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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황야를 찾아서
대구 경북 문학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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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 운명의 황야를 떠도는 시간

1부

이문열의 두들마을 - 영양
―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
김원일의『마당 깊은 집』- 대구
― 시간의 황야를 찾아서
이동하의『우울한 귀향』- 경산
― 한번은 오밤중에 눈이 뜨였다
권정생의『몽실언니』- 안동
― 울도 담도 없어 숨기지 않아도 되는 편한 집, 빌뱅이 언덕
하근찬의『수난이대』- 영천
― 신세 조졌심더
김동리『무녀도』의 공간을 찾아 - 경주
― 모화의 애환이 서린 예기소의 물살은 지금도 흐르고
김시습의『금오신화』- 경주
― 김시습의 길, 용장사지 가는 길

2부

문인수의『홰치는 산』- 성주
― 방올음산은 북벽으로 서 있다
김성도의 〈어린 음악대〉 - 대구
― 따따따 따따따 나팔 붑니다
조지훈의 주실마을 - 영양
― 검푸른 숲 그림자가 흔들릴 때마다
박인로의 가사문학 - 영천
― 산중에 구름이 깊으니 간 곳 몰라 하노라
퇴계 이황의『매화시첩』- 안동
― 객창이 소쇄하니 꿈마저 향기로워라
포은 정몽주의「단심가」- 영천
― 다만 아직 고향에 돌아가지 못할 뿐
야은 길재의「회고가」- 구미
―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목은 이색의 괴시리마을 - 영덕
― 세상 일 나 몰라라, 잠이나 더 자자

저자 소개 1

1968년생. 경북대학교 철학대학원에서 예술철학 및 현상학, 해석학 등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다. 장르별로 나뉘어져 있는 예술이 표현방식과 사용하는 언어만 다를 뿐 예술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는 동일한 예술이라는 인식하에 예술 전반에 광범위한 관심을 두고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예술을 표현하는 사물과 언어의 문제에 천착하여 작가들이 무엇을 통해 어떻게 보여주고자 하는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 『무간을 건너다』는 삶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문제를, 『나무는 기다린다』는 삶에서 표현되는 다양한 언어의 표현방식을 실험하였으며, 『나는 너무 늦게야
1968년생. 경북대학교 철학대학원에서 예술철학 및 현상학, 해석학 등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다. 장르별로 나뉘어져 있는 예술이 표현방식과 사용하는 언어만 다를 뿐 예술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는 동일한 예술이라는 인식하에 예술 전반에 광범위한 관심을 두고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예술을 표현하는 사물과 언어의 문제에 천착하여 작가들이 무엇을 통해 어떻게 보여주고자 하는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 『무간을 건너다』는 삶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문제를, 『나무는 기다린다』는 삶에서 표현되는 다양한 언어의 표현방식을 실험하였으며, 『나는 너무 늦게야 왔다』는 첫 시집으로 그때그때마다의 삶을 바라보는 사유를 시를 표현하였다. 2010년에 토기를 통해 신산했던 우리 선조들의 삶을 표현한 시 「빗살무늬토기」로 대구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현재는 예술에 대한 특정한 시각의 해석을 통해 예술이 일반 대중에게 좀 더 쉽게 접근되는 다양한 방식의 산문 쓰기를 시도하여 [대구예술]에 「사물로 예술읽기」, [대구일보]에 「천영애의 영화 산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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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0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426g | 150*210*20mm
ISBN13
9791158542627

책 속으로

경산으로 가면서 경산신문사의 최승호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포도밭에서 일을 하다가 작업복을 입은 채로 나왔다. 경산을 위해서라면 발 벗고 나서는 분이라서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2007년부터 이 코발트광산의 발굴에 참여하고 그 내막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그와 함께 광산으로 향했다. 최 대표는 이 소설의 무대가 된 대명리에 거주하는 사람으로 소설의 무대를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분이었다. 그가 말해주는 코발트광산의 실체는 참혹했다. 광산 아랫마을의 평산동 아이들은 어렸을 때 마을 뒷산에서 뼛조각을 주워서 뼈맞추기 놀이를 하며 자랐다고 했다. 산에 지천으로 널린 것이 사람의 뼈인지라 그것이 특별히 무섭다는 생각보다는 재미있는 놀이였다는 것이다. 코발트광산은 수직굴 2개와 수평굴 2개가 있는데 거기가 좁아 더 이상 매장하지 못한 사람들은 산에서 죽인 그대로 흙만 얇게 덮어 놓았는데 그것이 세월이 가면서 유골이 드러난 것이다. 산 아랫마을의 아이들은 그 참혹한 역사는 알지 못한 채 그렇게 가지고 놀았던 것이다.
---「1부, 이동하의『우울한 귀향』-경산, 한번은 오밤중에 눈이 뜨였다」중에서

