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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2 누구에게 말해야 할까요? 3 조용히 있든지, 죽든지, 미친년이 되든지 4 완전히 다르고 정확히 같은 5 예스, 노, 아마도 6 뭘 기대한 거야? 7 침묵의 카르텔 8 목숨을 부지하는 법 9 강간 생존자를 돕기 위한 지침 10 공식적인 언어로 말하기 11 너의 사랑이 나를 죽여 12 아주 잠깐 동안의 공포 13 틀니로 가득 찬 가방 14 지독하게 뻔뻔한 남자 15 역겨운 권력자들에게 맞서며 16 아주 잠깐 동안의 분노 17 처방전: 예의 바른 대화 18 침대 밑의 괴물 19 아주 잠깐 동안의 혼란 20 강탈당한 자유, 강탈당한 기쁨 21 주머니 속 돌멩이 22 아주 잠깐 동안의 권태 23 자비심의 본질 24 당신의 경험이 내 경험보다 더 끔찍해요 25 착한 여자는 안 그래 26 초보자를 위한 강간 예방법 27 그 남자의 상식 28 아주 잠깐 동안의 테러 29 강간. 구원. 대재앙 감사의 말 주 |
Sohaila Abdul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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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서점의 어느 코너에 놓일지 궁금합니다. 에세이일까요? 아닙니다. 사회학? 배우지도 않았고 그만큼 전문적인 내용도 아닙니다. 심리학? 개인적인 의견이 너무 많습니다. 학문적 연구? 그 정도로 심도 있고 포괄적이지는 않습니다. 회고록? 아니길 바랍니다. 이 책이 어떤 장르인지 딱 규정할 순 없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바로 이 책의 지면을 내 자유 공간으로 남겨두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무엇이든 말하고 싶습니다. 자유롭게 세상과 인터넷 공간을 돌아다니며, 원하는 곳에서 멈추고, 관심이 가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만의 결론을 이끌어내고자 합니다. 또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강간 생존자로서 나의 경험을 가감 없이 공유하고 싶은 이유는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이 책은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회복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기쁨과 분노에 대해, 그리고 그 둘을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도 그다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 p.16~17 “상처를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셰릴은 미국 중서부의 작은 도시에서 자랐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 반에서 가장 인기 있던 남학생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셰릴은 당시 자신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회상했습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당하며 조용히 지냈어요. 내면에는 늘 불안감이 깊었는데 그 사실이 나를 더 화나게 했지요. 나는 그 아이와 함께 수업을 들었습니다. 나의 옷차림은 헐렁하고 어두운 색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쪽지를 보냈지요. ‘왜 나한테 그딴 짓을 한 거지?’ 그 아이는 이렇게 답장했습니다. ‘나 좀 괴롭히지 마. 거짓말 그만해.’” 왜 우리가 조용히 해야 합니까? 그 질문에 가장 쉬운 대답은 ‘수치심’입니다. 수치심은 우리의 입을 막아버립니다. 이용당하고 착취당하고 무력해진 것이 내 잘못이라고 여기게 만듭니다. 수치심은 전 세계 어디서나 피해자가 자기 자신을 책망하게 만들고, 범죄자들에게 잘못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합니다. 누군가의 악랄한 방법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 훨씬 쉽다고 여기게 합니다. --- p.36 피해자의 입을 막는 것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잘못된 편견이 많습니다. 폭로를 하면 나약하고 징징거리는 사람으로 비춰질까 하는 우려가 보편적으로 퍼져 있습니다. “입을 닫고(또는 질을 닫고) 조용히 혼자서 극복하지 못하면 나약한 존재다.” 많은 여성들이 이 우스꽝스러운 만트라를 받아들였습니다. 후렴구는 이렇습니다. “삽입 강간을 당한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불평한다면, 강한 여성을 꿈꾸며 쏟은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는 연약하고 수동적인 여성상을 더욱 굳힐 뿐이다. 그때 ‘싫다’고 이야기하지 못했으면 입 다물고 있어라.” 이런 말은 모두 틀렸습니다. 진실은 정반대입니다. 당신이 폭로하는 순간, 당신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순간, 당신이 입을 여는 그 순간, 당신은 더 이상 단순한 피해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통제력을 되찾습니다. 그것은 피해자다움과는 정반대에 있는 것이에요. 폭로에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불신, 조롱, 성적 자극 운운하는 비도덕적 반응을 전혀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p.44 나는 섹스가 오명을 쓰지 않았다면 더 건강한 사회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들이 욕망을 갖는 것을 나쁜 것이라고 느끼지 않고, 남자들이 자신에게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것을 멈춘다면 말이죠. 