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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과 美國
Theodore Roosevelt의 對韓政策 Shufeldt 提督과 1880年의 朝·美 交涉 李朝末期(1834~1905)에 있어서의 韓國과 美國 李朝末期(一八三四年~一九?五年)における韓?とアメリカ 三·一運動에 있어서의 民族自決主義의 導入과 理解 歐美 諸國에 대한 通商修好條約 締結 미국대통령에 대한 斷想 恣意의 支配를 싫어한다-죠오지·워싱턴과 美國革命의 敎訓 몬티첼로 링컨, 연방, 노예제도 윌슨, 弱小民族解放에의 憐憫 루즈벨트大統領의 뉴·디일政策 미국인의 가치관 아메리카的 思惟와 民主主義 外國人의 美國觀과 美國人의 反應 美國史와 美國人의 價値 프래그머티즘과 미국인의 생활양식 치부(致富)의 윤리 제국주의 美國 極東政策의 歷史的 變遷―門戶開放 政策을 中心으로 아프리카分割 顚末記 帝國主義 硏究의 새로운 動向 帝國主義의 本質과 影響에 對한 諸論議 論評 回顧와 展望_1 回顧와 展望_2 回顧와 展望_3 回顧와 展望_4 書評 The American Democracy: A Commentary and an Interpretation American Diplomacy, 1900~1950 The American Political Tradition and The Men Who Made It Booker T. Washington and W.E.B.Du Bois 『미국 대외정책사』 Diary of a Contraband Recovering the Past: A Historian’s Memoir American Creation: Triumphs and Tragedies at the Founding of the Republic A Story of Neutrality and Neglect A Comment on the two papers about Thomas Jefferson 학회 활동 韓國아메리카學會의 動向 歷史學會가 걸어온 길 學會의 草創期를 回想하며 한국 아메리카학회와 나 서양사연구의 회고와 전망 역사학회 창립 60주년 기념회 회고담 |
李普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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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國史 개척자가 기록한 90년 세월
2013년 3월 24일, 又庵 李普珩 선생이 90회 생신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여 평생 쓰신 글을 모아(단행본 제외) 3권의 책으로 펴냈다. 선생은 해방 이후 척박한 연구 현실에서 한국 역사학의 초석을 놓은 선구자 가운데 한 분이다. 특히 전인미답의 불모지였던 미국사 연구를 개척하고 한국 아메리카학의 정초를 다졌다. 일제 시대 관동군으로 끌려가 소련에서 포로 생활을 경험한 선생이 미국사를 전공하게 된 것은 선배이자 스승인 조의설 선생의 조언이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하신다.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가 되려면 미국과 러시아를 잘 알아야 하는데 러시아사는 북한에서 하는 사람이 있을 터이니, 자네는 남쪽에서 미국사를 전공하는 게 좋겠다’라는 권고가 선생의 평생 화두가 된 셈이다. 미국사에 대한 선생의 관심은 가히 전방위적이다. ‘아메리카 혁명은 어떠한 혁명인가?’ ‘흑인 문제와 노예제도’ ‘미국 역사학과 역사학자들의 특성은 무엇인가?’ ‘한국(조선)·미국 관계의 전개와 본질은 무엇인가?’ ‘미국 대통령에 대한 연구’ ‘미국인의 가치관은 어떠한가?’ ‘제국주의 세력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연구’ 등 미국사의 거의 전분야를 망라하셨다. 그래서 자의반타의반 미국사 국제학술회의에 한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미국사 전공 교수로 참가할 수밖에 없던 때가 있었다고 회상하신다. 선생이 악전고투 속에서 씨뿌린 미국사는 이제 여러 대학에서 어엿한 역사 분과로 자리잡았고, 전문 교수진과 전공 연구자 상당수를 포괄하게 되었다. 선생은 또한 한국역사학회, 서양사학회, 미국사학회, 아메리카학회 등 관련 학회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시고 후원하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역사학회 창립회원으로서 거의 마지막 생존자인 선생은 한국 역사학의 산 증인인 셈이다. 선생이 친지와 제자들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구순 기념 찬집을 내놓는 이유도 한국 역사학의 초창기 기록을 남기시려는 뜻이 있을 것이다. 또 선생은 학문적 활동뿐 아니라 야구 매니아 겸 해설자로도 유명하다. 야구에 대한 선생의 열정과 지식은 초창기 한국 야구 발전에 하나의 밑거름이 되었다. 동국대 교수 시절 야구부를 창설하여 박봉을 털어가며 야구부를 육성한 이야기, 밤새워 미국 메이저 리그 중계방송을 듣다가 아침 강의에 지각한 이야기, 「주간야구」에 야구 칼럼을 2년 넘게 연재한 이야기에서 선생의 야구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선생은 음악감상과 예술에도 조예가 깊으시다. 감상 수준을 넘어 미수(米壽) 즈음 동인지에 「아가」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주변을 놀라게 하셨다. 이 작품은 『又庵餘話』 마지막에 실렸다. 학문과 공부의 길에서 한눈팔지 않고 나름의 업적을 남긴 학자들에게는 후학이나 제자들이 경사를 맞아 기념논총을 헌정하는 것이 우리 학계의 관례가 되었다. 선생은 제자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고 기념논총을 한사코 거절하셨다. 이번 구순을 맞아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발표한 글을 스스로 모아 자비로 출간하시는 것에서 선생의 성품을 잘 엿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