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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의 추락
서라벌의 굴욕 곡령청송 현자와 소통하다 평화통일의 비밀 후백제를 바치다 평화를 위한 민초들의 결단 자운의 빛을 찾아서 이국이민시의 실천 내 몸의 숨결(풍류도) 승천하는 네 마리 학 최치원이 남겨둔 글 자유인실행自由人實行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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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는 말을 마치고 몸을 꼿꼿이 세우더니 이내 눈을 감고 마치 부처인 양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대왕마마, 참 훌륭하옵신 법명이옵니다. 선종이라……. 이 얼마나 멋진 법명이옵니까? 그래서 오늘날 대왕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미륵까지 되신 게 아닙니까?” 내관은 계속 허리를 굽히며 궁예를 추어올렸다. “그래, 그래. 나는 앞으로 새 세상을 열 미륵이니라. 암, 미륵이고말고! 나는 후천 개벽을 하여 반드시 새 세상을 열고 말 것이니라! 그러기 위해서는 이 군왕을 거역하거나 역심을 품는 자들을 제거해야 되느니. 나는 관심법을 터득한 미륵이니라. 내관, 지금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맞추어 볼까?” 궁예가 눈을 부라리며 내관을 향해 다가갔다. “저 같은 놈들이 무슨 생각이 있겠습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대왕마마만을 의지하며 신천지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을 뿐입니다.”
--- p.9 문무백관이 모두 모인 어전에는 불을 대낮처럼 밝히고 있었다. 등불처럼 이글거리는 견훤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신들은 굳은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특히 창칼을 그러쥔 장수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적진을 향해 달려 나갈 듯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드디어 때가 왔도다! 우리의 철천지원수 신라를 쳐부술 때가 왔노라! 우리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의자대왕 재위 20년인 경신년에 신라와 당나라 놈들이 쳐들어 왔었다. 충신인 계백 장군이 황산벌로 나가 화랑 반굴과 관창을 베었지만, 구름처럼 몰려오는 나당연합군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계백 장군의 뜨거운 심장과 오천결사의 피눈물을 삼키고 백제는 운명을 다하였다. 김유신은 웃으며 반월성으로 올라왔고, 소정방은 껄껄대며 백제의 고토를 짓밟았다. 오늘은 그로부터 꼭 이백육십칠 년이 되는 해다. 이제 서라벌로 달려가 백제의 원한을 씻고 그 땅, 서라벌을 폐허로만들어야 한다!” --- p.50 치원이 말을 마치자, 법당에서는 갑자기 뜨거운 열기와 함께 박수 소리가 여기저기서 크게 터져 나왔다. 법회에 참석했던 최언위는 달리 방향을 잡은 최승우의 빈 자리를 채우며 최치원의 곁에서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화엄경전이 아무리 좋은 가르침이라 해도 백성이 도를 멀리하여(人遠道) 그 뜻을 알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이 화엄경전을 사부대중이 알기 쉽게 풀이해줄 수 있는 논장의 글을 찬술해줄 수 있겠습니까?” 법회가 끝나고 모두 법당을 빠져나가자 희랑스님이 최치원을 불러 조용히 청을 했다. --- p.69 치원은 풀어 쓴 경전의 이름을 법장화상전(송나라 팔만대장경 논장에 수록되었음 : 현재 일본 고잔사에 있음)이라 하였다. 경전 내용을 천천히 살펴본 후 희랑스님은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치원은 이 세상 삶은 우주 음양오행의 이치로 살아야 되고, 너와 나 하나의 공동체인 생명의 빛은 내 마음이 모든 일의 실천 근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즉, 일체유심조의 으뜸으로 초발심을 항상 유지하면서 기본과 원칙을 지키고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 된다는 생활의 지혜, 즉 지극한 도는 눈 앞에 있다(至道在目前)를 쉽게 설명한 것이다. --- p.73 태조 왕건은 고개를 뒤로 한껏 젖히고는 목청이 다 보이도록 크게 웃었다. “아, 좋다마다요. 이제 고려와 우리 신라는 형제국이 되었는데 무엇이 아깝고 무엇이 서운하겠습니까? 대왕마마께서 취하실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취하십시오. 고려 왕국과 화친하는 의미에서 제가 제일 아끼는 종제從弟(동생) 유렴裕廉을 질임(인질)으로 개경에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경순왕의 말이 끝나자 한쪽 구석에 서 있던 유렴이 앞으로 나와 태조 왕건에게 예를 올렸다. “그렇게 아끼시는 종제를 우리 개경에 보내 주신다니, 과인이 잘 보살피겠습니다. 참으로 미인이구려. 그러나 사실은 제가 정말로 모셔 갔으면 하는 분은 따로 있습니다.” --- p.103 최치원은 평화통일에 대한 당위성에 대해 세세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모두 적었다. 