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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
이충렬
유리창 2013.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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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top100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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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_ 탄생 100주년, 온전하게 복원한 김환기 전기

1부 화가가 된 섬 소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_ 1970년
귀향 그리고 가출_ 1932년
‘이과전’ 입선, 화가가 되다_ 1933~1935년
조선의 전통을 찾아라_ 1936~1937년

2부 화가의 길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_ 1937~1938년
경성 문화계에 이름을 알리다_ 1939년
조선의 정서와 특색을 찾아서_ 1940년
조선의 아름다움을 만나다_ 1941년

3부 변동림과 김향안
변동림_ 1942~1943년
김향안_ 1944~1945년

4부 백자의 아름다움에 빠지다
서울대 교수가 되다_ 1945~1947년
백자의 아름다움을 만나다_ 1948~1950년
피난지에서도 백자를 그리다_ 1951~1953년

5부 얻은 건 예술, 잃은 건 재산
돌아온 서울에서_ 1953~1956년
아! 파리_ 1956~1957년
마지막 승부_ 1958~1959년
교수는 화가의 길이 아니다_ 1959~1963년

6부 아, 김환기
미국 화단에 도전하다_ 1963~1965년
역경 속에서도 예술혼을 포기하지 않다_ 1966~1968년
그리움의 점화_ 1968~1970년
우주를 그리다_ 1971~1974년

김환기 연보
참고자료

저자 소개 1

한국 전기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전기 작가. 한국 문화·사회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의 삶을 되살리는 데 전념하고 있다. 치밀한 자료 조사와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인물의 궤적과 시대정신을 담아내 독보적인 전기 작가의 길을 개척했다. 1994년 『실천문학』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간송 전형필』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아, 김수환 추기경』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천년의 화가 김홍도』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등이 있다. 전기를 통해 한국 문화예술계 대표 인물의 생애를 발굴·복원한 공로로 제
한국 전기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전기 작가. 한국 문화·사회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의 삶을 되살리는 데 전념하고 있다. 치밀한 자료 조사와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인물의 궤적과 시대정신을 담아내 독보적인 전기 작가의 길을 개척했다.

1994년 『실천문학』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간송 전형필』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아, 김수환 추기경』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천년의 화가 김홍도』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 등이 있다. 전기를 통해 한국 문화예술계 대표 인물의 생애를 발굴·복원한 공로로 제3회 혜곡최순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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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3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490g | 153*224*30mm
ISBN13
9788997918072

책 속으로

“동양화에서는 자연을 그리며 자연을 배우지만, 서양화에서는 사람을 그림으로써 사람의 생각을 배웁니다.” ---p.36

목가구나 항아리를 사들이는 김환기를 보는 김향안의 심정은 착잡했다. 별다른 수입이 없는 처지에 전답을 팔아 돈도 되지 않는 목가구와 항아리를 사들이니, 생활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향안은 김환기를 사랑하는 만큼 그의 수집 생활도‘아름다움의 발견’으로 이해했다. 김환기의 골동 수집 취미를 예술적 성취를 위한 공부로 받아들인 것이다. ---p.155

그러나 김환기를 비롯한 신사실파 동인들은 절망했다. 전시회장에는 동료 화가들을 비롯해 문화·예술인들이 서운하지 않을 정도로 찾아주었지만, 그림은 한 점도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환기는 그림을 팔지 않겠다고 터무니없는 선언을 하고, 그림 가격도 붙이지 않았다. 화가는 그림 그리는 것이 생업인데 그림이 팔리지 않으니 살아낼 방도가 없었다. 특히 김환기가 아끼는 이중섭의 생활은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전시회에 대한 회의도 들었다. ---p.170

김향안은 작품을 구입해준다는 말에 귀가 번쩍했다. 1년 뒤 일급 작가 대접을 해준다니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환기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고개를 저었다. 드루앙은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그림을 돌려줬다. 김환기는 집으로 가면서 김향안에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후진국 작가라고 대접을 안 하는 것 같아.”
김향안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남편의 자존심을 이해했다. 어차피 예술은 남편의 몫이고, 생활은 자기 몫이라고 여겼다. 예술적 기질이 넘치는 소설가 김향안이지만, 자신의 꿈은 접은 지 오래다. 남편의 담뱃값을 구하는 것이 지금 그녀가 해야 할 일이었다. ---p.244

김환기는 11월 10일자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작품으로 돈을 만들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작품이 팔려야 한다. 예술가가 훈장질해서 먹고산대서야……. 그림이 팔리는 신바람 나는 사회는 아직도 많은 세월이 쌓여야 할 것 같다”고 허탈한 심정을 토로했다. ---p.266

국제 비엔날레는 출품작 반송 비용을 참가자 개인이 부담하는 게 관행이었다. 상파울루비엔날레 사무국은 1965년 전시가 끝나고 출품작 14점 중 상파울루현대미술관이 구입한 작품을 제외한 13점을 이듬해 배편으로 김환기에게 반송했다. 그러나 김환기는 경제난으로 반송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고, 거의 2년 동안 뉴욕항 세관 물류 창고에 보관되었다가 운송비와 물류 창고 보관비를 충당하기 위해 경매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290쪽

“김 화백은 뉴욕 생활 가운데 많은 과정을 거치는 실험 작업을 했습니다.〈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도 그중 한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특히 블루 일색으로 표현된 것이 동양화의 담채화를 연상케 하는 김 화백 근래의 역작 중의 하나입니다.” (김기창)---p.298

김환기가 침대에서 떨어져 의식을 잃었다는 것이다. 주치의가 병원으로 달려갔다. 김환기는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주치의는 의료보험이 없는 김환기의 재정보증을 섰으므로 병원에서는 보호자로 인식됐다. 주치의는 즉각 김향안에게 연락했고, 김향안은 혼이 다 나간 채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달려왔다.

