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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서론 제1장 만주족의 씨족과 부락 1. 만주족 조상의 역사와 전설 2. 여진 3대 부의 상황 건주여진의 결집│해서여진의 연합│야인여진의 여러 부락 3. 부락의 혈연조직 할라와 무쿤│욱순과 보오 4. 부락의 지역조직과 생산조직 가샨│니루│타탄 5. 부락의 관리기구 부락장의 세습│부락장의 관계│부락장의 회의│부락장의 직능 제2장 부락에서 국가로 1. 사회경제의 발전 대외 무역│농업│수공업│가족단위의 경제 2. 계급의 형성 귀족│아하│주션 3. 해서 부락연맹과 성보의 출현 해서 4부의 등장│해서 부락연맹의 형성│성보의 축조 4. 한 권력의 강화 건주여진의 흥기│구추의 등장│양두제의 폐지│무쿤과 타탄 제도의 수립│5대신의 집정 5. 몽고문화의 영향 6. 니루와 구사 제도의 창설 니루의 개조│니루의 편제와 설치│니루 내부의 전통관계의 변화│니루에서 구사로의 발전 제3장 국가의 형성 1. 국가의 창건 2. 금국의 경제 3. 국가제도의 윤곽 의정회의│호쇼이 버일러│명 제도의 도입-무관과 도당- 4. 법률의 제정 수렵법│군사법│민법│행정법│형법│형벌│소송법│법률의 특징 제4장 천총 시기 금국의 제도 1. 경제의 발전 2. 국가제도의 변화 과두정의 폐지│명 제도의 모방│의정회의 3. 사법제도의 개편 수렵법│군사법│민사법│행정법│형법과 형벌│사법과 소송│결론 4. 사회조직의 다원화 5. 청조의 성립 결론 주석 참고문헌 여진·만주족 인명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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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네 부분으로 나뉜다. 1장에서는 원 말기부터 15세기 말까지 만주족 조상의 씨족 부락과 관리 기구를 설명한다. 이 시기는 만주족의 형성사에서 사료의 부족으로 연구가 가장 부족했던 부분이고 따라서 이 책에서 가장 많은 역량이 투입된 부분이다. 14세기 말 여진은 할라, 즉 씨족사회의 말기 단계에 있었으며 몇 개의 할라로 구성된 부락인 구룬도 등장했다. 그리고 건주여진 집단이 성장하면서 이러한 혈연조직의 특성이 해체되고 부락에서 국가로 발전해 가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2장은 1616년까지 니루와 구사의 편제 및 설치에 초점을 맞춰 만주족의 정치 군사조직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이 시기 누르하치는 씨족부락의 제도를 개조하고 몽골식 제도를 일부 수용해 이를 팔기와 의정회의로 정비한다. 3~4장에서는 청을 선포하는 1636년까지 팔기의 공동체제에서 일인 독점 체제로 변화하는 과정에 중점을 두고 국가제도의 변화를 고찰한다. 이 시기 홍타이지는 명의 제도를 받아들여 삼원과 여덟 아문을 설치하고 황제를 칭한다. 그 과정에서 팔기는 만주족만의 조직에서 다민족의 조직으로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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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밑그림인 청제국의 만주족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시각
제도사로 다시 쓰는 만주족의 역사 지리적인 범위에서 다민족 국가를 규합하는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현대 중국은 청淸이라는 유산을 바탕으로 근대를 거치며 이를 극복하고 동시에 계승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청제국의 뿌리는 금金을 거쳐 여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6세기 후반 누르하치에 의해 통일되기 직전까지 여진은 초기 국가 형태를 갖춘 일부를 제외하면 여전히 부족이나 씨족 단위로 흩어져 거주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원의 영향력이 사라진 14세기 이후 국가를 수립하지 못한 채 흩어져 살았던 변방의 여진이 어떻게 조선과 명의 혹독한 견제를 감내하고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재편할 수 있었을까. 나아가 여진을 구성했던 소수의 만주족이 거대한 중국을 정복한 이후 300여 년 동안 성공적으로 통치함으로써 현대 중국의 원형을 건설할 수 있었던 ‘기적’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청의 팔기제도와 현대 중국의 통치구조 사이의 연관성을 새삼 환기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만주족의 역사 과정을 파악함으로써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주요 현안들을 분석하고 그 미래를 예견하고자 하는 연구들은 중국은 물론이고 서구학계에서도 꾸준히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만주족과 팔기제도에 대해 많은 연구 성과들이 발표되었지만 만주족이 국가로 발전해 온 과정을 정작 제도의 측면에서 접근해 체계적으로 서술한 연구는 아직까지 없었다. 