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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숭복사비
여왕의 눈물 예의 고장 태산군(현 정읍시) 액운 충서의 고을 부성군(현 서산시) 소림사의 무영검 시무십조時務十條 백성 위한 대관림大館林(현 함양군) 이별과 해후 해인사 가는 길 해인사 마애불 여왕의 죽음 새로운 길 하늘의 비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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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함산 기슭에는 왕실의 모든 고관들, 서라벌에 들어와 있던 외국 사신들, 동시와 남시 그리고 서시에서 큰 장사를 하는 모든 장사꾼들 그리고 개운포와 감포 일대에서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는 사람들과 장사를 하는 왜인들, 노인들과 젊은이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지팡이에 의지하여 가파른 길을 오르던 노인들은 낯모르는 젊은이들이 웃으며 달려와 등을 내미는 바람에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다. “아이고, 내 생전에 이렇게 잘 생긴 젊은이가 씩씩하게 업어 주는 일도 처음이네. 우리 아들은 농사짓느라 힘들어 허리도 못 펴고 손자들은 어린데, 아이고 어디서 온 젊은이신가?” 한 노인이 예상치 못한 호강에 즐거워했다. “남산 기슭에서 훈련을 하는 화랑이옵니다.”
--- p.14 정성을 가다듬고 두 손 모아 절하며, 눈물 씻고 붓을 당겨(先王들의) 빛나는 발자취를 더듬어 명銘을 지어 올린다고 하였다. 가비라위迦毗羅衛의 부처님(慈王)은 해 돋는 곳(?夷)의 태양이시라 서토西土에 나타나시되 동방에서 돋으셨구나 먼 곳까지 비추지 않음이 없어 인연 있는 자들이 크게 일어났네 공이 정찰淨刹에 높았고 복이 왕릉(冥藏)에 드리웠도다 --- p.40 대저 도道는 사람으로부터 멀리 있지 않고, 사람은 나라에 따라 차이가 없다. (道不遠人 人無異國)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법佛法이나 유학儒學을 배우는 것은 필연적이다. 서쪽으로 큰 바다를 건너 통역을 거듭해가며 학문에 종사할 적에, 목숨을 통나무배에 맡기면서도 마음은 보주寶洲(西國)에 달려 있다. 빈 채로 갔다가 가득 채워 돌아왔고, 험난한 일을 먼저하고 얻는 바를 뒤로 하였으니, 역시 보옥寶玉을 캐는 자가 곤륜산崑崙山의 높음을 꺼리지 않고, 진주를 찾는 자가 검은 용이 사는 바닷물 속의 깊음을 피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 p.66 서라벌 외곽에 ‘지은’이라고 하는 처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앞을 못 보는 어머니를 봉양하고 있었다. 낮에는 장군의 집에 가서 빨래를 해 주고 방아를 찧어 주며 쌀을 얻어 와 어머니와 함께 끼니를 겨우 해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장군의 비복에게 겁탈을 당하게 되었다. 그녀는 너무나 슬퍼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고갯마루에서 목을 매려 했다. 때마침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던 효종랑이라는 화랑이 그 모습을 발견하여 그녀는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낭자, 어찌하여 이처럼 젊은 나이에 그리 흉한 짓을 도모하고 있소?” “부끄럽습니다. 이대로 죽게 해주소서.” --- p.94 학문이라는 것은 익히고 또 익혀 축적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어느 누구와의 약속들은 반드시 행동으로 실천해야 된다는 심법개혁 및 풍류지도 팔훈을 말했다. 그 풍류지도 심법개혁 실천방편으로 ‘머리’에는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는 ‘창의’가 있는 것이 첫째이다. ‘이마’에는 남을 존경하고 배려하며 나를 낮추는 ‘예절’이 있는 것이 둘째이다. ‘귀’에는 남의 말을 지혜롭게 경청하는 마음의 ‘소통’이 있는 것이 셋째이다. ‘눈’에는 즐거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운‘미소’가 있는 것이 넷째이다. --- p.105 그중에서도 최치원이 주목한 것은 그 절의 입구에 있는 마애여래삼존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골짜기 안에 그런 마애불이 숨겨져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치원은 손수 물걸레를 들고 그 마애불을 닦았고, 부임 첫 행사로 그 마애불 아래에서 법회를 열었다. 삼존마애불상 한가운데에 여래 입상이 있고, 오른편에 보살 입상이 있고, 왼편에 반가사유상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여래 입상은 풍만한 얼굴에 은행 같은 눈, 둥글고 긴 눈썹, 얕고 넓은 코를 하고 있으며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가사가 발등까지 덮였는데, 발밑에는 연꽃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보살 입상은 머리에 산 모양의 관을 썼고 윗몸은 벗었으며 두 손을 앞에 모아 구슬을 잡고 있었다. --- p.143 보리는 치원의 칼에 베어 어깨를 많이 다친 것처럼 힘겨워하며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오늘은 내가 패했으니 이만 물러가자.” 보리가 패배를 선언하자 부하 장수와 병사들이 어깨가 축 처진 채 발길을 돌려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보리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적고적의 병사들을 바라보며 치원은 가슴이 아렸다. 