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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 윤동희
debut talk 1. 회화 이야기 / 작가 김지원 debut talk 2. 밤을 바라보고 기다리며 노래한다 / 작가 문성식 회화적인 것에 대하여 1 강동주 김건희 노충현 박광수 박진아 안경수 양유연 윤기언 text 1. 지금 왜 그리는가? / 김윤경 회화적인 것에 대하여 2 이은실 이정민 이제 이지현 정우재 정재호 정직성 황지현 text 2. '회화적'이란 것에 대하여 / 문인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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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포인트는 뭘까요?
: 자기 스타일이 아닌, 자신만의 이야기.--- 「debut talk 1 회화 이야기 - 작가 김지원」 그림의 정면이 아닌 옆구리를 보는 것. 바로 그 시점이 회화의 불행이기도 하고 행복이기도 해요. 없어지는 거죠. 그림이……. 그래서 화가는 정면만 보는 게 아니라 그림의 옆구리를 인지하고 있어야 해요. - ‘debut talk 1 작가 김지원’ 중에서 * 작가에게 추상성은 무엇입니까? : 회화적 대상에 대한 이해 혹은 해석이 화면이라는 틀 안에서 발현되는 것, 그것이 회화에서 추상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창작 과정에서 생기는 생략과 비약의 결과물 같은 것 말입니다.--- 「debut talk 2 작가 문성식」 한국미술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온 회화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구의 회화가 1960년대를 마무리 짓던 시점에서 경험했던 위상의 하락을 유사하게 경험한다. 동시에 전지구적인 변화의 물결은 한국미술에도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초래한다. 새롭게 등장한 세대는 개념미술의 방법론과 언어에 익숙한 세대였으며, 이들은 한국이 근대화를 겪는 과정에서 발생시켰던 문제점들이 만연한 눈앞의 현실에 대해 또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당대의 목소리를 유효하게 전달할 수 있었던 다양한 매체를 통해 동시대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레디메이드, 설치, 사진과 영상, 퍼포먼스와 같은 매체는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당대의 현실을 드러내는 데 유용했다. 반면 회화는 1970년대 단색화의 방식이나 1980년대 민중미술의 방식으로는 더이상 당대를 마주할 수 없음을 매번 재확인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한국미술의 상황은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2005년을 전후하여 회화가 다시 한국미술의 전면(前面)에 등장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질문을 던져보자. 2000년대 중반 한국미술에서의 회화의 재부상을 이끌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에, 바로 답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활성화된 미술시장이었다.--- 「김윤경 ‘지금, 왜 그리는가?’」 오늘의 회화는 회화의 형식과 내용, 미학적 표현 중 무엇을 우위에 둔 결과인가? 그리고 오늘의 회화는 이 시대로부터 무엇을 요청받고 있는가? 1970년대 단색화가 그러했듯이, 1980년대 민중미술이 그러했듯이, 오늘의 회화 역시 지금의 시대상과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의미를 발생시키고 있는가? 많은 작가들이 여전히 캔버스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만으로 회화가 살아남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회화가 진정 살아남기 위해서는 형식에서, 내용에서 그리고 미학적 표현에서 모두 동시대성을 획득해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여기에서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 회화라는 관행에 대해 의심과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고, 그에 대한 깊은 통찰이나 명쾌한 답은 안타깝게도 너무나 먼 곳에 있는 듯하다.--- 「김윤경 ‘지금, 왜 그리는가?’」 저는 회화의 본질이 붓질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시각예술의 모든 매체를 통틀어서 작가의 개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이 저를 늘 회화에 몰입하게 합니다. 사실, 현대미술이 지나치게 언어에 의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술이 음악이나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개념적인 것으로 느껴집니다. 