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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큰글씨책)
꽃 중에 질로 이쁜 꽃은 사람꽃이제
황풍년
행성:B잎새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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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004 추천의 글
008 여는 글_순정한 전라도 이야기를 시작하며

1. 전라도의 힘
호들갑스럽지 않고 웅숭깊다는 것


018 촌스러운 것들을 위한 변명
030 주막집 노파부터 귤동떡 할매까지
038 타고난 이야기꾼, 촌할매들
048 마음속에 자리 잡은 속 깊은 전라도말
054 뼈대 없고 혈통 없는 조상의 후손, 우리
060 전라도말에 담겨 울리는 것은
071 팔순을 살아낸 영화관, 광주극장
077 꽃 중에 제일은 ‘사람꽃’이라
084 징하고 짠하고 위대하고 다정한

2. 전라도의 맛
항꾼에 노놔 묵어야 맛나제


094 어깨 너머 세상에 있었던 것들
102 막걸리 맛을 돋우는 최고의 안주
111 당글당글 잘 여문 자연산 굴의 게미
121 신묘한 물 묵으로 가자는 핑계
129 아짐들의 오이냉국, 여름의 맛
136 반지락으로 누리는 수십 가지 호강
148 봄날의 소박한 축복, 쑥개떡
158 시린 바다의 다디단 속셈
171 엄니가 해마다 김장을 하는 이유
184 입에 착착 감기는 천연 조미료
194 음식은 손맛이요 이야기의 맛

3. 전라도의 맘
짠해서 어쩔 줄 모르는 측은지심의 화수분


202 하얀 사기그릇에 새벽을 담아, 마음을 담아
208 남씨 자매 기자의 전문 분야
215 백운산 자락에 선 옥룡사 부처님
221 다물도가 품은 보물
235 진도 엄니 소리로 한세상 구성지게 꺾이고
241 세상이 좁은 건지 우리가 가까운 건지
248 할매 히치하이커의 “나 잔 태와주씨요”
252 갯마을 일터가 있다면 죽는 날까지 현역!
261 전라도의 멸종 위기 희귀 종족

4. 전라도의 멋
농사도 예술도 물처럼 바람처럼


270 한순간의 쉼도 없는 위대한 손의 역사
276 논흙으로 쌀도 짓고 예술도 짓고
289 구도심 시장통의 예술가들
296 몸을 부대끼며 한데 어울리던 날들
304 고향 흙에서 피어난 가장 위대한 문학
312 할매들이 벌이는 난전의 좌판에는
319 갯마을 아재의 뒤태는 당당도 하여라
326 우리 동네 ‘핸빈’이 형
331 공부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

337 닫는 글_ 대한민국의 곳간에서 띄우는 편지
345 부록_ 전라도 오일장은 은제 열린디야

저자 소개 1

1964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남. 순천북초등학교, 삼산중, 순천고, 고려대 불문과와 언론대학원 최고위과정에서 공부했다. 〈전남일보〉 기자, 〈광주드림〉 편집국장으로 일했고, 지금은 월간 〈전라도닷컴〉 · 도서출판 전라도닷컴 편집장 겸 발행인으로 전라도 어르신들의 말씀과 오래된 마을들을 기록하는 책과 잡지를 펴낸다. ‘지금, 여기’의 삶과 문화를 활짝 꽃피우기를 꿈꾸며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 ‘전라도 그림전’, ‘촌스럽네 사진전’, 전라도 답사, 인문학 강좌, 씻김굿 공연 등 다양한 행사를 열었고, 광주방송, 전주방송, 광주MBC, 광주KBS 등 여러 방송 프로그램의 MC
1964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남. 순천북초등학교, 삼산중, 순천고, 고려대 불문과와 언론대학원 최고위과정에서 공부했다. 〈전남일보〉 기자, 〈광주드림〉 편집국장으로 일했고, 지금은 월간 〈전라도닷컴〉 · 도서출판 전라도닷컴 편집장 겸 발행인으로 전라도 어르신들의 말씀과 오래된 마을들을 기록하는 책과 잡지를 펴낸다. ‘지금, 여기’의 삶과 문화를 활짝 꽃피우기를 꿈꾸며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 ‘전라도 그림전’, ‘촌스럽네 사진전’, 전라도 답사, 인문학 강좌, 씻김굿 공연 등 다양한 행사를 열었고, 광주방송, 전주방송, 광주MBC, 광주KBS 등 여러 방송 프로그램의 MC와 패널로서 줄기차게 지역의 목소리를 내왔다. 현재 광주MBC·대구MBC 공동제작 ‘영·호남지역공감 토크쇼 달빛소화제’ 전문가 패널로 출연하며, 공동체 라디오 광주북FM의 ‘귀로 듣는 전라도닷컴’을 진행 중이다.《벼꽃 피는 마을은 아름답다》, 《풍년식탐》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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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7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48쪽 | 210*297*30mm
ISBN13
9791164710515