치원은 보리가 남기고 간 마지막 말 한마디를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아직도 변함없는 보리의 진심 어린 따스한 손길이 자신을 감싸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당나라로 가는 먼 길이 그리 길게만 여겨지지 않았다. 치원은 시야에서 멀리 사라져 가는 보리를 향해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 p.157 사법 관리들의 부정부패로 인하여 사법정의가 왜곡되면 국민정신이 반국가주의로 이반되게 됩니다.그러므로 나라는 바르게 운영될 수 없고 결국 패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사법관리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사법특별 기구의 장은 요순시대의 왕위 계승을 민주적인 선출방식으로 선출했던 것과 같이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어야 합니다. --- p.185 호몽이 낯을 붉히며 대답했다. “내 가기 전에 그 막내아들에게 이름을 내려 주지.” 여왕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취악대가 다시 울리고 무희들이 춤을 추었다. 여왕의 연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 주위로 인근 태수들과 백성들의 행렬이 삼십 리 넘게 이어지며 온 산길을 덮었다. 그야말로 꽃밭이 따로 없었으며, 향기로운 그 내음이 신라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최치원은 여왕의 연을 자신의 마음이 서려 있는 명륜당으로 안내했다. 백성들은 천령군이 생긴 이래 최초로 새로 세운 명륜당에서 대왕을 모시고 큰 잔치를 벌이게 된 것이 마치 꿈만 같았다. “천령군 같이 궁벽한 산골 마을에서 온 백성이 여왕마마를 모시고 현지에서 잔치를 벌이는 것은 신라 개국 이후 최초의 일일 거야.” --- p.203 국사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면 어찌해야 옳겠습니까? 서남쪽 무주 땅에 있는 견훤이 신라 천 년 사직 후의 새 주인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한수 이북의 금성(철원) 지방에 있는 궁예입니까?” 치원이 재촉하며 물어보았다. “무주의 견훤이 새 주인이라면 내가 왜 무주 땅에서 그대가 있는 이곳으로 왔겠는가? 또 궁예가 새 주인이라면 내가 금성 땅으로 가지 왜 그대 곁에 있겠는가? 아무 말 말고 저 고개를 넘어 보세.” 국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일어섰다. “그러면 소생의 미래는 어찌 되겠습니까?” --- p.256 치원은 비장한 어조로 국사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거 참, 여러 가지로 잘 되었네. 절친한 친구인 주지승과 가형이 있고, 곳간에는 풍족한 양식이 쌓여 있으니 무엇이 걱정이겠나? 더구나 절 밖에는 든든한 승군이 천 명이나 지키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멋진 승지로다. 예로부터 명당은 비산비야 엄택곡부非山非野奄宅曲阜라 하였는데, 바로 이 가야산이 그런 곳이지. 산이 높고 크기는 하나 들도 적당히 있고, 산세가 기묘하여 절을 외부로부터 완전히 막아 주니 오래도록 보존되고 널리 번창하여 법보사찰로서 명성을 계속 이어갈 사찰이지. 명당 중의 명당이야.” 국사가 얼굴을 활짝 펴며 크게 웃었다. 그리고 한동안 두 사람은 묵묵히 산길을 걸어 내려갔다. --- p.272 치원은 사람을 시켜 가족들을 집으로 모이게 했다.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반야부인은 겨우 힘을 내어 말하였다. “내 살아생전에 너희들에게 몸소 효를 실천해 보이려고 많은 노력을 했으나 너희들이 보고 느끼기에는 부족한 점이 매우 많았을 것이야. 그러나 이 어미의 마지막 가르침이다. 효는 가족의 얼굴이고 거울이네. 자손만대에까지 효가 계속 이어지도록 서로서로가 노력하고 도와주도록 하게.” --- p.295 “천부경은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로 시작해서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로 끝을 맺었습니다. 이 세상 우주 만물의 이치를 여든한 자의 글로 표현한 것이지요. 이 우주 모든 것이 하나, 즉 자연에서 시작하여 하나, 즉 자연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천부경 81자와 풍류도 50자를 합하면 131자가 됩니다. 하나(一)에서 시작된 우주(三)는 하나에서 끝이 되나 이 끝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의 연결고리인 것입니다. 이것은 일시무시일 (一) 인중천지일(三)에다 풍류도 사상을 융합하고 포용하여 새로운 문자로 표현한 것입니다.” 치원은 사례를 들어 상세히 설명하였다. --- p.308 열(十)은 무한하게 큰 것이므로 하나(一) 또는 무無라고 하여 없다는 뜻 0으로 표시합니다. 열 다음에 하나를 더하는 것을 열하나(十一)로도 표시할 수 있습니다. 운삼사성運三四成은 음·양의 기본에너지에 의하여 더하거나 곱하면 열에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하나에서 둘을 더하면 삼이 되고 삼에서 삼을 더하면 육이 됩니다. 육에서 사를 더하면 열이 됩니다. 그러므로 삼과 사에서 열이 완성되므로 삼사성이라고 한 것입니다. 즉 열은 완성 숫자가 됩니다. 또한 더 이상 끝이 없다는 숫자이므로 하나 또는 영이라고 합니다. --- p.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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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과 우리 모두의 올바른 가치관을 위해 노력해온 최치원의 삶을 그리다!