제가 생각하는 예술은 좀더 직관적인 것 그리고 감각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쿨한 것이 좋지만, 예술은 조금 말랑말랑하고 뜨거운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형식적으로도 새로운 것을 실험하기보다는 고전적인 틀 안에서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어떤 이유에서라기보다는 개인적인 기질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음악이나 영화, 패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제 모습을 돌아보면 이러한 취향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 「김윤경 ‘지금, 왜 그리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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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무크지 《debut》 3호는 ‘회화적인 것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미술 현장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젊은) 작가들을 초대했다. ‘회화적인 것에 대하여’라는 주제를 선택한 건 지난 수년 동안 회화가 ‘과잉’으로 치달았다는 생각에서였다. 언제부턴가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사고파는 것으로만 여기고 있다. 그 속에서 비슷한 회화들(과 그것과 연관된 많은 것들)이 우리를 피곤케 했다. 남들이 본 것을 자신만 본 것이라고 우기는 이들도 나타났다. 세상에서의 성공과 미술에서의 성공이 더이상 다르지 않은 시대에 작가들은 불안해 하며 붓을 잡았다. 다른 작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했다. 큐레이팅은 컨설팅으로 변모하고, 작업실의 고독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경력’으로 바뀌었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라고 하지만, 작가도 결국 먹고사는 존재라고 하지만 미술을 향한 순결함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그림을 보고 싶은 이들에겐 우울한 시간이었다. 물론 그림은 팔려야 한다. 그러나 그림의 표면적 구조와 심층적 구조가 다 같이 드러나는 미술이 건강하다는 것은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제 갓 본격적인 미술에 입성한 젊은 작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탁월한 재능도 빼어난 스펙도 정교한 전략도 아닌 미술을 향해 ‘올인’하겠다는 순정함일 것이다. ‘화가’라는 주어는 ‘그린다’라는 서술어를 갖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회화는 ‘기본기’라는 단어와 맞바꿀 수 있다. 회화는 인간이 만들어낸 숱한 이미지들 가운데서도 단연 숭고의 미를 지닌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이 그렇듯이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이 그렇듯이 회화는 시간을 멈추게 한다. 그 순간, 우리는 회화가 갖가지 물감으로 이루어진 평면 그이상의 무엇임을 깨닫게 된다. 호크니의 말을 빌리자면 ‘그림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다. 회화란 결국 세상을 보는 안목이다.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견식(見識)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분명한 입장 아래, 회화의 본래적인 물질성을 몸으로 체득하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기본기를 ‘태도’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좋은 작가들은 그 바탕에 새로운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자신의 앞과 뒤, 혹은 위와 아래에 놓인 보이지 않는 원초적인 것들을 자신이 그릴 수 있는 구체적인 것으로 환치시킨다. 어떤 작가는 압도적으로 특수한 이야기와 재료로 그린다. 어떤 작가는 외양과 내면이 조금씩 다른 자연과 인간의 ‘겹(layer)’을 그린다. 화가가 그림을 통해 점점 더 많은 것을 보게 될 때, 그림을 통해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될 때 우리는 그림에 믿음을 갖게 된다. 그림은 이처럼 원초적인 것이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그림이라는 흔적으로 남기길 바라는 욕망에 충실할 때 세상이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그림을 남기게 된다. 매혹적인 그림이 된다. 그래서 《debut》는 ‘그리기’라는 행위를 통해 삶의 전체성을 향해 조금씩 움직이는 작가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들의 그림은 우리를 자극시킨다. 회화를 향한 고민은 있되 반드시 이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이 그들에겐 없다. 그림에 대한 고민과 상상력이 순환적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주민등록번호의 순서와 관계없이 작가들의 고민은 돌고 돌고 자꾸 돌고 있었다. 선배 작가 김지원이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의 고민과 지금 대학원을 마치고 작가의 길로 들어선 후배 작가들의 고민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모두 정말 잘, 그리고 싶어 했다. ‘잘’ 그린 그림이 제각기 다르듯이 우리 미술의 풍경도 다르게 완성될 것이다. 그 ‘다름’에 희망을 걸어본다. 누군가는 새로운 미술을 개척하고, 누군가는 그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훌륭하게 변주하는 모습이 우리 미술의 풍경이기를 바란다. 그 풍경의 종착점은 우리를 분노케 하는 시대와의 싸움이 되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