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교과서 수록도서
|
-바다 위의 집
-초록빛 말 -벼랑 -생 레미에서, 희수 -늑대거북의 사랑 |
Lee Geum-yi
이금이의 다른 상품
|
나는 그때 그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무엇이 되기 위해 사는 삶에만 박수를 쳐 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건 사람들이 오늘보다 내일에 가치를 두고 사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내일은 오늘이 있어야 오는 거잖아. 엄마는 오늘을, 살아 있는 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해. 그러니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건 인간의 의무야.” ---「바다 위의 집」 중에서 야단칠 때는 줄지어 있던 어른들이 도움을 청하려고 둘러보자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고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한 번도 자신이 자기 것이라는 생각 따위를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임대 아파트나 메이커 교복 같은 것들이 자기를 말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자신은 온전히 자기 것이었다. ---「벼랑」 중에서 이곳에선 고흐의 그림에서 넘실거리던 햇살을 느낄 수 있어. 그토록 절망적인 시기에 고흐는 어떻게 그렇게 기쁨과 생명력이 넘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여기 와서야 비로소 알 것 같아. 이 격정적인 천재는 결코 고통을 피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불평하지도 않았으며, 포용하고, 이해하고, 사랑했던 것 같아. 그리고 예술로 승화시켰겠지.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광기마저도 순수한 열정으로 기억하며 감동 받는 거겠지. ---「생 레미에서, 희수」중에서 울프를 데려간다고 해서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민재는 중얼거렸다. 울프가 자신을 물려고 했을 때 서운하기는 했어도 그 사랑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게 울프식의 사랑이니까. 선생님 부부가 이 산골에서 사는 게 나빠 보이지 않는 것도 자기식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서로에 대한, 엄마의 사랑도 자신의 사랑도 어딘지 왜곡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대를 위해 참는다고 생각하는 사랑, 그래서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랑이 과연 옳은 것일까?---「늑대거북의 사랑」 중에서 ---본문 중에서 |
|
「바다 위의 집」
학교에서 ‘이상한 애’ 취급을 당하는 은조는 자신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어느 날, 블로그를 통해 아는 사이인 ‘미네르바’(혜림)가 자신과 같은 고민 끝에 자살을 선택했다는 소식을 듣자, ‘목표를 위해 현재를 유예’ 하며 ‘입시’라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그 길에서 벗어나려 자퇴한다. 「초록빛 말」 풍족한 가정 형편에도 부모가 자신을 액세서리로 여긴다며 방황하던 혜림이 자살한 뒤, ‘나’는 친한 친구의 죽음에 충격이 클 거란 부모님의 오해 덕분에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된다.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매사에 부정적이고 의심이 많은 ‘나’는 그곳에서 가족들을 위한 희생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긍정적으로 사는 쟈스민을 통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을 깨닫게 된다. 「벼랑」 난주는 자신의 욕망을 채워 주지 못하는 가난하고 구질구질한 삶을 증오하며, 원조 교제로 용돈을 벌어 쓴다.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잘생긴 남자 친구 규완과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난주는 원조 교제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창호의 협박에 방황한다. 난주는 다른 아이들에게 삥을 뜯기는 경화가 만만하게 여겨져 찾아가지만, 겁에 질려 무기력한 경화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자 알 수 없는 분노와 자기혐오에 사로잡혀 옥상에서 경화를 밀어 버린다. 「생 레미에서, 희수」 엄마의 권유로 대학 입시를 위해 미술을 하는 마마보이 선우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주유소에서 일하는 노란 커트 머리 희수는 서로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아 보인다. 희수가 선우에게 먼저 다가선 뒤 둘은 애틋한 감정을 키워 나가고, 그 과정 중에서 선우는 희수에 대한 오해와 소문 속에서 자신의 사랑이 물질적 조건에 기대어 있음을 보게 된다. 「늑대거북의 사랑」 민재는 중학교 때 짝사랑했던 과외 선생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받고, 갑자기 사라졌던 자신의 애완용 늑대거북을 찾으러 과외 선생을 찾아간다. 시골에서 그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과외 선생 부부와 늑대거북을 통해, 민재는 사랑이란 상대에게 포기와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방식을 인정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
|
▶온 세상이 아득한 ‘벼랑’ 같은 그들, ‘우리 아이들’에게
왜 ‘죽어 버려!’라고 외쳤을까? 그 아이들은 도대체 옥상에서 친구들을 왜 밀어 버린 걸까? 이금이 작가는 ‘친구를 옥상에서 밀어 버린 아이에 대한 뉴스를 본 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이야기’ 때문에 「벼랑」을 쓰게 되었다. 친구를 밀어 버린 아이, 원조 교제로 용돈을 버는 여고생, 난주가 바로 「벼랑」의 주인공이다. 자기혐오와 분노 끝에 삶의 벼랑 끝에 서게 된 난주는 ‘노는 애’의 전형이지만, 그 내면은 우리 자신의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벼랑』에 수록된 다른 작품 「초록빛 말」의 자살한 혜림이나, 「생 레미에서, 희수」의 마마보이 선우, 「늑대거북의 사랑」의 엄마를 위해 희생하는 민재 역시 각박한 현실에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초록빛 말」에서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나’와 「벼랑」에서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난주는 우리의 어두운 얼굴이며, 「바다 위의 집」의 자퇴하는 은조와 「생 레미에서, 희수」에서 고흐를 좇아 프랑스로 떠나는 희수는 왜곡된 세상의 잣대를 거부하고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는 우리의 바람이다. 이금이 작가는 다섯 편의 단편소설을 통해 자기식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며, 비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의 삶을 섬세하게 그려 낸다. 그러면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왜곡된 것인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벼랑 끝에 선 것처럼 위태로운 청소년들의 삶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다가, 들춰진 삶의 진실이 비단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임을 알게 되면 울컥 눈물이 난다. ▶청소년, 그들만의 카타르시스 『벼랑』 원조 교제, 첫 키스, 협박, 폭력…… 연작 청소년소설 『벼랑』에는 이 제재들이 모두 등장하지만 소재주의식 가벼움이나 일상과 괴리된 생경함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이슈가 될 만한 소재들을 적절한 문학적 형상화 작업을 거치지 않은 채 화젯거리만을 양산한 일부 작품들처럼 날것의 현실을 살풍경으로 그려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벼랑』은 소재주의를 넘어서 거친 현실의 이면에 감춰진 청소년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금이 작가는 ‘요즘 아이들이 내면에 어떤 상처를 지니고 있었는지 보여 주고 싶었다’(‘작가의 말’ 중에서)고 말한다. 『벼랑』은 우리 시대의 청소년문학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는다. 청소년문학은 단순한 ‘고발’ 뉴스의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모든 진정한 문학이 인류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듯, 청소년문학 또한 청소년들의 현실에 밀착하여 그들을 깊이 이해하고 그 현실을 진지하게 성찰하여 궁극적으로 ‘치유’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이금이 작가는 『벼랑』을 쓴 ‘십여 개월의 시간과 지금 막 청소년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내 아이들의 삶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들었다.’(‘작가의 말’ 중에서)고 고백한다. 『벼랑』이 외면하고 싶은 이 시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삶의 보편적 진실성을 획득하는 이유는 단지 작가적 역량뿐 아니라 바로 두 자녀의 삶을 진정 어린 마음으로 들여다보며 그들과 함께 고민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세우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와 용기를 주는 일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작가 이금이의 철학이 어떠한지가 잘 집약되어 있다.’ -황수대(아동문학 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