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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하귀중학원을 기억하며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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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구술자료 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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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주4·3 구술자료 총서 5권과 6권을 펴내며

1부 다시 하귀중학원을 기억하며
1. 우리가 하귀중학원 1회
2. 매형 덕에 하귀중학원에 2회로 들어갔어요

2부 4·3과 여성
1. 한 여성 후유장애자의 한(恨)
2. 4·3 장한 어머니상을 받다

3부 고향마을에서 살아남기
1. 경찰청 통신과에서도 근무해봤어요
2. 주정공장 운전수였죠
3. ‘변사(變死)’로 올린 부모님 사망신고서
4. 우리 예원동은 상귀리에서 수산리로 행정구역이 바뀌어부럿어요
5. 할머니 묘소를 찾아강 절을 허멍, “잘못했습니다” 하고 싶어요
6. 죽을 고비 넘은 것만도 서너 번
7. 북부예비검속유족회 회장입니다
8. 형님 이재만 검사와 이창우 경사를 말한다
9. 당시 믿을 건, 우리 집안뿐

제주4·3연구소와 제주4·3 구술자료 총서
주요 4·3 용어 해설
제주시 애월읍 지도
주요 제주어 용례
찾아보기

저자 소개

편자 : 제주4ㆍ3연구소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는 민간연구단체로, 제주4·3사건을 전문적으로 조사·연구해 4·3의 역사적 진실과 진상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통해 한국 역사의 올곧은 발전에 기여하고자 1989년 5월 개소했다. 이후 제주 공동체를 폐허로 만든 제주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운동에 앞장서왔다. 제주4·3연구소는 각종 국내외 학술대회와 토론회, 역사교실 등을 통해 4·3 관련 연구논문 및 자료집을 발간하고 있으며, 국내외 관련 자료 수집, 4·3 경험자들에 대한 증언채록 사업, 4·3유적 및 유물 조사 사업, 암매장·학살지 조사 및 유해 발굴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4월 03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548g | 153*224*20mm
ISBN13
9788946055384

책 속으로

억새 숲에서, 바다에서, 한라산에서, 행방불명된 사람들이 있었다. 억울한 죽음들을 목격했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엄혹하고 한 맺힌 세월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 말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을 더듬어낸 이들, 4·3의 기억만큼은 지울 수 없어 흑백 필름을 돌리듯 그 시대로 다시 돌아가 아픈 사연을 더듬어주신 이 땅의 어르신들께 다시 한번 깊이 머리를 숙인다. ---「서문」

그때 선생님덜…… 다 죽었어요. 역사 선생님은 4·3 때 지금 농협 쪽에서 창에 찔련 죽어불엇고……. 고성, 항파두리 출신 강 선생이라났는데, 그 선생 말고도 역사나 공민을 담당헌 사름덜은 뭐인가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부 알려주기 위허연(위해서) 문헌이나 책자덜, 심지어는 알기 쉽게 얘기허믄 마르크스·레닌주의까지……. 유물론, 유물사관 같은 걸, 이런 거는 대학교 4년 다녀도 못 들어볼 거예요. 그 정도였어요. 경허고 솔직히 말해서 데모도 많이 했어요. 4·3 나던 1948년……. 제주도에서 2·7사건 때, 그때 많이 했어요. 그 전에도 저 구엄에 가가지고 데모허다가 경찰관에 포위당해서 많이 검속되기도 했었죠. 그때 (데모) 헌 사름덜 거의가 형무소로 갔어요. ---pp. 17~18

지금 기억나는 일이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자운당에서 72명이 죽은 사건이고, 다른 건 무장대가 기습헌 사건이에요. 음력 11월 20일쯤이었어요. 이 날, 우리 동귀 공회당 마당에 사름덜을 전부 집합시키고 호명헌 거예요. 72명이 갔다가 한 일주일 만에 자운당에서 학살됐어요. 하귀1리 공회당 앞에서 2년 선배…… 이름은 말허지 않겠어요. 그 양반이 명단을……. 그 사름은 고성 사름이에요. 뻔히 아는 입장이니까 말허겠는데요, 전부 임의로 만들었죠. 그 근거가 어디 있어요? 그 명단……. 그걸 지금 밝히고 싶은데 제가 보면은 죄 없는 사름덜이 전부예요. 날고 기던 놈덜은 다 산으로 가불고, 양민만 남아 있다 다 당헌 거예요. ---p. 28

전기고문 허젠 허민 먼저 물을 먹여요. 전 물을 먹으민 전기 통허는 것을 아니까 안 먹으려고 발버둥치죠. 그러믄 주먹으로 턱을 그냥 냅다 갈겨요. 물을 안 먹는다고, 악질이라고 지랄지랄 허죠. 사실 물을 먹으민 창자가 땡겨서 미치는 거예요. 게니 엄지손가락 두 개에 전기선이 감아졍 손가락이 끊어지는 것 닮아도 그건 아픈 줄도 모르는 거예요. 하이고……. 그 전기고문을 제가 세 번 받았어요, 세 번. 이젠 이것이(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때부터 이상헨 게 집이 완 약도 먹고 뭣도 헤봣주만(해봤지만) 치료를 못 했어요. 이젠, 여길 봐요. 늙어가니까 20년 전부턴 영 손이 빙신이 됐어요. 손이 막 실렵고(차가워지고) 해요. 병원에서도 뭣이라고 못 해요. ---p. 48