여기서 “자격이 있다”는 말은, 합의된 섹스는 기차 여행과 같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즉 기차표를 샀다는 것이 종착역까지 가도 된다는 자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강간범뿐만 아니라 부모, 정책 입안자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2017년 캘리포니아주 판사는 동급생을 강간한 혐의로 기소된 스무 살 대학생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판사는 여학생이 클럽에서 뒤따라 나온 남성을 자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모습이 찍힌 CCTV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판사의 말에 따르면 피해 여학생이 사건을 촉발시킨 장본인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뭐가 어쨌다는 것일까요? 방으로 초대한 게 어떻다는 거죠? 취했을 수도 있고, 막상 같이 있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옷을 벗고 콘돔까지 끼운 상태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때가 되었든 그녀의 마음이 바뀌었다면 거기가 끝입니다. 그녀가 더 이상은 허락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동의 없이 종착역까지 갈 수 있는 티켓 따위는 없습니다. --- p.75~76 강간은 문화입니다.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강간해도 괜찮다는 인식을 만들어냅니다. 아니, 작은 일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인도의 착한 엄마들처럼 아들을 키우는 것이 강간을 용납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여성 운전사를 희롱하는 것이 강간을 용납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딸을 위해 지참금을 모으는 것이 강간을 용납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자가 다 그렇지”라는 말이 강간을 용납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일들이 여자아이와 여성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남자아이의 권한을 높여주어 자신이 더 중요한 사람이므로 별생각 없이 세상을 약탈해도 된다고 여기게 만듭니다. 아이들을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바른 어른으로 키우고 싶다면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의 개념에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가부장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문제의식을 갖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 그런 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강간 문화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 p.188 플래시백, 숨겨야 하는 비밀, 자살 충동, 낮은 자존감, 기능 장애에 대한 두려움 등 우울한 목록 때문에 얼마나 긴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세요. 수많은 강간 생존자들이 트라우마와 고통 때문에 자신의 삶을 낭비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창의적이고 놀라운 일을 해냈을지 생각해보세요. 문 앞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때문에 쿵쾅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느라 낭비할 시간에 예술 작품을 구상하고 노래를 부르고 나무를 심고 삶을 변화시켰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얼마나 막대한 잠재력 손실인가요? 그러니 앞으로는 강간을 저지른 남자들이 “짧은 순간”의 실수 때문에 자신의 경력을 망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다면, 가던 길을 멈추고 분노의 욕지거리를 퍼부어준 다음, 다시 즐거운 일을 하러 가시기 바랍니다. --- p.227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그런 삶을 헤쳐 나왔는지 상상이 안 가네요. 얼마나 끔찍했을지 짐작하기도 어렵네요.” “나는 당신이 겪은 일을 상상하기 힘드네요. 그보다 더 나쁜 일은 없겠는걸요.” 이 장면에는 다소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두 성인 여성이 ‘최악의 강간’을 두고 서로 양보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강간이 다른 강간보다 더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괴상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강간의 순위를 매기고 있을까요? 생존자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끔찍한 일을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강간 생존자를 돕기 위한 모임에 참석해 사례들을 들으며 ‘내가 당한’ 강간이 다른 피해자들만큼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듣고 아무리 많은 피해자들을 만나도 충격은 늘 새롭습니다. 