-최치원의 학문 수준과 사상적 경지가 대하역사장편소설로 펼쳐진다! -최치원의 평화주의와 애국애민사상 중 시무십조 사법개혁은 지금도 절실한 내용이다 -최진호 작가는 30년 동안 최치원을 연구하고 유적지를 답사해 소설화했다! 최치원의 학문과 사상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 축적되었다고 본다. 그렇지만 그의 삶을 속속들이 파헤친 경우는 아직 없다. 최치원의 삶을 다룬 전기도 없고 평전도 없고 소설도 찾기 힘들다. 제대로 된 전기가 없으니 평전이 나올 리 없다. 전기와 평전이 없는 상태에서 소설이 나온다 한들 작가의 상상력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작가 최진호의 장편소설 「최치원 1 성인과 만남」, 「최치원 2 통찰의 지혜」, 「최치원 3 꿈꾸는 별」, 「최치원 4 하늘의 비밀」, 「최치원 5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가 그것이다. 최치원의 일생이 소설로 엮어지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시대가 최치원을 부른다는 말이 겉치레가 아님을 입증이라도 해 주는 것 같았다. 사료 고증을 통해 제한적으로 엿볼 수밖에 없었던 최치원의 일생이 최진호 작가의 추리력과 상상력에 힘입어 생동감 있게, 사실감 있게 소설화되었다. 실타래같이 얽히고설킨 당시의 시대 배경을 종횡무진 서술하면서도 작가 나름의 역사관을 통해 헝클어지지 않게 풀어냈다. 최치원의 복잡다단한 생애 역시 실마리를 잘 풀어내고 마디를 잘 지어가면서,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도 분명히 하였다. 한마디로 변화가 많지만 하나로 꿰어 있고, 무게가 무겁지만 가라앉지 않은데 특성이 있다고 보겠다. 신라에서 건너간 18세 소년이 당나라 희종 황제의 어전시에서 장원 급제했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 후 당나라에서 관리가 된 20세의 젊은 최치원은 지금의 남경 근처인 율수현 임지에 근무하면서 당시 힘없고 어려움에 처해 강물에 투신하여 죽은 두 자매의 무덤 앞에서 그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시를 써주었을 만큼 진정한 목민관의 자세를 보여 줌으로써 현실을 어렵게 살아가는 백성에게 더욱더 잘해 보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다. 얼마 후 당나라가 전란에 휩싸여 있을 때는 붓 한 자루를 들고 적장 황소에게 부당함을 지적하여 끝내 그를 패퇴시킨 공로를 당 조정에서도 높이 평가하였고, 황제는 자금어대를 하사하면서 언제 어느 때나 황제 알현을 허락하였다. 고국 신라에 돌아와서는 왕족과 호족이 발호하여 백성을 착취하며 기근 속에서 허덕이는 농민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매기는 신라 말기의 조정을 향하여 일대개혁을 촉구하였다. 지금 정확하게 전해 내려오진 않지만 시무십조라는 열 가지 개혁안을 제시하며 기득권층에게 자기혁신을 끊임없이 권고하였다. 그는 유교와 경전에 통달하여 공맹의 사상을 그 누구보다도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유교라는 한정된 경계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불교의 고승들과 끊임없이 교제하며 고승들을 기리는 비문을 썼을 뿐만 아니라 사찰을 위해서도 불후의 명문장을 손수 써주었다. 그가 남긴 깊은 산 속의 4개의 비문은 ‘사산비명’이라 하여 천 년을 견뎌왔지만 그 내용이 지극히 어려워 천 년 동안이나 많은 학자의 연구대상이 되어왔다. 역사소설에서는 사실과 상상력의 구분이 애매하다. 일정하게 사실에 근거하지 않으면 역사소설이라 하기 어렵고 상상력이 없으면 굳이 소설이라 할 이유가 없다. 이 소설에서도 독자의 상상력과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소설적 요소가 가미되었다. 진성여왕이 사석에서 최치원을 ‘오라버니’라 부르고 평소에 연정(戀情)을 품었다고 고백한 것을 누가 사실로 곧이듣겠는가? 또 어렸을 때 공부했던 서당 훈장의 딸 보리(菩提)가 역모에 연루되어 곤경에 처해 있다는 말을 들은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도교 수련을 하던 동문들과 구출대를 조직, 신라로 잠입하여 보리를 구출한 것이라든지, 구출된 보리가 종남산(終南山) 자오곡(子午谷)과 숭산(嵩山) 소림사(小林寺)를 오가며 무술을 연마하다가 나중에 복수의 칼날을 마음속에 품고 후백제 견훤(甄萱)의 부인이 된 것은 극적 효과를 노린 것이라 해도 좋다. 독자가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최치원의 정신세계다. 소설이기에 이를 두드러지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작가의 역량에 따라 ‘은근한 외침’, ‘다정한 유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작가는 전반적으로 최치원의 애국심, 개혁 사상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러는 가운데 사회 통합을 ‘시대적 화두’로 제시하였다. 최치원이 훌륭한 사상가이었음은 그가 유교나 불교 그리고 도교에 통달해 있어 삼교회통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세 가지 사상에만 머물지 않고 거기에 하나를 더한 것, 즉 우주질서와 하나로 통하는 풍류도를 스스로 창안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언제나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이국이민(利國利民)의 경지를 끊임없이 추구하면서도 한 가지 도(道)만을 고집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출신성분이나 국적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거나 구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도불원인(道不遠人), 인무이국(人無異國)’이라는 중요한 가르침을 진감선사비문 첫머리에 남겼다. 