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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은 역사
한국 시각장애인들의 저항과 연대
주윤정
들녘 20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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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저자의 말
서문
‘낯설게 하기’의 역사 / 배제의 역사 / 타자의 역사 / 한국의 장애 역사 / 장애/장애인의 개념 / 시각장애인의 역사 기록과 구술 자료 / 책의 구성

1장 계몽과 자선, 시각장애인의 타자화
암흑 속의 시각장애인 / 문명의 타자 / 무능력과 준금치산자 / 자선과 자혜

2장 ‘맹인’ 점복업 조합의 호혜적 경제활동
맹인 점복업 조합의 오래된 미래 / 맹인 조합과 맹인 직업의 변화 / 해방 이후 맹인 점복업자들의 단체 활동과 사단법인 설립 / 문생 중심의 조합 운영과 경제활동 / 작은 이들의 연대와 호혜

3장 맹인과 함께 만든 한글 점자, 훈맹정음
식민지기의 맹인 교육과 전통적 교육 / 박두성의 교육활동과 훈맹정음(訓盲正音) / 시각장애인과 함께 만든 점자 /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

4장 ‘사람취급’ 받을 권리
소수자의 권리의 역사 / 식민과 탈식민화 과정에서 안마업의 변동 / 시각장애인의 권리 주장 / 작은 이들의 저항

5장 시각장애인의 구술전통과 이야기의 힘
이야기 전통과 구술문화 / 시각장애인의 구술문화의 형식적 특성 / 되풀이되는 서사와 집합 기억

6장 동아시아 시각장애인 생존권의 상이한 경로
동아시아의 시각장애인들 / 동아시아 시각장애인의 안마업의 역사 / 식민/탈식민 과정에서 시각장애인의 직업 변화 / 동아시아 시각장애인의 다른 경로와 저항
참고문헌 / 찾아보기

저자 소개 1

부산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장애, 생명사회학, 인간-동물 관계, 사회운동 등을 연구 하는 사회학자이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선임 연구원으 로 재직하고 있다. 대표적인 연구로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연구, 「탈시설 운동과 사람중심 노동: 이탈리아의 바자리 아법과 장애인 협동조합운동」(2019), 「법 앞에서: 형제복 지원 피해생존자들의 해방과 기다림의 정치」(2018) 연구 등이 있다. 생명의 취약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 고 있으며,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배제의 역사 뿐 아니라 사회적 포용의 가능성에 대한 실천적
부산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장애, 생명사회학, 인간-동물 관계, 사회운동 등을 연구 하는 사회학자이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선임 연구원으 로 재직하고 있다. 대표적인 연구로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연구, 「탈시설 운동과 사람중심 노동: 이탈리아의 바자리 아법과 장애인 협동조합운동」(2019), 「법 앞에서: 형제복 지원 피해생존자들의 해방과 기다림의 정치」(2018) 연구 등이 있다. 생명의 취약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 고 있으며,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배제의 역사 뿐 아니라 사회적 포용의 가능성에 대한 실천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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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428g | 148*210*15mm
ISBN13
9791159255830

책 속으로

점복업자 집단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직업 집단을 근대 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노력과 별개로 그들은 지속적으로 근대의 타자로 호명된다. 기독교 계열의 선교사와 총독부 모두 점복 맹인을 타자화하고 미신으로 호명하며 탄압하는 데 가세했기 때문이다. (……) 대구 지역에 어린 시절 천연두에 걸려서 시력을 잃고 맹인 판수에게 가서 점복업을 배워 점쟁이가 된 맹인 황씨가 있었다. 그가 기독교로 개종한 내용은 한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개종 사례를 모아놓은 책에 기록되어 있다. 황씨는 점쟁이로 일하며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법이나 여행을 잘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새 집을 지을 때 어떻게 해야 귀신을 쫓을 수 있는지도 알려주었다. 저자는 이런 일련의 행위들을 일종의 사기라 지적하면서 황씨가 기독교인이 된 후 이 모든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말한다. 황씨는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에 혼자서 문자를 만들기도 하다가, 평양에서 선교사들이 맹인에게 글 읽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말을 듣고 대구에서 평양까지 찾아갔다고 한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한 달 동안 점자 읽는 법을 배운 후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 도덕적인 방식으로 판수의 활동을 억제한 선교사와 달리, 조선총독부의 경우에는 경찰력을 동원해 판수를 취체(取締)했다. 총독부의 정책은 시기별로 차이를 보이는데 1910년대에는 강력하게 미신 타파 정책을 실행했다. 위생 관련 취체에서는 비과학적인 치병(治病)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판수의 점복업과 독경 등을 금지했다. 이런 정책은 대한제국 시기에도 마찬가지로 실행되었는데, 경무청에서는 1897년 5월 무당?판수의 미신 행위를 본격적으로 금지하고 이런 행위가 발각될 때에는 중죄에 처한다는 법령을 반포하기도 했다. 또한 판수가 혹세무민하며 민간에서 재물을 빼앗는 폐단 등이 정부의 문명개화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논의도 전개되었다. 비단 식민 권력만이 아니라 소위 ‘문명개화’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판수는 척결해야 할 대상이었던 셈이다.
--- 「문명의 타자」 중에서

