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마지막 산책
부록 01 어떻게 해야 했을까 | 간병이직방지 컨설턴트 구라사와 아쓰시 02 어떻게 해야 했을까 | 임상심리사 이토 히데나리 03 어떻게 해야 했을까 | 간병복지전문 변호사 소토오카 준 04 어떻게 해야 했을까 |《시사IN》 탐사기획팀장 변진경 주 |
長嶺超輝
夜久かおり
송경원의 다른 상품
|
엄마를 보살피고 있을 때에만 하루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 p.9 지난 10년간 엄마가 늘 지니고 다니던 수건이다. 원래의 형태를 알 수 없을 만큼 낡았고 원래의 색깔을 알 수 없을 만큼 바랬다. --- p.10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가 유지될 때 만들어지는 안온감과 활기 속에서 하루는 모처럼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 p.14 지친 얼굴로 엄마는 업어 달라고 보챘다. 지독하게 배가 고프고 체력도 바닥난 지 오래지만 하루는 엄마를 업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엄마가 이렇게 날 업어줬는데……. 하루는 오랜 기억을 떠올렸다. --- p.28~29 “엄마가 널 계속 힘들게만 하고……. 더는 너한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엄마는 계속 소리쳤다. --- p.33 자식은 다 크고 나면 언젠가는 부모 곁을 떠납니다. 성장의 기쁨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를 돌보는 일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돌보면 돌볼수록 부모는 점점 쇠약해져만 갑니다. --- p.45 생활비가 부족했다. 급기야 집세도 내지 못하게 되었다. 집주인의 호의로 이미 월세는 절반만 내고 있었다. 이미 친척들한테서도 여러 번 큰돈을 빌렸다. 더는 누구에게도 신세지고 싶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 p.50 “피고인에게 생명 존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단언할 수 없다. 피고인은 생활보호 등의 행정 지원을 받지 못하고 심신이 모두 피폐해진 상태였다. 그 고통과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피고인은 피해자를 헌신적으로 보살펴왔으며 마지막으로 피해자와의 추억이 담긴 장소를 함께 찾은 사실도 있다. 피해자는 피고인의 헌신에 감사할 뿐 조금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고, 엄벌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 p.58 “이 사건으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은 피고인만이 아니다. 개인의 일탈이 아닌, 사회 문제로 인식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간병보험과 생활보호 등 사회보장제도 전면의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 p.59 이 책을 읽고 더 많은 분들이 “사람은 누구나 늙기 마련이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자연의 섭리를 되새겨보셨으면 합니다. 돌봄을 받는 것도, 돌봄을 주는 것도 우리 인생에서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 p.74 사람은 누구나 늙음을 물리칠 수 없고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몸과 생명은 놀랄 만큼 덧없고 약합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어려울 때는 서로 돕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선 그 정신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되살리는 것이 진정한 안전망을 만들어가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p.78 어딘가에 고립된, 벼랑 끝에서 떨어지기 직전인 사람은 SOS를 외칠 힘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아예 나락으로 떨어져버리는 게 더 수월하겠다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조금이라도 더 먼저 발견해서 손을 내밀어주는 데에 사회의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합니다. 또 하나, 간병 문제가 좀 더 ‘사회화’되어야 합니다. 같은 고통을 겪어도 이것이 나만이 겪는 일이 아니라는 자각이 개인에게 주는 위로와 힘은 엄청납니다. 뒤늦게 가슴 치는 이야기들이 더 많이 생겨나기 전에 이런 인식과 제도의 개선을 서둘러야 합니다. 이 책을 읽고 가슴이 먹먹한 채로 그냥 책을 덮어버리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 p.81~82 |
|
늙고 병든 엄마와 가난한 아들,
그들이 함께한 마지막 산책길 하루는 치매로 투병 중인 노모를 10여 년간 홀로 돌봐왔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방 안에 여우가 뛰어다닌다며 한밤중에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일어나기 일쑤였고, 그런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하루는 만성 수면 부족 상태로 5년간 직장생활을 계속했다. 하지만 치매가 점점 심해진 어머니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주변을 배회하다 경찰의 보호를 받는 일이 잦아지자 하루는 주변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자 직접 간병을 하기로 하고 직장을 그만둔다. 대신 어머니를 돌보면서도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기로 했다. 하지만 마땅한 일자리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일을 구할 때까지 당분간 경제적 지원을 받을 방법이 없을지 구청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루 씨는 충분히 일하실 수 있는 상태잖아요. 일을 하셔야죠.” 집세는커녕 끼니를 잇는 것 자체도 매우 곤란해졌다. 자신의 끼니는 이틀에 한 번으로 줄이면서까지 하루는 어머니의 식사만큼은 거르는 법이 없었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결국 하루는 마지막 결심을 하게 이른다. 