모든 것이 끔찍하게 들립니다. 언제나 ‘내가 당한 강간’은 그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 p.243~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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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통쾌하고 힘이 난다. 우리 몸과 우리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여성주의 입문서로서 최적이다. 고전이 탄생했다.” - 정희진 (여성학자, 『나를 알기 위해 쓴다』 저자) “이 책은 끔찍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슬픈 책이 아니다. 이보다 더 희망찬 책을 근래에 본 적이 없다.” - 권김현영 (여성학자,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 저자) “강간과 성폭력이라는 주제를 논하는 데 있어서 지금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 그리고 얼마나 더 나아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 - 글로리아 스타이넘 * 2018 퍼블리셔스 위클리 선정 ‘올해의 논픽션’ * 2019 영국 ‘레프트 북 클럽(Left Book Club)’ 추천 도서 강간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1980년 어느 여름날 밤, 대학 입학을 앞둔 한 17세 여성이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즐기고 있을 때 흉기를 든 남자 4명이 나타나 길을 막아섰다. 괴한들은 두 연인을 산으로 끌고 가 구타한 뒤 여성을 집단 강간했다. 두 사람은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한 끝에 겨우 풀려났다. 몇 주 뒤 그녀는 머리에 큰 혹을 달고, 발목에는 붕대를 감은 채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발목은 강간범들에 의해서 다친 것은 아니었다. 사건이 있고 나서 며칠 뒤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계단을 깡충깡충 뛰어 내려가다가 삔 것이었다. 강간 생존자. 그녀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에서 참혹한 범죄로부터 ‘살아남은’ 사람이 되었다. 인도의 대도시 뭄바이에서 태어나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 소하일라 압둘알리의 이야기다.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 삶을 되찾았다는 행복에 겨워 발목을 삔 것만으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녀는 말한다. “강간은 빛을 앗아갑니다. 나는 강간이 앗아간 그 빛을 다시 찾고 싶습니다.” 1984년 소하일라 압둘알리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페미니스트 운동에 뛰어들었고, 그 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강간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쓰고 알렸다. 『강간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마침내 입을 연’ 강간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일상에 만연해 있는 여성 혐오, 여성에 대한 폭력, 강간이라는 범죄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보아야 할지 이야기한다. 이 책은 2018년 미국을 시작으로 인도, 브라질, 네덜란드 등 전 세계 10여 개 국가에서 잇따라 출간되었고, 2019년 2월 영국의 ‘레프트 북 클럽Left Book Club’(1936년 런던에서 결성된 독서 클럽) 추천 도서로 선정되어 특별판이 제작되었다. 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는 이 책을 2018년 최고의 논픽션 도서 중 한 권으로 선정하면서 “모든 여성이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평가했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등장인물이 “우리가 사랑에 대해 정말 알고 있는 게 뭘까?”라고 반문하듯, 소하일라 압둘알리는 이 책 『강간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우리가 강간에 대해 정말 알고 있는 게 뭘까?”라고 반문하는 듯하다. 우리는 무언가에 대해 말할 때 그것에 내재된 불편한 측면은 숨기거나 외면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강간이라는 주제를 말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책은 강간 문화에 관한 대중적 담론의 내용과 한계를 깊이 파고들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강요된 침묵, “예스”는 ‘예스’를 뜻하고 “노”는 ‘노’를 뜻한다는 말, 피해자 비난하기, 무례하고 무지한 권력자와 정치가들, 시대에 뒤떨어진 법 체제, 사랑과 섹스와 강간, 남성 중심의 왜곡된 성교육, 가부장제 신화, 권위주의와 위계, 자비심과 용서, 착한 여자 나쁜 여자 프레임, 강간 트라우마 치료,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와 믿음 등.... 