평양의 맹학교와 총독부의 제생원의 자선과 자혜의 경합은 이런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한국 사회가 장애인을 시혜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된 배경이다. 조선의 개항 이래 선교사들은 조선에 와서 사회사업을 활발히 펼쳤다. 이는 선교 방법으로 직접 선교보다는 교육과 의료, 사회사업을 통한 네비우스 선교 방식(Nevius Mission Plan)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한편 선교사들이 주로 선교 대상으로 삼았던 이들은 조선의 지배층이라기보다는 여성이나 빈민 등 사회에서 배제되었던 사회적 약자들로 기독교의 복음을 드러내기에 적절한 대상이었다. 선교사들의 여성과 빈민, 장애인에 대한 교육 및 관심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선교사 사회사업이 시작되던 초기부터 이들은 서구의 선진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낙후된 조선에 근대적이고 문명적인 사업을 개진했다. 대표적인 것으로 윌슨(Robert M. Wilson) 선교사의 한센병 관련 사업(정근식, 1997)과 로제타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의 맹인 교육 사업을 들 수 있다. 맹인 관련 특수교육을 처음 시작한 로제타 홀은 교육 목적에 대해서도 “여성 맹인들을 점복, 무당 등 미신적인 삶에 종사하지 않게 하고, 그리스도교 가족의 유용한 일원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로제타 홀은 기독교 교인인 오씨의 딸이 장님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곳에서 일을 시작할 기회가 비로소 왔구나. 그 애의 아버지는 기독교인이니 내 의도를 곡해하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당시에 선교사들의 의료 시술이 조선인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이들을 실험 대상으로 쓴다는 소문이 퍼져 있어 선교사들의 의료 활동에 대한 조선인들의 두려움도 적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로제타 홀은 맹인에게 교육을 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이를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가 기독교 교인의 딸이 맹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기회를 찾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 「자선과 자혜」 중에서

맹인 점복인들은 조선시대 이래 ‘맹청(盲廳)’이라는 조직을 운영해왔는데, 이 조직에서 경제적 활동을 조직하는 것을 ‘문생청’이라고 했다. 문생청에는 양천을 구별하여 좌방과 우방을 두었고, 각 좌우방에는 5개의 문생청이 있었다. 그들은 문생청 조직을 통해 맹인 점복업자들의 경제 활동과 교육 활동을 조직했다. 대한제국을 거쳐 식민 시기에는 이 문생청이 유명무실해졌지만 일부 맹인 점복업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힘겹게나마 ‘부활’했다. 특히 1924년에는 맹인 수십 명이 회합하여 ‘조선맹인조합총본부’를 조직하고 규약 등을 협의한 후 당국에 인가 신청서를 제출하였는데 그 회의 목적이 ‘불쌍한 앞 못 보는 이들이 서로 안마하는 법을 배우며 점자법, 역리 연구 등을 통하여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알며 또 자기네의 생활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 맹청의 기본 강령은 ‘5훈과 5계’라는 조합의 규약으로 명확해졌다. 문생청은 문생계라고도 불렸는데 기능적인 측면에서 계와 유사했다. 당시 조합을 설립한 이유 중의 하나는 “맹인들이 벌이하는 대로 얼마씩을 지정해서 꼭 그거를 내는데, 맹인들이야 거짓말 하는 법이 절대로 없으니까, 많이 벌면 많이 내고. 아주 한 푼도 못 벌면 한 푼도 안 내고. 벌어지는 대로” 기금을 내는 상호부조의 원리에 있었다. 즉 조합은 이 원칙을 보다 체계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 「맹인 조합과 맹인 직업의 변화」 중에서

