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피카소 월드 PICASSO'S WORLD
가장 도발적이고 창의적인 예술가 피카소의 삶과 예술 이야기 양장
미술문화 2013.05.02.
베스트
예술 top100 1주
가격
28,000
28,000
YES포인트?
840원 (3%)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상세 이미지

책소개

목차

서문

Section 1: 1881-1907
1881-98 비둘기, 투우, 신성한 주제: 피카소의 기원과 젊음
1899-1901 네 마리 고양이 카페에서의 모더니즘과 피카소의 파리 첫 방문
1902-03 “바르셀로나 블루스”
1903-05 서커스 인물과 어릿광대
1906-07 전통, 모더니즘, 퇴행:〈아비뇽의 아가씨들〉

Gallery 1 특별 문서, 사진 그리고 삽화

Section 2: 1908-1916
1907- 08 피카소, 원시주의와 마법: 입체주의의 시작
1908 -10 “세잔의 교훈”: 피카소, 브라크 그리고 입체주의를 향하여
1910-12 종이 붙이기: 콜라주, 파피에 콜레, 구성작품의 발명
1913 -14 “야생인”: 입체주의 조각의 브리콜라주
1915 -16 모더니티와 전통: 입체주의와 전쟁

Section 3: 1917-1928
1917 발레 뤼스: 〈퍼레이드〉, 장 콕토, 기욤 아폴리네르의 영향
1918-21 입체주의, 고전주의, 코메디아 델라르테
1920년대 초 몽상가, 독자, 바커스의 여사제: 피카소와 회화
1924-26 피카소와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 혁명』과 회화의 위기, 콜라주와 조각
1924-28 드로잉과 조각: 발레〈메르퀴르〉와 기욤 아폴리네르를 위한 기념비

Gallery 2 특별 문서, 사진 그리고 삽화

Section 4: 1929-1973
1929-32 비교 해부학: 〈정원의 여인〉
1933-37 폭력의 스펙터클:〈게르니카〉와 스페인 투우
1938- 48 고전주의, 죽음 그리고 마술적 변모
1942-61 피카소의 후기 조각
1951-73 과거 거장을 그리기: 전쟁과 평화, 삶과 죽음

피카소 작품목록 / 색인 / 출처

저자 소개 2

존 핀레이

관심작가 알림신청
 

John Finlay

미술사가. 1998년 피카소에 관한 논문을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뉴질랜드 웰링턴의 빅토리아 대학 대학원에서 강의와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덕성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서양미술사학회와 한국미술사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최근 냉전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 및 시각미술과 냉전 문화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공저로 『한국미술 100년 1』(2006), 『한국미술 1900-2020』(2021)이 있고, 「록펠러 재단의 문화사업과 한국미술계 (I)」(2019), 「아시아재단과 1950년대 한국미술계」(2019), 「록펠러 재단의 문화사업과 한국미술계 (II)」(2020), 「춘추회와 1960년대 한국현대미술」(2020)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정무정의 다른 상품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5월 02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88쪽 | 1168g | 225*285*20mm
ISBN13
9788991847989

책 속으로

피카소는 분명 카사헤마스의 죽음으로, 그리고 자신의 경력을 위해 친구를 버리고 파리로 돌아간 일에 대한 후회로 괴로워했고, 친구를 자살로 몰고간 바로 그 여인과 관계를 가진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졌다. 절친한 친구 카사헤마스의 죽음은 인류의 불행이라는 그의 비극적 세계관을 점차 가속화했고 과거와 현재의 카탈루냐 문화에 대한 향수에 젖으려는 피카소의 갈망을 증대시켰다. 카사헤마스의 죽음에 대해 숙고하면서 피카소의 팔레트는 점차 변화하였다. 그는 거의 완전히 푸른색으로 그리기 시작하여 하이메 사바르테스가 ‘바르셀로나 블루스Les Bleusde Barcelone’라고 불렀던 시기로 나아갔다. ---「chapter 2 1899-1901 네 마리 고양이 카페에서의 모더니즘과 피카소의 파리 첫 방문」