그리고 그날, 한낮에 시작된 어머니와의 산책은 어둠이 내린 뒤로도 한참 이어졌고 어느덧 한적한 외곽 지역에 다다른다. 도심의 화려한 불빛이 비켜 간 장소. 어둠과 고요만이 자리한 그곳에서 그날의 긴 산책은 그렇게 끝이 나는데……. “이제 끝이야. 끝이라고. 엄마한테 줄 수 있는 게 이젠 아무것도 없어. 그동안 엄마가 날 어떻게 키워왔는지 내가 잘 아는데, 그래서 엄마한테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어서 안간힘을 다했는데. 엄마, 미안해, 못난 아들이라서 정말 미안해.”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가해자에 대한 심판보다 제도와 행정의 모순을 환기하는 판결문 내용으로 일본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판사는 “피고인은 피해자를 헌신적으로 보살펴왔으며 피해자는 피고인의 헌신에 감사할 뿐 조금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고, 엄벌도 바라지 않을 것”이라며 가해자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린 뒤 “이 사건으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은 피고인만이 아니다. 개인의 일탈이 아닌, 사회 문제로 인식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간병보험과 생활보호 등 사회보장제도 전면의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사건은 ‘온정 판결’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되어 일본 사회에 치매 고령자와 가족의 문제를 환기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내게도 닥칠 수 있다’는 상상력과 돌봄의 사회화를 향한 보편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간병 살인에는 기약 없이 돌봄 시간은 길어지고, 아픈 가족을 돌보느라 경제적 활동은 줄어들고, 간병 비용은 늘어나는 돌봄 가족의 비극이 담겨 있다. 한 보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가정 20가구 중 한 집에는 간병이 필요한 가족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 환자의 숫자만큼 간병을 하는 가족들이 그들 곁에 존재한다. 담장 안 그들만의 이야기는 예기치 않은 고백으로 종종 세상에 드러나곤 한다. “60대 여인, 팔순 할머니 손 잡고 철로에 뛰어들어…”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 자녀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40대 아들 치매를 앓던 아버지를 폭행해 숨지게 해” “뇌경색 딸 15년 간병 끝에 살해한 70대 노모 집행유예” “조현병을 앓던 딸을 살해한 60대 어머니에게 징역 4년을 선고” “45년 전 이혼 아내 간병 중 살해한 80대, 2심도 징역 8년”……. “우리의 문제다”라고 사회적 문제로 인정받기 전의 문제들을 떠안고 사는 개인들은 매우 불행합니다. 《마지막 산책》의 하루가 그렇습니다. “개인의 일탈이 아닌, 사회 문제로 인식되어야 함이 마땅하다”라는 판사의 선언이 일본 사회에 충격을 주기 전까지, 하루 혹은 일본 내 하루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간병은 말 그대로 ‘죽을힘을 다해’ 나나 내 가족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돌봄이라는 문제에 직면하면서 사회와의 단절을 경험한다. 외부와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하나씩 끊어지고, 단절되고, 상실되는 과정에서 결국 간병하는 이와 돌봄을 받는 이, 이 둘만의 관계만 남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픈 당사자뿐만 아니라 간병 가족의 건강 또한 악화되며 심리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들마저 ‘숨은 환자’가 되었거나 ‘환자’가 되어가는 셈이다. 사건을 취조하던 형사가 하루에게 “이렇게 되기까지 왜 아무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묻고, 재판장에서 검사가 “곤경에 처했을 때 국가나 타인에게 의지한다는 게 왜 부끄럽습니까?”라고 질책했듯이 벼랑 끝에 다다른 개인이 어떤 사건을 일으키고 나서야 사람들은 묻고 질책한다,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냐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당신들 스스로 알아서 도움을 찾으라고 요구하는 건 너무나 가혹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고통과 부담감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괴롭습니다. 사회가 좀더 먼저 그들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어딘가에 고립된 사람은, 벼랑 끝에서 곧 떨어지기 직전인 사람은 SOS를 외칠 힘과 정신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구조를 요청하는 것보다 아예 그냥 나락으로 떨어져버리는 게 더 낫겠다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조금이라도 더 먼저 발견해서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데에 사회의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합니다. 돌봄이라는 문제를 사회가 안고 사람들이 함께 나누지 않는 한 비극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모두가 함께 사회 속에서 간병 살인처럼 무서워지는 돌봄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마지막 산책》 속 하루 이야기처럼 뒤늦게 가슴 치는 이야기들이 더 많이 생겨나기 전에 돌봄 노동을 평가절하하고 당연히 가족이 해야 할 일로 생각하는 우리 사회 전반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더불어 돌봄 보호자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 등의 공공서비스 제도도 시급히 재정비되어야 할 때다. ‘돌봄의 사회화’, 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임을 기억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