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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폭풍
잿빛 도시를 걷다 벽 곰팡이 아이야 도망가 악마의 주령구 재생의 숲 이웃 주민 방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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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학교에서 데려온 기억이 없다. 그녀는 본능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아이의 이름을 불렀지만, 아이의 목소리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진은 다시 소리 높여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의 끝이 갈라지며 떨려왔다. 아이가 집에 없다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패닉 상태에 빠져 버린 진은 벌떡 일어나 재빨리 전기 스위치를 올리고 벽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밤 12시인지, 낮 12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낮잠을 잔 건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온 뒤인 아침 9시 20분경이었다. 열두 시간 이상 낮잠을 잤을 리는 없다. 낮 12시라면 어째서 밖이 이렇게 어두운 걸까. ---「얼음 폭풍」 중에서 “남자는 목을 오른쪽으로 꺾은 채 걷고 있다. 두 팔은 양쪽 어깨에서 맥없이 흐느적거리고 한쪽 다리는 지면에 질질 끌리고 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곧장 앞으로 걷고 있다. 취객이려니 하면 되겠지만 어딘지 기이하다.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 전봇대에 세게 부딪쳤다. 방향을 틀만도 한데 자꾸 전봇대에 대고 덤비고 있다. 최근 들어 가장 기이한 광경이다.”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남자의 묘사를 마친 지원은, 아까부터 마을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던 또 다른 남자를 돌아보았다. 그는 덩치가 크고 더러운 얼룩이 덕지덕지 묻은 흰 앞치마를 입고 있다. 고글을 당겨 남자의 얼굴을 확대해 보았다. 눈을 감고 있는 이 남자의 얼굴 또한 어딘가 이상했다. 눈두덩은 퀭하게 들어가 있고 양쪽 볼은 움푹 폐였다. 입술은 생기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거무튀튀한 색이었다.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 있는 남자는 한쪽 팔에 뭔가를 쥐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의자 밑으로 들어가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잿빛 도시를 걷다」 중에서 엄마의 투덜거림과 함께 문이 열렸다. 어둠 속으로 눅눅한 비바람이 툭 터지듯 밀려든다. 빗소리가 더욱 세게 들려왔다. 은밀한 의식을 치를 검은 무리들은 문을 닫고 이중 삼중으로 달린 잠금쇠를 단단히 걸어 잠갔다. 나는 흰자위를 치켜뜨고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체가 벗겨진 채 나뭇가지에 목이 매달려 살해된 소녀들처럼 두 손과 두 발을 축 늘어뜨린 내 몸은, 바닥에서 50센티미터 정도 되는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고 내 목을 감고 있는 것은 절단된 빨간색 전화선으로 묶은 올가미였다. ---「아이야 도망가」 중에서 “도, 돈 돌려달라고 하셨으면 고분고분 돌려줬을 텐데요. 그 돈 한, 한 장도 안 썼어요. 그러니까 살려만 주세요.” “살려 못 줘. 우리 얼굴 봤고 돈 가방도 알았으니까.” “그러시지 마시고. 살려주세요. 전 아무것도 못 본 거에요. 그쪽 분들 얼굴은 알지도 못해요.” 남자가 싱긋 웃었다. “너라면 살려주겠냐?” “네. 무, 물론이죠.” 거짓말.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너희들은 내 손에 죽어. 방숙자는 진짜 속셈을 꾹 누르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웃 주민 방숙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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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폭풍
남편만 믿고 따라온 미국 이민 생활. 어느 날 남편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가진 돈을 모두 카지노에서 잃었어.” 그리고 행방불명된 남편. 도시는 얼음 폭풍으로 재난 상황이고, 딸아이는 학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도시를 휘감은 얼음 폭풍을 뚫고 어린 딸을 구하러 나선 엄마. 자연재해가 주는 섬뜩한 공포. 잿빛 도시를 걷다 인간은 그들의 체제가 허락하지 않는 자유는 결코 수용하지 못한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인 좀비가 됨으로써 그녀의 삶에 덕지덕지 붙은 상처와 외로움에서 벗어나 자유를 맛보지만, 인간인 남자는 그녀를 사살함으로써 그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벽 곰팡이 두 아이의 교육을 위해 미국의 허름한 아파트로 이민 온 수미 부부. 하지만 벽에 생겨난 곰팡이 때문에 아이들의 건강이 나빠진다. 이민자들이 마주치는 불가항력적인 공포. 사이코패스는 당신 곁에 있다. 아이야 도망가 종교에 미쳐 자신의 자식마저 잘 보살피지 못하는 엄마. 그런 딸이 엄마에게 전한다. 진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보여 줄게. 악마의 주령구 수백 년 전의 하늘과 맞닿은 21세기 밤하늘에 나타난 괴조가 배달해 준 신라시대 14면체 주사위 주령구. 광란의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기 위해 모인 6명의 친구들. 주령구가 도착하자마자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친구들은 마음대로 그만둘 수도, 빠져나갈 수도 없는 벌칙게임에 말려든다. 벌칙을 주는 것이 그들이 아닌, 주령구 그 자체임을 깨닫게 되고 주령구의 불가사의한 힘은 방 안에 모인 6명의 숨겨둔 악의를 끌어낸다. 재생의 숲 재생을 원하는 숲이 당신을 심고 싶어 한다. 타인의 마음을 듣는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여행을 떠나 낯선 곳에서 마주치는 초자연적 공포. 이웃 주민 방숙자 “무덤까지 함께 가고픈 건 너뿐이야.” 무슨 짓을 할지 예측 불가능한 성격. 팀 버튼의 우울하고 기괴한 애니메이션에 등장할 법한 외모의 중년 여자 방숙자. 병원에서 언니의 갓난아기를 보는 순간, 아무도 진심으로 웃어주지 않는 그녀를 향해 아기가 방긋 웃는다. 사랑에 빠진 방숙자는 언니의 아기를 유괴하는데. 가장 무서운 존재는 가장 서러웠던 존재다. 한국 스릴러 역사상 전무후무한 주인공 캐릭터를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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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스웨터]의 저자 황희.
자연재해, 종교의 광기, 좀비 등 현대적인 공포 감성을 미스터리적인 맛으로 보여주다. 돌아오지 않는 딸을 심중에 품고 살아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엄마와 가출했다가 납치·실종된 딸, 그리고 사이코패스의 피가 흐르는 손녀에 대한 이야기 [빨간 스웨터]의 저자 황희의 ‘미스터리 단편집’이 출간되었다. 이번 단편선 [얼음 폭풍 : 황희 미스터리 단편 수상집]은 장편 [빨간 스웨터] 집필 전, 여러 공모전에서 입상한 주요 작품들로 묶여진 단편집이다. 작가 본인이 살고 있는 미국을 배경으로 소수인(이민자)들이 겪는 애환과 부조리함을 공포,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통해 표현한 작품 4편과 한국을 배경으로 한 3편의 작품이 촘촘히 엮여 있다. 자연재해와 좀비, 종교의 광기, 곰팡이와 독특한 캐릭터의 완성 등. 우리가 일상과 비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현대적인 공포 감성을 다양한 소재로 그녀가 가진 자신만의 개성을 통해 미스터리적인 맛으로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