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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는 선물입니다
“내 마음대로 옷 좀 입게 내버려 두세요” “나 교회에 안 갈래요” “강요하지 마세요” “어른들은 이해 못 해요” “왜 날 항상 못 믿으시는 거예요” “날 사랑한다면, 허락해 주셨을 거예요” “엄마 아빤 위선자예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오늘 밤에 차 써도 돼요?”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나를 절대 용서 안 하실 거예요” 맺음말 부록 ‘부모 모임’을 만들려면 |
Eugene H. Pet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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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 ‘잘 적응하는 청소년기 아이들’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청소년기’라는 말 자체가 ‘적응하지 못하는 시기’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적응하기까지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때로는 요란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 청소년기 자녀라는 다소 거북한 포장에 싸인 이 선물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장하라고 도전하시고, 우리 사랑을 시험하시며, 우리 소망을 단련시키시고, 우리 믿음을 깊은 구렁에 빠지기 직전까지 밀어붙이십니다. ▷ 청소년들은 무엇보다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용하게 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 방에 들어앉아 격리된 채 성장하는 것도 아니고, 또래들 틈에서 안전하게 있을 때에만 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의 성장은 무질서하게, 사방으로 뻗쳐 나옵니다. 이처럼 청소년들은 원기 왕성하게 성장의 모형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성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성장이 멈추어 버릴 위험에 처한 부모들에게 하나님의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 청소년들은 거의 모든 시간을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는 데 보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거울 앞에서 보내는지도 모릅니다. 자기 자신을 정의하는 과정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됩니다. 그것은 다루기 힘든 고통으로 가득 찬 과정입니다. ▷ 청소년기가 되면, 결정을 내릴 때 자신의 의견도 존중해 달라는 아이들의 요구가 갈수록 거세집니다. …… 그들은 독립적으로 선택을 해야만 하고 그 선택에 따라 책임 있게 살아가야 하는 성인기에 가까이 와 있기 때문에, 이제 그러한 삶을 시작하고 싶어합니다. ▷ 아이들 대부분이 튀는 행동을 통해 어른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점은, 자기들이 ‘유별난 존재’가 아니라 ‘구별된 존재’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 어느 계층의 견본이나 청소년의 한 사례로서가 아니라, 이름을 가진 개인으로서 주목해 주기를 저마다 바라는 것입니다. ▷ 청소년들은 자기 존재의 근원을 찾고 스스로를 정의(定義)하려는 의도에서 때로 ‘부정’과 ‘거부’라는 장치를 사용합니다. 이들은 개인적인 신앙을 추구하면서, 비개인적이거나 제도적인 것은 무엇이든 거부합니다. ▷ 의심과 질문과 반항은 십대들의 인격 속에서 무언가 매우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나름의 어른스럽고 개인적인 신앙을 가지기 위한 준비 운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 교회에 저항하는 것은 무신론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자가 되어가는 자연스러운 발전과정일 확률이 더 큽니다. ▷ 부모에게는 권위가 있고 자녀는 순종해야 한다는 보편적인 체계가 주어진 상태에서,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이 응답해야 할 질문은 ‘어떻게 하면 자녀를 복종시킬까?’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나의 권위를 제대로, 그리고 지혜롭게 행사할 수 있을까?’ 입니다. ▷ 누가복음 2장 41-51절 본문이 가르쳐 주는 ‘권위’에 대한 세 가지 통찰; 1.권위가 도전을 받는다고 허세를 부려서는 안 된다, 2.권위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3.권위는 강압적이지 않다. ▷ 부모와 청소년 자녀 사이의 의사소통이 개선되려면, 워크맨의 볼륨을 높이거나 더 큰 스테레오를 살 것이 아니라 할 말을 더 많이 만들고 듣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 부모와 청소년이 세대 간의 장벽을 뛰어 넘어서 대화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루이스 멈포드가 비난한 것처럼 “오직 한 세대의 지식밖에 없는 오늘날의 참담한 결함”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 부모가 청소년의 패션을 따르고 그들의 유행어를 따라 쓰고 그들의 소비 습관을 따라가는 것은, 청소년들에게 “나는 내가 속한 세대의 지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싫다. 거기에는 아무런 뜻도 의미도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 ‘차이’가 충돌로 퇴보하는 일이 많은 세상에서, 세대 차이는 개인적인 사랑과 믿음과 소망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기회이지 이익을 추구하거나 우월성을 주장할 기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일에 부모 세대는 앞장서야 합니다. ▷ 청소년들이 부모의 신뢰를 저버리거나 부모를 실망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실패는 청소년기의 위대한 경험이며, 청소년기에 널리 퍼져 있는 경험입니다. 신뢰받을 만하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는 것은 많은 실수 중 하나일 뿐입니다. ▷ 청소년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고, 부모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형식으로 사랑을 주지 못합니다. 청소년에게는 여전히 채워야 할 욕구가 있고 부모에게도 여전히 나누어 줄 사랑이 있지만, 그 두 가지가 그렇게 매끄럽게 맞물리지는 않습니다. …… 옛 사랑은 빨리 포기하면 할수록 좋습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사랑을 빨리 배우면 배울수록 좋습니다. ▷ 청소년들은 위선자라고 하는 경멸의 말을 꽤 마구잡이로, 그리고 종종 부정확하게 사용합니다. 어떤 때는 단순히 죄인―완전하지 않은 사람, 잊어버리기도 하고 짜증내기도 하고 잘못 판단하기도 하는 그리스도인―의 동의어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 인생에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는 ‘목표의 혼란’은 청소년들에게 흔한 질병입니다. 이 질병은 모든 일에 방해가 됩니다. 미래는 혼란스럽고 불확실하며 불길하기까지 합니다. 선택을 해야만 하는 일들이 생기고 있고 앞으로 오랜 세월 동안 흔들림 없이 지켜 가야 하는 결정들이 있는데, 그들의 자아는 아직 준비 되지 있지 않습니다. ▷ 교회에는 미래의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사람들을 준비시켜 주는 교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소망’(hope)의 교리입니다. 소망이 없다면 미래에 대해 반응할 수 있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바로 ‘막연한 기대’(wishing)와 ‘불안’(anxiety)입니다. ▷ “소명의 비전”을 격려하는 과정에서 부모가 실수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1.장래 직업을 강요하는 것; 이런 부모들은 자녀가 실제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둔감하거나 무관심하다, 2.그 반대로 무조건 내버려 두는 것; 이러한 태도는 자녀의 삶에 공백을 남기게 되고 그 공백은 다른 사람이 와서 금새 채워 버릴 것이다, 3.장래에 대해 갖가지 질문을 퍼붓는 것; 이것은 불안을 유발하고 사람을 방어적으로 만들며, 결국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