그리고 똑같은 내용의 ‘평화이국서’ 3부를 만들어 밀봉하고 봉투 위에 평화이국서平和利國書라고 했다. 이 문서를 신라 경순왕의 특사인 마의태자와 대아찬, 고려 왕건왕의 특사인 무성도사와 최언위 국사, 후백제 견훤왕의 특사인 보리 황후와 최승우 국사에게 은밀히 전달했다. --- p.116 일찍이 최치원이 「해인사 선안주원벽기」에 썼던 것이다. 위대하고 위대하도다! 하늘이 귀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이요, 사람이 으뜸으로 삼는 것은 하늘이다. 사람이 도를 실천하는 것이요.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 그러므로 도가 높아진다면 사람은 저절로 귀하게 된다. --- p.171 최치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최치원을 따라 무량스님도 일어나서 두 손을 정성스레 모아 합장을 했다. 치원도 합장을 하며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최치원은 그토록 그리운 해인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해인사로 향하는 최치원은 여느 때보다 발걸음이 가볍다는 것을 느꼈다. ‘원효대사와 신라의 요석 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설총은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세월의 흐름에 대해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허나, 모든 인연법 따라 생긴 것이니, 모든 것은 같으므로(만법여일) 모든 것은 한군데로 되돌아간다(만법귀일)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살아있을 때 대덕을 넓은 바다와(大德如海) 같이 아낌없이 나누어 주고 살라지 않는가. --- p.217 대사가 사자使者에게 말하기를 절을 ‘성주’라고 이름하셨으니, 절로서는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용렬한 중을 지극히 총애하시니, 재능도 없으면서 있는 것처럼 흉을 내어(濫?) 높은 자리를 차지한 느낌입니다. 이는 해조海鳥인 원거??가 바람을 피해 뭍으로 오자, 봉황새로 잘못 안 참새가 날아들었다는 것에 비유할 만하니, 날씨가 궂을 때 산 속에 숨어 무늬를 윤택하게 한다는 표범의 고사故事에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였다. --- p.270 보리왕후 능을 참배하고 왕거인과 무성도사와 헤어진 후 언덕 위에 있는 성당으로 향했다. 밀리엄 수녀는 여전히 성당을 지키고 있었지만, 그녀도 나이를 이기지 못해 머리의 백발을 쓸어 넘기며 굽은 허리를 겨우 폈다.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어요.” 손에 건 묵주를 헤며 밀리엄 수녀가 조용히 말했다. “수녀님께서는 고향이 그립지 않으세요?” 호몽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따뜻하게 물었다. “이 나이에 고향이 어디 있겠어요? 이 언덕이 저의 고향이지요. 제가 이곳에 온 지도 육십여 년 가까이나 되는데요. 이곳에 와서 저를 따라 천주교를 믿는 백성이 저의 가족이고 형제들이죠. 최아찬께서는 제가 천주님 나라로 떠나고 나면 저를 이 언덕에 묻어주세요. 십자가가 잘 보이는 이곳에요.” 밀리엄 수녀가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씁쓸히 웃었다. 그때 언덕에 있던 아이들이 성가 연습을 하며 느티나무 밑에서 큰소리를 냈다. “저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죠.” --- p.316 화개동(또는 호중별유천壺中別有天이라고도 함)이라는 시문에서 동방군자국(한반도)은 해와 달의 허공 밖에 있고 하늘과 땅은 태극 가운데 있습니다. 동쪽나라 동방군자국 화개동(꽃이 아름답게 피어있는 마을 즉 불교 화엄세계를 말함)은 별천지 속에 신선의 경지, 신선 옥 베개 밀치고 일어나니 어느새 천 년이구나. 즉 오늘 하루하루의 순간순간들을 천 년처럼 소중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라고 말한 것입니다. 즉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소중한 시간임을 가르친 것입니다. --- p.333 왕의 지시를 받은 조정대신이 풍수지리에 밝은 현자를 찾아서 어떠한 장소가 좋으냐고 물어보자 현자는 “최치원 선생의 위대한 행적이 남아 있는 곳을 모두 살펴본 후 인과관계가 후세에까지 전해 갈 수 있는 곳으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현자는 최치원 행적을 면밀히 살펴보고 와서 조정대신에게 보고하기를 오랫동안 신라 태수직 생활을 하던 곳 중 낭혜화상비가 잘 보존되어 있는 성주사와 고려국 국태민안을 위해서 많이 기도했다고 하는 부석사(충남 서산군 소재) 지역 중심에 소재하고 있는 천하명당으로 소문난 보금산(현재 충남 홍성군 장곡면 소재)이 좋다고 말했다. 조정대신이 입궐하여 현종왕에게 즉시 이러한 사실을 고하자 현종대왕는 선성묘를 보금산 자락에 즉시 조성하라고 하명하였다. --- p.3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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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과 우리 모두의 올바른 가치관을 위해 노력해온 최치원의 삶을 그리다!