제생원에서 교사로 활동하던 박두성은 조선인을 위한 적절한 문자 교육의 필요성을 느껴서 한글점자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박두성은 강화도 교동 출신으로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1908년부터 어의동 보통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1913년부터 제생원 맹아부에서 교육을 시작했는데, 이는 맹인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직한 것 이 아니라 총독부에서 보다 나은 생활 조건을 제시해 이직한 것이었다. 당시 제생원 맹아부에는 4명의 일본인 교사가 재직하고 있었다. 맹인 교육이 시작된 후 학생을 모집하려 했지만, 제생원이 맹인을 죽여 버리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풍문이 돌아 학생들이 잘 모집되지 않았다. 박두성은 전국을 돌며 맹인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노력해, 맹인들이 제생원에 찾아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설득했다. 그는 제생원 훈도로 재직하면서 점자에 관심을 많이 기울였는데, 1917년에는 『반도시론 (半島時論)』에 「반도맹아의 교육」이란 글을 기고하면서 일본점자의 방식을 설명했다. 박두성이 조선 내에서 통용되던 점자 방식에 대해 깊이 연구를 했음을 알려주는 부분이다. 이 글에서 그는 특히 당시 평양에서 사용되던 로제타 홀의 점자에 대해 언급하며 제생원에서는 일본점자를 기본으로 하는 6점 점자를 쓴다고 적었다. 추후 박두성은 로제타 홀에게 프랑스 브라유(Braille)식의 6점형 점자로 한글점자를 고치자고 제의했으나, 홀 부인이 뉴욕 포인트식 점자로 일본점자 안까지 만들어 보내며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바람에 박두성은 독자적으로 브라유식 한글점자를 개발했다. 점자를 개발하게 된 원인은 박두성이 교육의 중요성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교육을 강조하는 애국계몽운동의 영향을 받은 듯, 글을 읽는 것과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매우 강조했다.
--- 「박두성의 교육활동과 훈맹정음(訓盲正音)」 중에서

시각장애인의 시위는 1966년에 절정에 이르렀다. 이들은 동맹 휴학, 국회의사당에서의 데모를 통해 자신들의 절박한 생존권 문제를 사회에 널리 알렸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유사 의료업자 법안 심의 과정에서 안마업권이 시각장애인의 직업 보도이며 생존권이라는 인식이 점차 높아졌다. 처음에는 법의 체계성, 보편적·근대적 입법을 강조하던 의원들도 시각장애인의 안마업권에 대해서만은 예외적인 인식을 하게 되었다. 이는 시각장애인들의 집단행동과 이를 청원과 정치적 로비로 연결시킨 전략이 성공한 덕분일 것이다. 이후 1973년 유신 체제 아래서 이를 시행령으로까지 만들어냈던 과정에 대해 시각장애인들은 “그 당시는 유신 체제였거든? 유신 체제에서는 국회가 아니고 국무회의에서 법 다루면 끝이야. 비상국무회의에서 통과하고 공포하면 그만이거든. 그러니까 안마사 조항이 들어가는 법이 바로 일사천리로 제정된 거야.”라고 말했다. 당시 시각장애인들은 대통령에게 시각장애인의 시위 사실을 알리기 위해 기존의 각종 사회적 네트워크를 활용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치권 등 고위층 인사들이 안마를 즐겨 받았고, 이를 통해 시각장애인들은 정관계 인사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인 양만석은 안마업권에 대한 시각장애인의 독점적 권한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안마 고객을 통해 대통령에게 청원했다고 말했다.
--- 「시각장애인의 권리주장」 중에서

식민지 조선의 경우 서양의 선교사들은 점자와 수예, 타이핑 등 다양한 직업 교육과 문해 교육을 실시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시각장애인의 근대적인 직업 영역은 안마로 일원화되었다. 전통적으로는 시각장애인들이 판수라 불리며 점복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식민지기를 거치며 점차 안마업에 종사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수가 증가하였다. 하지만 안마업은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사업영역이었으므로, 해방 이후 안마업은 독자적으로 존속되기 어려웠다. 해방 이후 서구식 의료 체계의 도입으로 인해 삼료업은 한국에서는 폐지되었다. 이후 여러 시각장애인의 투쟁을 통해 안마업이 시각장애인의 독점적 직업으로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갈등적 요소가 잠재해 있고, 시각장애인의 안마업의 독점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위헌 소송이 여러 차례 진행 중이다. 대만에서는 일제 식민 통치 이후 안마업이 맹인의 직업으로 도입되었다. 그리고 안마업이 시각장애인의 독점적 직업으로 1979년 이후 인정되었지만, 2000년대 이후 시장 자유화와 더불어 이 독점이 폐지되었다. 대만에서는 시각장애인의 조직이 상대적으로 강하지 않았고, 전통적인 권리 의식이 다소 약한 편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장의 영향을 받아 독점권이 비교적 용이하게 폐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안마업이 시각장애인들의 특수한 직업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전통 사회 이래 일본 사회에서는 시각장애인이 악사, 승려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쳤고 일종의 직역 집단으로 존재했다. 그런데 메이지유신 시기 전통 사회의 직능 단체들이 폐지되면서 시각장애인 악사의 조합이었던 당도좌가 해체되었다. 이 과정에서 강력한 집단성을 유지하고 있던 시각장애인들은 새로이 근대적으로 세워지고 있는 맹학교에 직업 영역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이후 침, 구, 안마 즉 삼료업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되었다.

