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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 이제 좀 아플 때가 되었지? 야자 감독을 하다가 떠오르다 망한 하루 반띵합시다 이열치열 상처받지 말아라, 받아도 너무 많이 받지는 말아라 나는 스승의 날이 불편하다 아마도 난 위로가 필요했나보다 교사 승진제도 유감 눈치가 없으니 사는 게 힘들지 무례한 사람들 예쁘다는 말, 그 불편함에 대하여 카산드라 이야기 오늘 제가 좀 슬퍼요 이별은 언제나 남아 있는 자의 몫이다 2. 월드컵과 나 March. 26 내 이름은 스물두 살 순결하고도 완벽한 어둠 속으로 - 고시원 체류기 1 울고 있는 동안은 하늘을 볼 수 없어요 - 고시원 체류기 2 이 비 그치면, 다시 봄 - 고시원 체류기 3 마이 네임 이즈… 배가 불러서 먼저 죽을 거야 질투는 나의 힘 내 머릿속의 지우개 해피 버스데이 투 미 삶은 그저 견디는 것 선착순 늙음을 위하여 3. 8년 전 그날 나, 엄마랑 결혼할래요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1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2 맹모삼천지교 먼지와 나 일만 시간의 법칙 차단의 추억 사랑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 짐작과는 다른 것들 내 심장의 하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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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근하다 퇴근하려면 화장실에서 뭐 안 닦고 나온 것처럼 남은 일들을 흘낏거리게 되었다. 하루 종일 일을 했지만 남은 일거리는 여전히 차고 넘쳤다. 그렇게 찜찜하게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면 거의 11시 반. 씻고 다음 날 아침거리 준비해놓고 애들 좀 챙기면 새벽 한 시. 뼈 마디 마디가 시리는 몸뚱이를 침대로 밀어 넣으면, 아주 잠깐 눈을 감았을 뿐인데 창문이 벌겋게 밝아왔다. 새벽 5시 반부터 부산을 떨어 아침 차려놓고 집을 나서면 6시 반, 7시 20분까지 교무실 입실. 7시 반에 교실 조회 들어가면 그때부터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 시시포스가 바위를 밀어 올리듯 하는 하루가 다시 시작되었다.
---「야자 감독을 하다가 떠오르다」중에서 살아서 다시 학교에 출근을 하고, 아이들을 다시 만나고, 큰 소리로 시험 잘 보라고 말하고, 내신 등급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느냐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오늘처럼 나보다 더 웃자란 어른인 것처럼 구는 한 녀석한테 잔소리 듣는 하루하루가 새삼스러웠다. 그 모든 기억과 깨달음이 한꺼번에 밀려들면서 예상치 못 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녀석은, 그러니까 녀석은 지난번 내가 당한 사고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정말로 걱정이 되어서 차 창문을 붙들고까지 조심하라고 말을 해준 것이다. 부지불식(不知不識) 중 그걸 깨닫자 주루룩 눈물이 흐른다. 몇 마디 안 되는 말에 모닥불을 지핀 듯 몸이 따뜻해지고 운전대를 꽉 쥐고 있던 손가락 마디마디들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아마도 난 위로가 필요했나보다」중에서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거실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어 어 어~ 하는 소리가 입에서 채 나가기도 전에, 인지할 사이도 없이 줄줄 흘러내린 눈물이 방울방울 굴러떨어졌다. 거실 바닥은 눈물방울 때문에 생긴 얼룩인지 눈가에 고인 눈물 때문인지 더 어룽어룽 거렸다.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낯설고 이해 불가여서 팔뚝에는 오소소 소름마저 돋았다. 이건 뭐지? 그 순간 뇌 회로에 금이 가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결혼 하고 나서 내 손으로 일 년간 차려냈던 생일상. 대충 어림짐작으로만 따져 봐도 지금껏 100번도 더 되는 상차림이었을 거고, 과장 좀 보태면 200번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그런데 정작 내 생일에는 미역국 한 그릇 끓여주는 사람이 없었다. 배가 고픈데, 배가 고파서 미치겠는데, 기운은 없고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운데 막상 집에는 밥도 없고 국도 없고 먹을 거라 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이 버스데이」중에서 하지만 남들이라고 특별히 다를까 싶다. 내 주위에는 능력 출중하여 보란 듯이 높은 직위에 올라간 사람도 있고, 훨씬 더 오래전에 떡하니 집 한 채 마련하고도 돈이 모여 한 채 더 사서 자식한테 물려준다는 사람도 봤고, 몇 년 전 장학사 시험에 합격하여 일하고 있는 친구도 여럿 있으며, 책을 열 권도 넘게 출간해서 자기 팬들 많다고 가끔 전화해서 만나자 그런다며 자랑하는 분도 봤지만, 그렇지만 말이다.