책 속으로

촌스러운 삶은 정직하고 성실하고 아름답다. 내남 없이 한데 어울려 구김 없이 쾌활하고, 세상의 모든 생명에 따뜻한 연민을 품는다. 도통 낭비란 걸 모르는 검소하고 절제된 일상의 연속이다. 바지런히 몸뚱이를 부려서 자식들을 건사하고 들녘의 푸르름을 지켜온 당당하고 떳떳한 몸짓이다. 돈으로 맺는 거래에는 서투르고 따순 인정을 주고받는 데만 고수인 사람들의 습속이다. 허장성세 따위로 현혹하지 않고 알토란 같은 속내만을 드러낼 줄 아는 담박한 성정이다. 뉘라서 촌사람들과 이른바 촌스러운 것들을 업신여길 수 있으랴. 이제라도 ‘촌스러움’의 미덕을 회복해야만 끝없는 욕망의 전쟁터가 된 우리의 삶터에 사람의 온기가 돌고, 온갖 개발의 삽날에 찢기고 망가지는 산천도 가까스로 보존할 수 있지 않을까.
--- p.29, 「촌스러운 것들을 위한 변명」 중에서

우리말이란 뿌리는 하나일지 모르지만, 이리저리 갈래를 치고 천만 개의 잎과 꽃으로 무성하고 아름답게 피어나는 생명체와 같다. 지역마다 환경과 생업, 공동체의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의 표현들이 생성돼 유통되고 대물림되어온 것이다. 전라도말 역시 누대에 걸친 삶과 문화의 축적이요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이 투영된 소중한 문화 자산이다. 섬사람들은 물고기나 해초와 관련한 풍부한 어휘들을 만들어내고, 산골에서는 온갖 풀과 약초들의 생김이나 색깔을 세세하게 구별하는 표현법을 발전시켜왔다. 특히 산과 들, 강과 바다, 갯벌에서 나는 오만 가지 식재료들로 맛깔스러운 음식을 만들면서 전라도말의 풍성함을 더했다. 무엇보다도 전라도말에는 공동체를 유지해온 미덕이 펄펄 살아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뒷전에 밀리면서 상대적으로 공동체의 원형을 유지해온 마을이 많기 때문이다.
--- p.63, 「전라도말에 담겨 울리는 것은」 중에서

아짐은 왼손엔 주걱을 들고 솥 안의 죽을 저으시고 오른손에 든 뒤지개로는 전을 부친다. 전라도 시골 엄니들의 밥상을 탐해오는 동안 처음 보는 진풍경이다. 뽀로록뽀로록 뜨거운 방울이 솟구치는 솥 안으로 당근 조각, 반지락 속살 한 움큼, 그리고 자잘하게 칼질한 인삼뿌리가 뒤따라 들어간다. 죽솥이 아니라 보약단지다.

“오메오메, 상다리 뿌러지겄네. 완전히 잔칫상이네요.”

