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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 젠더·어펙트 연구는 무슨 일을 하는가
1부 서사의 역사와 아상블라주: 마주침의 어펙트 〈오징어 게임〉 어펙트, 마주침의 윤리와 연결성의 에톨로지 (권명아) ‘실내 우주’의 SF 에톨로지 (권두현) 연결성의 에톨로지로 본 ‘새끼 서 발’ (강성숙) 2부 귀와 눈과 피: 전체와 부분 너머의 신체적 연결성과 어펙트 ‘데프(Deaf)의 영화’를 찾아서 (이화진) 신체에 각인된 전쟁 (소현숙) 해외입양인의 가족 찾기 표상 (김이진) 3부 ‘ 싸우다’의 어펙트: 전쟁, 냉전, 스포츠 속에서 부대끼는 여자들 ‘아이돌’과 전쟁의 정동 (나이토 치즈코) 미디어 속 여성 스포츠의 서사와 재현 (김은진) 냉전의 감정 동원 (첸페이전) 4부 능동인 수동, 수동인 능동: 몸 둘 바(處身)와 어펙트 팬데믹 시대, 그녀들은 왜 새벽에 일어났을까? (최이숙) 가정폭력맥락에서의 빚과 빚짐에 대한 시론 (박언주) 페미니즘은 그 이름이 페미니즘이 아니더라도 (이소영)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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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훈이 믿을 만한 가부장으로 재생하는 과정은 단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자본(신용)’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신뢰자본 획득 과정에 여성들은 그 누구도 포함되지 않는다. 즉 이러한 서사 속 결국 파산 상태에서 믿을 만한 가부장으로 재생한 기훈의 성장은 신용회복이라고 하는 투기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자본을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 과정이 ‘돈’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의 문제라는 점을 메시지로 강조하면서 수용자에게 윤리적인 불편함을 소거시키면서 투기자본주의 게임을 도덕화된 감정으로 수용하도록 만든다. 또 이 게임 서사는 사실상 남성만이 접근 가능한 신뢰자본의 세계를 정당화하면서 여성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젠더화된 신뢰자본을 도덕화해 정당화하는 기능을 한다.
---「권명아, 〈오징어 게임〉 어펙트, 마주침의 윤리와 연결성의 에톨로지」중에서 식물은 오늘날 또 다른 컨테이너 테크놀로지의 매개를 거치는 과정에서 탈물질화되어 그 조형성만을 추상적으로 남기기도 한다. 오늘날 SNS로 일컬어지는 미디어 테크놀로지는 배경화된 식물을 다시 한번 형상으로 출현시킨다. 식물은 SNS를 통해 복제되고 증식했다. SNS 가운데서도 인스타그램은 식물을 인간에게 한층 가깝게 접근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식물이라는 컨테이너 테크놀로지는 인스타그램의 격자 프레임이라는 디지털 컨테이너에 재매개됨으로써 배경 또는 용기로서의 비가시적 특징 대신 개체화된 형상으로서의 조형성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비닐 온실이 식물에게 부가한 것이 바로 이러한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한 조형성이다. 그것은 특히 식물과 이질적인 존재로서 실내의 각종 사물들과의 어울림 속에서 포착되고 강조되었다. ---「권두현, ‘실내 우주’의 SF 에톨로지」중에서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신필름에서 제작한 농인 소재 영화들은 장애를 무력하고 의존적이며 열등한 것으로 낙인찍거나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우세했던 1960년대 당시의 시대적 한계 안에 있다. 