나는 그때 트럭 조수로 해서 차에 군인덜하고 탔거든. 난 보젠도 안 헷는디 트럭은 높고 스리쿼터는 얕잖아? 길도 넓지 않으니까 자동차 두 대가 빨리 가진 못허거든. 스리쿼터는 동으로, 우리 셋아버지네를 태워서 동으로 가고, 우린 농업학교로 올라갈려면 남문통 쪽으로 헹 올라가게 돼 있거든. 경 헤신디 차에서 보니까…… 스리쿼터가 서쪽에서 오는디 우리 셋아버지네 둘허고 여덟인가 아홉이 탔어. 그때. 경찰관 경위 하나 타고 순경이 둘인가 셋인가 칼빈총(카빈총) 뚜러메고(둘러메고) 탔더구만. 난 아, 이거 동네사람이고 허니까 어디 바람 쐬러 나가는가 이리 단순하게 생각했거든. 집에 와서 보니까 화북 가서, 그날 저녁 쏘아불엇다는 거라. ---pp. 105~106

그렇게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6·25 일어나는 날 저녁에 붙잡혀 갔어요. 그 후 우리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제가 열네 살 땝니다. 저는 제주중학교 1학년, 제 동생이 열한 살, 큰 누이동생이 여덟 살, 우리 막내가 네 살 때였죠. 자, 보십시오. 이 사름덜이, 이 아이덜이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거예요. 어떻게 살아졌는지도 모르겠어요. 저희들은 졸지에 빨갱이 자식들이 된 거예요. 정말 죽도록 싫었어요. 그날 밤, 경찰관 대동허고 온 김○진이……. ---p. 124

우리 북부예검에는 사실 절반이 수장 유족이에요. 자료나 증언이 다 나왔잖아요? 주정공장허고, 제주경찰서에 수감됐던 사름덜 중 절반은 정뜨르 비행장에서 희생됐고, 또 절반은 산지 부두에서 배에 태와(태워)가지고 나가서 수장시켰다는 거……. 뭐, 결국 이 수장된 유해가 대마도 바당으로 간 거니 당연히 우리 북부예검 유족덜이 대마도를 가봐야죠.

---p. 210

출판사 리뷰

제주4·3 사건 65주년, 살아남은 사람들 33명의 목소리를 담아낸 증언집

정부는 2000년 1월, 「4·3 특별법」이 공포됨에 따라 4·3 진상조사에 착수해 2003년 10월 15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작성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를 확정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의 보고서 채택에 따라 2003년 10월 31일 제주도를 방문해 국민들에게 ‘과거 국가 공권력의 잘못’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지금 다시 한번 제주4·3을 끄집어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이 책은 우리가 풀어내야 할 과제인 제주4·3 사건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일 것이다. 구술자료는 구술자의 기억에 의존한다는 한계가 분명 존재하지만, 한편으로는 구술자의 실제 경험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더 구체적이고 생생한 진실을 발견할 가능성 또한 높다. 구술자들 사이에 엇갈리는 진술조차 새로운 역사적 사실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통로다. 이번 총서는 앞서 출간된 총서에 이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4·3사건의 퍼즐 조각을 생존자 구술을 통해 맞춰나갈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 제주4·3 사건!
‘빨갱이가 되어버렸던’ 사람들, 고통의 기억을 재생하다


“제가 보면은 죄 없는 사름덜이 전부예요. 날고 기던 놈덜은 다 산으로 가불고, 양민만 남아 있다 다 당헌 거예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6·25 일어나는 날 저녁에 붙잡혀 갔어요. 그 후 우리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 저희들은 졸지에 빨갱이 자식들이 된 거예요.”
“‘눈 감으라 사건’ 아시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사름덜을 학교 마당에 다 집합시켠 눈 감으렌 해두고 손가락질 시킨다? 경헨 손가락질 받은 사름은 잡아강 총살헤분다(총살해버린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4·3은 흔히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으로 불리며, 오늘날 제주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질곡과 갈등의 시원(始原)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다. 4·3과 함께 민족의 분단이 촉발되었으며, 이를 통해 남한 사회의 야만적인 빨갱이 배제와 배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4·3의 역사적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4·3에 대한 역사적 조명과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4·3은 오랜 기간 금기의 역사였고, 4·3과 함께 시작된 한국 사회의 모순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4·3을 몸으로 겪은 이들마저 사라지고 있다. 4·3 체험자의 대부분이 노령의 나이로 인해 세상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니면 누구도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4·3은 우리에게조차 낯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 책은 시대가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채 앗아간 역사를 생생히 전달한다. 너무나도 무거웠던 세월을 안고 살아온 4·3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대량 학살’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장면을 다시 불러낸다.

제주 방언 그대로, 사료적 가치를 높이다

이 책 『다시 하귀중학원을 기억하며』는 제주4·3연구소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진행한 ‘제주4·3 1,000인 증언채록 사업’의 결과물 중에서 제주시 애월읍에 거주한 4·3 생존자 33명의 구술을 정리해 엮은 것이다. 앞으로도 제주의 지역별로 총서 출간이 이어질 예정이다.
이 책은 특히 하귀리에 거주했거나 하귀중학원 출신인 생존자들의 증언을 모았다. 하귀중학원은 1945년 10월 15일 고등교육을 목표로 개원한 제주도 최초의 교육기관으로, 당시 중학교 설립 인가를 받지 못한 단계에서 애월읍 마을 유지들과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세워졌다. 이 책의 구술자들은 당시 하귀중학원의 교육 내용에 ‘사회주의 사상’이 담겨 있었으며, 이 때문에 다수의 교사와 학생이 ‘빨갱이’로 지목돼 학살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 책은 65년 전에 일어난 비극, 제주4·3 사건을 그들의 말인 제주 방언을 그대로 살려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서는 사료로서의 가치를 한층 높였다. 이는 제주에서조차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기록·보존하는 한편, 제주4·3 당시의 상황을 그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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