일일이 헤아리기가 송구할 지경이다. 반지락죽, 반지락회평, 반지락고추볶음, 삶은 반지락, 반지락무나물, 반지락 호박나물, 반지락전, 반지락떡국, 백합찜, 삶은 백합, 콩나물잡채, 게무침, 조기찜, 물김치, 배추김치. 부엌에 들어오신 지 한 시간 남짓, 아짐의 밥상은 마술처럼 채워진다. ‘이런 호강을 혼자 누리다니….’ 음식 이야기를 잡지에 연재하는 동안 늘 부러움을 토로하던 독자들이 급기야 시샘과 미움으로 바라보겠구나 싶어 더럭 겁이 난다.
--- p..144~146, 「반지락으로 누리는 수십 가지 호강」 중에서

흔히들 ‘음식은 손맛’이라고 한다. 처음엔 그저 ‘엄니들의 손끝에서 맛이 나온다’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엄니들이 맨손으로 식재료를 매만져 양념과 버무리고 비벼대는 사이에 배어드는 손맛이려니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한 분 한 분, 이런 요리 저런 음식들을 만나면서 ‘손맛’의 진정한 의미를 짐작하게 되었다. 물론 능숙하고 정성스런 손끝에서 음식의 맛이 살아난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손’은 단순히 조리하는 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뭍에서, 강에서, 갯벌과 바다에서 건져 올린 원재료가 사람의 입에 들어가기까지 거치는 무수한 손놀림을 모두 합산한 것이었다. 모든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아! 음식 하나에 저토록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니!’ 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게다.
--- p.195, 「음식은 손맛이요 이야기의 맛」 중에서

옥룡사지를 빠져나와 근처의 도선국사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 초입에 할머니 몇 분이 나와 좌판을 열었다. 옥룡사지를 찾아오는 외지 사람들은 꼭 들렀다가 가는 이름난 마을답게 제법 장의 분위기가 느껴지고 거래도 꽤 진진하다. 잘 말린 고사리와 토란대, 올망졸망 호박, 닭똥 묻은 달걀에 감과 밤, 팥, 그리고 잰피(초피)까지 그릇그릇 담겨 조르라니 펼쳐졌다. 자그마한 시골 장터 한쪽을 뚝 떠다가 그대로 옮겨놓은 듯 정겨운 풍경이다. 무공해니 유기농이니 따질 것도 없이 할매들 심성만큼 착한 먹을거리가 싸고 푸지다. 게다가 맑은 샘물은 욕심껏 채워가도 거저다. 할머니들은 긴긴 여름날 잡초를 매느라 땡볕에서 땀을 쏟고, 비탈진 산속을 기어다니며 나물을 채취하던 몸공을 셈해 가격을 올려붙일 줄 모른다.
--- p.220, 「백운산 자락에 선 옥룡사 부처님」 중에서

진도는 ‘놀 줄 아는 사람들의 섬’이다. 일하면서 놀고, 쉬면서 놀고, 기뻐서 놀고, 슬퍼서 논다. 논에서도 밭에서도 갯바닥에서도 바다에서도, 손발을 노대며 입을 쉬지 않으니 노래로 노는 게 진도의 삶이다. 오죽하면 초상집에서 재담을 하고 소리 공연으로 날밤을 지새우겠는가. 진도에서는 남에게 보여주려고 노래와 춤을 연마해온 ‘프로’가 아니라 삶의 희로애락을 자연스레 예술로 풀어내온 무수한 ‘아마추어’들을 만난다. 그 아마추어들의 기예가 이른바 전문가들을 압도하는 것을 보는 감격을 누릴 때야말로 진도 여행의 짜릿한 진수를 만끽하는 게다. 수수만년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도 기어이 서럽고도 질긴 역사를 이어가는 이 땅 민초들의 생명력, 그 삶과 문화의 끌텅(깊은 뿌리)이 곧 진도라는 이름 안에 옴싹 들어있는 것이다.
--- p.239~240, 「진도 엄니 소리로 한세상 구성지게 꺾이고」 중에서