그러나 농인과 청각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배어있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만종〉이 수어 영화로서 다시 위치되어 ‘농인의 영화’를 탐색하는 길잡이가 되는 것처럼, 영화가 재현하는 삶의 이야기 못지않게 영화가 삶을 전달하는 방법이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장애 중심적인 사회에서 관행적으로 제작되어온 영화를 장애의 렌즈를 통해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텍스트 안에 존재하는 ‘불구’를 확인하고 그 영화의 재현이 얼마나 장애 차별적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특정한 신체와 감각, 인지력을 ‘정상적인 것’으로 생산해온 권력의 역학을 그동안 영화 산업과 영화 연구가 도외시해왔음을 문제 삼고, 제작 현장과 관람 환경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더 나은 영화 연구’48로 나아가는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이다. ---「이화진, ‘데프(Deaf)의 영화’를 찾아서」중에서 장애를 수치로 여겼던 그녀의 삶에 변화가 나타난 것은 노근리사건 진상규명운동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역사의 산 증인으로서 노근리사건의 피해를 말하며 장애를 설명할 언어를 획득한 그녀는 노근리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사회적 지지를 얻게 되자 주눅들었던 마음이 사라지고 그간의 고통이 치유되는 듯한 느낌을 경험한다. 이제 의안을 끼지 않고도 시내에 나갈 수 있는 당당함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변화에서 트라우마적 기억의 표현은 그 자체가 고통을 수반하지만 사회적 지지를 동반할 때 그것은 치유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아가 개인의 피해가 역사적 피해의 증거로서 의미화되는 과정에서 그녀의 노근리대책위원회 활동 및 구술증언 행위는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고 누락된 고통의 기억을 복원하여 공식적인 역사 기억으로 격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통해 그녀는 전쟁의 일방적인 피해자에서 전쟁에 대해 ‘말하는’ 주체, 즉 역사적 주체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는 그간 여성을 전쟁의 희생자로서만 기억해 온 틀을 벗어나는 것으로 전쟁과 여성의 관계를 새롭게 사고할 시야를 열어준다. ---「소현숙, 신체에 각인된 전쟁」중에서 여성 팀 스포츠 프로그램인 〈골때녀〉의 가능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해서 변화하고 확장되었다. TV는 ‘문화적 공론장’ 역할을 한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매체 중 하나인 TV가 다양한 가치와 관점, 의미들을 제시하여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전달하는 토론의 장이 된다는 것이다. 즉, TV 텍스트는 기존의 관점을 지원하거나 시험하면서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거나 변형한다. 때문에 〈골때녀〉의 시도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가진다. 마수미에 따르면 ‘계속 비판만 하고 제대로 된 접근법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바로 뛰어들어 실험하고 네트워킹’ 해야 한다. 특히 〈골때녀〉가 시사나 교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웃음은 일종의 “난입”이자 문턱을 넘어 경계를 해체할 힘이다. 웃음은 극단에 놓인 가치를 껴안으며 변화 과정 자체에 주목한다. 웃음의 전복성은 미하일 바흐친(Михаи?л Миха?йлович Бахти?н)이 프랑수아 라블레(Francois Rabelais) 작품 분석에서 말한 ‘웃음을 통해 거지가 왕이 되고 왕이 거지가 되는 카니발(carnival)’에서 발견된다. 웃음은 지배 의식으로부터 일시적 해방을 맞이하게 하고, 타자의 마주침을 통한 순간의 풍요로움으로 가득 찬 순간을 만든다. 시청자들은 편안하게 웃으면서 변화한 여성 주체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김은진, 미디어 속 여성 스포츠의 서사와 재현」중에서 사실 페미니즘에 대한 반지성주의적 태도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7 이는 1990년대 여성운동의 주체들도 겪었던 문제였다. 