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_ 비교와 연동, 동아시아사의 새로운 발견
1부_ 비교: 국가·사회를 둘러싼 생각들 1장_ 19세기 동아시아 민중운동과 폭력 -정당성의 사상적 기반에 대한 비교를 중심으로 _배항섭 1. 민중반란의 시대-동아시아의 19세기 2. 19세기 동아시아 민중운동과 인명살상 3. 인명살상의 강도와 민중운동의 정당성 기반 4. 민중운동 및 폭력의 강도와 정치문화 2장_ ‘중화’ 해체의 두 가지 길 -홍대용과 스기타 겐파쿠 비교 연구 _이경구·이예안 1. ‘중화’를 다시 묻다 2. 사상적 배경 3. 화이의 전복 가능성 4. 성인과 중화의 통념 허물기 5. 두 가지 길의 외연: 보편적 이념 또는 개체적 실증 3장_ 류큐왕국과 조선왕조 족보의 비교 연구 _손병규 1. 족보의 신분제적 성격 2. 류큐 가보의 형태 3. 류큐 사족의 가계 계승 4. 정부의 계보 파악과 민의 대응 5. 족보 비교?분석을 통한 사회문화사 연구 2부_ 비교와 연동: 경제·사회의 구성과 운용 4장_ 17~18세기 조선의 화폐 유통과 은 _권내현 1. 은의 이동 2. 화폐로서 은 3. 동전 주조와 가치 척도 4. 은의 국적 논란과 은화의 가능성 5. 은의 기능 변화 5장_ 동아시아 근세 시장구조와 농촌공업 -청대 강남지역과 에도시대의 비교를 중심으로 _홍성화 1. 근세의 시장 네트워크 2. 16~18세기 중국의 시장구조 3. 거울로서 에도시대 시장구조 4. 서로 다른 농촌 수공업 5. 서로 다른 경제성장 6장_ 보갑의 동아시아 -20세기 전반 대만·만주국·중국의 기층 행정조직 재편과 그 의미 _문명기 1. 제도 천이의 다양한 면모 2. 원형: 청대 보갑제의 개관 3. 혁신: 대만총독부의 보갑제 재편과 정착 4. 역수입: 만주국의 보갑제 도입과 ‘절반의 성공’ 5. 부활: 남경국민정부의 보갑제 재건과 좌절 6. 대만 보갑제: 중국적 명칭과 일본적 내실의 혼혈아 3부_ 연동과 교류: 사유와 문화 7장_ 연암그룹의 이적 논의와 『춘추』 _조성산 1. 연암그룹의 『춘추』 이해에 대한 두 가지 시선 2. 『춘추』의 두 가지 이적관 3. 명대 이후 문화적 화이론의 ‘자천이시지’ 논의 4. 연암그룹의 이적관과 『공양전』의 연계성 5. 연암그룹 이적관의 사상적 계보 8장_ 19세기 조선에 수용된 중국의 역사적 인물 도상 _고연희 1. 역사와 기억 2. 수입서적의 다층적 인물상 3. 보고 싶은 역사적 인물 4. 역사적 인물의 도상화 5. 역사의 허구화 문제 9장_ 동아시아 공덕·사덕 담론과 근대 주체 기획 _이행훈 1. 전통적 공사 관념과 덕의 분리 2. 메이지 일본의 공덕 양성 운동 3. 『신민설』의 공덕·사덕 담론 4. 공덕의 결핍, 미완의 국가 5. 도덕의 변용과 주체 기획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
배항섭의 다른 상품
이경구의 다른 상품
|
이 글에서는 질문을 다르게 설정해보았다. 가장 문제적인 화이관 해체를 시도한 이들을 선정하고 그 결론에 도달한 과정을 역추적해보았다. 홍대용과 아사미처럼 ‘사유의 출발지가 같았으나 결론이 달랐던 것’과는 반대로, ‘출발지는 다른데 결론은 비슷해진’ 과정을 되짚어보는 방식이다. 이것은 유학적 인식과 영향을 조금 거두어내고 새 지식의 수용과 기성 지식의 균열이라는 과정 자체에 좀 더 초점을 맞춰보자는 의도이다.
