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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장. 어린 시절: 준데르트 2장. 미술 거래상: 헤이그, 런던, 파리 3장. 탐색: 램즈게이트, 아일워스, 도르드레흐트, 암스테르담 4장. 광부들과 함께 하는 전도사: 보리나주와 브뤼셀 5장. 다시 가족과 함께: 에텐 6장. 시엔과의 생활: 헤이그 7장. 저 멀리 북쪽: 드렌터 8장. 감자 먹는 사람들: 뉘넌 9장. 도시 생활: 안트베르펜 10장. 보헤미안의 몽마르트르: 파리 11장. 노란 집: 아를 12장. 정신병원으로의 은둔: 생폴드모졸 13장. 마침내 휴식: 오베르쉬르와즈 준데르트에서 오베르까지: 반 고흐 여정의 연대기 미주 참고문헌 이미지 출처 찾아보기 감사의 글 |
Martin Bai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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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빌럼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1852년 3월 30일 준데르트에서 태어났다. 1년 뒤 정확히 같은 날짜에 그의 어머니는 건강한 두 번째 남자아이를 낳았다. 이 아이는 형과 같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장차 예술가가 될 이 아이의 아버지 테오도루스는 그 지역의 목사였다. 이 어린 소년은 예배에 참석할 때마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사산아였던 형의 비석 앞을 지나갔다.
--- 「1장. 어린 시절」 중에서 16세가 된 반 고흐는 친척의 소개로 첫 직장을 얻어 미술 거래상의 수습직원이 되었다. 반 고흐와 같은 이름을 지닌 (‘센트’로도 알려진) 삼촌 빈센트가 헤이그에 갤러리를 열었고, 이후 파리를 기반으로 성공을 거둔 회사 구필(Goupil)에 넘겼다. 센트가 계속 동업자로 남았던 까닭에 어린 조카에게 일자리를 보장해 줄 수 있었다. --- 「2장. 미술 거래상」 중에서 1876년 3월 31일, 구필 갤러리에서 마지막으로 근무한 날, 반 고흐는 구직에 대한 긍정적인 응답을 받았다. 켄트의 해안가 램즈게이트에 있는 작은 남학교의 보조 교사직이었다. 이 학교의 운영자는 윌리엄 스토크스(William Stokes)로 흥미롭게도 그 역시 예술가였다. 반 고흐는 1년 전 에텐의 브라반트 마을로 이사한 가족들과 함께 짧은 휴가를 보낸 뒤 4월 중순 램즈게이트에 도착했다. --- 「3장. 탐색」 중에서 1878년 8월 반 고흐는 전도사들을 위한 플랑드르 대학에서 공부하고자 에텐에서 브뤼셀의 북쪽 교외 지역인 라켄으로 옮겼다. 긴 학업 과정을 밟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것이 교회에서 일하기 위한 가장 빠른 길로 보였다. (……) 반 고흐는 이 일에서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전도사직은 6개월의 수습 기간 뒤에 끝나고 말았다. (……) 일자리를 잃긴 했지만 반 고흐는 보리나주에서 독자적으로 전도사 생활을 이어나가기로 결심했다. 1879년 8월 그는 바스메스에서 쿠에스메스로 옮겼다. 이곳은 몽스 외곽의 인근 마을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탄광 감독이자 전도사인 에두아르 프랑크(Edouard Francq)의 작은 집에 머물렀다. 당시 반 고흐의 정신 상태는 최악이었다. --- 「4장. 광부들과 함께 하는 전도사」 중에서 1880년 7월 아직 쿠에스메스에 있던 반 고흐는 옆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또 다른 광부 찰스 데크루크와 그의 아내 잔의 집에 묵었다. 반 고흐는 두 사람의 아이들과 같은 방을 사용했다. (……) 이 작은 방에서 그리고 가장 힘든 환경 속에서 반 고흐는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 --- 「4장. 광부들과 함께 하는 전도사」 중에서 반 고흐는 에텐에서 가족과 함께 계속 생활할 계획이었지만 크리스마스에 있었던 부모와의 격렬한 언쟁 이후 갑작스럽게 떠난 헤이그에서 2년 가까이 머물게 되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암스테르담 다음으로 큰 도시였던 이 역사적인 중심지는 신출내기 예술가가 필요로 하는 모든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 「6장. 시엔과의 생활」 중에서 반 고흐의 드로잉 〈스헨크베흐의 집들〉은 그가 머물렀던 장소를 보여준다. 그가 거주한 첫 번째 아파트는 오른쪽의 더 높은 건물로, 건물의 왼편 위층에 머물렀다. 이후 그는 이 작품 왼쪽에 보이는, 높이가 조금 더 낮은 옆 건물의 아파트로 옮겼다. 헤이그에 도착한 지 며칠이 지난 뒤 반 고흐는 테오에게 “나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즐거워. 특히 나만의 작업실을 갖게 된 것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아주 신난다”고 말했다. 스헨크베흐의 아파트는 에텐에서 빚어진 가족들과의 긴장 관계에서 안식처가 되었다. --- 「6장. 시엔과의 생활」 중에서 1883년 여름 반 고흐와 후르닉의 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 점점 더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가던 반 고흐는 도시에서 근 2년을 보낸 뒤 ‘진정한 전원 지역’을 갈망하며 자신의 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풍경을 찾고 있었다. 그는 네덜란드 북쪽의 인구밀도가 낮은 드렌터 지방을 선택했다. --- 「7장. 