강간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것은 이처럼 너무나도 많으며, 그러므로 더 많이 이야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사실을 이 책은 보여준다. “이 책은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회복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기쁨과 분노에 대해, 그리고 그 둘을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도 그다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강간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책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함께 이야기해보자고 손 내미는 책이기도 하다. “우리가 입을 여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닙니다” 미국 체조 대표팀 주치의로 활동했던 래리 나사르는 20여 년 동안 어린 소녀와 여성 수백 명을 성폭행했다. 2018년에 열린 선고 공판에서 로즈마리 아킬리나 판사는 피해자들이 발언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그 결과 나사르에게 성폭행을 당한 150명 이상의 여성들이 증언대 앞에 섰고, 그들의 목소리에 전 세계가 귀를 기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많은 피해자가 오랫동안 입을 열지 못했던 까닭은, 이 사회의 시스템이 피해자의 말에 대해 눈과 귀와 입을 닫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누군가 성폭력 사실을 폭로하면 동정을 호소하는 무기력한 피해자처럼 취급합니다. 무기력한 피해자가 아니라면, 그렇게 큰일도 아닌데 왜 이야기를 꺼내느냐는 투로 몰아갑니다. 당신은 어쨌든 멀쩡히 살아 있으며, 또 자기 인생을 잘 꾸려가고 있는데, 왜 불쌍한 한 남자의 인생을 망치려 하느냐는 것입니다. 성폭행을 당한 게 큰일이었다면 이렇게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고, 큰일이 아니었다면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라고 말합니다. ”성범죄자들을 보호해온 ‘침묵의 카르텔’이 이미 오래전부터 여성의 삶과 가족과 경력을 망가뜨려온 것이다. “피해자들이 증언하는 영상을 보면 어느 누가 무기력한 피해자로 보이던가요? 우리가 입을 여는 순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아서 당신 앞에 서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닙니다.” 한편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으면서 ‘한 남자의 인생’, ‘잠깐의 실수’, ‘쌓아온 경력’ 등을 운운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강간 문화의 일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스탠퍼드에서 술에 취해 있는 여성을 강간한 브록 터너의 아버지는 판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20분간의 실수로 20년 이상의 삶을 망가뜨리는 것은 너무나 가혹합니다.”라고 썼다. 저자는 이런 강간 문화에 대해 반문하고 ‘적절한’ 조언을 건넨다. “수많은 강간 생존자들이 트라우마와 고통 때문에 자신의 삶을 낭비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창의적이고 놀라운 일을 해냈을지 생각해보세요. 문 앞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때문에 쿵쾅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느라 낭비할 시간에 예술 작품을 구상하고 노래를 부르고 나무를 심고 삶을 변화시켰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얼마나 막대한 잠재력 손실인가요? 그러니 앞으로는 강간을 저지른 남자들이 ‘짧은 순간’의 실수 때문에 자신의 경력을 망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다면, 가던 길을 멈추고 분노의 욕지거리를 퍼부어준 다음, 다시 즐거운 일을 하러 가시기 바랍니다.”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아주 어려운 문제들 (또는) 아주 어려워 보이지만 아주 간단한 문제들 강간 문화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피해자들을 비난하며 혀를 찬다. “선택은 자기들이 한 거잖아. 그동안 말하지 않는 대신 원하는 걸 얻었으면서 왜 이제 와서 그러는지.” 피해자의 선택만 생각할 뿐 ‘가해자가 내린 선택’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강간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중에는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동시에 아주 어려운 것들도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선택’과 ‘동의’의 의미를 밝혀내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인도, 가나, 요르단 등에서는 여성이 결혼을 하면 신체의 권리마저도 남편에게 넘겨야 한다. 쿠웨이트에서는 미혼 여성을 강간해도 피해자와 결혼을 하면 처벌을 면해준다. 법적으로 동의 여부 자체가 불가능한 나라에 사는 여성들에게 동의란 무엇일까? 하비 와인스틴은 배우들에게 경력을 망치겠다고 협박한 뒤 성폭행했다. 