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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사랑했기에 알게 된 것들 1장 내가 아는 모든 것은 그것을 사랑했기 때문에 안다 · 어제 꿈꾸던 세 곳으로의 여행 · 추억이라는 이름의 전차 · 강물을 맞이하는 시간 · 그것을 사랑했기에 · 화가 오수환과 가을을 가다 2장 나와 만나 우리가 되어 · 딸이 떠난 방 · 이호 바닷가에 서서 · 재즈 페스티벌에서 돌아오며 · 아들과 함께 · 우리들의 12월, 그날 · 나의 첫 강아지, 봉봉이 · 달이 뜨면 가리라 3장 사랑의 기억으로 · 고맙습니다, 독자여 · 치악산의 얼음물은 녹아 흐르고 · 영원한 담임, 뚝지 · 글은 쓰는 게 아니다, 고치는 것이다 · 오동나무도 날아다닌다 4장 저무는 숲에 눈은 내리고 · 자작나무를 심었던 그때 · 이루어지지 않는 꿈도 있기에 · 격투기와 테니스 · 한해살이 꽃을 심는 마음 · 늙은 마음으로 나무를 심으며 · 잠 못 이루는 깻잎을 위하여 5장 잘 있어, 그리고 고마웠어 · 담배에게 · 술에게 · 물 위에 쓰는 편지, 레티치아 수녀님께 |
韓水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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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을 때의 일이었다. 열차 안에서 10박 11일을 머무는 동안, 나는 내내 창밖을 바라보며 그 길을 갔다. 소실점을 이루며 끝이 보이지 않게 뻗어나간 전선주를 따라 마치 오선지 위의 음표처럼 앉아 있던 새들은 열차가 지나가면 새카맣게 날아올랐다.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자작나무 숲이 차창 밖으로 몇 시간씩 변함없이 이어져 마치 한 폭의 풍경화가 걸린 듯했던 대륙의 시간이었다. 그때 마음속을 가로질러간 말이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그것을 사랑했기에 알게 된 것들인가.
--- 문득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그것을 사랑했기 때문에 안다’고 했던 그 말. 내가 사랑하는 책상이면, 내가 사랑하는 서재면 그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의 벌판도 다르지 않으리라. 남이 말하는 평가나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남의 눈이다. 사랑도 그렇지 않은가. 사람도 일도 마찬가지다. 내가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했을 때 모든 것은 거기서 이룩되고 그것으로 찬란하게 끝나는 것이 아닌가. --- 빗길을 돌아오며 아주 오랜만에 어려서 네게 들려주던 아빠 작사, 작곡의 자장가를 가만히 불러보았다. 너무 슬프다면서 네가 다른 노래를 지어달라고 했던 그 자장가. 아빠 머리에 흰 서리 내리고 네가 네 생의 주인이 될 때 저무는 바다도 함께 보겠지. 바람 같던 세월도 얘기할 거야. 어느새 아빠 머리에도 흰 서리가 내렸구나. 너 또한 네 생의 주인이 되어…… 언제 우리가 다시 만나 저무는 바다도 함께 바라보고, 그 바닷가를 걸으며 바람 같던 세월을 이야기하게 되려나. --- 첫 학기가 끝날 무렵 나는 전공을 바꿔 영문과로 전과를 했다. 그 이야기를 말씀드리러 박 교수 댁을 찾아갔던 날, 큰절을 하고 무릎을 꿇고 앉아 ‘교수님, 저 영문과로 전과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는 나에게 교수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왜?’라고 묻지도 않으셨다. 손수 차를 타주신 선생님은 내내 아무 말이 없으셨다. 그때 우리는 방석을 깔고 앉아 있었는데, 교수님은 말없이 뜯어진 방석 귀퉁이에 튀어나온 솜을 개구쟁이 아이처럼 손끝으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삼십여 분 동안 교수님은 그 방석의 솜 끄집어내기를 계속하셨다. 그뿐, 교수님은 내내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선생님은 내가 국문과를 떠나지 말고, 당신 밑에서 학문을 하기를 바라셨던 거로구나. 겨우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때는 이미 영문과로 전과가 확정된 뒤였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쓴 미국 극작가 테너시 윌리엄스에 빠져서 극작가가 되기를 꿈꾸면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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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산 산문집
『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 -한수산 지음 ‘내가 아는 모든 것은 그것을 사랑했기 때문에 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말이다. ‘작가의 말’, 맨 첫 문장으로 등장하는 이 말은 소설가 한수산이 지난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대륙의 시간을 건너 노년이라는 간이역에 이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화두인 듯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꿈꾸었던 여행지는, 청춘의 진혼곡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은 세 곳. 미켈란젤로의 조각이 있는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테너시 윌리엄스가 살았던 미국 플로리다주의 키웨스트 그리고 화가 폴 고갱이 묻힌 히바오아섬의 갈보리 묘지다. ‘언제쯤’ ‘꼭 이곳만은’이라는 단서를 붙이며 그리워했던 곳이다.’ 27년의 작가 혼을 불살라 일제의 강제징용 문제와 역사 왜곡을 고발한 소설 『군함도』의 작가 한수산의 독백이다. 살벌한 역사의 전쟁터에서 이제 막 귀향한 군인처럼 드디어 우리는 문학의 본령으로 돌아온 그의 아름다운 문체를 만날 수 있다. 산문시처럼 투명한 문장과 깊은 사유의 언어로 다시 독자를 찾아온 소설가 한수산. 더 향기롭고 그윽해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독자들은 하룻밤 사이 머리칼이 하얗게 새버린 콜베 신부가 돼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대로 결코 짓밟혀서는 안 되는 인간으로서의 자존, 끝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찾아 헤맸던 꿈과 자유, 결코 물러설 수 없었던 그 모든 가치가 하나씩 붕괴되고 무너지는 것을 볼 때 그리고 더 이상 그것을 지킬 힘이 남아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될 때 우리의 존재는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서글퍼진다. 이제는 그리움도 아픔이 된다는 소설가 한수산의 고백 앞에서 더욱 처연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다. 오랜만에 만나는 한수산의 산문집 『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을 통해 독자는 그가 잠시 열어두었다는 마음속 다락방으로의 아름다운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