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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헌책에서 걸어나온 글씨들
scene 1 당신의 청춘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scene 2 겨울 나무가 봄 나무에게 scene 3 이름 모를 시간이 보내온 편지 scene 4 대답 없는 질문으로 책 속을 걷다 scene 5 그때 잃어버린 것들은 어쩌면 scene 6 왜 지나간 것들은 모두 따뜻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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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의 시간들이 보내온 선물 같은 위로
[응답하라 1997]에 열광하고 『비브리아 고서당의 사건수첩』에 감동했던 사람이라면 반가워할 만한 책이 출간됐다. 1980, 90년대의 향수를 듬뿍 담은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가 바로 그 책. 독서 에세이를 출간한 저술가이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윤성근 씨(39)가 헌책 속에서 찾아낸 옛 주인들의 메모를 모은 책이다. 40년 전에 남긴 글씨에서 시작된 책 윤성근 씨는 V자형 서가가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특이한 집무실을 인테리어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 책을 쓰면서 겪은 특별한 경험을 서문을 통해 밝히고 있다. 10여 년간 헌책방에서 일하며 사람들이 남긴 사연을 모아오던 중, 이름과 주소가 적힌 40년 전의 메모를 발견한 것. 호기심이 생긴 그는 글씨를 남긴 ‘홍광식 씨’를 찾아보기로 했다. 추리소설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40년 전 주소지의 주민센터와 그가 다녔을 법한 초등학교에 연락하고 인터넷까지 샅샅이 뒤지는 긴 과정 끝에 결국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스물다섯 살 때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메모를 남겼던 홍광식 씨는 부산지법 부장판사를 거쳐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헌책의 메모 하나로 시대와 공간을 넘어 인연이 이어지는 값진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윤성근 씨가 모은 메모는 대부분 1980, 90년대. 어떻게 보면 아날로그가 가치 있던 마지막 시대라고 할 만한 때의 책에 남겨진 것들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무언가를 기념하고 기록하기 위해 책에 글씨를 남겼다. 그러면서 사랑을 고백하고 이별을 고하고 고민을 털어놓곤 했다. 앞선 시간이 보내온 83개의 손글씨 책을 만들면서 저자와 출판사가 가장 고민했던 것은 과연 20, 30년 전에 남겨진 메모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는 것이 오늘의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답은 의외의 곳에서 풀렸다. 20대와 30대 독자들을 대상으로 사전 리뷰를 진행한 결과, “누군가가 남긴 글을 보는 건 세대를 뛰어넘는 교감”이라고 말하며 “여러 사람의 마음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거나 “잊고 사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책”, “사람 냄새가 나는 책”이라는 찬사가 이어진 것. 자칫 그대로 묻혀질 수도 있었던 헌책 속의 글씨 83개는 그런 독자들의 격려에 힘입어 마침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세월을 뛰어넘은 글씨들’이 전하는 따뜻함 이 책을 넘겨보면 시대를 막론하고 청춘의 고민은 비슷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지금의 청춘이 외롭고 아파하고 그러면서도 사랑하며 격랑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면 20, 30년 전의 그 청년들도 역시 그랬던 것. 알 수 없는 외로움을 견뎌내며 “나는 결코 외롭지 않아. 나의 고독과 함께 있기에.”라고 쓴 메모는 1986년판 『헤겔, 그의 시대와 사상』(p.48)에 남겨져 있다. “8월의 첫날입니다. 여름이라 그런지 무척 덥습니다. 바깥엔 남자애들이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혼자 이렇게 서클룸에 엎드려 책을 보니 미안한 감이 듭니다. 세상이 무척이나 우울해 보입니다. 내일은 밝아질까요?”라고 1980년에 어느 여학생이 남긴 메모(p.44)에는 시대의 우울함이 깔려 있다. 그런 시대였다. 시위에 나서는 이도, 도서관을 향하는이도 저마다 부채의식을 가지고 내일을 고민하던 시대였다. 그런가 하면, 대학가 식당의 이틀치 밥값으로 시집을 사고는, 배고픔보다 책 읽기를 두려워하던 젊음이 거기 있었다(p.36). 나를 고뇌하고 시대를 번민하던 청춘의 흔적 시집 한 권에 온통 누군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적어놓고 “널 위하지 못한 거라면 나라도 위해, 책을 샀다” 말하는, 아파하는 젊음도 있었고(p.38), 차마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는지 한 페이지 가득 그녀의 이름만을 빼곡히 채워넣은 젊음도 있었다(p.50). 사랑 고백뿐이었으랴. 이별을 고할 때조차 책은 마음의 메신저가 되었다. “나로 인해 당신이 더 이상 고통받기를 원치 않습니다. 나를 생각한다면 하루빨리 지난 일들을 잊고 밝고 힘차게 새날을 시작하시기 바라요. 안녕히. 송광사 기슭에서. 죽음처럼 쓰긴 하지만 좋은 약을 처방했던 ○○씨.”라고 김정환 시인의 1985년판 시집 『해방서시』에 남긴 메모(p.128)에는 죽음처럼 쓴 이별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출판사 편집진을 감탄시킨 것은 “2004. 5월 어느 날, 학생회관에서.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에 대답할 수 없어서.”라고 쓴 메모(p.42)였다. 그런 질문에 누군들 선뜻 대답할 수 있었을까마는, 대답 대신 한 권의 책을 사고 거기에 마음을슬쩍 숨겨놓던 그 젊음은 투박하고 서툴고 그래서 더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혹독한 시련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오늘의 청춘들에게도 일독을 권”하는 이유도 그래서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