지난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을 때, 시주석은 뜻밖에도 최치원이 쓴 ‘범해(泛海)’라는 시로 말문을 열었다. 한·중 간의 교류는 이미 천 년도 넘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그 아득한 시기에도 젊은이들은 바다를 건너 교류하였으며 서로의 국익을 위해 경쟁했을 뿐만 아니라 요즘 우리가 말하는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삼국지나 세계 위인전을 읽기 전에 1,100여 년 전의 시공 속에서도 국익과 우리 모두의 올바른 가치관을 위해 그토록 노력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졌던 ‘최치원 1, 2, 3, 4, 5권’을 읽어 얻은 지식을 통해서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함은 물론 창조의 힘을 갖추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마음으로 서로서로 사랑하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최치원 1, 2, 3, 4, 5권 소설에는 대사상가이자 대정치가이기도 한 최치원을 비롯해 헌강왕, 진성여왕, 김가기, 최승우, 견훤, 선종과 당나라의 고병 장군, 고운, 배찬, 두순학, 황소, 왕선지 등 역사상 흥미로운 인물들이 함께 등장해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천 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또는 앞날에 있어서도, 나라에 바른 정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제도와 정신이 문제라는 점을 역사와 이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최치원을 소설로 읽는 것은 곧 딱딱한 역사에 피를 돌게 하는 작업이기도 하면서 우리 또한 역사 속으로 깊은 탐험을 가는 일이다. 어느 정도는 우리 모두 최치원의 후예임을 이 소설은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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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가 최치원을 부르고 있다! 최치원은 9~10세기를 사는 동안 동아시아지역의 다양성과 국제적 개방성을 공문서와 사적인 글들을 모아서 만든 ‘계원필경’을 비롯하여 ‘진감선사비문’ 등 사상에 대하여 많은 독자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문장으로 드라마틱하게 집필하였으므로 그 시대의 삶과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최광식 (고려대 명예교수,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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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의 유학과 문화 체험을 통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해석하였고, 신라가 중국의 주변국이 아니라 동아시아문명의 중심국이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최치원은 동인의식東人意識을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 인류의 보편문화를 추구했던 21세기형 인물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그가 남긴 문장의 향기에 취해 진면목을 보지 못하였다. 신비神秘를 벗겨야 우리 곁에 다가올 수 있는데도 신비의 성채를 쌓는 데만 열중하였다. 보호색을 지우고 배경색을 넣으니 이제야 최치원의 학문 수준과 사상적 경지가 새롭게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 최영성 (국립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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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출간을 경하하며, 우리들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문화국가 가치창조를 위해 최치원 선생의 평화주의 및 애국애민사상과 시무십조 ‘사법개혁’ 등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일독을 권합니다. - 장석용 (시인,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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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흐린 시대, 흐린 세상에 즈음하여 최진호 선생의 필력을 빌어 『최치원』이라는 작품 5권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참으로 기쁘게 생각하며 소설로 최치원을 읽는 재미를 저처럼 함께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필독해 주기를 소망합니다. - 이외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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