젊어서는 자식들 ‘멕이고 입히고 갈치려고’ 억척스레 일 욕심을 부렸고, 장성한 자식들이 제 앞가림을 하는 노년의 겨울날엔 스스로 떳떳하기 위해 일구덕으로 들어가신다. 마침내 베고 캐고 훑고 추려 나누고 입에 넣어줄 때까지 할매들은 이 땅에서 가장 긴 시간 일을 하는 노동자다. 노동만이 명징한 삶의 증거인 할매들은 숨이 붙어 있는 날까지 일손을 멈추지 않을 게 분명하다. 도저히 몸을 가눌 수 없어 자리보전을 하는 순간이 되어서나 기나긴 노동의 대열에서 조용히 비껴날 뿐이다. 시골마을 우체국 앞마당에는 올 가을에도 산더미처럼 택배물건이 쌓일 것이다. 할매들이 일구고 거둔 온갖 먹을거리들은 자식들이 사는 곳이라면 지구 끝이라도 찾아갈 터이다. 그 보따리 보따리를 받아줄 ‘새끼들’ 때문에 할매들에게 은퇴란 없다.
--- p.258~260, 「갯마을 일터가 있다면 죽는 날까지 현역!」 중에서

시골 고샅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손에는 ‘차마 내버릴 수 없는 그 무엇’이 들려 있기 십상이다. 보리 이삭 하나, 호박 한 덩이, 깻잎 한 장도 허투루 내버리지 않는다. 타작을 끝낸 마당에서 한 톨 한 톨 알갱이를 일일이 줍고 바람에 떨어져 뒹구는 깨진 과실 하나도 먼지를 털어내고 알뜰살뜰 챙겨온다. 하늘과 사람의 공력으로 길러낸 먹을거리에 바치는 순정이다.

“밥 묵고 가. 끼니 땐디 기냥 가문 안 되제. 찬은 밸 것이 없제만 한술 흐고가랑께.”
“잡솨봐. 생긴 건 이래도 속은 암시랑 안 해. 묵을 만허꺼시네.”

생전 처음 보는 길손을 집 안으로 불러들여 밥상 앞에 앉히고 숟가락을 꼭 쥐어주는 인정의 손이다. 가을이면 단감을 깎고 홍시 껍질을 벗겨주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호박한 덩이, 밤 몇 톨이라도 챙겨줘야 직성이 풀리는 손이다.
--- p.271~274, 「한순간의 쉼도 없는 위대한 손의 역사」 중에서

“사람도 따땃헌 디서만 산 사람은 쪼깨만 추워도 혹석(법석)을 떨어. 고상을 해본 사람은 어려워도 의젓허제. 원망헌다고 되는 일이 있가디. 이 담에는 잘 될 것이여, 허고 희망을 가져야제.”

전라도의 어록을 하나하나 들여다볼수록 강한 긍정과 낙관의 철학이 도드라진다. 사람의 도리란 타인에 대한 사랑과 베풂에 있음을 누누이 밝힌다. 산골에서도 섬마을에서도 어르신들은 마치 입을 맞춘 듯 똑같다. 돌아보면 그분들의 시대는 수탈, 압제, 탄압, 학살, 소외 등 참담한 비극으로 점철되었다.(...)그 징글징글한 질곡의 세월, 숱한 역경을 헤치고 당도한 마음자리에 분노와 갈등 대신 성찰과 인내, 상생의 지혜를 쌓아오셨다. 혹한을 견딘 봄나물의 단맛처럼 스스로에게 닥친 시련일랑 “암시랑토 않다” 하고 꿋꿋이 이겨낸 사람의 향기는 그만큼 순하고도 깊다.

--- p.335~336, 「공부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 중에서

출판사 리뷰

값을 매겨 팔지 않는 전라도 특산품,
인심과 인정, 그리고 인간미 넘치는 오지랖


“밥은 묵고 댕기냐?”