피카소는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통해 아마도 파리의 전위적 미술가인 앙리 마티스, 특히 1906년 《독립전》에서 전시되어 논란을 일으킨 그의 〈삶의 행복〉과 차별화를 시도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 전위의 지도자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모욕이자 근대 운동을 조롱하는 시도”이며 “무례한 장난”이라고 인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소위 ‘원시적’ 자연, 정신 그리고 쾌락적 방종의 무비판적 상태 속에서 누드의 여인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마티스의 밝고 선명한 풍경은 피카소를 극도로 자극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후에 피카소는 〈아비뇽의 아가씨들〉과 부족미술의 어떠한 관계도 부정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위한 그의 준비 스케치가 보여주듯이 원시주의 및 아프리카 미술과의 관계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오세아니아와 아프리카에서 수집된 원시 부족미술품을 민속박물관에서 보며 받은 충격과 강렬함은 초자연적 만남에 버금가는 효과가 있었다. 1937년에 피카소는 앙드레 말로에게 이 중대한 발견에 대해 설명하였는데, 그가 그러한 미술품에 진 빚을 인정한 것은 이때가 유일하다. 이 ‘마술적 마스크’, ‘중재자’ 그리고 ‘정령’이 자신의 회화에 끼친 영향에 대해 회상하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그날 나에게 다가왔음이 분명합니다. 그 형태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내 최초의 액막이 그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chapter 5 1906-07 전통, 모더니즘, 퇴행: 〈아비뇽의 아가씨들〉」

피카소와 롤라, 1888
사진, 피카소 미술관, 파리
피카소는 가족의 총아로서 가족 내 여성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여기서 그는 여동생 롤라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마도 여동생과 다른 여자 형제들의 재봉질을 지켜본 것이 그의 파피에 콜레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피카소. 라 코루나Picasso. La Coruna, 1894
두 페이지 원고, 1894년 8월 16일, 종이에 갈색 잉크, 21×26cm, 피카소 미술관, 파리
이 스케치는 ‘일기’를 쓰려는 피카소의 초기의 시도에서 유래한 것이다. 여기에는 그가 1891년 가족과 함께 이주한 라 코루나에서의 일상적 삶을 그린 만화, 삽화, 기록이 담겨있다. ---「gallery 1 특별 문서, 사진 그리고 삽화」

1908년 작 〈부채를 든 여인〉은 어느 정도 페르낭드 올리비에의 모습에 기초한 것이다. 피카소는 동일한 얼굴 특징을 갖고 있는 연필 드로잉 〈페르낭드의 초상〉을 기초로 이 회화작품을 제작했다. 그러나 눈은 아래로 향하게 하고 타원형 얼굴에 머리를 맞추기 위해 헤어스타일에 다소 변화를 주었다. 이 작품에 대한 X-레이 촬영 결과 피카소의 원래 의도는 일반적으로 정면을 향하는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의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정면을 바라보는 초상화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그는 아프리카 부족미술의 차용을 생각나게 하는 매우 기하학적인 얼굴 양식을 선호했다. 눈을 감기고 얼굴을 아래로 향하게 하며 입모양을 알 수 없게 함으로써 피카소는 이 그림 속의 인물에 원시적 모습을 부여하였다. 〈팔을 들어 올린 누드〉와 〈커튼을 젖히고 있는 누드〉에 보이는 거친 느낌은 다소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초상화는 1906년 앙드레 드랭이 구입한 아프리카 팡족의 가면(77쪽 참조)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눈의 형태를 아래로 처지게 하고 입과 코를 결합시키는 등 가면의 얼굴을 조정한 것은 피카소가 정형화된 20세기 근대 여성을 위해 아프리카 조각과 가면의 조형적 특징을 수용하려고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chapter 7 1908-10 “세잔의 교훈”: 피카소, 브라크 그리고 입체주의를 향하여」