--- 「식민/탈식민 과정에서 시각장애인의 직업 변화」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각장애인들은 전통사회에서 비교적 독자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점복업이나 독경 등에 종사하면서 그 존재를 인정받았다. 그런데 이들은 식민지적 근대의 과정에서 자선자혜의 대상으로, 그리고 계몽의 타자로 전환되면서 무능(disable)한 대상으로 간주되기 시작한다. ‘자선(慈善)’은 조선 말 선교사들의 포교활동과 연결되고, ‘자혜(慈惠)’는 일제 강점기의 식민화와 연결된다. 이러한 자선과 자혜를 바탕으로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변해온 과정과 배경을 톺아보면서 저자는 그 과정에서 한국인을 위한 점자를 개발한 박두성의 노력, 근대화 과정에서 미신이자 전통으로 인식되었던 시각장애인 점복업 조합의 호혜성, 개발독재 상황에서 안마업 권리를 위해 싸운 시각장애인의 역사를 살피고, 마지막으로 동아시아 사회에서의 시각장애인 역사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식민화, 탈식민화,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맹인·시각장애인이란 사회적 약자 집단이 어떻게 집단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사회의 변화 과정에 적응해왔는지, ‘보이지 않은 역사’를 탐색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글로 쓰인 사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저자가 직접 관련자들을 찾아다니며 구술자료를 취합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데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자체적으로 녹음기가 대중화된 1980년대 이후부터 시각장애인계의 원로들의 육성을 녹음하고 이를 녹취하기도 했다. 이후 컴퓨터가 확산되면서, 이런 녹취록들을 텍스트 파일로 시각장애인 커뮤니티에서 공유하고 있다. 덕분에 문헌 중심의 제도사로는 파악할 수 없는 복잡한 사회적 관계의 양상이 구술 조사를 통해 생생히 포착될 수 있었다. 이 같은 배경 아래 저자는 구술 조사를 통해 시각장애인들의 주류적인 직종인 점복업, 안마업뿐만 아니라 구걸 맹인에 대한 조사도 실시했다. 소수자 집단에 대한 구술 자료 수집은 법제도, 사회복지, 사회사업사, 인권의 역사와 관련하여 공식 문헌 중심의 역사가 아닌 생활 세계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소중한 자료이다. 기록되지 않고 비가시화되었던 사람들의 역사를 ‘구술’에 천착하여 발굴해낸 이 연구는 그 방법론에서 역시 빛나는 저작이라 하겠다.

시각장애인의 권리는 투쟁의 결과다
역사적으로 시각장애인들은 고려시대 이래 점복업 직역에 종사했고, 고유한 집합적 정체성과 문화 그리고 사회적 집단을 형성했으며 국가제사에 참여했다. 시각장애인의 구술문화를 통해 직역 집단의 역사는 전승되어왔으며, 시각장애인의 일을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는 권리 의식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지켜갔다. 이처럼 전통 사회에서 비교적 독자적이고 고유한 문화를 통해 생활하던 맹인들은 서구 선교사와 일제에 의해 하루아침에 보호받아야 하고, 불쌍(자선과 자혜)하고, 어두움에 갇힌 무능한 사회적 주체(준금치산자)로 강등되고, 식민 권력의 ‘문명화 사명’을 통해 ‘계몽의 빛’의 시혜적 대상, 즉 일종의 들러리가 된다. 한편으로 시각장애인들은 일제강점기하 ‘안마’라는 근대적 의료교육을 받기 시작하는데 식민자를 통한 이 같은 근대적 특수교육, 사회사업, 법제도의 이식은 종래 이들이 유지해오던 전통적인 삶의 방식 및 조직과 지속적으로 충돌하게 된다. 시각장애인들은 이때부터 더욱 구체적으로 자신들의 지위와 권리, 사회적 인정을 보호하기 위해 투쟁을 이어갔다.