생면부지의 낯선 이들로부터 늘 이런 말을 듣게 되는 곳이 있다. 바로 전라도다. 촌마을 고샅에서 만나는 할매들, 할배들이 건네는 이런 물음은 그저 인사말로 끝내지 않는다. 난생 처음 본 길손님 손목을 잡아끌어 기어이 툇마루에 상을 차려준다. 갯가에서 만나면 미역 줄기라도 손에 쥐어주고 논밭 두렁에서 마주치면 호박 덩어리라도 안겨 보내야 직성이 풀린다.

굽은 등을 이끌고 가던 길을 돌아와 이웃의 손님에게 한 끼 먹을 찬을 건네주기도 하고, 젊은 사람들을 보니 그저 좋다며 지나는 여행자를 반긴다. 친구나 이웃, 타지에서 온 낯선 손님을 가리지 않고 인정과 음식을 함께 나눈다. 타인에 대한 경계가 생활의 지혜고, 타인에 대한 거리 유지가 세련된 예의이며, 타인의 배고픔이 알은체해서는 안 되는 프라이버시인 도시에서는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풍경이다.

장터는 또 어떤가. 논밭과 갯가에 쪼그리고 산등성이를 타고 기며 힘겹게 얻어온 물건을 팔아도 고된 몸공에 값을 매기지 않는다. 이렇듯 채소전, 곡물전, 나물전, 어물전에 나서는 할매들의 좌판에 조르라니 깔리는 것은 단순한 농산물, 해산물이 아닌 사라져가는 인정과 푸진 인심이다. 오진(몹시 흡족한) 꼴을 볼 수밖에 없는 거래다. 전라도 촌마을에는 우리가 본 적 없이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인심과 인정, 그리고 우리 본연의 옛 모습이 아직 살아 있는 것이다.

손맛, 이야기맛으로 만들어내는 게미진 음식과
사투리맛으로 이어가는 구성진 말글살이

전라도 요리야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을 끌어 모을 만큼 게미지고(맛있고) 유명하지만, 그 특별함은 재료보다는 손맛과 이야기의 맛에서 비롯된다. 갯벌에서 갓 채취해 그대로 먹어도 절대 탈이 없다는 싱싱한 생굴, 생김으로 만들어 산지에서 부쳐 먹어야 제맛이 나는 김전, 수십 가지 요리로 변신하는 바지락, 봄날의 작은 축복과도 같은 쑥버무리와 쑥개떡, 동네 아짐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만드는 오이냉국. 이 모든 음식이 수많은 사람들이 손공을 바치고 사연을 담아내 만든 것들이다.

비옥한 곡창지대여서 더욱 악랄하고 모진 수탈을 당했던 일제시대, 근대화의 그늘을 지나야 했던 그 이후의 시간을 살아내며 엄니들은 눈물겨운 먹을거리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흙에서, 바다에서 허기를 달랠 그 무엇이라도 찾아내 고르고 씻고 다듬어 자식들을 키워내고 고향의 맛과 기억을 만들어낸 것이다. 새끼손톱만 한 다슬기를 모아 무쳐 씹는 맛이 재미있는 다슬기회무침과 잊지 못할 독한 고린내의 쾌감을 선사하는 홍어애국을 맛보면 손맛과 이야기맛이 더하는 음식의 풍미가 어떠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아예 전라도 사투리로 입담을 과시하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에서는 신산한 삶을 이겨낸 어르신들의 인생살이 이야기가 구수하고 정겹게 펼쳐지며 눈물과 미소를 번갈아 자아내기도 한다. 우리는 특정 지역의 언어를 표준어로 정하고 그 외 지역 언어를 사투리로 부르며 ‘촌스러운 것’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사투리야말로 지역의 얼과 문화를 담고 있으며, 그 어떤 표준어 단어들로도 대체할 수 없는 깊은 뜻, 재치와 아름다움까지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개버와(가벼워). 암시랑토(아무렇지도) 안해. 요런 게 무거우문 시상을 어찌 산당가”, “시상일이라는 거이 급허니 헌다고 되는 게 아니제. 싸목싸목(천천히) 해야제”, “항꾼에(함께) 노놔 묵어야 게미지제. 항꾼에 놀아야 재미지제.”