소설의 무대를 찾아서 폐코발트광산까지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고 들은 것은 참혹했다. 저 문 닫힌 폐광의 슬픔을 누가 울어 줄 것인지, 저 속에 갇힌 이들은 언제 그늘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득하기만 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을 광산에 묻고도 전쟁은 계속되어 동구 밖으로는 피난민들이 물결을 이루었다. “이른 아침에 동구로 나가보면 이슬로 축축하게 젖은 강변에 난민들이 하얗게 깔려 있었다. 그들은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냄비밥을 끓이고, 마을에서 날된장을 얻어다가 비벼 먹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같은 전쟁 이야기였다. 철길 위로는 젊은이들을 실은 기차가 북으로 올라가고 부상병들을 실은 기차가 후방으로 내려갔다. “북으로 올라가는 기차에서는 우렁찬 군가가 흘러나왔고, 남으로 내려가는 차에선 조용한 침묵 속에 흰 붕대들만 어른어른 내비쳤다.” 그리고 윤은 삼촌이 기차에서 편지를 날려 보내줄까 해서 기차가 지나갈 때까지 한 그루 나무처럼 동구에 서 있곤 했다.
---「1부, 이동하의『우울한 귀향』-경산, 한번은 오밤중에 눈이 뜨였다」중에서

너무나 깔끔하게 정비된 남천을 보면서 거기에 외나무다리를 하나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하근찬의 소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 다리를 건너며 영천전투와 불구가 된 부자 이대의 아픔을 체험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산다. 이제 전쟁의 흔적은 말끔히 사라지고 중앙선을 달리는 영천 역사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러나 수많은 상이군인들이 절망과 고통에 괴로워하며 드나들었을 역사는 하근찬의 소설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다. 우리에게 문학적으로 전쟁을 증언하는 능력은 없다 하더라도 그들을 기억하는 것은 최소한 우리의 몫이 아닐까.
---「1부, 하근찬의『수난이대』-영천, 신세 조졌심더」중에서

한 사람이 사라지고 그와 연관되었던 사건들도 사라져 가고 그가 썼던 사물들도 거짓말처럼 사라져 간다. 사라져 가는 자리에 또 다른 것들이 들어서지만 사라진 사람의 자리는 쉽게 비워지지 않는다. 바로 기억 때문이다. 문학비 위에 덮어 두었던 흰 천이 걷히며 김성도 문학비가 드러날 때 나는 그토록 대단한 사람의 문학비가 그토록 초라하다는 것에 놀랐다. 문학비가 모두 그런 것인 줄 그때 알았다면 별것 아닌 기억이겠지만 환한 햇살 아래 드러난 작은 문학비가 김성도의 이름에 비해서 너무 초라하다는 것은 젊은 나의 생각이었다. 이제는 그런 문학비조차도 한 사람을 기억하는 데는 너무나 훌륭한 사물임을 안다. 와촌의 고향 마을에도, 그의 집이 있었던 청라언덕에도, 그의 동요와 동화가 창작되던 계성학교에도 그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지만 우리는 그곳을 서성이며 그를 기억한다. 골목 가득히 울려 퍼지던 그의 노래와 함께.
---「2부, 김성도의 〈어린 음악대〉-대구, 따따따 따따따 나팔 붑니다」중에서

올라가는 길은 좁은 오솔길이었고, 높은 산 중턱인지라 도대체 여기에 무슨 생가터가 있나 싶었지만 막상 올라가 보니 아직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돌담도 있고, 여기저기 감나무가 서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경상도는 집집마다 감나무 한 그루씩은 꼭 키우는데 수풀이 우거진 산중턱쯤에서 감나무가 여기저기 보이면 거기에 마을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여기저기 무덤이 많은 것을 보니 사람들은 낮은 산 아랫마을로 내려가고 터가 좋아 보이는 그곳은 무덤 자리로 변한 것 같다. 시간이 있으면 하나를 더 보여 주겠다는 아저씨를 따라가니 가시밭길과 숲을 헤치고 커다란 돌 하나를 보여 준다. ‘곡구谷口’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돌이다. 야은이 어릴 적 썼다는 글씨로 원래 거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계곡 아래에 있던 것을 가까운 절집에 가져다 놓았는데 그것을 다시 가져와 거기에 놓았단다. 그런데 그건 거기에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아랫마을 계곡 입구의 ‘방오지’라는 원래 자리에 갖다 놓아야 하는데 사람들의 쓸데없는 욕심 때문에 엉뚱한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이다. 사물은 있을 자리에 있어야 빛이 나는 법인데 그것이 산허리쯤에 놓여 있으니 글씨의 의미마저 퇴색되고, 그 돌을 보여 주는 아저씨가 도리어 나한테 그 글자의 의미를 물으니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아야 할 야은 선생의 유적이다.