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열심히, 미친 듯이, 허리띠 졸라매고 악착같이 살았으나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그저 먹고살 정도의 생활을 겨우겨우 눈물겹게 유지하고 있는 분들 말이다. 그리고 조금 더 고개 돌려 보면,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는 게 너무나 팍팍해서 한숨짓는 분들은 어쩌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여전히‘ 삶’이라는 게 무언가를 야심 차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버티고 견디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까지 ‘버티고 견디게’라도 도와준 내 운(運)과 복(福)에 대해 깊이 감사하게 되는 것이며, 그리하여 ‘삶이란 그저 견디는 일’임을 내가 쓰는 모든 글 구석구석에 깊숙이 벼리어 박아 넣고 있는 것이다. ---「삶은 그저 견디는 것」중에서 다른 가족들이 연락을 받고 올 때까지 홀로 돌아가신 아버지 곁을 지키는 시간. 허리를 굽혀 아버지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아마도 나와 아버지 사이에 있었던 친밀하고 다정한 신체적 접촉은 사춘기 이후로는 그때가 유일했을 것이다. 여전히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버지 이마에 입술을 대고 최대한 천천히 나직하게 속삭였다. -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종가의 종손으로, 열 명이 넘는 대가족의 가장으로 한 평생 힘드셨으니 이제는 편안하게 쉬세요. - 그동안 고마웠어요…… 아빠. 어느덧 8년이 지났다. 이후 아버지 기일이 늘 수능 이후라 내 손으로 직접 제사 음식을 만들 여유가 있다는 사실이, 8년 전 그때의 기억을 아직 놓지 못하고 있는 내게 작은 위안이 되었던가, 아니던가. 해마다 아버지 기일이 돌아오면, 내 몫으로 맡겨진 전을 부치며 인연과 삶과 세월과 그리움에 대해 생각하고는 한다. ---「8년 전 그날」중에서 어떤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일이 몰려서 힘이 들었던 건지, 아니면 누군가와 팽팽한 감정 다툼이 있었던 건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그 순간, 얼룩덜룩 꼬질꼬질한 아들 녀석의 실내화를 본 순간, 왈칵 눈물이, 눈물이 활화산처럼 터져 나왔다. - 지금 나는 뭐 하고 있는 걸까. 뭐 한다고 자식새끼 실내화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발견도 못 하고 있었던 걸까.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남의 집 애들 미친 듯이 돌보면서 정작 내 새끼는 이렇게 거지꼴로 다니게 만든 걸까. 저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아이를 본 유치원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번 터져 나온 울음은 입을 틀어막는다고 멈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세상 억울했다. -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한들 어차피 세상은 내 편이 아닌데, 아무도 내가 열심히 하는 거 알아주지도 않는데, 그렇게 산다고 돈을 더 버는 것도 아니고, 승진하거나 출세하는 것도 아니고, 명성을 쌓는 것도 아닌데. 어차피 영악하게 지 거 아득바득 챙기는 인간들이 칭찬까지 싹쓸이로 다 가져갈 텐데, 난 무슨 대단한 영광을 보겠다고 내 새끼 실내화가 이 지경 될 때까지 몰랐던 걸까. 한번 둑을 무너뜨리고 제방을 망가뜨린 생각은 끝을 모르 고 일상의 평온을 휩쓸었고, 그날 나는 현관문 앞에 주저앉아 한참을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맑은 토요일, 한가로운 오후의 햇살이 빌라 주차장 한 귀퉁이에 위치한, 늘상 어두컴컴했던 서민 빌라를 자애롭게 비추어주던 어느 토요일이었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1」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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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교사로, 엄마로, 아내로, 딸로 살아가며
애쓰고 있는 당신의 이야기 “여기에 실린 글들은 교사가 되기 전에 교사를 알지 못했던 저를 꾸짖는 통렬한 반성이면서, 같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면서 이 땅의 ‘교육’이라는 밭을 일구어나가는 동료 선생님들에 대한 헌사입니다. 한편 교사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꼭 교사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현장의 일꾼이면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러나 한 사람으로 오늘 하루를 눈물겹게 살아내는 이 땅의 모든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헌사입니다. 그러니까 당신, 바로 당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서문) 우리나라 초·중·고교 교사 10명 중 7명은 여성이다. 