《여진 부락에서 만주 국가로》는 이러한 아쉬움에 중국 청사학계가 답을 한 연구서이다. 중국 청 연구사의 정점, 《여진부락에서 만주 국가로》 이 책에서 저자인 유소맹(류샤오멍)은 중국의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인 만주족이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씨족 부락제도의 기반 위에서 국가의 꼴을 갖추며 동아시아에서 굴기하는 시기의 여진을 제도사적인 관점에서 고찰한 성과를 정리했다. 특히 금을 경계로 여진과 청을 별개로 인식했던 기존의 시각에서 탈피해 여진의 역사를 연속선상에서 분석했다. 또한 중국 사학계에서 청 성립기를 연구할 때 적용해 온 마르크스의 역사발전단계론을 일정 정도 탈피했다는 점에서도 청 연구사에서 한 획을 그었다. 즉 이 책은 마르크스 사관에 입각해 청 초기의 사회적 성격을 분석하는 대일, 염숭년, 주원렴, 요념자, 정청정 등 청사 연구자들의 연구 방향에서 벗어나 ‘권력’과 ‘조직’이라는 정치사회학적 개념을 도입, 여진 시기 부락시대와 금 이후 국가설립기를 함께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이 책 또한 선배들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해 미시사적인 영역으로 들어서면 유물론적 사관의 흔적이 잔존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중국의 만주사와 청사의 패러다임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 문제작이자 기존 중국 청사학계의 한계 모두를 보여주는 중국 청사 연구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1995년 《만주족의 부락과 국가》라는 제목으로 중국에서 처음 출판된 이래, 2001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만주족 부락에서 국가로의 발전》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을 낼 정도로 꾸준하게 청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도서출판 푸른역사에서는 그 성과를 우리말로 옮겨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 바라보는 만주족의 역사 이 책은 만주족의 국가 형성 과정을 복원하기 위해 방대한 사료를 소환했다. 이에 따라 여진이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으로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는 어려움에서 벗어나 저자인 유소맹은 만문 사료는 물론 타국의 사료에까지 범위를 넓혔는데, 특히 이 책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자주 인용되는 조선 관련 사료들이다. 이 책의 1장과 2장, 즉 저자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는 여진사와 국가 형성 단계를 다룬 부분에서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사료의 대부분은 다름 아닌 《조선왕조실록》이다. 청사를 한국사에 편입시키는 식의 유사역사학으로 흐르는 위험에 대해서는 분명히 경계해야 하겠지만 한반도의 역사를 조망하고자 할 때, 그리고 청제국의 역사를 살피는 데 있어 만주족과 조선 간의 관계사가 주요한 실마리가 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멀리는 주몽이 고구려의 첫 번째 도성인 흘승골성을 건설한 곳이자 이만주가 건주여진의 근거지로 터를 잡은 오녀산성(지금의 요녕성 동북 방향)에서 시작해 누르하치가 피난 온 선조에게 구원병을 제안한 임진왜란 시기의 의주를 거쳐 만주족이 조선과 군신으로 관계를 재정립했던 남한산성에 이르기까지 만주족과 한민족은 동아시아사에서 긴밀한 역사적 관계를 이어갔다. 당장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의형제인 이지란 또한 여진족이었으며 이성계의 세력 또한 여진족의 집단 거주지였던 함경도 일대였다. 즉 조선의 기록 없이는 원의 몰락 이후 금의 성립까지 여진 및 청사에서 가장 역동적이었던 시기를 재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저자는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이 책을 완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