이것은 여성들이 동의한 것일까? “‘여자가 동의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피해자를 성급하게 비난하기 위한 수많은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우리 여성에게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지금의 굴욕과 나중의 굴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짧은 치마와 긴 치마를 선택할 수 있고, 떠날 때와 머무를 때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스’를 선택하는 것은 적어도 그 순간에는 ‘노’라고 말하기보다 더 쉽기 때문입니다. 이런 선택은 동의와는 거리가 멉니다.” 2017년 캘리포니아주 판사는 동급생을 강간한 혐의로 기소된 스무 살 대학생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여학생이 클럽에서 뒤따라 나온 남성을 자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모습이 찍힌 CCTV를 무죄의 근거로 들면서 피해 여학생이 사건을 촉발시킨 장본인이라고 한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그게 뭐가 어쨌다는 것일까요? 방으로 초대한 게 어떻다는 거죠? 취했을 수도 있고, 막상 같이 있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옷을 벗고 콘돔까지 끼운 상태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때가 되었든 그녀의 마음이 바뀌었다면 거기가 끝입니다. 그녀가 더 이상은 허락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동의 없이 종착역까지 갈 수 있는 티켓 따위는 없습니다.” 미국 중서부의 작은 도시에 사는 셰릴은 고등학교 때 반에서 가장 인기 있던 남학생에게 강간을 당한 뒤 어둠 속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의 시간을 보냈다. 셰릴은 그 남학생에게 쪽지를 보냈다. “왜 나한테 그딴 짓을 한 거지?” 그는 이렇게 답장했다. “나 좀 괴롭히지 마. 거짓말 그만 해.” 1997년 심리학자 제니퍼 프리드는 가해자들의 반응을 DARVO(Deny, Attack and Reverse Victim and Offender)로 정리했다. 이는 ‘부정’, ‘공격’, ‘피해자와 가해자 뒤바꾸기’를 뜻하는 말로, 가해자는 먼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한 다음, 피해자의 다른 약점을 찾아내 공격하고 비난한다. 공격이 성공하면 가해자는 자신이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으며 피해자와 그 사건의 목격자가 오히려 가해자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교활하게 행동한다. 강간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가해자(와 가해자를 변호하는 사람들)의 DARVO 반응은 너무나도 악랄한 것이어서 저자는 “가해자가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기만 하더라도 다행이라 여길 지경”이라고 말한다. 심장을 들끓게 하며 세상을 바꾸는 ‘전환점’ 오랜 침묵을 깨뜨리는 더 많은 이야기들을 위하여 “남자들은 여자들이 비웃을까 봐 두려워한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죽일까 봐 두려워한다.” 캐나다의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말이다. 이 말은 한국 사회에서도 진실이다.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데이트 강간, 스토킹, 불법 촬영, 정치인과 권력자들의 상습적인 성폭행, ‘n번방’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증오와 폭력이 끊이지 않고,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한 범죄를 잠깐의 실수로 축소시키며,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 일이 잦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은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고 말해야 할 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이제 그런 이야기가 지겹지 않냐고, 강간에 대해 더 할 말이 남았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런 반문은 모두 틀렸다. “소음이 가득한 세상에서 강간을 둘러싼 침묵은 눈에 쉽게 띄지 않습니다. 그저 고상한 통계나 원칙을 들먹이고 넘어가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정당하지 않은 처벌, 일관성 없는 기억, 비논리적인 궤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은 이 책을 위한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강간에 대한 이야기가 지겹지 않냐고? 전혀 지겹지 않다. 나는 피해자가 직접 말하는 강간에 대한 이야기를 지겨울 만큼 듣는 것이 소원이다. 그런 이야기는 놀라울 만큼 적다.” 이 말은 소하일라 압둘알리가 이 책에서 말하려 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즉 더 많은 이야기들로써 침묵을 깨뜨리고, 생존자들이 잃어버린 빛을 다시 찾도록 하는 것이다. “어떤 일은 세상을 뒤흔들기도 합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바뀔 때야! 이런 일이 또다시 일어나서는 안 돼! 모두의 심장을 들끓게 하며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전환점이 됩니다.” 인도의 뭄바이와 마하라슈트라주의 작은 마을에서, 남아프리카의 포트엘리자베스에서, 팔레스타인의 라말라에서, 미국 중서부의 작은 도시에서, 남수단의 난민 보호소에서 침묵을 깬 ‘생존자’의 목소리들이 2020년의 한국 사회에 도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