초중고 학교급별로,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교사의 대부분은 여성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교사’를 그저 안정되고 편안한 직장에,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선호하는 배우자 ○순위’로만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이 책 『아마도 난 위로가 필요했나보다』에서 현직 교사인 저자는 순간순간 교사로, 엄마로, 아내로, 딸로 살아가는 묵묵히 애쓰는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다. 하지만 힘들다고, 힘든 걸 알아달라고 투정 부리지 않는다. 어설픈 위로를 건네지도 않으며, 섣부른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하지도 않지만, 저자의 이야기가 자신의 것과 다르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학교’라는 이름의 직장 교사라는 일이, 교사라는 직업이 흔히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르게 편안하지 않고, 치열하고, 여유롭지 않다는 것을,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대학 졸업 후에 일반 회사에 취직했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미래를 그리는 게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고서야 교사 자격증을 따겠다며 뒤늦게 대학원에 들어갔고,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교직에 첫발을 디뎠다. 그러나 ‘교사’라는 직업은 ‘여자 직업으로는 만만하고 편하다’는 사람들이 말과는 달랐다. 정시 퇴근은커녕 야근하는 날이 더 많았고, 온종일 일을 했지만 남은 일거리는 여전히 차고 넘쳤다.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면 거의 11시 반. 씻고 다음 날 아침거리 준비해놓고 애들 좀 챙기면 새벽 한 시. 눈을 붙인 것도 잠시,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아침 차려놓고 집을 나서면 6시 반, 7시 20분까지 교무실 입실. 7시 반에 교실 조회. 그때부터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 시시포스가 바위를 밀어 올리듯 하는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 다른 교사들이 그렇듯 정신없이 바쁜 새 학년 새 학기 3월을 보낸다. 특히, 고3 담임을 하다 보니 방학이 되어도 자기소개서 쓰기 특강과 아이들 상담을 한다. 무엇보다 입시에 대한 학부모와 아이들의 걱정과 불안, 답답함을 마주하며 지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 하루하루가 흘러 어느덧 일 년이 되면 자신은 그 자리에 남은 채 아이들을 떠나보낸다.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이별에 ‘언제나, 늘, 힘들어’하며 떠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일을 매해 반복한다. 엄마, 아내, 딸… “지금 나는 뭐 하고 있는 걸까. 뭐 한다고 자식새끼 실내화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발견도 못 하고 있었던 걸까.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남의 집 애들 미친 듯이 돌보면서 정작 내 새끼는 이렇게 거지꼴로 다니게 만든 걸까. 저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아이를 본 유치원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승진을 위한 것도, 돈을 더 벌기 위한 것도, 능력 있다 인정받고자 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매일 야근하면서까지 열심히 일하면서도, 정작 엄마로서 내 아이는 잘 챙기지 못했던 미안함. 그때의 미안함은 시간이 흘렀어도 아직까지 마음 한쪽에 남아 있다. 이 책은 이처럼 학교에서는 교사로, 집에서는 엄마와 아내 또는 딸로 그리고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사실 각각의 역할이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집에서도 학교(직장) 일을 걱정하며, 학교에서도 가정의 일로 신경을 쓸 때가 있다. 마치 컴퓨터 키보드의 ‘Alt + Tab’을 누르듯 각각의 역할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는 없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다. 모든 역할에 완벽한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부족하다고 잘하지 못한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매일 매일 ‘버티고 견디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이 당신에게 건네는, 아마도 당신에게 필요한 위로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