---「2부, 야은 길재의「회고가」-구미,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중에서

출판사 리뷰

천영애 시인은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다시 지난 수십 년간 내 문학의 행적을 되돌아보아야 했고, 그 행적이 쓰라린 날은 문장이 흘러가는 공간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어야 했다.”고 했다. 또 작가는 “전부 안다고 생각했던 문학작품과 작가와 그들이 살았던 공간은 알고 보니 전혀 모르는 곳들이었다. 수없이 가봤던 곳들은 처음 가보는 곳처럼 낯설었다. 문학 공간 현장을 찾으니 내가 읽었던 책의 문장들이 거짓말처럼 흘러나왔다.”며 현장 답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지훈의 시 「석문」의 배경인 영양 일월산의 ‘황씨부인당’을 비롯해 문인수 시인의 시집 『홰치는 산』의 배경인 성주의 방올음산, 김시습의 『금오신화』 배경지 경주 용장사 등 대구 경북의 문학 배경지 15곳을 소개한다. 경북대학교 철학대학원에서 예술철학 및 현상학, 해석학 등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 작가는 문학에의 접근을 시로 시작하여 『무간을 건너다』, 『나무는 기다린다』, 『나는 너무 늦게야 왔다』와 산문집 『사물의 무늬』를 출간하였다.

운명의 황야를 떠도는 시간

떠돌이의 삶을 동경한 적이 있다. 나는 아마도 북방 유목민족의 후손이라서 한곳에 정주하고 사는 삶은 태생적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불현듯 낯선 길 위에 서 있는 나를 볼 때마다 느껴지던 안도감은 얼마나 설렘을 동반하던가.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이제 다닐 만큼 다녔다고 생각될 즈음, 낯익은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숱한 세월 동안 나는 과일의 단단한 껍질을 겨우 밟고 다니면서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달콤하고 부드러운 과육의 속살은 내가 다녔던 길에서 비켜 있었다. 안개가 자욱하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오르고 올라 당도한 영양의 황씨부인당이나 봉감모전 오층석탑은 내 오랜 방랑의 길을 허무하게 만들어 버렸다. 평생 단 한 번도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않았던 문학작품의 문장이 주저앉은 가슴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처음으로 문학의 길을 더듬어 보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문학은 곱게 화장한 얼굴을 드러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황씨부인당의 거칠고 익숙하지 않은 신당 공간이나, 어느 아득한 세월에 쌓아 올렸을지 모르는 석탑의 민낯에 있을 것이었다.

지금까지 문학 답사를 다녔던 그 많은 곳들은 돌이켜 보면 잘 다듬어진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처럼 인위적으로 공간을 조성한 헛된 곳들이었다. 작품 속의 가슴 저미던 문장들은 깊숙이 숨겨진 곳, 구태여 찾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 곳들에 그 행간을 숨기고 있었다. 한 곳을 다녀오면 다음 곳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가지 않은 많은 길이 은빛 물결처럼 일렁거렸다. 신기루처럼 떠오르던 상상 속의 길에 문장이 춤을 추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다시 지난 수십 년간 내 문학의 행적을 되돌아보아야 했고, 그 행적이 쓰라린 날은 문장이 흘러가는 공간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어야 했다.

길 위에 서 있는 동안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동행이 있었지만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문학은 결국 혼자서 하는 고독한 작업이라는 생각은 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행이 있다 해도 보는 것이 다를 것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은 다를 터였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병이 났다. 가을이면 다시 가고자 했던 길들이 아른거렸지만 나는 병 앞에 주저앉아야 했다. 시간과 공간은 나를 기다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곳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것임에도 나는 달려가기는커녕 그 공간과 시간을 만나기 위해 읽으려고 했던 책조차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운명이라는 중후한 언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운명이 나를 다시 길 위에 세운다면 나는 시간을 거슬러 그 공간과 시간 속으로 들어갈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나의 역마는 여기서 막을 내릴 것이다. 운명이라는 언어의 막막함 앞에서 나는 천천히 미래의 시간을 그려본다. 과거의 시간이 미래의 시간과 중첩되어 내가 함부로 다스렸던 현재의 시간이 삭아 내렸다. 현재는 과거의 시간이었고, 과거의 시간을 천천히 다스리지 못한다면 내게 현재도 없을 터이다.

글을 쓰기 위해 갔던 곳을 또 다녀오기를 거듭했지만 갈 때마다 그곳은 내가 다녀왔던 그곳이 아니었다. 시간이 변하고 있으니 공간도 변하고, 살아있는 것들도 변해갔다. 시간의 엄중함은 막막한 황야처럼 때마다 다르게 다가왔다. 전부 안다고 생각했던 문학작품과 작가와 그들이 살았던 공간은 알고 보니 전혀 모르는 곳들이었다. 수없이 가봤던 곳들은 처음 가보는 곳처럼 낯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십 년이 넘도록 한 번도 문학의 곁을 떠나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글자를 처음 익혔던 다섯 살 무렵부터 나는 책을 붙들고 살았고, 이 글을 쓰는 내내 내가 읽었던 책의 문장들이 거짓말처럼 흘러나왔다. 운명이 나를 다시 되살려 준다면 이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나는 다만 운명에 내 삶을 맡길 뿐이다. 여전히 나의 글을 기다려주는 학이사 대표님께 감사드린다. 지켜보고 기다리는 출판사가 있어 글쓰기는 믿음이 된다. 햇살이 좋은 날이면 천천히 걸어 학이사에 가는 그런 산책을 오래 하고 싶다.

2020년 10월
천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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