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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연석 1책
해제 - 《국역 연석》 제1권 서 序 제2권 기 記 제3권 제발 題跋 제4권 찬 贊 명 銘 잠 箴 상량문 上樑文 교서 敎書 전문 箋文 옥죽책 玉竹冊 제5권 서 書 소 疏 국역 연석 2책 제6권 묘지명 墓誌銘 제7권 묘갈명 墓碣銘 묘표 墓表 비명 碑銘 국역 연석 3책 제8권 축문 祝文 제문 祭文 유사 遺事 몽연 蒙演 제9권 제문 祭文 애사 哀辭 유사 遺事 국역 연석 4책 제10권 소 疏 차 箚 계 啓 의 議 제11권 논 論 서 序 발 跋 제12권 의 義 강의 講義 제13권 전 傳 명의록단 明義錄斷 내각고사 內閣故事 |
吳恒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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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762년 사도세자가 죽고 정조가 동궁(東宮)으로 위호가 정해진 뒤에, 유언호는 제일 먼저 시강원 설서와 겸설서에 제수되어 서연(書筵)을 맡음으로써 정조와 사부로서 인연을 맺었다. 유언호는 주자학의 기본 경전을 가르침으로써 학문과 사상의 형성 및 군주로서의 자질 함양에 큰 영향을 주었고, 이 인연을 매개로 평생 정조를 보좌하였다. 〈서연 강의(書筵講義)〉에는 1762년 9월에서 1765년 4월까지 29차에 걸친 강의 내용이 실려 있는데, 《맹자(孟子)》, 《사략(史略)》, 《서경(書經)》 등을 가르치면서 ‘유용지학(有用之學)’과 ‘심학공부(心學工夫)’를 강조하여 권면하였다. (중략) 이러한 시간들을 함께 보낸 정조는 유언호의 치제문(致祭文)에서 “마음이 합하기는 동궁 때부터였고 상을 취함은 태괘였으니, 군자가 무리 지어 나왔으나 경과의 만남이 가장 먼저였네.[契襟于?, 取象則泰. 君子連茹, 卿先嘉會.]”라고 회고할 정도였다.
---「해제」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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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학문과 사상, 자질 함양에 기여한
즉지헌(則止軒) 유언호(?彦鎬)의 문집 《연석(燕石)》은 한국고전번역원 한국문집번역총서로,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에서 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고전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수행하였다. 유언호(1730?1796)는 정조 시대의 뛰어난 정치가이자 관료 학자로서 평생 정조를 보좌하는 데 진력한 인물이다. 때로 정조와의 갈등으로 유배를 다녀오기도 했으나 정조의 묘정(廟庭)에 배향될 정도로 핵심 신료이다. 저서로 《즉지헌집(則止軒集)》·《연석》 등이 전한다. 유언호는 그의 나이 32세 때인 1761년(영조37) 노론의 신예로서 정계에 진출하여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하였다. 1762년 그는 사도세자가 죽고 정조가 동궁(東宮)으로 위호가 정해진 뒤에, 시강원 설서와 겸설서에 제수되어 서연(書筵)을 맡음으로써 정조와 사부로서 인연을 맺었다. 유언호는 주자학의 기본 경전을 가르쳐 학문과 사상의 형성 및 군주로서의 자질 함양에 큰 영향을 주었고, 이 인연을 매개로 평생 정조를 보좌하였다. 이러한 시간들을 함께 보낸 정조는 유언호의 치제문(致祭文)에서 “마음이 합하기는 동궁 때부터였고 상을 취함은 태괘였으니, 군자가 무리 지어 나왔으나 경과의 만남이 가장 먼저였네.[契襟于?, 取象則泰. 君子連茹, 卿先嘉會.]”라고 회고할 정도였다. 유언호는 정조의 즉위 의리를 확정한 《명의록(明義錄)》 편찬 찬수관으로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고, 《영조실록》 찬집청 당상으로도 활동하였다. 1776년 9월에는 규장각이 창설되면서 홍국영과 함께 직제학에 발탁되어 정조의 최측근에서 정조의 개혁정치를 보좌하였다. 1796년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유언호는 영조와 정조 시대의 정치가이자 문장가로 활발한 활동을 했던 것에 비해 현존하는 저작이 많지 않고, 문집은 생존했을 때도 사후에도 간행된 바가 없다. 여기에서 저본으로 한 장서각 소장 13책의 《연석》은 유언호의 글을 묶은 것으로, 필사되어 있는 사본(寫本)이다. 《연석》의 가장 큰 특징은 유한준의 서문 내용과 비교할 때 우선 시(詩)가 전혀 실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유한준이 서문을 쓸 당시 천여 편에 가까웠던 분량 가운데 시 546편이 따로 구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고, 편지글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다. 두 번째 특징은 각 글의 윗부분과 각 행의 사이, 그리고 글의 마지막에 주청(朱靑)의 붓으로 비평 또는 총평의 글이 쓰여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총평을 쓰기에 편리하도록 각각의 글이 끝나면 공백으로 남겨 두고 다음 장으로 넘겨서 새로운 글이 시작되고 있다. 마치 누군가에게 글을 보여 주고 의견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편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연석》 1~13책 가운데 13책의 〈의구전〉은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에 입각하여 논리를 전개하고 있어 낙론을 충실히 계승한 유언호의 철학적 입장을 보여 주는 글로 주목된다. 그동안 유언호의 문집은 장서각 소장 《연석》이 유일한 전본이었는데, 최근 박철상에 의해 《연석》의 또 다른 사본이 발견되어 학계에 발표되었다. 향후 선사본 《연석》의 판본과 내용이 공개된다면 유언호의 문학과 학문, 교유 등에 대해 더욱 풍부한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