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제
서문 | 후한서 인물 이야기 유수_ 한나라 황실을 중흥한 자 유분자_ 목동 출신의 천자 외효_ 결단성 없는 북서쪽의 왕 공손술_ 마지막 적수 팽총_ 모반을 꾀한 공신 마원_ 전쟁터에서 전사한 군인 내흡_ 떳떳하지 못한 곳에서 죽다 등우_ 공신들 중 으뜸 오한_ 위엄 있는 자 구순_ 유수의‘소하’ 풍이_ 큰 나무와 같은 장군 가복_ 호랑이처럼 용맹한 자 마 황후_ 모범이 되는 황후 종리의_ 백성들에게 인애를 베푼 관리 경공 _ 전쟁의 신 두헌_ 연연산에 비문을 남기다 반고_ 역사계의 거목 반초_ 서역을 다스리다 등 황후_ 평생 섭정하다 양진_ 청백리 우후 _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자 장형_ 백과사전형 인물 마융_ 고귀한 인품을 가지지 못한 대유학자 정현_ 경학의 집대성자 이고_ 목숨을 버리고 의를 택한 자 양기_ 발호장군 진식_ 좋은 사람 진번_ 천하를 휩쓸 뜻을 품은 자 이응_ 천하의 모범 곽태_ 청담의 시조 범방_ 어머니를 영예롭게 만든 자식 두밀·하복·장검·가표외_ 참혹한 당고의 옥 이업·온서·조포 외_ 지조를 지킨 자 봉맹·주당·엄자릉 외_ 품행이 고상한 은둔자 환소군·맹광·왕패의 처 외_ 열녀전 |
|
중국의 5천 년 역사 속에는 수없이 많은 영웅들과 여걸들이 등장했었다. 또 수많은 문인들과 풍류를 즐기는 무리들이 생겨났으며 수차례의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중국 25사史 속에는 그들의 업적과 중국의 지나간 세월들이 고스란히 숨 쉬고 있다. 그것은 별처럼 아득히 먼 곳에 있으나 우리들의 기억과 그리움 속에서 선명하게 반짝이며, 소란스럽고 번잡한 현실 속에서 우연히 책을 펼치고 과거의 시간과 마주하고 있노라면 온몸을 감싸는 감흥과 꿈결 같은 깨달음이 다가온다. 이것이 바로 역사이다.--- 「서문」
유수가 적진에서 홀로 말을 타고 도망쳐오다가 셋째 누이를 만나 구했는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또 세 딸과 함께 도망치는 둘째 누나를 만나게 되었다. 유수는 그들을 불러 말에 타라고 했다. 그러나 한 필의 말에 어떻게 여섯 명이나 탈 수 있겠는가! 둘째 누나는 유수의 짐이 되기 싫어 동생에게 얼른 먼저 가라고 했다. 적병이 뒤쫓아오는 긴박한 상황에서는 피해가 더 적은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유수는 가슴 아프지만 먼저 도망쳤다. 결국 둘째 누나 모녀는 모두 해를 당했다. 이 일화는 유방의 이야기와 비교가 된다. 한 고조 유방의 경우, 도망가다가 자식들 때문에 마차가 빨리 달릴 수 없을 때마다 몇 번이나 그들을 마차에서 밀어버리려고 하였다. 지식인 출신이었던 광무제 유수는 문화적 소양이 풍부했다. ‘유학자는 나라의 보배’라는 이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태학을 순시하며 공묘에 제사를 올렸다. 유수가 유학자를 중시하고 격려했기 때문에 후한시대 군신들은 유학자다운 기상을 지니고 있었다. 백정, 도적, 무뢰배 출신으로 이뤄진 전한시대의 개국공신들과 비교하자면 천양지차였다. 문신을 장려하고 발탁하는 문치의 풍조 때문에 후한시대에는 강직하고 절개 있는 문인 대신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또 이 때문에 후한이 위기 상황이나 힘들고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무너지거나 멸망하지 않고 200여 년을 버틸 수 있었다.--- pp.28.29,46 「한나라 황실을 중흥한 자, 유수」 부부의 인연으로 18년을 함께 한 명제는 존경하고 사랑스러운 마 황후를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7세의 장제가 즉위하면서 마 황후는 태후 자리에 올랐다. 명제의 비와 귀인들은 모두 거처를 남궁으로 옮겼고, 사별에 슬퍼하는 마 태후에게는 여러 차례 하사품이 내려졌다. 이런 일은 지금 보기에는 인지상정 같지만, 총애를 받기 위해 독약과 사술, 모함이 난무하던 후일의 후한 후궁들과 비교한다면 상당한 의미가 있다. 마 태후는 후일 『명제기거주』를 저술하였는데, 저서에서 자신의 오라비인 마방 등이 중병에 걸린 명제를 치료하는 과정에 참여한 사실은 빼버렸다. 남들은 공이 없어도 봉록을 바라는데 마 태후는 공을 세우고도 봉록을 사양한 셈이었다. 장제는 그렇게 하는 것에 반대했다. “외숙부들께서 아침저녁으로 1년이 넘도록 곁을 지켰는데 표창은커녕 기록도 남기지 않는다니 너무 합니다.” 마 태후는 다른 의중을 내비쳤다. “저는 후세 사람들이 선대 황제께서 외척과 가까이 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을 기록할 수 없습니다.” 건초 원년(76년), 장제는 외숙부들께 작위를 봉하고자 하였지만 태후가 따르지 않았다.--- pp.245-246 「모범이 되는 황, 마 황후」 양기는 다시 질제를 세웠다. 즉위 당시, 질제는 8세에 불과했지만 남달리 매우 영리했다. 한 번은 양기가 항상 교만하게 전횡을 부린다는 사실을 알고 조정 회의에서 양기를 가리키며 이렇게 외쳤다. “저 자가 바로 발호(跋扈: 권력을 휘두르며 횡포하게 굴다)장군이구나!” 어린 황제는 정곡을 찌르는 한 마디로 양기의 본질을 꼭 집어냈다. 양기는 황제의 말을 듣고 놀라며 매우 두려워했다. 아직 어린아이인데도 그 정도이니 자라면서 더 영민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는 질제를 그대로 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수하를 시켜 독이 든 구운 떡을 황제에게 먹였다. 