저 멀리 북쪽」 중에서 1885년 11월 24일 안트베르펜에 도착하자마자 반 고흐는 기차역과 역사적인 중심부 사이로 나 있는 이마주 가에 숙소를 잡았다. (……) 반 고흐는 작업실로 사용할 2층 앞쪽의 작은 방과 함께 뒤쪽의 창문 없는 방을 빌렸다. 그는 대도시에서는 뉘넌에서 누린 것과 같은 공간을 결코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작품을 판매할 기회와 그를 통해 이 상황이 벌충되리라는 순진한 기대를 지니고 있었다. --- 「9장. 도시 생활」 중에서 테오에게 알리지 않고 반 고흐는 돌연 파리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안트베르펜에서 보낸 편지에서 그는 종종 동생과 함께 지내는 것에 대해 의논하기는 했지만, 1886년 2월 말 반 고흐는 무작정 파리에 도착했고 테오에게 루브르 미술관의 살롱 카레에서 12시에 만나자는 짧은 전갈을 전해줄 사람을 구했다. (……) 테오와 만날 장소로 살롱 카레를 선택한 것은 자신의 천직에 전념하겠다는 진지한 의지와 함께 파리가 성장하는 예술가에게 제공해 줄 모든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겠다는 반 고흐의 결심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 「10장. 보헤미안의 몽마르트르」 중에서 남부의 강한 햇살이 비치는 아를에서 반 고흐는 그의 가장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을 제작하게 된다. 아를에서 머문 15개월 동안 그는 200점에 달하는 그림을 그렸다. 일주일에 3점 이상을 그린 놀라운 속도였다. 여기에는 만개한 과수원, 황금빛 밀밭, 지중해 바다 풍경, 우편 집배원의 초상, 해바라기 정물을 그린 그의 빼어난 수작들 중 상당수가 포함된다. --- 「11장. 노란 집」 중에서 방랑자의 삶 전반에 걸쳐 반 고흐는 대단히 충격적인 이동을 몇 차례 경험했지만, 이 마지막 여정이 가장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자진해서 자유를 포기하고 정신병원으로 들어갔다. (……) 의사 페이론이 방으로 안내했을 때 반 고흐는 즉각 창문의 쇠창살에 주목했을 것이다. 제약을 가하는 억압적인 창살은 그러나 그가 이후 몇 개월에 걸쳐 수차례 그리게 될 숨 막히는 풍경에 틀을 둘러주었다. --- 「12장. 정신병원으로의 은둔」 중에서 파리에서 북쪽으로 3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오베르쉬르와즈는 쾌적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수도와 인접한 위치로 인해 풍경 화가들을 매혹하는 장소였다. (……) 오베르에서 반 고흐가 좋아한 주제는 밀밭이었다. 밀밭은 계곡 위에서부터 북쪽으로 펼쳐졌다. 반 고흐는 어머니 안나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구릉들을 배경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이 밀밭에 완전히 빠졌어요.” (……) 결국 그는 이 광활하고 탁 트인 시골의 풍경을 10여 점의 그림에 담았다. --- 「13장. 마침내 휴식」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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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한곳에 정착하지 못했던 방랑자, 반 고흐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그는 어떻게 예술가로 성장했는가? 빈센트 반 고흐는 한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영혼이었고, 그래서 언제나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녔다. 그는 천직을 찾는 일에 20대를 보냈다. 구필 갤러리의 미술 거래상으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디었던 그는 이후 영국에서 교사로, 벨기에의 탄광촌에서 광부들을 위한 전도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마침내 그가 예술가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에도, 여전히 그는 자신의 작품에 영감을 줄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며 방랑자의 삶을 이어나갔다. 이 불안정한 생활방식은 반 고흐가 수십 곳 이상의 임시 거처에서 머물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민 수가 몇백 명에 불과한 브라반트의 작은 마을에서부터 당시 세계에서 가장 인구수가 많았던 런던에 이르기까지, 또 해군들의 막사부터 정신병원의 자그마한 방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곳에 머물렀다. 평생에 걸쳐 그가 경험했던 진정한 의미에서의 집이라고는 겨우 두 곳뿐이었고, 그마저도 아주 짧은 기간에 불과했다. 이 책은 반 고흐가 살고 머물렀던 공간들과 이를 둘러싼 풍경들이 어떻게 그의 예술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는 37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어디에 머물렀는가? 또 그것이 반 고흐의 작품에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이를 위해 반 고흐의 작품은 물론 출판되지 않은 기록물들, 당대에 촬영된 풍경 사진들을 함께 수록해 반 고흐에 대한 이해를 더욱 돕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