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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알을 남길 때마다
할머니는 늘 지청구를 하신다 밥알 하나 버리면 죄가 일곱 근 반이여! 볍씨에 싹 틔우는 농부의 땀 한 근 싹 틔운 볍씨를 모판에 뿌리는 농부의 땀 한 근 모심는 농부의 땀 한 근 김매는 농부의 땀 한 근 (……) 모두 일곱 근 반 맞지?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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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에너지’ 쌀 한 톨에 담긴 땀, 고귀한 정성!
농사를 직접 경험하기 어려운 요즘, 우리는 쌀이 우리 입으로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쳐 힘들게 얻어내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볍씨를 갈무리하는 일부터 모판에 뿌려 키우고, 논에 모를 옮겨 심고, 김매어 벼 베고 타작해서 얻은 벼가 정미소를 거쳐 하얀 쌀이 되어 우리에게 오는 과정에서 쉬운 일은 없지요. 그러기에 할머니는 밥알을 남기지 말라고 타이르십니다.이 책의 시는 농사의 과정을 차례대로 알려 주며 흐르는 땀방울의 가치를 전합니다. 공광규 시인이 건네는 시는 쉽고 단순하지만, 할머니의 지청구를 빌려 따스한 여운을 남깁니다. 오밀조밀 이야기가 풍성한 삽화는 그 과정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돕습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 한 끼는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만든 결과입니다. 밥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운 삶이 모두 다른 이의 수고와 노동에 기대고 있지요. 책을 통해 그 과정을 지켜보며 어린이들은 쌀 한 톨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하나로 연결된 생태계, 하나로 연결된 세상! 예로부터 논은 벼를 키우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동식물이 조화를 이루며 생태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터전이었습니다. 봄이 되어 논에 모내기를 시작하면, 겨울잠에서 깨어난 곤충들도 활동을 시작했지요. 이 책에서도 벼 사이를 오가며 농부와 함께 농사를 짓는 오리와 각종 벌레, 곤충들이 등장합니다. 눈에 보이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뿐만 아니라, 풀 한 포기에 이어진 수많은 생명체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로 보여 줌으로써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우리의 삶을 이해하도록 합니다.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사람의 정성만큼 건강한 생태계도 필요합니다. 벼농사 과정에서 들여다본 논의 생태계처럼 세상 만물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야기가 밥그릇 안에서 세상으로 점점 확대되듯 책을 통해 독자는 좀 더 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을 보며 그동안 우리가 놓치고 있던 사회의 관계를 살펴보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상상의 여지가 가득한 섬세하고 감각적인 삽화! 2019년 황금도깨비상 대상을 받은 연수 화가는 밥그릇 안에 익숙한 논 풍경을 끌어들이는 엉뚱하고 앙증맞은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독자를 더욱 재미있는 상상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꿈틀꿈틀 귀여운 사람과 곤충, 동물이 활발히 움직이는 자연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화가는 익숙한 풍경과 상상의 세계를 절묘하게 버무려 놓았습니다. 숨은그림찾기처럼 한 장 한 장 풍성하고 섬세한 그림은 장면마다 독립된 작품처럼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책을 보는 즐거움은 농촌을 더욱 가깝게 느끼고, 생명의 소중함이 담겨 있는 곳이란 생각을 하게 할 것입니다. 담담히 삶의 철학을 담은 글, 장면마다 즐거움과 행복함을 주는 그림! 책으로 어우러진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 감성 지수를 높이며 온몸과 온 마음으로 자연을 느끼고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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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청구’가 무엇일까? 사전을 찾아보니, ‘아랫사람의 잘못을 따져 꾸짖음.’이란 뜻이 있다. 손녀가 밥알을 남길 때마다 할머니는 지청구를 하신다. 할머니에게는 밥알을 남기는 것이 잘못이기 때문이다. 왜 잘못일까? 밥알 한 알을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땀 흘려 일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밥알 하나 버리면 죄가 일곱 근 반이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땀 일곱 근 반의 내역은 어떠할까? 볍씨를 싹 틔울 때, 볍씨를 모판에 뿌릴 때, 모심을 때, 김맬 때, 추수할 때, 방아 찧을 때, 농부가 쌀을 남에게 팔 때 각각 땀이 한 근씩 나온다. 엄마가 쌀로 밥 지을 때 또 땀이 반 근 나오고. 이 시는 밥알 하나에 깃든 여러 사람의 노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림을 보면, 할머니가 지청구하는 내용에 따라 손녀 아이의 밥그릇에 일하는 작은 사람들이 나타난다. 할머니 말을 들으면서, 손녀 아이가 떠올리는 이미지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시에서 나오지 않은 내용들도 표현되어 있다. 김맬 때 장면을 보면, 벼 사이를 오가며 일하는 오리를 비롯하여 개구리며 여러 곤충들이 등장한다. 사람만이 벼를 키우는 게 아니라 동물들도 함께 일하며 벼가 자라는 논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글 없이 그림만 나오는 그다음 두 장면을 살펴보면, 이러한 의도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벼꽃에 꽃가루를 묻혀 주는 나비들, 논에 사는 여러 식물들을 보면, 농부는 논에서 벼를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그 논은 이미 여러 생명들이 어울려 사는 공존의 터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근대 이전에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일이 농사였다. 밥을 먹어야 살 수 있고, 그 밥을 먹게 해주는 노동인 농사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었던 것이다. 요즘은 자주 들을 수 없지만, 농자 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곧 ‘농사는 온 세상 사람들이 생활해 나가는 근본이다.’라는 말은 나 어릴 때만 해도 자주 강조되던 말이었다. 그렇게 농사꾼의 기질이 여전히 남아 있던 그 시절에는 쌀 한 톨, 밥알 한 알은 엄청나게 소중한 것이었다. 이 작품을 읽다 보니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주 어릴 때 일이다. 밥을 잘 먹다가도 마지막 한 숟갈이 남으면, 갑자기 배가 불러 더 이상 못 먹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밥을 남기려고 하면, 우리 할머니는 꼭 이렇게 말씀하셨다. “쌀 한 알에는 농부님 땀 한 됫박 들어 있단다. 귀하게 여기고 남기지 마라.” 그 말씀을 들으면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남은 밥 한 숟갈을 퍼서 꼭꼭 씹어 먹곤 했다. 농사를 짓고 살았던 우리 할머니에게도 손녀가 밥을 남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잘못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밥알 한 알에 담긴 땀, 즉 노동에 대해 깨닫게 해준다. 그런데 조금만 시각을 넓히면, 밥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운 삶이 모두 남의 노동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남의 노동이 만들어낸 선물을 날마다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노동에는 사람만이 아니라 벌레들, 새들, 다른 식물들이 함께 관여하고 있다. 이 그림책을 보면서, ‘만물은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았다. - 엄혜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