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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막
제2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
Friedrich von Sch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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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하다수라고? 다수가 무엇인가? 다수란 말도 안 되는 것이오. 오성은 늘 소수의 사람에게만 있었소.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가 어떻게 전체를 걱정한단 말이오? 거지가 자유가 있습니까? 선택이 있는지요? 거지는 돈을 지불하는 힘 있는 자에게 빵과 장화를 위해 자신의 표를 팝니다. 표의 무게를 달아보아야 합니다. 표를 헤아려서는 안 되오. 국가는 빠르든 늦든 언젠가는 반드시 다수가 승리하는 곳에서, 무분별이 결정권을 갖는 곳에서는 멸망하오.
- 27쪽. ---p.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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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메트리우스>의 성립
1801년 여름 상트페테르부르크, 바이마르의 왕자 카를 프리드리히와 러시아의 영주 마리아 파블로브나의 결혼식이 있었다. 친구 빌헬름 폰 볼초겐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한 일을 계기로 실러는 러시아 역사에 관심을 가진다. 이듬해 러시아 역사를 소재로 <모스크바의 피비린내 나는 결혼식(Die Bluthochzeit zu Moskau)>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계획했는데, 준비 과정에서 러시아 역사 속 인물인 드미트리의 운명에 큰 흥미를 느낀다. 이후 <바르베크(Warbeck)>와 <집의 아이들(Kinder des Hauses)>을 완성할 계획을 포기하고, 대신 1805년 1월부터 4월까지 집중적으로 <데메트리우스> 집필에 열중했다. 결국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그의 책상 위에는 데메트리우스의 어머니 마르파의 독백을 적은 종이가 놓여 있었다. 실러의 최초 구상 실러가 <데메트리우스>를 위해서 수집한 기초 자료에 따르면 당시 폴란드 사람들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정신을 가졌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노예적인 정신을 가졌다. 데메트리우스는 그러한 러시아 사람들을 경멸했다. 폴란드 사람들은 공화국의 자유를 원하며, 모든 관직을 수여하는 왕도 의회의 허락 없이는 귀족에게 관직을 빼앗을 수 없었다. 의원들은 의회에서 왕에게 진실을 알리는 역할도 했지만, 간혹 가난하고 미천한 처지의 귀족들은 무슨 사안인지도 모른 채 자신을 고용한 귀족의 편에 서기도 했다. 의회에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안건을 승인받으려면 미천한 귀족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해야 했다. 그 때문에 귀족들은 자신이 고용한 귀족들을 ‘친애하는 형제’라고 부르기도 했다. 실러는 이러한 기초 자료 조사를 거쳐 <데메트리우스>를 비극으로 구상했다. <데메트리우스>를 위한 사전 준비, 메모, 수정 전의 1막이 남아 있는데, 실러의 구상에 따르면 5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데메트리우스는 결국 처형을 당하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