전라도 사람들이 자주 하는 이런 말에는 주어진 환경과 흘러온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해온 삶과 문화가 녹아 있다. 전라도 사람들의 마음이 있다.

“암만 떠들어 봐싸야 뭐하간디? 직접 와서 봐야 알제!”
징하게 촌스럽고 오진 꼴 함 보러 오소!


촌스럽다는 것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촌스럽다는 것은 호들갑스럽지 않고 웅숭깊다는 것이다.
촌스럽다는 것은 천진난만하다는 것이다.
촌스럽다는 것은 자존심이 세다는 것이다
- 공선옥의 ‘촌스럽다는 것은’ 중, [전라도닷컴] 통권 100호

언제부터 촌스러운 것이 추함이나 나쁜 것을 의미하게 되었을까. 우리 대부분이 땅과 바다, 강과 갯가, 산과 들에서 일하고 그럼으로써 생명을 이어온 양민의 자손임을 생각하면, 촌스러운 미덕을 지키고 사는 일이야말로 우리 역사와 전통이라는 큰 강 저 아래로 조용하지만 그치지 않는 물을 흘려보내는 일일 것이다.

이제 젊은 사람들은 떠나고 할매들과 할배들만이 농어촌을 지키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길에 떨어진 나락모가지조차 소중히 주워 올리고, 쉼없이 손을 놀리며 바지런히 살아간다. 굳이 자기 몸을 부리며 먹고살아야 떳떳한 강건함과 정직함, 낡고 보잘것없는 물건에서도 새삼 애정과 쓸모를 발견하여 허투루 내버리지 않는 촌스러움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암시랑토 안해”, “싸목싸목”, ”항꾼에.”

전라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전라도말’이다. ‘의연하게’, ‘천천히’, ‘함께.’ 이런 전라도 사람들의 정서가 모든 일에 순리를 따르고 서두르지 않지만, 남의 아픔에는 더 쓰리게 공감하고 더 오지랖 넓게 나서고야 마는 ‘사람꽃’을 피워내는 토양이다. 비극적 현대사를 더욱더 독하고 아리게 겪었지만 그래도 꺾이지 않는 전라도의 힘이다.

마음속에 그리워하는 고향을 품고 있다면, 흙냄새 바다냄새, 사람냄새 그치지 않는 이곳 전라도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기차든 고속버스든 호남선, 전라선을 잡아타고 시골 5일장의 장터와 능소화가 만개한 반쯤 무너진 돌담 사이를 누비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면 주저하지 말기를. 그곳에서 마디마디 굵어진 손에 주름진 얼굴을 한 선한 눈빛의 할매를 만난다면 선뜻 인사를 건네도 좋겠다.

“아따 엄니, 밥은 묵었소?”

추천평

저는 촌스럽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촌스럽다’는 그 말이 나에게 얼마나 과분한 찬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촌스럽다는 것이 쉽게 변하지 않는 한결같음, 호들갑스럽지 않고 웅숭깊음이라니 말입니다.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따뜻한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전라도의 속살을 직접 순례하게 될 날을 꿈꾸며,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전라도’에 대한 이해를 넘어, 인간에 대한 온전한 통찰력을 갖고 싶거나 욕망의 전쟁터가 된 삶에 지그시 위안을 얹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필수품입니다. 특히 세상살이 답답하고 견디기 어려워 분노하고 좌절하는 이들은 이 책에서 뜨거운 눈물과 함께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 - 민형배 (광주광산구 구청장)
월간 [전라도닷컴]을 정기구독하며 시간이 갈수록 전라도 아짐과 할매들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음에 다가왔고, 이윽고 그분들은 내 인생의 스승, 구루가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에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볼 수 있으니 얼마나 행운인지요! 두고두고 조금씩 아껴서 읽고 싶은 마음입니다. -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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