-최치원의 학문 수준과 사상적 경지가 대하역사장편소설로 펼쳐진다! -최치원의 평화주의와 애국애민사상 중 시무십조 사법개혁은 지금도 절실한 내용이다 -최진호 작가는 30년 동안 최치원을 연구하고 유적지를 답사해 소설화했다! 최치원의 학문과 사상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 축적되었다고 본다. 그렇지만 그의 삶을 속속들이 파헤친 경우는 아직 없다. 최치원의 삶을 다룬 전기도 없고 평전도 없고 소설도 찾기 힘들다. 제대로 된 전기가 없으니 평전이 나올 리 없다. 전기와 평전이 없는 상태에서 소설이 나온다 한들 작가의 상상력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작가 최진호의 장편소설 「최치원 1 성인과 만남」, 「최치원 2 통찰의 지혜」, 「최치원 3 꿈꾸는 별」, 「최치원 4 하늘의 비밀」, 「최치원 5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가 그것이다. 최치원의 일생이 소설로 엮어지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시대가 최치원을 부른다는 말이 겉치레가 아님을 입증이라도 해 주는 것 같았다. 사료 고증을 통해 제한적으로 엿볼 수밖에 없었던 최치원의 일생이 최진호 작가의 추리력과 상상력에 힘입어 생동감 있게, 사실감 있게 소설화되었다. 실타래같이 얽히고설킨 당시의 시대 배경을 종횡무진 서술하면서도 작가 나름의 역사관을 통해 헝클어지지 않게 풀어냈다. 최치원의 복잡다단한 생애 역시 실마리를 잘 풀어내고 마디를 잘 지어가면서,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도 분명히 하였다. 한마디로 변화가 많지만 하나로 꿰어 있고, 무게가 무겁지만 가라앉지 않은데 특성이 있다고 보겠다. 신라에서 건너간 18세 소년이 당나라 희종 황제의 어전시에서 장원 급제했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 후 당나라에서 관리가 된 20세의 젊은 최치원은 지금의 남경 근처인 율수현 임지에 근무하면서 당시 힘없고 어려움에 처해 강물에 투신하여 죽은 두 자매의 무덤 앞에서 그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시를 써주었을 만큼 진정한 목민관의 자세를 보여 줌으로써 현실을 어렵게 살아가는 백성에게 더욱더 잘해 보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다. 얼마 후 당나라가 전란에 휩싸여 있을 때는 붓 한 자루를 들고 적장 황소에게 부당함을 지적하여 끝내 그를 패퇴시킨 공로를 당 조정에서도 높이 평가하였고, 황제는 자금어대를 하사하면서 언제 어느 때나 황제 알현을 허락하였다. 고국 신라에 돌아와서는 왕족과 호족이 발호하여 백성을 착취하며 기근 속에서 허덕이는 농민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매기는 신라 말기의 조정을 향하여 일대개혁을 촉구하였다. 지금 정확하게 전해 내려오진 않지만 시무십조라는 열 가지 개혁안을 제시하며 기득권층에게 자기혁신을 끊임없이 권고하였다. 그는 유교와 경전에 통달하여 공맹의 사상을 그 누구보다도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유교라는 한정된 경계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불교의 고승들과 끊임없이 교제하며 고승들을 기리는 비문을 썼을 뿐만 아니라 사찰을 위해서도 불후의 명문장을 손수 써주었다. 그가 남긴 깊은 산 속의 4개의 비문은 ‘사산비명’이라 하여 천 년을 견뎌왔지만 그 내용이 지극히 어려워 천 년 동안이나 많은 학자의 연구대상이 되어왔다. 역사소설에서는 사실과 상상력의 구분이 애매하다. 일정하게 사실에 근거하지 않으면 역사소설이라 하기 어렵고 상상력이 없으면 굳이 소설이라 할 이유가 없다. 이 소설에서도 독자의 상상력과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소설적 요소가 가미되었다. 진성여왕이 사석에서 최치원을 ‘오라버니’라 부르고 평소에 연정(戀情)을 품었다고 고백한 것을 누가 사실로 곧이듣겠는가? 또 어렸을 때 공부했던 서당 훈장의 딸 보리(菩提)가 역모에 연루되어 곤경에 처해 있다는 말을 들은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도교 수련을 하던 동문들과 구출대를 조직, 신라로 잠입하여 보리를 구출한 것이라든지, 구출된 보리가 종남산(終南山) 자오곡(子午谷)과 숭산(嵩山) 소림사(小林寺)를 오가며 무술을 연마하다가 나중에 복수의 칼날을 마음속에 품고 후백제 견훤(甄萱)의 부인이 된 것은 극적 효과를 노린 것이라 해도 좋다. 독자가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최치원의 정신세계다. 소설이기에 이를 두드러지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작가의 역량에 따라 ‘은근한 외침’, ‘다정한 유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작가는 전반적으로 최치원의 애국심, 개혁 사상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러는 가운데 사회 통합을 ‘시대적 화두’로 제시하였다. 최치원이 훌륭한 사상가이었음은 그가 유교나 불교 그리고 도교에 통달해 있어 삼교회통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세 가지 사상에만 머물지 않고 거기에 하나를 더한 것, 즉 우주질서와 하나로 통하는 풍류도를 스스로 창안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언제나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이국이민(利國利民)의 경지를 끊임없이 추구하면서도 한 가지 도(道)만을 고집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출신성분이나 국적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거나 구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도불원인(道不遠人), 인무이국(人無異國)’이라는 중요한 가르침을 진감선사비문 첫머리에 남겼다. 