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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며
1 안창호를 만나 기독교인이 되다 2 한인 최초의 캘리포니아대학생 3 상항한인감리교회 목사로 4 총회장으로 한인사회를 이끌다 5 다시 총회장을 맡다 6 3·1운동과 구미위원부 위원 7 한인사회와 함께 한 마지막 길 이대위의 삶과 자취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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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위는 1910년대 미주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지도자이다. 그는 숭실학당을 거쳐 캘리포니아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한 지식인이었으며,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을 마친 목사로 상항한인감리교회에서 15년 넘게 시무하였다. 동시에 교민단체인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를 여러 해 이끌었으며, 대도와 신한민보의 주필로 재직한 언론인이자 국문식자기를 발명한 발명가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주 한인사회에 기여한 이대위의 공헌은 널리 알려지지도, 제대로 평가 받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그는 미주 민족운동의 과정에서 한인사회의 지지를 끌어낼 야심이나 정치력·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의 궁극적인 관심은 고국의 독립이었지만, 미주에서 그는 단체장으로, 목회자로, 언론인으로 한인들의 단합과 권익보호에 진력하며 한인사회의 제반 실무에 직접 나섰던 인물이었다. 즉 그는 기본적으로 야심 있는 정치적인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대위와 함께 활동한 안창호·이승만 등은 정치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미주 한인사회에서 일정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각기 지지 세력을 기반으로 자금과 인력 등을 동원하며 독립운동을 주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위는 이들에 비해 지지 세력을 만들어내지 못하였다. 그는 목회자였고 봉사하는 지도자였다. 다른 지도자들은 야심과 정치력을 갖추었지만 그는 그러한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이대위는 이처럼 드러나지 않는 지도자였지만, 미주 한인사회를 이끈 커다란 대들보였다. 이 책은 이러한 이대위의 삶을 알기 쉽게 전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