명장 도간(陶侃)이고 외조부는 당시의 명사 맹가(孟嘉)였다고 한다. 29세 때에 벼슬길에 올라 주(州)의 좨주(祭酒)가 되었지만 얼마 안 가서 사임하였다. 그 후 진군참군(鎭軍參軍)·건위참군(建衛參軍)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항상 전원생활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41세에 누이의 죽음을 구실삼아 팽택현(彭澤縣)의 현령(縣令)을 사임한 후 다시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즈음에 쓴 작품이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그의 시문은 기교를 부리지 않고 평담하여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중시되지 않았지만 당대(唐代) 이후는 6조(六朝) 최고의 시인으로 존중되었다. 당대(唐代)의 맹호연(孟浩然), 왕유(王維), 저광희(儲光羲), 위응물(韋應物), 유종원(柳宗元) 등이 도잠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양(梁)나라 종영(鍾嶸)은 『시품(詩品)』에서 “고금 은일시인(隱逸詩人)의 으뜸”이라 평하였으며 소명태자(昭明太子)는 『문선(文選)』에 9편의 시문을 수록하였고 『도연명집』을 편찬하였다. 시 외에 산문에도 뛰어나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도화원기(桃花源記)』 등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