반지성주의를 백래시(backlash)의 일종으로 파악할 때, 1990년대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성희롱 등에 관한 법제화 운동은 백래시와 상호 견인하며 이루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1990년대는 “창녀들을 여성해방운동의 전위세력”으로 간주하고, “성을 거래하는 시장과 유통구조가 더욱 정교하고 다양해져야 한다”면서 “모든 여성이 ‘창녀 정신’으로 무장”할 것을 주장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던 시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페미니스트들은 “도전받는 부분에 응수”하면서 페미니즘과 페미니즘이 아닌 것을 구분 지어야만 했다. 이렇듯 “페미니즘이 어디에 와 있는지 조사하는 일”12이 더욱 긴요했던 것은 그 당시 ‘여성학’이 제도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7년 이후, 총여학생회의 요구로 대학 내 교양과목으로서 ‘여성학’이 신설되었으며 학내 여성연구소가 설립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이르면 여성학은 급속도로 성장하는데, 학위 과정으로서의 여성학 프로그램과 학과 개설이 전국 단위로 확산되었으며, 타 분과학문에서도 ‘젠더’ 연구가 태동한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페미니즘을 표방하며 출간된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 페미니스트들이 우려를 표했던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이소영, 페미니즘은 그 이름이 페미니즘이 아니더라도」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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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부터 글로벌 스케일에 이르기까지
이질적인 요소들의 분리불가능한 내부작용을 짚어내다 1부 〈서사의 역사와 아상블라주: 마주침의 어펙트〉를 시작하는 권명아의 「〈오징어 게임〉 어펙트, 마주침의 윤리와 연결성의 에톨로지」는 초국가적 반페미니즘 백래시 흐름의 형성과 문화자본, 그리고 초국가적 플랫폼의 다차원적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사례로서 〈오징어 게임〉을 불러낸다. 권명아의 글은 〈오징어 게임〉 텍스트에 대한 해석뿐만 아니라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의 고유한 정동 정치에 대한 분석과 연결되어 전 세계인이 마주한 정동적 환경을 둘러보게 한다. 권두현의 「‘실내 우주’의 SF 에톨로지」는 사물-동물-식물이 마주치는 ‘실내’를 ‘우주’라는 연결망으로서 사유하려는 시도다. 『지구 끝의 온실』이라는 김초엽의 과학 소설(science fiction)과 반려종을 다룬 다양한 웹툰을 나란히 두고, 여기에 나타난 다종의 뒤얽힘을 실뜨기(string figures)의 관점으로 해석하면서 실내는 사적 소유의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공존-공생-공산의 조건을 함축한 잠재적 공유지이자 다중적인 공간성과 시간성이 있는 위상학적 우주 공간으로서 개방됨을 제시한다. 강성숙의 「연결성의 에톨로지로 본 ‘새끼 서 발’」은 고전 서사를 통해 ‘누적’과 ‘연쇄’의 관점에서 연결성을 논구한다. ‘새끼 서 발’ 설화의 주인공이 죽음과 다를 바 없는 퇴행적 상태에서 생명 또는 삶에 대한 사람들의 인정과 지지를 확인하며 생동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을 얻게 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이 설화에 담긴 긍정적 정동과 에톨로지의 함의를 끌어올린다. 역사적으로 승인되지 못한 몸과 감각은 어떻게 배제되었나 2부 〈귀와 눈과 피: 전체와 부분 너머의 신체적 연결성과 어펙트〉에는 특정한 신체와 감각을 ‘정상화’하면서 ‘위계화’해온 역사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시도한 글들을 모았다. 이화진의 「‘데프(Deaf)의 영화’를 찾아서」는 1960년대 신필름의 농인 소재 영화들을 검토하면서 영화사의 관점과 장애사의 관점이라는 겹눈으로 스크린 안팎에서 부대끼는 몸들의 역사를 쫓는다. 