결코 작지 않은 ‘작은 이’들의 역사
시각장애인의 역사는 한 작은 집단의 역사이다. 그렇다면 이런 특정 장애의 역사는 전체 역사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대체로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기존의 주류적 역사를 낯설게 하는 역사이며, 두 번째로는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차별과 배제가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알려준다. 세 번째로는 타자의 주체성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이해하게 해준다. 시각장애인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모순적이고 구불구불하며 다채로운 근대로의 길들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때로 저항이었으며 때로는 복종이었고 또한 다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사회에서 배제되고 혹은 잔여적이며 낙후되었다고 생각되는 사회의 주변적 집단 역시 자신들만의 고유한 주체성과 저항 그리고 연대의 방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각장애인의 역사는 이 같은 작은 이, 작은 타자의 역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서벌턴 서술로 시각장애인의 저항과 연대를 만나다
『보이지 않은 역사; 한국 시각장애인들의 저항과 연대』는 사회적 약자집단이 사회 속에서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온 투쟁의 과정에서 사회가 어떤 식으로 소수자 집단을 보호했는지, 일반 구성원들이 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수용했는지 그 방식을 이해하게 해주며, 소수자들의 시민권이 한국 사회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저작이다. 소수자들은 사실 차별받는 피해자‘만’이 아니라 스스로 ‘사람 취급’을 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싸워온 역사의 주체들이었다. 따라서 시각장애인의 역사를 탐색한다는 것은 곧 한국 사회의 오랜 역사적 전통과 관습, 문화 속에서 소수자 집단의 권리 형성이 가능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작업은 한국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기원을 서구에서 이식된 것으로 무작정 받아들이지 않고 한국 사회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찾는 탈식민적, 탈서구중심적 역사 서술이자 서벌턴 역사 서술의 획기적인 시도라는 큰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의 구성
1장에서는 근대 사회에서 장애인이 타자화된 과정을 살펴본다. 시각장애인들은 근대가 시작되면서 문명의 타자, 무능력한 존재, 그리고 자선/자혜 등 시혜의 대상으로 규정되며 배제와 포섭의 과정을 경험했다. 이는 기독교 선교사와 식민주의에 의해 경쟁적으로 이루어진 과정으로, 시각장애인들은 근대적 통치 권력의 ‘문명화 사명’을 선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영역이었다.
2장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이 전통 사회 이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인 점복업을 하면서 어떻게 연대와 호혜를 행했는지를 살펴본다. 시각장애인들의 점복업 조합은 일종의 길드로, 즉 사회적 경제의 형태로 시각장애인들 내부에서 일종의 자생적 경제 체제를 만들어 교육과 직업, 그리고 연대의 관계를 형성했음을 보여준다.
3장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이 근대 사회 체계에 포섭될 수 있게 하는 점자의 역사를 살펴본다. 제생원의 교사였던 박두성은 시각장애인들이 일본식 점자와 미국식 점자를 익히기 어려워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한글 점자를 만들고 ‘훈맹정음’이라 칭했다. 이는 식민 통치하에서 조선어를 통해 교육을 받고 지식을 쌓을 수 있게 하여, 시각장애인들이 문자 문화의 세계로 편입될 수 있게 하려는 뜻이었다.
4장은 시각장애인의 안마업권에 대한 저항의 역사를 기록한다. 한국 사회의 가장 강력한 전문가 체계 중의 하나는 의료 체계이다. 의사 중심의 의료 체계 내에 다른 의료를 행하는 사람들이 전문성을 획득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카이로프락틱 등 유사 의료 영역이 법제화되지 않고 있는데 예외 중의 하나가 시각장애인의 안마업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의료법에서 유사 의료업자로 인정받고 있는데, 이것은 해방 이후 시각장애인들이 ‘사람 취급’ 받기 위한 지난한 투쟁 속에서 가능했다. 이런 저항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집단의 고유한 문화가 존재해야 했다.
5장은 이 같은 고유한 문화가 일종의 구술문화를 통해 시각장애인들에게 어떻게 전승되었는지 살펴본다. 시각장애인들은 조선시대 이래 나라에서 맹인들을 보호해주었다는 관습적 권리 의식을 바탕으로 저항과 연대를 했다. 이런 관습에 대한 주장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서도 수용되는 등, 시각장애인 권리의 핵심적 기반이었다.
6장에서는 동아시아의 차이를 살펴본다. 안마업은 전통적인 직업이 근대화 과정에서 변화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사실은 일본의 전통이 동아시아에 이식되며 변화한 것이다. 그래서 안마업의 법적 지위는 일본, 대만, 한국 모두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것은 각 사회의 사회적 관계의 차이에 따라 다른 경로를 형성했다. 그래서 소수자의 생존권은 사회 맥락과 역사 속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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