피카소의 입체주의 작품은 그의 초기 보헤미안적 삶에 대한 갈등과 격정 그리고 세탁선에서 이룬 급진적인 아방가르드 미술가로서의 업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입체주의 정서가 만들어낸 이질적 작품들은 피카소의 전후 작업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카페 환경, 즉 보헤미안 세계라는 주제는 버려진 마분지 포장지로 만든 1918년의 〈과일 접시와 기타(세로 홈이 파인 유리잔)〉과 같은 아상블라주 작품에 매우 적합하였다. 여기에는 피카소의 초기 종합적 입체주의 작품에 보이는 브리콜라주 결합 기법 또는 재미를 위한 트릭이 남아있으나 이제는 보다 복잡한 프로젝트로 대체되었고, 아마도 연극과 발레를 위해 일한 그의 경험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중략) 구성조각에 대한 피카소의 새로운 개념과 제작은 1920년 〈풀치넬라〉를 위한 작업과 같이 입체주의 양식으로 연출된 무대장식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관심을 증명한다. 중앙 무대를 위한 추상적이고 서로 맞물린 입체주의적 패널과 무대 커튼을 위한 단순한 의미를 지닌 기호로 이루어진 무대 디자인은 오려낸 종이 장난감, 아동 연극, 팝업 책에 대한 그의 애정이며, 유랑극단과 코메디아 델라르테 공연자들이 사용하는 연극무대를 참조한 그의 가장 최근의 입체주의 조각에 대한 경의의 표시다. ---「chapter 12 1918-21 입체주의, 고전주의, 코메디아 델라르테」

고대 투우의 도시인 말라가 출신의 안달루시안으로서 피카소가 〈게르니카〉에 묘사한 투우 이미지는 스페인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이상적 언급이다. 1937년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에 보낸 한 편지에서 피카소는 최근작들이 “스페인을 고통과 죽음의 바다 속에 빠뜨린 군인 계급에 대한 혐오를 분명하게 표현한다”고 주장함으로써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의 군사 반란을 비난하였다. 프랑코를 비난하는 피카소의 가장 과감한 정치적 작품은 〈프랑코의 꿈과 거짓말〉(1937년 1월-6월)이라는 일련의 에칭이다. 이 연작에서 정치 독재자는 매우 추하고 자만심에 가득 차 있으며 잔인한 고집불통으로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피카소는 “적으로부터의 방어의 수단이자 공격을 위한 전쟁의 수단”으로서의 미술의 힘에 대한 믿음을 재확인할 뿐만 아니라 투우의 도상을 이용하여 평범한 스페인 시민에게 가해진 잔혹성과 혼란 그리고 대재난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다.
(중략) 1933년 작 〈투우: 투우사의 죽음〉에서 검은 머리의 주인공은 황소의 등에 매달려 있다. 눈과 입을 크게 벌린 이 투우사는 분명 죽었거나 죽기 직전의 상황이다. 황소를 유혹하기 위해 죽음의 춤을 추는데 사용되는 망토는 그의 곤경을 잘 설명하며, 아래의 모래로 폭포를 이루며 떨어져 실제 피바다를 이루었다. 여기서 역할이 역전되어 투우사는 출렁이는 핏빛 붉은 망토가 상징하듯이 성적 절정의 형태 속에 최후의 일격을 받는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투우장의 미풍에 펄럭이는 깃발들의 상징적 색채이다. 이 상징물들은 이 회화가 스페인 민족의 축제를 묘사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chapter 17 1933-37 폭력의 스펙터클: 〈게르니카〉와 스페인 투우」

미술가로서의 오랜 생애를 거치며 피카소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양식과 매체를 탐구하였다. 대개 그는 어떤 특별한 의도 없이 그가 매우 존경하고 부러워한 대가들에게 단지 도전하기 위해 과거와 현재의 미술을 차용하였다. 이것이 아마도 그의 생애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었고 알찬 결실을 맺은 부분일 것이다. 죽음의 공포에 직면하여 그는 엄청난 창조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안가, 판화가, 무대 디자이너, 도예가, 조각가로서 매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그의 작품도 더 이상 전위의 선봉에 서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과 나이를 먹어가는 상황에 직면하여 피카소는 그가 존경한 많은 과거 거장들 - 몇 명만 예를 들면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 푸생, 베르메르, 렘브란트, 들라크루아, 앵그르, 쿠르베, 마네 - 의 작품뿐만 아니라 점차 미술사의 ‘이야기’ 속에 자신이 어떠한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장 뛰어난 거장과 견주어보려는 피카소의 열망은 1947년에 결실을 맺었다. 프랑스 미술관 관장인 조르주 살르의 요청으로 피카소는 그가 기증한 많은 작품을 외젠 들라크루아의 〈알제의 여인들〉(1834)을 포함한 루브르 미술관 소장의 프랑스와 스페인 거장들의 작품과 함께 전시하게 되었다. 이처럼 작품을 함께 전시한 것이 피카소에게는 그의 미술이 프랑스의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만하고 그의 가장 뛰어난 작품들이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피카소는 연신 “봐요. 똑같죠! 똑같아요!”라고 외쳤다.