이 글에서는 화이관에 관해 조선과 일본에서 가장 문제가 된 저술로 각 각 홍대용의 「의산문답」과 스기타의 『광의지언狂醫之言』을 선택하였다. 두 저술은 동시대 화이관을 해체하는 최고의 문제작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신분, 학문 그리고 저술에 이르게 된 과정은 매우 달랐다. 홍대용은 사대부로서 주자학에 정통했고, 중국을 견문하고 한역된 서학서를 보며 세계관을 넓혔으며, 철학적 사유를 제련하여 중화를 비판했다. 한편 스기타는 난방의蘭方醫로서 네덜란드 의학 원서를 번역하면서 지식을 습득했으며, 체험과 실증 위주인 의학 특히 해부학을 통해 중화 지식의 허구성을 체험했다. 습득한 지식의 내용도 학문 방법도 상당히 차이가 있었으나 두 사람은 화이 인식에 근원적인 의심을 품었고 급진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막상 비교를 진행해보니 두 사람의 개성과 몇몇 행적이 묘하게 닮아 있어서 흥미로웠다. 둘은 모두 호기심이 강했으며 새 지식에 개방적이었다. 전문 분야는 서로 달랐지만 보수적 인사들과 거침없이 논쟁을 벌였고, 터부를 깨고자 하는 노력도 같았으며, 논쟁한 결과 「의산문답」과 『광의지언』이라는 문제작을 남긴 것도 공통점이었다. 두 사람의 저술이 당대에는 주목받지 못하고 19세기 후반 이후에 주목되어 실학, 과학, 서 양학 등의 강조에 활용된 점도 유사하다. --- p.61~62 |
|
비교를 통한 새로운 발견
일국사의 범위에서 벗어나 한층 넓은 시야를 연다 서구와 근대가 만든 역사관을 제거하고 동아시아 역사상을 다시 구축하자는 것을 모토로 하여 학계에 신선한 반향을 던져왔던 “19세기의 동아시아” 시리즈, 그 네 번째 책『비교와 연동으로 본 19세기의 동아시아-동아시아사의 새로운 발견』을 출간했다. 1권『동아시아는 몇 시인가?-동아시아사의 새로운 이해를 찾아서』(너머북스, 2015), 2권『동아시아에서 세계를 보면?-역사의 길목에 선 동아시아 지식인들』(너머북스, 2017), 3권『19세기 동아시아를 읽는 눈-지속과 변화, 관계와 비교』(너머북스, 2017)에 이은 성과로 한국사와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모색한다. 『비교와 연동으로 본 19세기의 동아시아』를 기획하고 책을 엮은 배항섭 교수(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와 이경구 교수(한림대 한림과학원)는 제목이 연상하는 것처럼 비교사와 연동하는 동아시아라는 맥락에서 쓴 글들을 모았다. 일국사적 범위를 넘어 서로 연동되는 모습, 그리고 일국사적 현상에 대한 비교사적 접근은 동아시아사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해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에는 모두 9편의 논문을 실려 있다. 19세기 한중일의 민중운동에서 폭력의 강도를 비교한 배항섭, 홍대용과 스기타 겐파쿠를 비교한 이경구·이예안(한림대 한림과학원), 류큐와 조선의 족보를 비교한 손병규(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등 매우 흥미로운 논문들을 전면에 배치했다. 배항섭은 동아시아 3국 가운데 태평천국을 비롯한 중국의 민중운동이 인명살상의 강도 면에서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했다고 한다. 이 차이는 기존의 지배체제나 이념을 완전히 부정하였는가, 그렇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와 매우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전통적인 화이관이 흔들린 18세기 당시 급진적인 중화 해체의 논의를 펼친『의산문답』의 홍대용과『광의지언』의 스기타 겐파쿠, 이 두 사람의 차이는 19세기 조선과 일본의 지성계의 향방을 보여주는 시금석이었다. 권내현(고려대 역사교육과)이 조선의 화폐 유통을 한중일 3국 사이의 은 유출입 문제와 연동하여 읽어내었다면 홍성화(부산대 역사교육과)는 범위를 넓혀 청대 강남과 에도시대의 시장경제를 논한다. 모두 비교사적 접근 내지 연동하는 동아시아라는 시각을 탁월하게 보여준다. 홍성화는 19세기 중엽 이후 동아시아 3국이 세계시장에 통합되면서도 이후 서로 다른 발전 양상을 보여주었던 것은 개항 이전부터 출발선 자체가 이미 달랐기 때문이라 한다. 문명기(국민대 한국역사학과)는 일본의 식민지 대만 통치나 만주국, 남경 국민정부의 대륙 통치에서 일종의 연쇄적 성격을 띠며 활용되었던 보갑제를 비교사적으로 살핀다. 일제하 대만에서 ‘성공’한 보갑제가 만주국이나 민국 후기 중국에서는 효과를 거두지 못한 점에 주목한다. 마지막에 실린 세 편은 중국과 조선 사이의 사유와 담론, 이미지 등이 어떤 식으로 연동되고 상호 관계에 있었는지를 살핀다. 조성산(성균관대 사학과)은 연암그룹의 이적 논의와 춘추 의리와의 상관성을 논하는데, 『춘추좌전』,『호씨춘추전』의 종족적 화이론과 『공양전』의 문화적 화이론을 소개하면서 연암그룹의 이적관은 『공양전』이 가졌던 문화적 화이론에 충실하였음을 밝혀낸다. 이는 당시 동아시아의 사상적 변화에 조응하면서 나온 결과였다. 고연희(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는 중국의 역사 속 인물이 일정한 이미지로 19세기 조선에 전달되는 양상과 영향력을 검토한 글로 역시 한중 간에 연동되는 역사를 다루었다. 이행훈(한림대 한림과학원)은 동아시아 근대 공덕·사덕 담론을 한중일간의 사상적 연쇄라는 맥락에서 분석한 글이다. 엮은이의 말 동서를 막론하고 글로벌한 세계가 맞이하고 있는 작금의 정치 현실은, ‘서구’와 ‘근대’가 이루어낸 가장 대표적인 성취인 것으로 이해되어온 민주주의가 헤어나기 어려운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 집회가 “시민과 의회가 어떻게 하면 최고권력의 실패를 평화적으로, 규율을 지키면서도 효과적으로 시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가 되 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독일 에버트재단이 주는 2017년도 인권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이후 전개된 ‘다양한’ 대중집회는 한편으로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실패를 폭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광장민주주의’ 가 어떻게 오염되고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근대’에 들어 ‘서구’가 발명했다는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가능성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가 서구중심주의와 근대중심주의의 극복을 동시에 겨냥하는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