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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내현] 1. 16세기 유연 사건과 가족 갈등
[김경숙] 2. 규범과 일상 사이에 선 조선 후기 사대부가 여성의 법 활동 [정병욱] 3. 일제강점기 불경不敬 사건과 행위자들 [이유재] 4. 속 빈 아담, 속 찬 이브: 한국 탈/식민지기 가톨릭 여자선교 [소현숙] 5. 1950~60년대 ‘풍기문란’ 단속과 여학생, 일탈과 저항 [안승택] 6. 두 마을 이야기: 1960~70년대 농촌의 일상생활 속 자연적 사회적 사건 [이상록] 7. 정치종교로서의 새마을운동, 신앙고백의 편지쓰기: 1970년대 새마을지도자연수원 수료생 서신을 통해 본 새마을운동의 일상정치 [주윤정] 8. 불운한 아이들: 형제복지원의 부랑아와 고아 [이타가키 류타] 9. 은각사에 그어진 38선: 2차 세계대전 이후 교토의 민족학교와 지역사회 · 참고문헌 · 초출 일람 · 2019~2024년 일상사 워크숍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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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6년 대구의 한 양반가에서 가출 사건이 일어났다. 주인공은 유유로 백씨 성을 가진 아내가 있었으며,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유예원柳禮源 으로 역시 생존해 있었다.…유유에게는 형인 치治 와 아우 연淵이 있었는데 치는 이미 죽어 유유가 사실상의 장남이었다. 이런 집안에서 가출이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 p.20 16세기 영남 인물인 권응인은 채응규가 대구 근방 경산의 관속으로 유유의 여종과 혼인했다고 기록하였다. 그가 유유의 여종과 혼인한 이력이 있다면 유유의 용모나 집안 사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권응인은 채응규가 다른 지방을 떠돌다가 유유를 만나 함께 지냈으며, 이로 인해 유유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것으로 보았다. --- p.41 17세기 이후 딸은 차별받고 아들 가운데 장남이 우대받는 방식으로 상속 관행이 바뀌었다. 이때 아들이 없는 집에서는 양자를 들였다. 총부들도 자신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입양에 동의하였다.…이후로 조선 사회는 가계 계승과 재산 상속을 두고 장남과 차남, 형수와 시동생이 갈등하거나 사위가 처가 재산에 관심을 표명하는 일도 사라져갔다. 유연 사건은 16세기 일상 공간에서 벌어진 가족 갈등이었다. --- p.39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아래로는 담당 관청부터 위로는 국왕에 이르기까지 누구라도 청원 및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가 명문화되어 있다. 성별이나 신분에 따라 청원자를 제한하지 않았고, 여성의 법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도 찾을 수 없다. 대신 ‘사족 부녀’는 관에 직접 나와서 진술하지 않고 문서로 대신하게 했다. 또한 아들·사위·아우·조카[子壻弟姪] 등의 가족이나 소유 노비를 대리인으로 내세울 수 있도록 ‘허용[許]’하였다. --- p.52 신정수 처 유씨는 사대부가 여성들이 선호했던 대리인을 내세우는 방식뿐만 아니라 친소·친송의 방법도 적극 활용하였다. 내용의 측면에서도 남편 족인 신성중과의 산송, 도망노비 추쇄를 위한 상언·격쟁 추진, 가계 계승을 위한 신용백(신시갑)의 입후 청원 등 가호 보존, 가계 계승 및 재산권 수호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있다. 이러한 모습은 남편의 부재로 집안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주어졌을 때 이를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감당하는 주체적 행위자로 이해된다. --- p.80 ‘황실에 대한 죄’는 천황을 정치 권력자로서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부모처럼 이데올로기적인 권위, 정통성으로서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실제 ‘불경죄’는 1882년 시행되어 1947년 폐지될 때까지 천황제 질서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침범하는 또는 침범했다고 여겨지는 여러 ‘적’에 대처하여‘ 활약’했다. 