질제는 떡을 먹고 세상을 떠났다.--- p.446 「발호장군, 양기」 기근이 발생한 어느 해, 진식의 집에 좀도둑이 들었다. 좀도둑은 천장 대들보에 숨어서 도망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진식은 그 사실을 눈치채고 침착하게 아들과 손자를 불러 정색을 하며 훈계를 했다. “사람은 말이다, 스스로 힘쓰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일부 불량한 무리라고 본성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니라. 저기 대들보 위에 숨어 있는 양상군자처럼 말이다.” 좀도둑은 그 말을 듣고 놀라서 내려와 진식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 강도를 ‘호한好漢’이라 부르듯, 그 후 좀도둑을 고상하게 대들보 위의 사람이란 뜻의 ‘양상梁上군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식이 기회만 있으면 자녀들을 가르치기 좋아하는 재미있는 어른에 불과하다고 여길 것이다. 진식은 좀도둑이 죄를 뉘우치자 너그럽게 위로했다. “보아하니 자네가 나쁜 사람 같지는 않네. 앞으로 반성하여 착하게 살도록 하게나. 도둑질을 하게 된 것은 다 가난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 진식은 그에게 2필의 명주를 내주었다.--- pp.459-460 「좋은 사람, 진식」 진번은 어릴 적부터 아주 게을러서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했다. 자신이 혼자 쓰는 방조차도 잘 치우지 않을 정도였다. 그가 15세 되던 해, 아버지 친구인 설근이 그의 집에 왔다가 어질러진 방을 보고 어른으로서 진번을 데리고 훈계를 했다. “얘야, 어찌해서 방을 치우지도 않고 어지러운 상태에서 손님을 맞을 수 있느냐” 진번은 예상 밖으로 놀랄 만한 말을 내뱉었다. “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천하를 휩쓸어야지, 어찌 방 하나를 신경 쓰겠습니까” 이 말에 대한 평가는 중국 교육 역사상 난제로 남았다. 혹자는 아이가 천하에 눈을 돌리고 큰 뜻을 품었다고 보았고, 혹자는 남을 속이기 위한 흰소리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설근은 즉시 그의 말에 반문했다. “방 하나도 쓸지 못하면서 어찌 천하를 휩쓸겠느냐” 어떤 평가가 정확한지는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다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2천 년이 지나도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 p.474 「천하를 휩쓸 뜻을 품은 자, 진번」 |
|
팩컴북스 인물열전 시리즈의 완결편!
『후한서』에서 선별한 후한시대를 이끌었던 인물들의 이야기!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남조南朝 송宋의 역사가인 범엽이 당시 전해지던 다양한 후한시대 역사서를 참고해 집필한 『후한서』는 지금까지 중국 고대의 4대 역사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범엽은 여러 책의 장점을 받아들여 문장을 정리했기 때문에 그의 『후한서』에는 역사적 사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갖추어져 있고, 인물 평가에서도 포폄이 올바르고 문장 표현도 훌륭한 장점이 있다. 그래서 당나라 때 사가 유지기劉知幾는 『후한서』가 ‘간결하면서 두루 미치며 과장이나 빠뜨림이 없다’고 평했으며, 남송南宋시대 학자 왕응린王應麟은 ‘범엽과 같은 사서를 지을 자가 천고에 몇 명이나 있을까’라고 격찬하였다. 현재 전해지는 『후한서』는 범엽이 지은 기 10권, 전 80권에다 서진시대 사마표가 저술한 8편의 지를 덧붙인 것으로 후한시대의 역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 후한시대는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명제와 장제 이후 줄곧 외척과 환관이 전횡하여 사회 전반에 문제를 야기했는데, 이에 유교적 교양을 갖추고 예를 숭상하는 관료 지식인들은 환관의 전횡에 대항해 두 차례에 걸쳐 당고의 옥을 치르기도 했다. 이 책은 이러한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둘러싼 인물을 중심으로 후한시대 40여 명의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 장의 시작 전에 주요 인물과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 키워드, 중대 사건, 고사가 있으며, 각 장 뒤에 나오는 〈후한서 들여다보기〉를 통해서 주제를 좀 더 쉽고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인물을 통해 역사적 사건을 관찰하고, 그것을 일목요연하고 간결하게 정리하였다. 원문의 맛을 살린 사실적 서술과 진리를 찾는 평가가 담겨져 있으므로 독자 여러분은 어려운 고문을 보지 않고도 원문을 읽는 기쁨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