---「chapter 20 1951-73 과거 거장을 그리기: 전쟁과 평화, 삶과 죽음」

출판사 리뷰

피카소의 삶과 예술 이야기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 신화가 된 20세기 최고의 예술가 파블로 피카소. 이 책은 피카소의 삶과 작품을 연대순으로 따라가며 그의 미술이 형성되는 데 크게 영향을 끼친 미술가, 문학작품의 주인공, 친구와 협력자 등을 탐구한다. 일생동안 방대한 작품 활동을 펼친 피카소는 다양한 양식의 실험과 도전을 멈추지 않고 넘치는 예술에 대한 열정과 천재성을 발휘하였다. 이러한 창작욕의 원천에는 그의 가까운 친구와 연인이 자리하고 있다. 나아가 동시대의 예술가들과 미술사의 거장들의 관계와 영향력 또한 피카소의 도전 정신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피카소 월드』에서는 카사헤마스, 기욤 아폴리네르, 올가 호흘로바, 조르주 브라크를 비롯한 피카소의 지인들과의 관계는 물론, 그 관계로부터 영향 받아 창작된 일련의 작품을 살펴보면서 작품의 창작 과정과 피카소의 의식의 흐름을 살펴본다.

개인적인 기록과 사진, 알려지지 않은 드로잉과 다수의 작품 수록
예술사에 획을 그은 핵심적인 피카소의 대표적인 작품은 물론 사진, 드로잉, 개인적인 기록들까지 귀중하고 다양한 이미지를 수록하고 있는 이 책은 그야말로 ‘피카소 월드’를 보여준다. 특히 흔히 볼 수 없었던 피카소의 스케치와 엽서, 사진 등의 개인적인 자료를 통해 보다 가까이 그의 일생과 작품에 접근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피카소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
피카소의 작품은 20세기 모더니즘의 다양한 갈래들을 형성한 정치?사회적 조건뿐 아니라 후기 인상주의, 원시주의, 입체주의, 미래주의, 고전주의, 초현실주의와 같은 다양한 화법이나 미술운동의 맥락에 놓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입체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진 피카소는 사실주의, 초현실주의, 고전주의와 같은 다양한 양식으로도 작업하였다. 동시대인들의 타성에 저항하고자 한 그는 관람자를 자극하고 충격에 빠뜨리는 회화를 제작하였다. 이 책의 갤러리에서 볼 수 있는 피카소의 사진과 스케치, 개인적인 기록들은 이러한 양식에로의 변화와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연극적 특성과 입체주의에 대한 미답의 영역을 파헤치다
피카소는 회화, 드로잉, 석판화, 도자기, 조각을 포함한 무수히 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또한 다양한 형태, 분장, 의식 그리고 매우 연극적인 제스처를 동원해서 인간의 상황을 묘사하고 표현하였다. 피카소는 매우 다양한 양식으로 다양한 장르에서 천재성을 발휘하였는데, 이러한 예술적 표현과 발전에서 연극과 발레는 작품 창작의 주요 촉매제였다. 특히 발레 뤼스의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와의 인연, 그리고〈메르퀴르〉의 비중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러나 피카의 예술을 논한 다양한 역사와 이론들에서 이 사실은 대체로 소홀히 다루어졌으며, 분명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연극의 지속적인 영향에 관한 부분은 배제되었다. 역사가들은 피카소의 작품에 보이는 연극 또는 연행(演行)적 특성을 그의 작품세계라는 보다 넓은 맥락에 위치시키는 데 어려움을 느끼거나 아예 무시해 버리곤 했다. 따라서 연극은 특히 그의 입체주의와 관련된 연구에서 미답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이 책은 피카소라는 인간과 그의 예술적 실험 및 발견 그리고 업적을 따라가며 그것들을 하나의 우산 아래 모아 그의 작품을 보다 새롭고 이해 가능하며 체계적인 방식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리뷰/한줄평11

리뷰

8.8 리뷰 총점

한줄평

8.7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