와타나베가 주목한 주요 ‘적’은 사회주의, 종교집단이었다. --- p.88 식민지배하의 투서에서는 독일 나치시대의 밀고에서 보이는 지배에 동참이나 ‘협력’이라는 감정적 동조가 잘 포착되지는 않는다.…그럼에도 ‘내면화’나 ‘동일시’까지는 몰라도 지배에 대한 ‘동조’의 흔적이 보인다. 조서 봉독식에 참여하지 않은 남원 일부를 힐난하는 마을 사람, 일본어를 가르치면서 인정받고 싶었던 공전병택, 사리원 평화여관 앞 호객꾼, 김영배를 밀고한 마을 유지 등이 그런 예다. 가치 판단을 떠나 식민지 피지배자인 조선인에게 ‘동조’는 삶의 한 방편이었다. --- p.119 강선미는 여선교사들이 서구 근대주의와 기독교 내의 가부장적 요소를 재생산했던 면도 있지만 여선교사들의 의도와는 별개로 그들에게 교육받은 조선의 여학생들은…한국의 근대 초기 페미니즘을 형성했다고 주장한다.…이들은 개인의 자유를 표방하는 자유주의적 신여성과 여성의 해방을 표방하는 사회주의적 신여성과 구별되어 남녀평등을 표방하는 신여성 내 온건파를 형성하였다. --- p.131 수녀원은 독일 수녀들에게는 문화적 피난처였지만 한국 수녀들의 일상생활을 자세히 보면…서구 문명과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라기보다는 가난과 고된 노동, 비합리 성과 삶의 질의 상실과도 연결되는 곳이었다. 침대에서 자고, 의자에 앉고, 바닥에는 마루를 깔고, 벽에는 유리창문을 두고 산다는 것 자체가 문명으로의 입주는 아니었다. --- p.145 “여성을 위한 여성” 선교 방법은 유럽 가톨릭 부르주아식 가족을 모델로 하고 있었다. 이 방법을 실행에 옮겼을 때 여성는 선호되지 않았고 한국 사회에 존재하던 성별 불평등은 교회의 도전을 받지 않았다. 도리어 이 방법은 성별 불평등 구조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였고 여성은 교회 안에서 차별받았다. --- p.163 풍기단속을 명목으로 한 학생생활에 대한 감시와 처벌은 식민지 시기부터 시작되었으나, 1 의무교육제도의 도입으로 학생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한 1950~60년대에 이르러 더욱 강화되었다.…4·19혁명에 나선 중고등학생들의 열기가 표상하듯이 학생들은…정치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영화나 펜팔과 같은 새로운 문화를 향유하는 주체로서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게 드러냈다. 정부와 사회는 이러한 역동적인 중고등학생들의 움직임이 체제와 규범의 경계를 넘지 않도록 규제하고자 했는데, ‘풍기단속’은 그 일환이었다. --- p.169 1950년대 후반 중고생들의 맹휴는 대체로 학교 재단의 비리나 교장의 독단적인 인사, 교사들의 무능이 그주요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활동을 포함한 학생들의 일상에 대한 통제 또한 맹휴의 발단이 되었다. 나아가 학생 풍기에 대한 강조는 반대급부로 교사들의 풍기문란에 대한 학생들의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 p.205 《임실 창평일기》는 매우 흥미로운 자료이다.…한 마을에서 빈발하던 폭력 사건의 양상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일기에서 직접 완력을 써서 상대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만 세더라도 한 해에 적게는 3건(1973년)부터 많게는 13건(1971년)에 이른다. 여기에 멱살잡이처럼 물리적 상해 직전까지 간 경우, 피아간의 가해 상황이 분명하지 않지만 완력이 행사되었을 개연성이 큰 경우…성폭력이나 응징폭력의 경우 등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 p.224 1970년 ‘새마을 가꾸기 사업’이라는 명칭으로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애초에 농촌 지역 환경개선 사업이나 농가 소득증대 사업과 같은 물질적 차원의 개발사업이었다. 그런데 박정희는 근대화·산업화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 정신혁명’ 프로젝트로서 새마을운동을 끌고 가려고 했다. 