일련의 영화들이 ‘들리는 세계’를 겨냥해 제작된 상업영화였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농인의 삶을 전경화하고 농인들의 수어 대화를 비중 있게 연출하여 ‘들리는 세계’와 ‘들리지 않는 세계’, 그리고 그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생각할 틈새를 만들었다는 점을 주목한다. 「신체에 각인된 전쟁」에서 소현숙은 한국전쟁기 민간인의 피해와 치유의 과정을 ‘노근리 사건’ 피해자들의 구술을 통해 살핀다. 전쟁 당시 부상으로 한쪽 눈을 상실한 한 여성의 생애는 전쟁과 장애, 젠더가 교차하는 전후의 삶을 보여준다. 김이진의 「해외입양인의 가족 찾기 표상」은 한국의 언론과 대중문화가 해외입양인을 어떻게 표상해왔는지를 추적하면서 재현의 대상인 해외입양인과 재현의 주체로서의 해외입양인을 비교한다. 한국에서 해외입양인의 재현은 해외입양인과 생모의 재회에 중점을 두고 있으면서도 재회한 이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는 반면, 해외입양인이 제작한 영화 작품은 가족 찾기를 소재로 하면서도, 자신들의 수용국에서의 생활이나 입양 가족의 모습을 전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유의미한 차이를 짚어낸다. 전쟁, 냉전, 스포츠 속에서 ‘싸우다’의 어펙트는 어떻게 생성되고 변용되었나 3부 〈‘싸우다’의 어펙트: 전쟁, 냉전, 스포츠 속에서 부대끼는 여자들〉에서는 ‘싸우다’의 어펙트가 생성되고 변용되는 양상을 분석적 구체적인 차원에서 펼쳐 보인다. 나이토 치즈코의 「‘아이돌’과 전쟁의 정동」은 ‘아이돌’이라는 기호를 통해 현대 일본의 내셔널리즘이 성폭력과 결합하여 작동하는 구조를 고찰한다. ‘함께 싸운다’는 ‘우리들의 전쟁 이야기’가 펼쳐지는 메타적인 서사 속에서 내셔널리즘과 젠더 위계를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김은진의 「미디어 속 여성 스포츠의 서사와 재현」은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의 서사와 재현을 젠더적 관점으로 분석한다. 여성들이 서로 간의 관계를 통해 주체로서의 인식, 자부심을 드러냈고, 팀워크와 리더십을 배우며 상호 간의 관계, 즉 여성 연대를 만들어갔다는 분석은 재현 너머 정동적 지평까지를 가리킨다. 「냉전의 감정 동원」에서 첸페이전은 냉전 초기 각종 지식의 구축 과정에서 ‘모성애’가 아동 발달과 가족 화합에 미치는 영향이 전에 없이 높은 주목을 받고 있음을 발견한다. ‘어머니의 책임’으로 촉발된 일련의 논의가 ‘모성애’ 및 ‘정서적 성숙’과 ‘민주적 질서의 안정’ 간에 연결 관계를 구축하는 ‘과학적 모성애’로 발전하였다는 논의는 ‘싸우다’의 어펙트가 맞서야 할 대항정치의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 보인다. 시대의 불안과 끊임없이 ‘싸우는’ 여성들의 다양한 실천 4부 〈능동인 수동, 수동인 능동: 몸 둘 바(處身)와 어펙트〉는 시대의 불안과 싸우는 여성들의 실천을 다양한 맥락에서 검토한다. 최이숙의 「팬데믹 시대, 그녀들은 왜 새벽에 일어났을까?」는 2022년 1월 ‘김미경과 함께하는 514챌린지’에 참여했던 3040 여성들의 경험에 주목한다. 새벽 기상 프로젝트는 자기계발 담론의 실천적 방법으로서, 이 담론이 팬데믹 기간 동안 전 세계적으로 급성장하였다는 것은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 변동을 결국 개인이 감당해야 했음을 보여준다. 박언주의 「가정폭력맥락에서의 빚과 빚짐에 대한 시론」은 빚에 대한 미시경제적 관점을 거시경제적 관점으로 옮겨 파악하고, 금융자본의 경제적 착취가 여성에 대한 정동적 억압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이 글에서 주목을 요하는 대목은 경제적 착취와 강탈을 의미하는 부채 속박으로서의 빚짐과 상호의존과 유대로서의 빚짐을 대비시킴으로써 금융자본주의하에서의 빚의 작동방식과 양면성을 고려한다는 데 있다. 이소영의 「페미니즘은 그 이름이 페미니즘이 아니더라도」는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 담긴 동시대적 시간성을 ‘적대’라는 정동의 추이를 통해 살펴본다. 소설 속 인물 강민주가 적대의 행동을 완결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끝내 젠더폭력의 피해자로 남은 것은 공적 시스템 자체에 남성과 여성 간의 성차에 기반한 비대칭적인 관계가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