지난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을 때, 시주석은 뜻밖에도 최치원이 쓴 ‘범해(泛海)’라는 시로 말문을 열었다. 한·중 간의 교류는 이미 천 년도 넘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그 아득한 시기에도 젊은이들은 바다를 건너 교류하였으며 서로의 국익을 위해 경쟁했을 뿐만 아니라 요즘 우리가 말하는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삼국지나 세계 위인전을 읽기 전에 1,100여 년 전의 시공 속에서도 국익과 우리 모두의 올바른 가치관을 위해 그토록 노력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졌던 ‘최치원 1, 2, 3, 4, 5권’을 읽어 얻은 지식을 통해서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함은 물론 창조의 힘을 갖추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마음으로 서로서로 사랑하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최치원 1, 2, 3, 4, 5권 소설에는 대사상가이자 대정치가이기도 한 최치원을 비롯해 헌강왕, 진성여왕, 김가기, 최승우, 견훤, 선종과 당나라의 고병 장군, 고운, 배찬, 두순학, 황소, 왕선지 등 역사상 흥미로운 인물들이 함께 등장해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천 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또는 앞날에 있어서도, 나라에 바른 정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제도와 정신이 문제라는 점을 역사와 이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최치원을 소설로 읽는 것은 곧 딱딱한 역사에 피를 돌게 하는 작업이기도 하면서 우리 또한 역사 속으로 깊은 탐험을 가는 일이다. 어느 정도는 우리 모두 최치원의 후예임을 이 소설은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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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가 최치원을 부르고 있다! 최치원은 9~10세기를 사는 동안 동아시아지역의 다양성과 국제적 개방성을 공문서와 사적인 글들을 모아서 만든 ‘계원필경’을 비롯하여 ‘진감선사비문’ 등 사상에 대하여 많은 독자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문장으로 드라마틱하게 집필하였으므로 그 시대의 삶과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최광식 (고려대 명예교수,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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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의 유학과 문화 체험을 통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해석하였고, 신라가 중국의 주변국이 아니라 동아시아문명의 중심국이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최치원은 동인의식東人意識을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 인류의 보편문화를 추구했던 21세기형 인물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그가 남긴 문장의 향기에 취해 진면목을 보지 못하였다. 신비神秘를 벗겨야 우리 곁에 다가올 수 있는데도 신비의 성채를 쌓는 데만 열중하였다. 보호색을 지우고 배경색을 넣으니 이제야 최치원의 학문 수준과 사상적 경지가 새롭게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 최영성 (국립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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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출간을 경하하며, 우리들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문화국가 가치창조를 위해 최치원 선생의 평화주의 및 애국애민사상과 시무십조 ‘사법개혁’ 등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일독을 권합니다. - 장석용 (시인,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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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흐린 시대, 흐린 세상에 즈음하여 최진호 선생의 필력을 빌어 『최치원』이라는 작품 5권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참으로 기쁘게 생각하며 소설로 최치원을 읽는 재미를 저처럼 함께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필독해 주기를 소망합니다. - 이외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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