그는…소비와 사치를 일삼는 주체의 정신을 개조하여 ‘근면·자조·협동’을 실천할 수 있는 노동의 주체, 개발의 주체로 만드는 것을 바로 ‘정신혁명’이라 명명했다. --- p.253 새마을지도자연수원 수료생들이 연수원으로 보낸 편지의 수신자는 대부분 김준 원장이었다. …연수원에서 받은 교육 내용이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특별한 가르침이었다고 고백하거나 김준 원장의 강연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들이 매우 많은 편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 p.273 국어학자 서정범은 연수원 식당 아주머니들이 분임토의에서 교육생들에게 애인에게 밥을 해주듯이 사랑으로 짓자고 결의한 에피소드를 담아 새마을운동을 “살아있는 현 시대에 지상낙원을 이루자는 신앙운동”이라고 정의내렸다. “종교에서 극치로 여기는 내세의 낙원이 새마을운동에서는 살아있는 현 시대에 이루려는 의지적인 운동”이라고, 실제 종교보다도 더 좋은 차원의 세속종교로 새마을운동을 설명했다. --- p.305 1975년부터 부랑인을 본격적으로 단속하기 시작했다. 이 훈령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사회에서 비정상적 인구를 통제하려는 필요와 동시에 당시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필요가 복합적으로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사회적으로 도시화로 인한 사회인구를 통제하려는 측면 과, 정치적으로 권력의 통제를 강화하려는 이중적 경향성 속에서 이런 훈령이 시행되었던 것이다. --- p.320 복지원에는 구타, 고문 등 신체적 폭력, 성폭력 등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다.…아동들에게 가장 강력한 징벌은 탈출을 시도했을 때였다. “빨간 마대자루에 위에 구멍으로 이렇게 뚫고 칼로 이래 뚤고 빨간 글로 ‘나는 탈출하다 잡혀왔다’는 문자가 이렇게 앞뒤로 쓴 걸 입히더라고요. 그걸 마대를 입고 소대원들이 밥 먹으로 들어간 입구에 이렇게 쫙 서 가지고……” --- p.3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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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사’를 포괄 또는 뛰어넘는 방법론
물론 20세기 초반 프랑스와 독일에서 시작된 일상사 연구의 개념이 확립된 것은 아니다. 한국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일치된 의견이 있지는 않다. 그러기에 근대에 의해 파괴되는 일상(르페브르), 자본에 대항하는 일상(하루투니언), 생활세계로서의 일상(하버마스) 등 다양한 연구가 ‘일상사’의 이름으로 이뤄졌고 국내에서도 ‘민중사’, ‘구술사’, ‘생애사’ 등 다양한 명칭과 방법론이 등장했다. 이 책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일상’을 하나의 영역으로 보는 것은 오해라고 주장한다. 그보다는 ‘일상’을 밑으로부터 시각의 하나로 이해하자고 제안한다. 작은 사람들이 아래로부터 ‘자기 삶의 조건에 규정되면서도 그 조건을 전유하는 실천’으로서의 ‘일상’을 강조하는 것이다. 일상 속 사건으로 일상 다시 보기 학문사적 의미를 떠나 책에 실린 글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18세기 영월 신씨가 여성의 청원과 소송을 분석한 김경숙은 남편이 부재한 상황에서 도망 노비 추쇄를 위해 소송은 물론 국왕에게 상언?격쟁도 불사하는 적극적 법 활동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삶은 한 방편으로 이뤄진 불온인물에 대한 투서라는 ‘동조’(정병욱), 1950~60년대 ‘풍기문란’의 내용과 이에 대한 여학생들의 저항(소현숙), 1970년대 전북 임실의 한 마을에 만연했던 폭력의 실태(안승택) 등 ‘역사책’에서는 만날 수 없는 흥미로운 ‘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 이 밖에 정치종교로서의 새마을 운동(이상록), 부산 형제복지원의 불운한 아이들(주윤정), 교토 민족학교 건립을 둘러싼 갈등(이타가키 류타) 등도 놓치기 아까운 글들이다. 일상사 연구자들의 성과를 한자리에 이 책에 실린 9편의 글은 2019년 9월부터 2024년 7월까지 고려대와 독일 튀빙겐대학교, 영국의 에딘버러대학교에서 열렸던 다섯 차례의 일상사 워크숍에서 발표된 논문을 골라 엮은 것이다. 이보다 앞서 일상사 연구의 개척자인 독일 알프 뤼트케 교수의 《일상사란 무엇인가》(2002)가 번역, 출간되었고, 젊은 국내 학자들이 중심이 된 《일상사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2006)가 출간되어 한국에서의 일상사 연구를 위한 물꼬를 튼 바 있다. 이 책은 그간의 연구 공백을 메우며 현재 국내 일상사 연구의 성과를 부분적으로나마 한자리에서 엿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귀한 의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