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여름스물일곱 살의 여름은 아엽에게 특히나 가혹하다. 졸업 후 내내 함께 일해 온 선배 부부의 회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하고, 아엽이 그들과 일하는 걸 탐탁지 않아 했던 친구 ‘미옥’에게는 어쩐지 그 사실을 털어놓기가 힘들다. 실업 급여를 받기 위해 찾아간 고용복지센터에서 아엽은 아이러니하게도 영상 편집 수업 강사 ‘병선’에게 영상 편집 과외를 해 주며 30만 원을 벌게 되지만, 갑자기 생긴 30만 원은 갑자기 사라진 ‘치니’를 찾기 위해 고양이 탐정을 고용하며 아이러니하게 사라진다. 이상한 일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오랜 친구인 미옥에게는 해고 얘기며 치니 얘기며 할 수가 없는데,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병선은 아엽이 면접 볼 회사를 알아봐 주고, 키우던 고양이를 잃어버렸다는 말에 돕겠다고 나선다. 올여름은 왜 이렇게 더운 걸까? 부당해고를 당했다는 얘기를, 치니를 잃어버렸다는 얘기를 미옥에게 들려줄 날이 올까? 사라진 치니를 찾을 수 있을까? 병선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바깥의 최고 기온도, 마음의 적정거리도 엉망진창인 여름. 뙤약볕처럼 뜨겁고 미러볼처럼 어지러운 아엽의 여름은 어떻게 지나갈까.■뱅글뱅글 도는 물음표아엽은 ‘치니를 찾아야 한다’는 낯선 목적을 지닌 채 익숙한 동네를 순찰한다. ‘고양이를 찾습니다’ 전단지를 붙이다가 만난 동네의 캣맘과 차츰 가까워질 무렵, 캣맘이 건넨 질문에 아엽의 마음은 아수라장이 된다. “아엽 씨는 그런 생각 안 들어요? 치니가 왜 그랬을까.” 그 말은 곧 치니가 일부러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말, 자신의 의지로 아엽을 떠났다는 말. 캣맘의 말은 아엽이 오래 품어 온 삶의 질문을 불러온다. 왜 나는 언제나 혼자인가? 그 물음표는 타인을 겨누기도 하지만 결국엔 스스로를 찌른다. 유일하게 내 편이던 치니가 사라졌고, 그 일은 왜인지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나간 엄마를 떠오르게 하며, 이 슬픔을 유일한 친구에게도 솔직하게 말한 적이 없고, 호감을 보이며 다가오는 사람을 경계하는…… 나. 문제는 전부 나에게 있는 건 아닐까? 슬픈 물음은 슬픈 마음을 부르지만, 아엽은 슬픔에 머무르지 않는다.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난다. 그 과정에서 아엽은 자학의 질문을 멈춰 줄 새로운 물음표를 추가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언제나 남겨지는 쪽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다.■최선의 마음, 마음의 최선강진아 작가는 관계에 요령을 부리지 않고 사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인물들을 그린다. 마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눈을 떼지 않는 이들. 『오늘의 엄마』의 정아가, 『미러볼 아래서』의 아엽이 그렇듯이. 이들은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를 알아채고 바로잡는 데에 조금 느리고, 새로운 친구를 받아들이는 일에 어색하게 굴지만, 결코 관계의 책임을 회피하지는 않는다. 아엽은 자신이 오랜 시간 고정해 둔 관계에 대한 편견에서 다른 면을 보려고 최선을 다한다. 자신이 언제나 배려하는 쪽이었다는 생각, 이 관계가 지속되는 데에는 나의 노력이 훨씬 컸으리라는 생각에서 한 걸음만 비껴 서 보기. 나의 입장을 말하고 타인의 사정을 묻기. 어쩌면 한 계절 동안 아엽이 해낸 가장 힘든 일은 그것이 아닐까. 치니를 향해, 미옥을 향해, 엄마를 향해 아엽이 걷고 달린 거리는 최선의 길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소중한 이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이동거리를 축적하는 아엽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맺은 관계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니가 중요해서”, “너한테는 제대로 말하고 싶은” 거라고 말하는 아엽으로부터, 소중한 이를 대하는 단순하고도 어려운 마음의 원칙을 배우게 될 것이다.작가의 말 몇 해 전, 낯선 동네로 이사를 갔습니다. 새집에서 대여섯 마리의 고양이들과 자주 마주쳤습니다. 전에 살던 할머니가 고양이 사료를 주셨던 것 같습니다.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이 집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듯 고고한 모습이었고 저는 주눅이 들어 고양이들 눈치를 살피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노랑 고양이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노랑 고양이를 알아보고, 노랑 고양이를 생각하고, 노랑 고양이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노랑 고양이는 집에 들이면 힘들어했기 때문에 야외에 사료를 두고 집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행히 비가 오면 그곳에서 지내 주어서 저는 매일 비가 오기만을 바라기도 했습니다. 노랑 고양이가 하루라도 눈에 띄지 않으면 동네를 돌아다니며 찾았습니다. 남의 집 담벼락이나 차 밑에 노랑 고양이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심하고 돌아설 수 있었습니다. 새벽에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예민해졌고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노랑 고양이를 알기 전의 제가 보았더라면 정신이 나갔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노랑 고양이는 이제 없고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습니다. 지금의 고양이들과 함께 놀다 보면 노랑 고양이 생각이 자주 납니다.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노랑 고양이와는 다른 형태로 지금의 고양이들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노랑 고양이에게 너무 커다란 마음을 주어 버려서 다른 존재로는 채울 수 없는 구멍이 생겼습니다. 지금의 고양이들과 보내는 일상은, 그 구멍을 바라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저를 스쳐 간 수많은 이별과 만남에 대해 아주 약간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 살아가기도 한다는 것을, 저는 고양이들을 통해 배웠습니다.