---p.314

출판사 리뷰

탄생 100주년에 나온 ‘정본’ 김환기 전기

왜 김환기를 기억해야 하는가? 그가 한국 화단의 블루칩이어서가 아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기도 하지만, 추상미술에 우리 민족의 정서를 접목시켜 세계 화단에 당당하게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 백자에서 ‘평범한 위대함’을 발견했고, 그 민족적 아름다움이 곧 세계적 아름다움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화가였다. 그가 프랑스에 간 것은 선진미술을 배우러 간 것이 아니라 유럽의 화가들과 당당하게 경쟁하러 간 것이다. 그가 세계 미술의 새 메카 뉴욕에 간 것은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 ‘조선의 특색’으로 세계 화단과 한 판 승부를 보려고 간 것이다. 전 박물관장 최순우는 김환기에게 “불란서 물만 마시고 와도 모두 그림들이 홱 바뀌는데 수화 그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아서 나는 좋다.”고 했고, 김환기가 “기실은 불란서에 가서 내 개인전을 갖기 전까지는 그곳 작가들 그림에 물들까봐서 전람회 구경도 안 다니고 나를 지키노라 매우 애를 썼다.”고 실토했다. 그가 겨우 환갑 지난 나이에 사망하지 않았다면,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우뚝 섰을 것이다.

김환기 탄생 100주년이 되었지만, 김환기의 삶과 예술을 온전하게 복원한 전기가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전기 작가 이충렬이 대장정에 나서 김환기의 삶과 예술을 온전하게 복원했다.

김환기의 삶과 예술
김환기의 삶과 예술은 제1기 일본유학 시절(1927~1937), 제2기 안좌도/서울 시절(1937~1956), 제3기 파리 시절(1956~1959), 제4기 서울/뉴욕 시절(1959~1974)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1기는 화가 입문기이다. 니혼대학 미술부에 입학하면서 그림을 처음 접한 그는 도고 세이지, 아베 곤고 등이 설립한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에 들어가면서 추상미술에 빠졌다. 특히 프랑스 유학파 후지타 쓰구하루에게 감명받았다. 1935년 일본 화단의 2대 등용문 중 하나인 ‘22회 이과전’에 초입선, 정식 화가가 되었고, 이듬해 ‘23회 이과전’에 연속 입선하여 관심을 모았다.

제2기는 파란만장 격동기이다. 절대적 동반자 김향안과 결혼했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김용준, 길진섭, 정지용 등 우정과 예술을 나누던 벗들과 이별했다. 그러나 이 시절 접한 조선 고가구와 백자 항아리를 통해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며 ‘민족예술이 곧 세계적 예술이 된다’는 자신의 예술정신을 확립했다.
제3기 파리 시절은 도전과 좌절이다. 1956년 마흔세 살의 나이에 프랑스로 떠났다. 베네지트 화랑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지만, 파리는 동양인 화가에게 혹독했다. 김환기는 파리 생활 3년 만에 좌절만 안고 쓸쓸하게 귀국해 홍대 교수로 복직했다. 그러나 파리 경험을 통해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그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4기는 절정과 아쉬움이다. 서울에서도 미술의 새 메카 뉴욕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할 때 생을 마감했다. 가장 한국적인 작품소재를 반추상?추상미술로 표현한 것은 ‘조선인의 피’가 흐르는 김환기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가 김환기를 소중하게 기억해야 할 이유이다.

이 책에서 바로잡거나 처음 밝혀진 내용

1. 김환기의 탄생일은 1913년 2월19일(음력)이다. 김환기는 일기에 2월19일이 자신의 생일임을 여러 차례 기록했다. 이를 당시 양력으로 표시하면 3월26일이다. 2월27일로 알려진 탄생일은 바로잡혀야 한다. 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일은 이 책의 발행일인 3월26일이다.
2. 김환기의 일본 유학시절 교우관계, 인간관계 등을 상세하게 밝혔다. 이는 당시 함께 유학하던 김병기 화백(미국 생존)의 구술 기록과 직접 인터뷰를 통해 가능했다.
3. 김환기의 생질 서근배의 잡지 기고문을 발굴해 잘 알려지지 않은 가족관계 및 생활상을 소상하게 밝힐 수 있었다.
4. 김환기의 절대적 동반자 김향안의 변동림 시절에 관해 상세하게 밝혔다. 스무 살에 오빠 친구인 천재시인 이상과 결혼했고, 이상 사후 스스로 시골학교에서 유배생활을 한 것, 일본 시인 노리타케 가츠오를 통해 김환기를 만나게 된 것, 김환기와 결혼하면서 본래 김환기 아호이던 ‘향안’으로 이름을 바꾼 것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다. 이는 김향안을 인격을 가진 역사적 인물로 복원한 것인데, 김향안 이전 변동림의 삶을 부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김향안에 대해 잘못 알려진 내용(자유부인 운운)을 바로잡고 얼마나 헌신적으로 김환기를 내조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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